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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몽골] 조림지에서의 열 달 – 양효선 단원

어느 새 에세이 저장 이름에 18이 아닌 19가 들어가게 되었다. 시간이란 참…….
이번 달은 KCOC에 제출한 에세이를 포함해 총 두 가지 내용을 담아보았다.

[상상]
상상(想像). 상상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름대로 그려보는 것. 몽골에 오기 전까지 상상의 범위는 무한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몽골은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들었을 때도 ‘아~ 대강 이런 느낌이겠구나.’하고 나름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몽골로 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실제로 겪어 본 몽골은 내가 그린 그림을 훨씬 뛰어넘는 곳이었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하늘이 높고 맑아 다양한 색들이 층층이 보일 줄은 몰랐고, 별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큰 별들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은하수조차 맨눈으로 보일 줄은 몰랐고, 봄철 모래바람이 심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모래 때문에 앞이 안 보이고 바람 때문에 걷기도 힘들 줄은 몰랐고, 가축들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슈퍼 가는 길 가로수를 뜯어먹는 소를 만날 줄은 몰랐고, 조림지 나무가 정말 작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몸을 숙이지 않고 보이지 않을 줄은 몰랐고, 겨울이 춥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밖으로 나오자마자 콧속이 바삭거리며 얼어버릴 줄은 몰랐다.

이렇게 몽골은 여러모로 내 상상을 뛰어넘는 곳이었다. 상상의 범위는 무한대가 아니다. 같은 얘기를 들어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보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나 역시 무의식중에 이때까지의 겪었던 경험들의 테두리 안에서, 한정적으로 상상을 했다. 이제 내 경험의 가짓수에 몽골에서 보낸 소중한 한 해가 더해졌다. 덕분에 내가 그릴 수 있는 생각의 폭도 한층 넓어진 것만 같다. 고마웠습니다, 몽골.

[눈]
돈드고비는 올란바타르에 비해 정말 많이 따뜻하다. 하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춥다. 그래서 눈을 많이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눈은 잘 내리지 않는다. 춥기는 분명 추운데,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얼굴이 아프고 바지는 꼭 두 개를 입어야 외출이 가능한데. 왜 눈이 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새벽에 눈보라가 치고 난 뒤에만 길에서 눈을 볼 수 있다. 이마저도 새벽에 오는 거라 내리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함박눈을 보고 싶었는데, 창가에 앉아 함박눈이 내리는 걸 보며 핫초코를 꼭 마시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조금 쌓인 눈도 눈이라고 들떠서 눈보라가 온 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나갔다. 조림지 가는 길 어느 게르 담벼락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참새도 보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있어 살포시 발자국도 찍어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일등으로 찍는 건 정말 언제 해도 신나는 일이다. 또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어지러운 눈 위에서 내 발자국을 다시 찾아보는 것도 정말 재미있고 신이 난다. 그렇게 뽀얀 눈을 찾으려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귀여운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짤막한 작대기 세 개가 콕콕콕 찍힌 것 같은 새 발자국과 뭉퉁뭉퉁한 모양의 개 발자국. 다른 발자국들도 찾아보고 싶었는데 다 너무 뭉개져있어서 찾기가 힘들었다.

사진1 사진2

눈이 내린 날이라 그런지 나무에 눈꽃이 핀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너무 예뻤다. 손이 닿으면 사르르 녹아버려 눈으로만 실컷 담아왔다.

사진3

단원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곳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다. 이곳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 두세 겹씩 옷을 껴입고서라도 여기저기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요하고 차분한 나날들이 잊히지 않기를. 언제 떠올려도 그 어느 때, 그 어느 곳보다 선명하게 기억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