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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몽골] #몽골에서 #어떻게든 (10) – 박정현 단원

이 편지를 몇 번이고 썼다가 지웠는지 모르겠어. 읽는 너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런 너에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 깜냥인가도 모르겠고. 먼저 겪은 선배?라는 이유로 이런 꼰대짓을 하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고, 너가 이걸 읽고 날 어떻게 볼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말야. 다 상관없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게. 아마 어느 정도는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너 이거 왜 하려고 하니? 혹시 돈 받으면서 해외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신청했니? 한국에서 할 게 없어서 이거 신청했니? 아니면 스펙에 한 줄이라도 더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신청했니? 혹시 그딴 생각으로 신청했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만둬. 그게 단체를 위해서도,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제일 중요해) 너를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 될 거야.

오 그건 아니라고? 다행이야. 그러면 다음 질문. 너 1년 죽어도 버틸 생각은 혹시 하고 있니?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그곳의 생활이 거지같아도, 내가 원하던 일과 다른 일을 하게 될 지라도, 단체에서 부당한 것을 요구하더라도,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정말 불가피하지 않는 한(예를 들면 네 신변에 상해나 위험이 생긴다든지) 어떤 모양으로라도 버텨낼 생각을 하고 있니?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너를 위해서 그만 둬.

이건 약간 추가 질문이긴 한데, 너 이번에 가는 그 나라에 이번 봉사가 끝나도 또 갈 생각을 혹시 해본 적 있니? 이게 뭔 소리냐고? 그래야만 하냐고?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런데, 나는 그냥 네 마음가짐에 대해 묻고 싶은 거야. 1년이라는 계약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지, 아니면 1년이라는 그 시간의 제한을 넘어서 그곳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가고 싶은, 연이 닿는 한 그곳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계속 마음을 주고 마음을 받고 그 마음을 귀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이 혹시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은 거야. ‘1년짜리 마음’인지 아닌지 한번 살펴보라고. 거기에 따라서 그 1년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으니깐(너나 네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말야).

이쯤 되면 아마 욕이 턱 끝까지 차오를지도 몰라. 너는 얼마나 잘났기에 이딴 말을 하는지. 따져보고 싶겠지 아마. 어 난 대답할 수 있어. 나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흔쾌히 맞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 와… 정말 갈수록 태산이지? 이 자식은 도대체 뭐하는 놈인가 싶지? 자랑하려고 글을 쓰는 건가…싶지? 이렇게 말하는 이유? 다른 이유 없어. 실은 나도 힘들거든. 이렇게 각오한 나도 힘들어 죽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나보다 더 각오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1년의 지옥을 맞고 싶지 않다면 말야. 너를 욕하고 비난해봤자 내가 무슨 이득이 있겠어. 전혀 없어. 지옥을 맞을 각오가 없다면 빨리 포기시켜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야.

내 주변에 중도귀국한 사람들이 없지 않아. 많아 아주.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엄청 많아. 그 사람들은 각오가 덜 되어서 귀국했을까? 마음가짐이 연약해서 그렇게 되었을까? 아니? 전혀. 그 친구들이 어떤 동기로 봉사를 결심했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랑을 받았고 어떤 사랑을 전해주고 싶은지, 같이 합숙훈련을 하면서 이야기할 때, 나는 그 반짝이는 눈을 똑똑히 보았어. 그런데도, 단체의 부조리한 처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는 봉사활동과 사람과 나라들을 떠나보내고 자신의 꿈이 잘못된 건지, 허황된 꿈을 꾼 것인지 고뇌하며 혹은 한탄하며 귀국한 친구들을 나는 보았어. 나는 너가 그렇게 되길 원치 않아. 좌절할 바에는 도망치라고 말하고 싶어. 개발협력 그렇게 아름답지 만은 않거든.

실은 나도 알아. 너도 마음가짐이 그렇게 가볍지 않을 거라는 거. 이 쓰잘데기 없는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너는 분명 나름의 각오가 된 친구일거야. 이제 그런 너에게만 나의 비밀을 말해줄게. 힘들어 죽겠다고 했잖아 아까? 근데, 난 실은 행복해. 힘들어 죽겠는데 행복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도, 온통 사방에 의뭉스러운 사람들 투성이일지라도, 초원 한복판에서 피터지는 싸움이 나고, 집에 홍수가 나고, 도둑이 들고, 그 도둑이 잡고 보니 내가 알던 아이들이었고, 며칠 뒤 내 생일을 앞두고 함께 일하는 주민들이 서로 싸워 내 생일에는 절반이 일을 그만 두었어도, 나는 행복해.

이곳에서 나는 아무도 겪지 못할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한국 안에만 머물렀던 치졸한 나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이 몽골 땅과 사람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며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 아마 이건 엔지오를 통해서 현지인들과 밀접하게 일하는(혹은 같이 사는) 우리들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보람일거야.

그만 두라는 내 말은 다 잊어줘. 솔직히 말하면, 실은 말야… 너희가 나와 같은 이 보람을 느끼면 좋겠어. 1년 많이 힘들겠지만, 견디고 견뎌서 (때로는 싸워내서) 나와 같은 이 기쁨을 누리게 되면 참 좋겠어.

이 편지를 실은 너희가 읽을 수 있을지, 언제 즈음 읽게 될지 난 잘 모르겠어. 하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은 이 편지가 분명 언젠가 너희에게 닿을 거라 믿어. 그리고…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 항상 응원하고 있어. 끝까지 힘내.

2019.1.23. 몽골에서. 2018년 단원이 2019년 단원에게.

#몽골에서 #어떻게든 #너희에게용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