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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7-[유전자 에이전트 김용범의<방귀와 분뇨의 비밀 이야기⑥>] 방귀 뀔 자유는 있을까?③

김용범 프로필1

– 나는 자유의 개념에 나눔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

내가 잘 아는 어떤 여성에게 젊어서 미팅에 나갔었을 때 당시 남성 상대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했다. 그때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이유를 자세히 말했다. 지금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과거에 그 여성이 싫어했던 것을 상대 남자가 바꾸면 만나겠느냐고 물었더니 만나지 않겠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다시 만나지 않는 이유가 사라져도 여전히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나지 않았던 이유가 싫은 이유는 그것이 아니란 뜻이 된다. 싫었던 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런 것은 여성만 해당하는데 누군가가 싫다는 이유와 만나지 않는 것 사이에 불일치가 생긴다. 여성이 남성을 만나고 그렇지 않고를 결정하는 중대한 이유는 유전자에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자손의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배우자를 결정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그런데 자손의 면역기능이 약화 될 가능성이 있는 남성이면 여성의 본능은 그를 거부한다. 그러나 본인은 작용을 전혀 모른다. 그냥 상대 남성이 싫은 것이다. 이유는 모르고 싫으니 나름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합리적 이유가 사라져도 여전히 상대를 만나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후손의 생존 가능성을 늘리는 방법이다. 면역력이 좋으면 질병에 강한 후손을 얻어 생존 가능성이 올라간다. 여성의 배우자 선택은 다분히 본능적 행동이다. 비록 본능이지만 생존에 매우 유리한 적응 방법이다. 본능이 단지 무가치한 것만은 아니며 생존에 관한 한 매우 합리적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본능을 잘 이해해서 인간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행동 경제학 등의 인간 본능을 기존의 학문 분야에 적용하는 새로운 학문 영역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야는 기존에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본 편에서는 1편과 2편에서 언급한 사회 문제와 환경 위기 등을 해결을 위해 인간 본능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인간의 본능은 누군가와 반드시 협동하면서, 미래를 대비해 나누는 것을 포함한다. 현대를 사는 수렵채집사회에서도 이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규모에 따라 나눔이 나타나는 정도가 다소 다르다. 수렵채집사회는 이동하는 경우와 정주하는 경우가 있다. 이동하는 집단은 25인 이내고, 보통 평등하다. 고기 같은 먹거리는 장기간 저장이 어려우니 쉽게 나눈다. 인심을 저장해 두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생존 가능성을 올린다. 동시에 이런 분위기를 지속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통해 구성원이 함께 열심히 노력한다.

충분한 식량이 있는 곳이 있으면 사람들은 정주한다. 저장 기술도 발달하고 인구가 는다. 그러나 인구가 늘면 먹거리에 제한이 생기고, 전체 인구에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인구압이 생겼다고 한다. 커진 인구압은 협동의 규모를 키워 자원 확보를 늘려 해결한다. 협동을 통해 더 많은 자원을 효과적으로 얻는 것이다.

협동 규모가 커지면 무임승자차가 생기면서 상호 욕구 조정이 힘들어진다. 만일 나눔이 단지 무조건 하는 행동이라면 무임승차자도 수용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 실제로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노력보다 더 큰 혜택에 무감각하다. 무임승차해 얻은 자원이라도 잘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나눌 때 고통이 얻을 때 고통의 2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눔은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행동이다.

어쨌거나 협동 규모가 커지면 그에 따라 무임승차자가 늘어난다. 자신이 덜 노력하고 더 가지고 가려 한다. 타인들과 그룹으로 일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무임승차자가 반드시 있다. 이런 행동도 유전자에서 기인해서 고치기 어려우며 갈등이 생기고 협력을 방해하는 원인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정주하는 규모가 큰 집단은 이동하는 소규모 집단과 다른 형태의 사회 체계가 만들어진다.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도자다. 일종의 권력을 가진 지배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통치자라고 해도 된다. 지도자는 무임승차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여 갈등을 예방한다.

이런 형태로 인간은 수렵채집사회를 보냈다. 인류의 90% 이상은 이런 형태의 삶이었다. 이런 삶에 적합한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 이전에는 이와 다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인간에게는 파충류 시절의 유전자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록 발현은 되지 않으나 흔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난황의 주요 단백질인 비텔로제닌이라는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다. 인간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음에도 이 단백질 유전자 흔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동물의 유전자를 땜빵을 해서 사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어쨌거나 효과적인 협동이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올려주며, 협동의 규모가 커질수록 적응도가 높다. 협동을 통한 인구 증가가 적응도가 높다는 뜻이다. 협동의 규모가 커지면서 상대해야 할 사람이 늘어난다. 그러나 인간의 뇌가 가진 기억할 수 있는 관계는 최대 약 300여 명을 넘지 못한다.

인구가 더 많아지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아마도 피라미드와 같은 형태로 조직을 만들게 되고, 수직적 사회 체계가 된다. 이것은 구성원의 자원 접근성에 차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위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좀 더 자유롭겠지만 하위의 사람들은 자유가 줄게 된다. 아마도 노예제는 이런 과정에서 생겼을 것이다. 그 후 통치자는 통치의 지속적 보장을 위해 그 정당성을 완벽한 어떤 존재로부터 신에게서 받았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완벽한 신의 역할은 이성으로 대치되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동물을 땜빵한 수준이다. 그런데 완벽한 이성을 가질 수 있는 존재로 믿었다. 개인이 일정한 수준의 도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런 사람이 통치한다면 여러 사회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런 태도는 인간을 너무 과신한 것이다. 인간은 완벽한 수준의 도덕성에 도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혹시 누군가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 상태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다. 사람의 도덕성은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행동이 외부로 드러날 수 있는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권력이든 금력이든 형태와 상관없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독선적이며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무례한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더욱이 비밀을 유지할 수 있으면 끼리끼리 협력을 통해서 그들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손을 더 많이 남기는데 유리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변한다.

이것이 우리가 적폐라는 것들은 만드는 원인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 때문에 생긴 것으로 사람이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누가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던 이런 본능은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게 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경유착도 이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소수가 자원을 독점하는 여건이 만들어지게 된다.

자원이 소수에 집중되면 가난한 사람이 늘어난다. 사회적 약자는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이렇게 되면 서로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가 나더라도 저항한다. 그 결과 사회가 가진 체계는 무너지고 협력은 깨진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이 그 예의 시작이라는 생각된다.

우리도 가진 자에 대한 나쁜 감정이 커지고 있다. 분노와 복수심을 커지고 있다. 이 경우 자신이 손해가 나더라도 조직이나 가진 자의 요구를 거부하고 저항한다. 그리고 저항한 자는 통쾌함이나 만족감을 얻는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본능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갑질과 같은 행동에 대한 비판과 비난의 수위가 올라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방귀 뀔 자유는 있는가? 1편과 2편에서 언급한 환경 문제와 함께 권력이든 금력이든 가진 자는 본능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피해를 더 준다. 따라서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꾀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것이 바로 자유에 나눔을 넣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환경자원 이용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진화되어 온 본능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더 독선적으로 변할 수 있으니 높은 지위를 가진 자가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일반적인 사람보다 그들의 자유는 더 세심한 관리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부나 명예에 훼손된다면 그들이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이 기존의 자유에 나눔을 넣는 것이라 믿는다. 즉, 자유로운 삶은 보장되지만, 이것은 자원 소모를 수반하고, 불특정 다수의 타인이나 후손의 생존 가능성을 침해하니, 불특정 다수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피해에 보상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 개념을 바꾸면 1편과 2편에서 말한 것 같은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문제로 생긴 빚 청산뿐 아니라 본능에 의한 피해도 보상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가 혜택을 본다.

나눔이 포함된 자유가 인간에게 적합할까? 수렵채집사회는 비교적 소수가 모여 살았다. 누군가 이타적 행동을 하면 구성원이 다 안다. 투명하다. 농경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십 명에서 백수십 명의 사람들이 함께 거의 평생을 살기 때문이다. 동시에 누군가의 이타적 행동은 미래에 어떤 형태든 반드시 돌아온다. 이타적인 사람과 협력을 더 하고 더 잘 대해 준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삶은 언제나 나눔이 있었다. 그리고 나눔이 있었기에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자유로운 상태가 될 수 있었다. 혈연관계 사이에 나눔이 없고, 함께 협력하는 집단 내에서 나눔이 없었다면 인간이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 역사가 협동의 규모가 커지는 방향이라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에게 나눔은 자유롭기 위한 전제 조건인 것 같다.

협동의 규모가 커지면서 과거의 수렵채집사회나 농경사회에 있던 특성이 사라졌다. 수십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협동을 하는 사회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수렵채집사회와 농경사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그 덕분에 누가 한 착한 일을 하는지 주변 사람은 거의 아무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착한 행위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이타적 행동이 사라지고 있고, 사람이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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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택종 작가

이택종 작가는 강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꿈과 낭만 속에서 자랐다. 지난 25년간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다.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삽화 및 만화작업을 했다. 현재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웹진 ‘e행복한 통일’에 월간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실제 경험도 그렇다. 나는 지나가다가 구세군을 보면 거의 100% 기부한다. 구세군뿐이 아니라 구걸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연말이면 구세군 덕택에 의외로 돈이 나가지만, 10년 넘게 이렇게 해오고 있다. 어떤 혜택을 바라고 하진 않았지만, 실제로도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선이나 구세군에게 주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나 느낌은 비슷하다. 단지 돈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억울함이 없고 약간의 만족감만 있을 뿐이다.

다른 예도 있다. 몽골에서 나무를 심는 푸른아시아에 기부하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들은 기부를 통해서 사업이 더 커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기부를 홍보에 이용해 얻는 좋은 평판의 덕분이다. 그러나 후원을 꺼리는 경우가 더 많다. 푸른아시아 홍보위원을 하면서 후원을 부탁해 봤었다. 결과는 대부분 실패였다. 선한 행동을 하면 더 큰 성공을 이룰 것이라고 설명해도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도 자신의 선한 행동이 열매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후원의 혜택보다 개인적 친분이나 혈연관계 때문에 하는 기부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나의 경험은 이타적 행동이 자기 미래를 위한 안전망이라는 학문적 이론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이타심이 진화한 이유가 생존 가능성 향상(적응도)이라는 이론에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그리고 나눔과 같은 이타적 행동이 있을 때 인간은 지속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나눔이 없다면 특정 기간 자유가 보장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지속할 수 없다.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인류 미래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사회가 나눔을 잘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얼굴 없는 천사들이 있다. 이들은 진화의 규칙을 뛰어넘는 행동이라고 할 만하다. 따라서 그 어떤 사람들보다 이들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우리 사회에 그런 분들을 찾아 정말 감사드리고 보상을 해야 한다.

만일 세상에 이런 위대한 사람들만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 이런 분들은 극소수다. 이들만으로 지속적인 자유를 확보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학교에서 자원봉사도 시키는 등 다양하게 교육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한다. 따라서 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간 본능을 이용해 환경을 만들어 사람들이 나눔을 하도록 하는 방법을 시험해 봤다.

나는 거의 10여 년 정도 학생들에게 착한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언제나 착한 행동하기 과제를 낸다. 그 과제의 이름이 ‘가치 있는 자원 나누기’다. 가치 있는 자원 4가지(노동력, 정보, 자본, 그리고 정서)를 타인에게 대가 없이 제공하고(착한 일 하고), 그것을 했다고 증명하는 것이다. 처음에 점수는 100점 만점에 5점이었다. 이것을 시작했을 때 학생들은 20% 정도 과제를 했다. 수렵채집사회처럼 혜택을 주었으나 여전히 학생들이 별로 안 했다.

이후 과제를 하지 않으면 A+를 주지 않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얻을 이익의 강도를 높인 것이다. 그러자 과제 수행자가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약 55%를 넘는 학생은 과제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A+에 관심이 없었을 것 같다. 다른 유인책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학생이 과제를 하도록 유도할지를 고민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 결과 지금은 100% 가까운 학생들이 ‘가치 있는 자원 나누기’ 과제를 한다. 점수도 줄여 지금은 100점 만점에 3점에 불과하지만 거의 다 한다.

거의 모든 학생이 과제를 하도록 만든 방법은 간단했다. 자신이 한 착한 일을 발표하라고 한 것이었다. 그렇게 했더니 갑자기 모든 학생이 다 과제를 했다. 수업을 잘 들어오지 않던 학생들조차 그날은 출석해 발표했다. 무엇이 학생들의 행동을 바꾸었을까? 나는 이기적인 행동을 싫어하고 자신에 대한 평판을 좋게 하려는 본능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착한 일 과제를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기적인 사람과는 협동하지 않는다. 유랑하는 수렵채집사회에서 이기적인 사람으로 찍히면 한 마디로 인생 쫑이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이것은 유전자에 수치심이란 형태로 본능에 박혀있다. 이 본능이 작동해 이기적인 행동을 이타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타적 행동을 발표하면 학과에서 누가 안 했는지 다 안다. 수렵채집사회처럼 이타적 행동을 하면 누구나 다 아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좋지 않은 눈으로 볼 수 있고 협동에서 배제될 수 있다. 이런 것은 당사자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무의식적 본능은 인생이 끝나는 것을 피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착한 행동한 것을 발표를 시키면 착한 일을 학생이 거의 다 하는 이유로 생각된다.

이 해석이 타당하다면 늘 보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만날 확률이 적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는 과제 수행비율이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교양처럼 여러 과가 들을 경우는 ‘가치 있는 자원 나누기’ 과제 수행비율이 낮아진다. 그렇지만 거의 90% 아래로 잘 내려가지는 않는다. 생각보다 과제 수행 정도가 매우 높다. 같은 학교라는 동질감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좀 더 다양하게 연구해보면 좋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의 기부 경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가치 있는 자원 나누기 과제, 수렵채집사회의 인간 행동, 그리고 과학적인 연구결과로부터 판단하면 세상이 각박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렵채집사회에 적합하게 진화한 이타적 행동이 산업사회의 구조가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착한 행동을 누구나 다 알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올리지만, 산업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바꾼다면 산업사회도 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남에게 베풀게 할 정당성 확보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그 후엔 자신의 가치 있는 자원을 나누는 착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지속하게 유도하기 위해 나눔의 사실을 모든 국민에게 알리며, 마지막으로 착한 행동이 미래에 자신의 생존 가능성 향상으로 항상 돌아오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자유의 개념을 바꾸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우리 생각을 바꾸고 하면 된다. 실제로 현재 자유의 개념이 영원불변의 진리도 아니며 역사적으로 늘 바뀌어 왔다. 그러나 자유가 통치자에 대한 투쟁의 개념이었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제안한 자유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가 진자 또는 지배자와의 투쟁 수단이다. 물론 자유에 나눔을 포함하자는 주장이 당장은 좀 이상하고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차 세련되게 다듬으면 될 것 같다. 이를 위해선 아마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의 이타적 행동을 전체 구성원에게 알린다고 하자. 그러면 좋은 평판과 함께 보상이 돌아올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인간(아기)은 이기적인 사람을 더 많이 쳐다본다. 악한 행동이나 사기 행동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오래 본다. 더구나 이기적인 사람이 주는 음식도 받아먹지 않는다. 그가 뭔가를 주어야 할 때는 착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준다. 더불어 이기적 행동을 보인 사람들과는 협동하지 않는다.

이것은 베푼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지면 그 사람이 만든 물건을 더 많이 사게 유도할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베푼 사람이 어려워질 때도 더 도우려고 할 것이다. 머리를 굴려서 이익을 찾아가리라 생각 할 수 있지만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주로 무의식의 세계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것을 베푼 기업가는 결코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투자한 자본을 잃을 위험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본능이 있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혜택만 보려는 무임승차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제도를 개선하여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착한 행동에 대해 제도적으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기부가 일정 시간 지난 후 항상 적응도를 올리는 혜택이 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기부자가 기업일 경우 정부 발주 사업 참여 시 가산점을 주고, 대기업도 이런 기준에 따라 사업을 발주하도록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기부에 대한 세금 감면이나 기부한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제도도 한 가지 방법이다.

더구나 이런 혜택을 특정 시점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애 모든 기간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하면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기부의 수혜자가 되어 자신의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다. 기부에 쓰인 자본은 소비가 되어 세상을 돌아 다시 부자에게 간다. 부자는 더 큰 부의 축적이라는 자신의 욕망도 충족한다. 그리고 축적된 자본을 나누어 좋은 평판도 얻는다. 더구나 기부금을 관리하고 쓰려면 NGO나 NPO 등의 제3 섹터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그러나 현 제도하에서 그들은 스스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것을 남 줄 때는 같은 금액을 얻는 기쁨보다 두 배 이상의 고통이 있어서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먼저 투자한 자본이 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다. 마지막으로 기부가 힘들게 되어 있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다. 따라서 기부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은 수백조의 돈을 사내 유보금이라 쌓아두고 있다. 세금을 매기면 배당을 하고 국부 유출 논란이 일어난다. 투자처는 마땅치 않다. 돈이 묶인 채 돌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부하고 그것에 다른 혜택을 주면 그들은 기꺼이 그것을 쓸 것이다. 기부가 새로운 투자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들의 부 축적에도 도움이 된다. 더불어 기업주의 갑질 등으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벗어날 수도 있다. 명예도 높이면서 돈도 버는 것이다. 기부의 혜택은 가난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가 얻는다. 모두에게 좋은 세상이 된다.

기부의 대상은 자본뿐만이 아니다. 지식, 정보, 그리고 노동력도 가능하다. 이것들을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앞에서 말한 것 같은 제도를 통해 보상이 돌아오고 좋은 인성을 가진 자로 명예가 올라간다.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그것을 베풀 때 연금이 더 나오거나 필요한 명예직 지위를 주도록 제도를 바꾸고 그것을 국민에게 알린다고 가정해 보자. 은퇴한 지식인은 어려운 사람이나 자원 접근에 소외된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부와 명예가 같이 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사회가 가진 능력은 함양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고령화 사회로 가는 우리 현실을 볼 때 노인의 일자리가 저절로 생기는 역할도 한다.

지금까지 사회 문제와 환경 위기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자유의 개념에 나눔을 넣자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인간 본능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자고 제안했다. 사람들이 공감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용할 구체적 방법도 몇 가지 제안했다. 그리고 그것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실행 가능성이 있음도 보여주었다. 자본과 지식뿐 아니라 정서나 노동력도 나눌 수 있다.

형태는 다르겠지만 통치자나 지배자의 권한도 나눌 수 있다. 소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지배자와 가진 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이 타인이나 약자에게 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지금의 자유의 개념과 이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도에선 허용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자유의 개념을 바꾸고 기부 제도를 포함해서 많은 제도적 변화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동물 유전자를 땜빵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사실을 수용해야 할까?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수용하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능을 잘 이해함으로써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오진 인간이 가진 이성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다면 인간의 불완전성을 점점 더 완전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따뜻해지고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과거보다는 좀 더 평등한 세상 될 것 같다. 어쨌거나 이런 사회가 되면 방귀 뀔 자유는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