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7-[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⑬>] ‘알아야 면장을 한다’의 면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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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좀 지긋한 분들은 ‘면장도 알아야 한다’라거나 ‘알아야 면장을 한다’ 따위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때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좀 이상한 말입니다. 비논리적 표현이지요.
‘알아야 면장을 한다’ 또는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말 속의 ‘면장’을 동네 이장 위 또는 군수 아래의 면장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는 그러려니 생각했답니다.
우리 동네에서 ‘면 서기’만 돼도 무척 똑똑하고 높은 분인데, ‘면장(面長)님’이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하고 높은 분으로 생각했던 거지요. 그래서 면장(님)이 되려면 아는 것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 이치에 맞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위 표현 속의 ‘면장’은 이장님보다 높지만 군수님보다는 낮은 ‘면장님’과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습니다. 이때의 ‘면장’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서 벗어난다”는, 즉 ‘면면장(免面牆)’이 줄어든 면장(面牆 또는 面墻)입니다.
이 말은 공자가 자기 아들에게 “시경의 ‘수신’과 ‘제가’에 대해 공부하고 익혀야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얘기지요.
그러고 보면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썼던 말이고, 우리나라 면장제가 확립된 것은 1910년 10월 일제가 수탈정책을 강화하고자 하부 지방행정조직까지 정비할 목적으로 ‘면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 때부터이니, 조금만 생각해도 ‘알아야 면장을 한다’의 ‘면장’이 面長이 아님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말을 바로 익히고 제대로 쓰려면 말의 어원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꾸미거나 고친 것이 전혀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티가 나지 아니하다”를 뜻하는 말로 ‘깜쪽같다’를 쓰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바른말은 ‘감쪽같다’입니다.
이 말은 ‘곶감의 쪽(잘라낸 조각)은 달고 맛이 있기 때문에 누가 와서 빼앗아 먹거나 나누어 달라고 할까 봐 빨리 먹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흔적도 없이 다 먹어 치운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 밖에 몇 가지 다른 유래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모두 감 또는 곶감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깜쪽같다’가 아니라 ‘감쪽같다’로 써야 합니다.
“쌍팔년도 시절 얘기하지 마라”라고 하면서 쓰는 ‘쌍팔년도’도 어원을 알아야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푸른아시아 독자분들은 ‘쌍팔년도’를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1988년으로 생각하시지 않나요.
그러나 이 말은 1988년 이전부터 쓰이던 말입니다. 바로 1955년을 가리키거든요.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연도 표시를 대부분 단기로 적었습니다. 즉 서기 1955년을 단기 4288년으로 표기한 것이죠. 바로 여기에서 ‘쌍팔년도’가 나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