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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몽골] #몽골에서 #어떻게든 (9) – 박정현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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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현상을 ‘발 조드’라고 부릅니다.”

다르항 지역에서 만난 몽골대 생명과학대학 어떵치멕 교수가 말했다.
동행한 김종우 실장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발 조드라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몽골은 본래 겨울에 눈이 내리면, 그 눈이 녹지 않은 상태로 초원을 포근히 덮어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초원에 수분 보충도 되고, 말들이 초원을 다니며 발굽으로 눈을 파헤쳐 풀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해 겨울이 따뜻해지자, 눈이 녹고 다시 얼고를 반복하여 초원 자체가 얼어버리게 되었다. 말들이 발굽으로 파내기에 얼음은 너무나 단단했고, 말들은 결국 풀을 먹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이다. 풀을 먹기 위해 얼음을 두드리다 죽은 말들의 발굽들이 그렇게 다 벗겨진 것을 보고 ‘발(=foot) 조드(=재앙)’라고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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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할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되는, 하지만 치명적인 광경은 매연의 스모그 속을 뚫고 차로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부모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에 최선을 다하지만, 오히려 매연을 심하게 내뿜는 중고차를 운전하며 미래를 살아갈 건강을 해하는 모순.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모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타나는 센터 뒤로 울란바타르 시내를 전망 할 수 있다. 위치상으로는 말이다. 그런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영화 ‘미스트’처럼 너무나 짙은 오타(-매연)로 시내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곳에 아무 것도 없는 것만 같다. 혹은 무언가 무서운 것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의뭉스럽고, 혼란스럽다. 바잉노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답답함이다. 소와 양의 울음소리만 간간히 들리던 그 적막하던 바잉노르가 오히려 무언가 사람이 사는 곳 같다. 이곳은 그저 ‘어쩌다 사람이 살아야만 하게 된 곳’인 것만 같다. 말하지 못하는 피규어들을 잔뜩 모아놓은 것처럼.

주중 이틀 아침마다 몽골어 과외를 받는다. 짙은 오타 속을 뚫고 와, 마스크 대신 감고 있던 스카프를 풀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골이 훨씬 살기 좋아요.” 매일 숨쉬기 답답해하시지만, 답답하게도 그녀가 그 답답함에서 빠져나오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대책이 없는 곳에 대책을 찾아 몰리는 사람들.
모순 속에 자신을 몰아넣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모순 속에 자식까지도 몰아넣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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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나는 다르항, 셀렝게 지역을 여행으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가지 못하게 되었고, 우연치 않게 이번 기회에 출장으로 갔다 올 수 있었다. 출장을 준비하며 본래 나에게 여행지로 다가왔던 그곳이 실은 몽골의 최대 곡창지대라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여행을 통해서라면 전혀 만나지 못 했을 이들과의 인터뷰에 동참할 수 있었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답답해지는 것만 같았다. 흐릿하게 보였던 문제가 구체화될수록 그것이 얼마나 크고 무겁고 어려운 것인지가 보였다. 울란바타르를 벗어나면 만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타를 다르항에서도 만났고, 이동하는 길목에서는 바잉노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큰 호수가 말라버린 것을 보게 되었다.

몽골에는 다섯 번째 방문이자, 첫 번째 삶이다. 이 첫 번째 삶은 몽골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매일 배운다. 배우면 무언가 가려운 곳이 시원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답답해진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희망에 찬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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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렝게의 투진나르스 숲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적막할 것이라 기대했던 그곳에서, 이미 방문하고 있는 굉장히 많은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아빠, 엄마가 이곳에 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들이 이렇게 컸다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키보다 큰 나무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실은 먹을 수 있는 풀을 찾아 셀렝게로 몰려드는 가축들 때문에 점점 작아지고 있는 숲이지만, 그 숲 한 가운데에서 그렇게 희망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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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센터 내에서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다. 본래, 나는 한국어를 가르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한국어 교육을 전문으로 배워본 적도 없다. 수도에 올라와서 제일 하고 싶었던 업무는 연구였다. 다신칠링 여름 내내 지내며 느낀 그 어떤 답답함을 연구하여 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어 교육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활동가들의 그 똘망거리는 눈망울들에 그 이유가 있다. 소통이 수월하지 않고, 물어본 적도 없었지만, 그들은 눈으로 나에게 말을 한다. ‘더 배우고 싶어. 더 배우고 싶어.’ 본래 2명을 대상으로 초급반 1반만 운영하려고 하였으나, 중급반 1반, 고급반 1반을 추가 운영하게 되었으며, 고급반 1반을 더 운영할 계획을 하고 있다. 연구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남는 시간에는 조금이라도 더 교수를 잘 하기 위해 스스로가 몽골어를 배우는데 매진하고 있다. 어느새 나는 그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매일 나는 비극 속에 있다. 공기만 답답한 것이 아니라 눈에 밟히는 모든 상황들이 너무나 답답하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둘러싸고 있는 상황들이 비극이다. 몽골 사람들은 비극 속에서 희망을 빛내며 사는 사람들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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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할 것이다. 무엇이 죽어도 죽으면 그냥 둔탁한 몸뚱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발 조드’라는 현상에서 우리는 그 죽음을 그냥 조드라고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은 말의 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 같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한 삶 한 삶에 더욱 가까이 갔을 때, 그 죽음은 여느 죽음과 같은 죽음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디에나 어느 나라에나 아픔은 있을 것이다. 어려운 자들도 있을 것이다. 소득은 불균형할 것이고 권력은 부정의할 것이다. 하지만, 몽골의 아픔은 더 이상 내게 다른 곳의 그것과 같지 않게 되어버렸다.

몽골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가는 순간까지 공부할 것이다. 돌아가서는 환경정책 대학원에 들어갈 것이다. 이 1년 간 나에게 일어난 이 일련의 변화와 각오에 대해 나 자신도 스스로 버겁고 부담스럽다. 혹자는 내가 몽골어를 배우는 것을 다시 안 올 나라 말을 배우는 ‘아주 쓸모없는 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정치외교학과 사회학 등 인문사회학에 치중했던 문과생인 내가 ‘환경’이라는 과학분야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겨우 1년 동안 결정내린 ‘경솔한 짓’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에 대해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설명할 여력과 시간이 내겐 없다. 그저, 셀렝게를 떠나는 날 달이 너무 예뻤고, 그 달을 울란바타르에서도 보고싶다는 말 밖에는…

#몽골에서 #어떻게든
#매일_배워 #하지만_더_답답해지는_것만_같아 #하지만_끝은_아니겠지
#어디에_쓸모가_있을까 #생각하려하지_않아 #언젠가_쓰임_받을_거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