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6-[유전자 에이전트 김용범의<방귀와 분뇨의 비밀 이야기⑤>] 방귀 뀔 자유는 있을까?②

김용범 프로필1

수천 년 전 수메르 사람들은 남편 곁에서 여성이 방귀를 뀌지 않는다는 농담을 했다. 그들은 우리와 민족이 다름에도 방귀를 농담에 이용했다. 우리도 재미있는 방귀 설화를 포함해 방귀를 재미로 풀었다. 그렇다면 서양은 어떨까? 인류의 기원이 같으니 그들도 우리처럼 방귀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예상대로 방귀와 관련해 다양한 농담이 있었다. 방귀 농담은 아마 세계 공통인 것 같다. 농담 중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서 가르쳤었던 학생에게 문자로 보냈다. 그들도 재미있어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나 : 재미있는 소재를 찾으려고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은 넌센스 문제를 찾았는데 둘 다 재미있나요?
아니면 어느 게 더 재미있나요?
전 다 재미있는 것 같은데 감각이 올드해서 모르겠어요.<넌센스 문제>
1. 방귀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는?
답 : 소리를 못듣는 사람이 알게하려고…
2. 모차르트와 메탄의 차이점은?
답 : 모차르트는 너의 귀로 들어오는 음악이고 메탄은 그의 뒤에서 나오는 음악이다.학생 : 1번은 답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2번의 메탄이 뭔지 모르겠어요.
메탄이 메테인 인가요?나 : 네, 메탄가스요. 방귀에 10%쯤 있어요.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요.

학생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좋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해하면 정적이…. 흘러요.

내가 받은 답은 한 마디로 썰렁하다는 뜻이다. 이런 견해를 준 학생은 나와 나이 차이가 30년 정도다. 4천 년과 비교하면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유머 감각이 매우 다르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음 세대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약 30년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그러나 4천 년 전 수메르인 농담은 어떤가? 여전히 현재 인간의 행동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어떻게 이런 긴 시간 동안 서로 공감이 가능할까?
인간 방귀는 인간이란 종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소화관이 있다면 방귀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되었다면 방귀에 대한 반응은 인간 유전자에 남았을 수 있다. 방귀 냄새를 맡을 때 우리 표정을 생각해 보자. 자동으로 반응한다. 입을 다물고 코를 찡그리며 인상을 구긴다. 구역질까지 하지 않으나 ‘역겹다’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똥 냄새와 비슷하니 역겨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것이 남자와 여자 사이 번식과 관련된 행동에 영향을 준다. 적어도 수메르인을 포함해서 일상의 경험도 이렇다.
‘역겹다’는 느낌은 무엇일까? 이것은 인간의 본능으로 상한 음식을 먹지 않거나 병원체에서 멀어지려고 진화된 행동이다. 역겨움은 차차 혐오감으로 발전되며, 우리는 이런 대상에게 더 심술궂은 행동을 한다. 이런 역겨움을 일으키는 원인은 인간 사회의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렇게 역겨움이 진화했어도 그 대상이 결정되어 있지는 않다. 아프리카 사람 중에는 쥐를 먹는데 우리는 그것이 역겨워도 그들은 그렇다고 하지는 않는다.
방귀는 모든 인간이 뀌고 똥을 연상될 수 있어서 그 냄새를 역겨워할 수 있다. 실제로 사람은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을 향해 방귀를 뀌는 등의 행동을 한다. 역겨움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어떤 회사 사장이 너무 갑질을 한다고 해보자. 다행히 다른 곳에 더 좋은 직장을 얻었을 경우 우린 과감히 사표를 던질 수 있다. 사표를 들고 사장실에 갔는데 마침 사장이 없다. 사표를 사장실 책상에 두고 나오면서 뭘 할 것인가? 사장실에서 방귀라도 뻥 뀌면서 속으로 ‘엿 먹어라’하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 상황이 사장실에서 방귀를 뀌는 몇 안 되는 상황 아닐까? 이렇게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이런 행동은 진화적으로 감염되어 죽거나 고생하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람은 방귀 냄새를 맡고 나면 타인에게 더 가혹하게 행동한다. 방귀 냄새를 풍기는 대상을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피하려는 행동 같다. 이것은 낯선 사람 앞에서 사람들이 방귀를 뀌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낯선 사람을 경계하거나 비호감인데 여기에 더해 방귀까지 뀌면 상대가 싫어할 확률은 올라간다. 생존 전략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진화적으로 협력을 중요한 사람이 제법 친밀도가 올라가야 방귀를 트는 이유일 것이다.
이것은 또한 4천 년 전 수메르인의 농담에 담긴 젊은 여성이 남편 곁에서 방귀를 뀌지 않는 것과 연결된다. 여성이 방귀를 뀌었을 때 남편이 자신을 가혹하게 또는 덜 따뜻하게 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식 가능성은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유전자에 방귀를 피하는 행동 특성이 남아있고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있어서 수천 년 전 농담과 통한다는 해석을 해 볼 수 있다. 바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공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유전자가 가진 힘이다. 세대 간에 급격히 달라지는 유머 감각은 유전자와는 무관할 것 같다. 그래서 언제나 나이 든 사람에게 젊은 사람은 이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그들을 잘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공유하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이런 해석은 방귀와 관련된 행동을 인간 유전자 또는 본능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증명하려면 방귀 냄새를 맡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상대에 대한 호감도나 미팅 성공 가능성을 확인해 보면 된다. 기회가 되면 연구해 보고 싶다. 그 결과가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연구비가 많이 든다. 시간강사는 연구비 신청도 거의 불가능하니 현재 할 수가 없지만 간단한 설문 조사는 가능하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에게 첫 미팅에서 방귀를 뀐 상대방이 애프터를 신청할 경우 응할 것인지를 물었다. 남성은 ‘그렇다’와 ‘아니다’의 비율이 50:50 정도였다. 그러나 여성은 3:6 정도였다. 애프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비율이 여성에게 더 높았다. 더 많은 젊은이에게 물어서 분석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이 무엇을 말할까? 인간 행동이 본능에 의해서 통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행동이 느려진다는 것을 모른다. 이와 관련해서는 수천수만의 논문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인간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이다. 이성보다 유전자 속 본능이 인간 행동에 더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며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비록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생겨서 일부 수용을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요원하다. 그런데 과거에 익숙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또한 본능이다. 이런 것이 본능이 중요하다는 과학적 결과를 받아들이게 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다. 즉,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는 과거의 지배적인 사고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지배적인 사상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서 언제나 피해자를 만든다. 서양은 신과 마귀로 인한 마녀사냥이 있었고, 우리는 재가 금지로 인한 불륜과 살인의 역사가 있었다. 과거 지배적 사상으로 인하여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 중의 한두 사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현대 인간 사회에 지배적인 사상은 완벽하지 않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동시에 현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배적 사상이 인간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근대에 만들어진 이성을 중심으로 한 사고가 현재 사람을 해치고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라면 이런 상태를 가만히 보고 있겠는가? 나라면 뭔가를 할 것 같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뭔가를 하려면 일반적으로 모델이 필요하다. 과거에 누군가 한 것을 따르기는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묵묵히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보고 잘 따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근대화와 산업화는 이렇게 발전했고 성공적이다. 이젠 나름 외국 사람들이 잘산다고 한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이 16만 정도이며, 그들은 우리나라 대학을 졸업해 여기서 직장을 얻고자 한다. 10년 전만 해도 수강생 중 외국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종종 눈에 띈다.
이런 성공은 우리만의 평가는 결코 아니다. 외국에서조차 우리를 좋게 평가하기도 하니 이제는 지금의 상태를 지키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래도 될까? 그것은 곧 파멸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그들을 보자마자 인상을 쓰지는 않는가? 혹시 그들을 역겹게 생각하거나 혐오하지는 않는가? 다윈은 야만인이 자신을 만지는 것이 역겨웠다고 했다.
다윈은 왜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사람은 질병의 매개체다. 몸에서 나는 냄새가 다를 경우 역겨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본능은 그들에게서 질병이 전염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과 감정은 다른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주 노동자를 혐오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할까? 앞으로 더 많은 이주 노동자가 우리 나라에 올 수 있다. 그 때 뭐라고 해야 할까? 이주 노동자도 같은 인간이니 차별하지 말라고 할까? 이렇게 지식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 몸속에 있는 유전자와 살아온 환경에 의해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바꿀 수 없어도 환경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인간은 어렸을 때 피부색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흑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인종에 따른 차별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유색인이 많은 학교에 다닌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할 때 인종에 대한 차별이 없다. 이론적 교육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다. 얼마 전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혼혈아의 비애를 없애려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처한 환경을 바꾸는 것이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환경엔 두 가지가 있다. 자연환경과 인간 환경이다. 비록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은 바꿀 수 없으나 다행히 인간 환경은 바꿀 수 있다. 인간 환경을 바꾸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하면 어른들에게 혼난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거나 대들거나 말대꾸한다고 윗사람에게 야단을 맞기도 한다. 특히, 젊은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학생들 분위기도 마찬가지인데, 역설적으로 학교는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라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비판적 사고를 가르칠 수 있을까?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야단을 치는 사회에서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라고 하니 뭘 가르쳐야 할까? 답답하다. 방귀에 따른 행동이 유전자에 있다는 사고가 일종의 비판적 사고다. 인간은 이성으로 판단해 행동한다는 우리 사회의 기존 지배 사상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지금까지의 경험상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욕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쨌거나 나는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라고 하니 가르치기는 한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은 비판적 사고와 행동을 하면 직장에서 모가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함께 말해준다.
다시 반복하는데 비판적 사고는 기존 개념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 새로운 생각은 과거에 경험하지 않은 것들이다.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다. 때로는 틀린 것처럼 여겨져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뭔가 논리적으로 부족할 수도 있다. 심할 경우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버려지기도 한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를 수용하려면 기존 고정 관념을 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조금 부족해도 상대를 존중하며 서로 함께 보완하겠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그래야 다양한 의견이 살아남을 수 있다.
어쨌거나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 방귀 뀔 자유에 대해 새로운 방향으로 접근해 보자. 앞에서 정의한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서 다른 사람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다. 이런 충돌에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법으로 허용 가능한 행위를 정해 둔다. 그리고 허용치를 벗어난 행위에 대해 형벌을 정한다. 적당한 범위로 자유를 한정하고, 형벌을 통해 개개인의 자유 사이의 충돌을 조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런 개념으로 방귀 뀔 자유는 없다. 누군가 해를 주기 때문이다.
한편, 개인의 자유를 한정해주는 체계를 사람이 운용한다. 그러나 사람은 불완전해서 법의 운용이 완전할 수 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돈 많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비슷한 죄를 저질렀을 때 비슷한 수준의 형벌이 받을까?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사람은 어떨까? 경험적으로 법의 잣대가 고무줄이라는 것은 최근 벌어지는 사법 농단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법의 잣대가 공정하지 않으면 언제나 약자가 더 큰 피해를 겪는다. 약자는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형벌을 강화한다면 어떨까? 약자의 삶은 더욱더 힘들어진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람의 생존 자체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생존 가능성에 해를 주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내 생존 자체가 타인의 자유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마!’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불평등 또는 불공정이 생기면 못 가진 자는 어떻게 될까? 일상에서 약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늘어난다. 남보다 덜 받게 되면 저항하는 본능 때문이다. 이런 본능은 남보다 더 많이 받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부당하게 받은 것도 내어주려고 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커지면 남성은 에고가 강해지고 독선적으로 변한다. 반대로 여성은 더 주위 사람들과 공감하려고 한다. 이런 상태의 남성은 심하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묻지마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여성은 그런 폭력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가정 폭력이 은폐되는 이유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불평등을 당한 사람들은 더 폭력적이고 동시에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 타고난 유전자 덕분에 모두가 이렇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누군가는 이렇게 행동하게 된다.

가정 폭력이 있는 경우 대략 약 40%의 아이들은 비행 청소년이 된다. 뇌에 있는 MAO(monoamine oxidase) 유전자 발현량 때문이다. 이 유전자는 대략 전체 중 약 40% 사람들의 발현량이 상대적으로 낮다. 타고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들은 평안한 가정에서는 정상적으로 성장하지만, 가정 폭력이 있으면 비행 청소년이 된다. 가난한 가정과 부유한 가정 중 가정 폭력이 심해질 확률은 어디가 더 높을까? 당연히 가난한 가정이다. 그 결과 못 가진 자들은 사회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며 사회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올라간다. 따라서 우리가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불평등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5회(수정)_ff

그림. 이택종 작가

이택종 작가는 강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꿈과 낭만 속에서 자랐다. 지난 25년간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다.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삽화 및 만화작업을 했다. 현재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웹진 ‘e행복한 통일’에 월간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환경 문제가 있다. 지금도 투발루, 아프리카 그리고 몽골의 누군가는 살아갈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사막화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어려워진 가해자가 그들 자신인가? 아니다. 산업화를 통해 발전한 우리며 우리보다 먼저 발전한 선진국들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우리에게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빚은 우리가 졌음에도 피해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국제적으로뿐 만 아니라 국내적으로 이런 상황은 발생한다. 올여름 전기 많이 사용해서 에어컨으로 시원하게 보낸 사람이 지구 온난화에 기여를 더 많이 했다. 에어컨 살 능력이 사람들은 온난화 기여도가 적다. 그들은 전기를 덜 사용하지만 덥게 여름을 보낸다. 돈이 없어서다. 당연히 먹는 것도 시원치 않을 것이니 그들 건강이 좋을 리 없다. 그 결과 폭염이 계속되면 그들의 조기 사망 확률이 올라간다. 에어컨 많이 틀면 자신은 아니지만, 주변에 누군가가 더 빨리 죽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국내 사회적 약자도 자유로운 삶을 사는 누군가의 피해자다.

불볕 같은 무더위는 지나가고 어느덧 초미세먼지 철이 되었다. 초미세먼지 같은 환경 오염도 같은 문제를 유발한다. 누군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바퀴에서 나오는 구리가 초미세먼지의 원인 물질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차를 타고 다니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뀌는 방귀나 똥에서 나오는 암모니아도 초미세먼지 원인 물질이다. 이것을 줄이려고 차를 타지 않고 또 똥을 싸지 않고 살 것인가? 현대의 생활을 고려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자명하다.
많은 환경 문제는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가 다른 불특정 다수에게 해를 줌으로써 생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범죄와 같이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지금 방법으로 그나마 해결할 수 있지만, 인과관계가 모호한 것들은 해결이 난망하다. 정부가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투자하고 있으나 그 한계도 분명히 있다.

이런 문제를 당신이 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과거 방식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인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전 세계에 앞에서 말한 문제들을 해결한 나라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남이 해결할 때를 기다릴 것인가? 스스로 해결하려 해야 하는가?

과거 우리는 발전된 나라를 따라가는 선택을 했다. 우리의 산업화가 늦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먼저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지금의 사상으로 보면 방귀 뀔 자유가 없지만 우리는 그런 자유가 있음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지금 상태로 가면 ‘킹스맨’이란 영화에서처럼 인간 생존에 위협이 생길 수 있다. 위협이 생긴다면 그것은 약자에게 더 가혹할 것이다. 강자는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분은 약자로 전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류의 지속성은 감소한다. 따라서 방귀 뀔 새로운 자유는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다음 글은 가난과 지능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여 방귀 뀔 자유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논의할 것이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것이라 좀 부족하고 모자랄 수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것은 인간은 혼자서 완벽할 수 없어서 함께 부족함을 채우거나, 더 좋은 안을 만들 기회를 얻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