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6-[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⑫>] 번역의 오류가 만든 ‘부자’와 ‘유리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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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하면 ‘크리스마스’가 먼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뿌리 내린 세월은 짧지만, 참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이죠. 우리 전통 종교 중 하나인 불교의 부처님보다 유입 종교인 기독교의 예수님이 먼저 ‘나라의 생일상’을 받았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45년 광복 직후입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인구의 5%도 되지 않았지만, 미 군정이 그동안의 일본식 공휴일과 축제일을 폐지하고 새로 공휴일을 만들면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삼은 것이죠. 이 크리스마스의 공식 이름은 ‘기독탄신일’입니다.

반면 ‘석가탄신일’은 1975년에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이 됩니다. ‘기독탄신일’ 이후 30년이 지난 뒤죠. 이 ‘석가탄신일’은 지난해 공식 명칭이 ‘부처님 오신 날’로 바뀌었습니다. 법령 용어를 한글화한다는 취지에 따라 이뤄진 일로, ‘부처님 오신 날’로의 명칭 변경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당시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요. 기독교 하면 ‘성경’이 떠오르고, 성경 하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말부터 떠오릅니다. 아마 이 구절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알 만한 말일 듯합니다.

그런데요. 이 표현은 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문장만 놓고 보면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못 가니까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으니, 거의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일이죠.
종교를 떠나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주 현명한 지혜들을 담고 있는 성경에 왜 이런 극단적인 표현이 적혀 있는 것일까요? 아니, 극단적이라기보다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이 더 적확하겠네요.
이에 대해서는 번역의 오류가 빚어낸 잘못된 문장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설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번역의 오류라는 것이 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원래 성경에는 ‘낙타’가 아니라 ‘밧줄’로 적혀 있었다는 것이죠.

유대인들의 말이라는 아람어[Aramaic]로 밧줄(gamta)과 낙타(gamla)는 철자 하나만 다르다고 합니다. 이를 훗날 번역자가 혼동해 ‘밧줄’을 ‘낙타’로 잘못 적어 놓은 것이 널리 퍼져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하네요. 즉 이 표현은 “권력이 있거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도 약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도와, 밧줄 같은 자신을 가는 실로 만들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 거라고 합니다. 참 멋진 비유입니다. 그것을 오역해 놓은 것이라면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낙타’를 ‘밧줄’로 바로잡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미 굳을 대로 굳은 말이므로, 그냥 써도 됩니다.
참 낙타는 예전 성경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따위처럼 ‘약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약대’가 ‘낙타’로 고쳐졌지요. 저는 이 부분이 더욱 아쉽습니다.

‘약대’는 한자말 ‘낙타(駱駝 )’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석보상절>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쓰던 말입니다. 순우리말 ‘약대’가 한자말 ‘낙타’에 완전히 밀려난 것 같아 마음이 헛헛합니다.
또 우리가 흔히 ‘바늘구멍’이라고 하는 것을 성경은 ‘바늘귀’라고 제대로 쓰고 있음도 눈길을 끕니다. 원래 ‘바늘구멍’이라고 하면 “바늘로 뚫은 작은 구멍”을 뜻합니다. “실을 꿰기 위해 바늘의 위쪽에 뚫은 구멍”은 ‘바늘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나없이 ‘바늘구멍’을 쓰는 까닭에 사전들도 최근 들어 ‘바늘구멍’의 또 다른 뜻으로 ‘바늘귀’를 다뤄 놓고 있습니다.

한편 바늘과 관련해 많은 사람이 “자신이 입을 드레스를 한 뜸 한 뜸 바느질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크다고 합니다” 따위처럼 ‘뜸’을 쓰는 일이 흔한데요. 우리말에서 ‘뜸’은 “음식을 찌거나 삶아 익힐 때에, 흠씬 열을 가한 뒤 한동안 뚜껑을 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속속들이 잘 익도록 하는 일” “병을 치료하는 방법의 하나” 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어느 것도 ‘바느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바느질할 때 실을 꿴 바늘로 한 번 뜸. 또는 그런 자국” “실을 꿴 바늘로 한 번 뜬 자국을 세는 단위”를 뜻하는 말은 ‘뜸’이 아니라 ‘땀’입니다. 따라서 ‘한 뜸 한 뜸’이 아니라 ‘한 땀 한 땀’으로 써야 합니다.
한편 문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번역의 오류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입니다. 샤를 페로의 프랑스판 이야기가 영어로 옮겨지면서 프랑스 단어 ‘vair(일종의 흰색 털)’가 ‘verre(유리)’로 잘못 번역되는 바람에 ‘하얀 털신’이 ‘유리구두’로 둔갑한 것이거든요.

작은 충격에도 깨지고 절대 늘어나지 않는 유리로는 구두를 만들 수 없지만, 동화적 상상 때문에 오랫동안 신데렐라의 발에는 유리구두가 신겨져 있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