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6-[송상훈의 식물이야기] 자주 듣는 식물용어②

프로필_송상훈

밑씨, 배, 배젖, 심피

지난 회에 거듭 설명했던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은 모두 씨를 품는 식물이기에 종자식물이라 한다. 종자란 씨앗을 말한다. 씨앗은 일종의 월동 비슷한 휴면상태이며 생명을 틔울 준비기관이라 할 수 있다.

씨앗은 수정한 밑씨(종자식물의 생식기관으로 씨방 속에 있으며 후에 씨앗이 될 부분)가 성숙한 기관인데 배(胚. 씨앗 속에 있으며 후에 싹이 된다)와 배젖(胚乳. 씨앗 속에서 배를 싸고 있으며 배가 싹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영양조직), 종피(씨껍질)로 구성된다.
이러한 씨앗을 기본으로 하되 씨앗만 있느냐 씨앗 외의 다른 기관이 있느냐에 따라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뉜다.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을 각각 나자식물(裸子植物), 피자식물(被子植物)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용어에서 보듯이 겉씨식물은 씨방 없이 밑씨가 드러나며 속씨식물은 자방인 씨방이 밑씨를 감싸는 식물이다.

전회에서 살펴 보았듯이 겉씨식물과 속씨식물 구분은 여럿 있으나 가장 큰 구별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꽃의 존재 여부이다. 속씨식물은 꽃받침, 꽃잎, 암술, 수술을 모두 갖춘꽃을 피우거나 꽃잎이 없는 꽃을 피운다. 특히 암술머리(stigma), 암술대(style), 씨방(ovary)으로 구성된 심피(心皮. Carpel)의 존재는 속씨식물의 대표적 특징이다.

한편 겉씨식물은 꽃이 없다. 겉씨식물의 암구화수는 대포자엽이 진화한 것이므로 이 역시 심피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있으나 심피는 속씨식물 고유 기관이다.

수정이 이루어지면 속씨식물의 밑씨는 씨방에 쌓이지만 겉씨식물은 씨방 없이 밑씨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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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포, 극핵, 정핵

둘째, 중복수정이다. 속씨식물은 중복수정 한다. 속씨식물에서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닿는 것을 가루받이라 하는데 가루받이하면 꽃가루관이 나와 암술대 속에서 뻗어 내리고 이 때 2개의 정핵이 같이 내려간다. 한 개의 정핵은 밑씨에 닿아 난세포(알세포. 자성세포라고도 하며 암술에 존재)와 수정하여 배(胚)를 형성하고 또 다른 한 개의 정핵이 두 개의 극핵과 수정하여 배젖(胚乳)을 형성한다.
배와 배젖은 배낭이 감싼다. 이 배낭을 종피가 둘러싸면서 씨앗이 된다.

난세포, 극핵, 정핵은 생식과 관여하기에 생식세포라 부른다. 정핵은 꽃가루 속의 생식핵이 2개로 분열한 것이다. 극핵은 속씨식물 배낭의 중앙에 있는 2개의 핵인데 정핵과 수정하여 2배수가 되고 다시 웅성핵과 합쳐 3배수가 되며, 이런 식으로 분열을 계속하여 배젖을 형성한다.

배는 어린눈, 떡잎, 아래 배축, 어린 뿌리로 구성되며 잎과 줄기와 뿌리로 자라난다. 배젖은 배낭의 중심핵에서 형성되며 식물이 성장하기 위한 영양물질 풍부한 양식이다. 영양물질이라 함은 녹말과 지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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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씨식물의 배와 배젖을 갖춘 씨앗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사과나 배, 감 등에서 유관으로 볼 수 있지만, 벼나 옥수수 등 녹말을 주영양물질로 저장하는 녹말종자나 유채나 아주까리, 참깨 등 지방을 주로 저장하는 지방종자에서도 볼 수 있다. 쌀의 경우 쌀눈이 배이고 쌀알은 배젖이다.

물론 겉씨식물도 종자식물이니 배와 배젖을 볼 수 있지만 중복수정 결과는 아니다. 꽃가루는 아니지만 유사한 기능을 가진 수구화수분이 암구화수의 밑씨에 직접 닿으면 정핵이 마치 동물의 정자처럼 헤엄쳐 난세포와 수정하며 다수의 세포로 분리되어 배와 배젖과 종피가 발달해 씨앗이 된다.

그렇다면 모든 종자식물이 배와 배젖을 갖췄는가? 그렇지 않다. 속씨식물 중에는 양분을 저장한 배젖이 없는 대신 떡잎에 양분을 저장하는 무배젖씨앗 종도 있다. 참나무류와 콩과식물, 겨자과, 박, 밤, 호도, 냉이 등이 그렇다. 이러한 식물의 떡잎은 양분을 저장하므로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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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속씨식물은 배젖씨앗 또는 무배젖씨앗을 맺는다. 그러나 배젖씨앗이라고 모두 갖은 형태는 아니다. 보통의 배젖씨앗을 내배젖씨앗이라 부르는데 비해 외배젖씨앗도 존재한다. 배낭의 바깥부분인 주심조직(珠心組織)에, 다시 말하면 배낭과 종피 사이에 배젖을 저장하는 씨앗도 있다. 이를 외배유(外胚乳)씨앗이라 하며 명아주과 석죽과 식물이 포함된다.

배와 배젖은 식물마다 그 크기다 다양하고, 이를 포함한 씨앗의 크기도 다양하다. 식물학자 알렉산더 캠벨 마틴(Alexander Campbell Martin)은 일찍이 씨앗의 유형을 배아 위치와 크기에 따라 12가지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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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크기와 관계 없이 모두 생명을 품은 바다인데, 알렉산더가 분류한 씨앗의 범위에서 가장 작은 씨앗의 크기는 고작 0.2mm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더가 분류한 씨앗보다 더 작은 씨앗이 존재할까? 그렇다. 더 작은 씨앗도 존재한다.
난초류에 속하는 열대지방의 기생란 씨앗은 크기 0.085mm에 무게 0.00081mg에 지나지 않아 사람이 맨눈으로 볼 수 없다. 110만 개를 모아야 비로서 1g이 되는 이 씨앗은 700만개가 들어가는 작은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가장 큰 씨앗은 무게 20kg에 달하는 쌍둥이 야자(coco de mer) 인데 난초 씨앗보다 무려 250억 배나 무거운 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음의 대명사 겨자씨는 알렉산더 분류 범위에 포함된다. 맨드라미씨보다는 큰 편으로 1.5~2.5mm 크기인 겨자씨는 힌두교, 불교, 기독교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겨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겨자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겨자는 유채와 비슷한 꽃을 피우는 십자화과이고 매콤한 맛을 내는 머스타스(Mustard)이다. 성경의 겨자는 실바도라과의 실바도라 퍼시카(Salvadora persica)로 약용으로 기름으로 활용한다. 이 역시 매콤한 맛이 있다 하고 씨앗 역시 들깨씨 크기로 작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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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겨자는 믿음의 척도이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태복음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태복음 17:20). 그 밖에 누가복음13:19, 누가복음17:6, 마가복음4:31, 마가복음4:32에도 등장한다. 믿음은 비롯 작더라도 종국에는 큰 힘이 된다는 의미이다.

불가와 힌두에도 겨자가 자주 등장한다.
유마경에는 須彌納芥子 芥子藏須彌(수미납개자 개자장수미) “수미산 안에 겨자씨를 넣고 겨자씨가 수미산을 감춘다” 즉 “겨자씨 한 알 속에 수미산을 넣는다”라는 말이 있고 “보살이 해탈에 이르면 수미산과 같이 광대한 것을 겨자 속에 넣어도 그것에 인해 늘거나 줄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한 개 먼지에도 시방세계가 들어 있고 우주를 능히 담을 수 있다는 말로 수행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산으로 해와 달이 이 산의 허리를 따라 공전한다.
수타니파타에는 “연꽃 위의 이슬처럼, 송곳 끝 개자씨처럼 온갖 욕념에 더럽혀지지 않는 자를 바라문이라 한다”는 말도 있다.

한편 시간을 재는 척도로도 쓰인다.
힌두와 불가에는 겁(劫. Kalpa)이라는 시간 단위가 있는데, 천지가 한 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을 뜻한다. 또 다른 겁의 표현으로는, 100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만한 바위를 닳아 없애는 시간, 또는 사방 100리 되는 큰 바위에 천상의 선녀가 100년에 한번씩 내려와서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선녀의 옷자락으로 바위 둘레를 한 바퀴 슬고 가는 행위를 반복하여 바위가 닳아 먼지가 되어 없어지는 시간, 혹은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따르면 사방과 높이가 각각 40리인 철성(鐵城)에 겨자씨를 가득 채우고 100년에 한 알씩 꺼내 다 비워질 시간이다.

겁은 인연을 설명하기도 하는데, 같은 나라에 태어나는 것은 1000겁에 한 번, 같은 도시에서 태어나는 것은 2000겁에 한 번, 하루 길을 동행하는 것은 3000겁에 한 번, 하루 밤 동숙은 4000겁에 한 번, 같은 동네 같이 사는 것은 5000겁에 한 번, 친구가 되는 것은 6000겁에 한 번, 형제가 되는 것은 7000겁에 한 번, 부부로 맺어지는 것은 8000겁에 한 번, 부모와 자식으로의 인연은 9000겁에 한 번,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1만겁에 한번의 확률이라 한다.

얼마나 까마득한 인연의 시간을 거쳐 우리는 지금을 함께 하는가! 주변의 모든 이들을 새삼 돌아보고 상호관계를 생각해 본다.

‘자주 듣는 식물용어’는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