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4-[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⑩>]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른다

프로필_엄민용1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신 주시경 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백 번 천 번 새겨듣고, 뇌리에 문신처럼 새겨 놓아야 할 가르침입니다. 말과 글이 병들면 그 말과 글을 쓰는 이들의 정신도 피폐해지기 마련이고, 그런 정신으로는 위대한 문화를 이룰 수 없을 테니까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우리말글을 죽이려 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우리말글을 지켜냈고, 그 정신으로 식민의 황폐함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말글을 잘못 쓰는 사례가 참 많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기역 니은조차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푸른아시아 독자분들도 그럴지 모릅니다.
아니시라고요? 그렇다면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우리말 자음 14가지를 정확히 적어 보세요.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정답부터 얘기하면 ㄱ은 ‘기역’, ㄴ은 ‘니은’, ㄷ은 ‘디귿’, ㄹ은 ‘리을’, ㅁ은 ‘미음’, ㅂ은 ‘비읍’, ㅅ은 ‘시옷’, ㅇ은 ‘이응’, ㅈ은 ‘지읒’, ㅊ은 ‘치읓’, ㅋ은 ‘키읔’, ㅌ은 ‘티읕’, ㅍ은 ‘피읖’, ㅎ은 ‘히읗’입니다.?
이들 중에 ‘ㄷ’을 [디글]로 소리 내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디귿]이 정확한 발음입니다. 또 ‘ㅋ’을 [키역]으로 소리 내고, 그렇게 적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ㅌ’을 ‘티귿’이나 ‘티긋’으로 적는 사람도 더러 있고요. ‘ㅎ’은 [히응]으로 소리 내고, 그렇게 적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푸른아시아 독자분들은 어떠했나요? 앞의 14개 자음을 정확히 글자로 옮기셨나요? 그랬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말 자음 14개의 정확한 이름쯤은 알고 사는 것이 어떨까요??
10월은 기역과 니은 등이 만들어진, 즉 한글날이 들어 있는 달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문자 가운데 만든 시기와 사람 그리고 만든 목적 등이 명확히 밝혀진 문자는 한글이 유일합니다. 특히 어떤 문자보다도 배우기가 쉽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의 언어석학들은 한글을 인류 최고의 문자로 상찬합니다.
이는 우리만의 자화자찬이 아닙니다. <대지>를 쓴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은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훌륭한 글자다”라고 상찬하며, 이를 만든 세종대왕을 ‘동양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렀습니다. <제3의 침팬지>의 저자로 퓰리처상을 받은 재레드 다이아몬드도 “독창적인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다”라고 말했고, 영국의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인 존 맨은 그의 저서에서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언어학자로부터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한글은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이다”라고 추어올렸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우리말글을 바르게 쓰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무분별하게 쓰는 외래어, ‘뗑깡’(간질병을 뜻함) 등처럼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쓰는 일본말 찌꺼기, ‘개쩔다’ 따위처럼 우리말글의 격을 떨어뜨리는 신조어 남발 등을 스스로 반성하는 10월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올라야 나라가 오르고, 나라가 올라야 우리 삶도 오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