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4-[송상훈의 식물이야기] 식물이란 존재 고찰②

프로필_송상훈

전 회에서는 식물이 생존을 위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지능과 인지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대략 살펴 보았다. 이번 회에서는 식물의 능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도록 한다.

 

평편한 식물의 잎, 지구 산소 공급원

식물의 잎은 광합성이나 호흡, 배출(증산)을 위한 기관이다. 햇볕을 이용해 잎의 기공으로 흡수한 이산화탄소 그리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포도당을 만들고 포도당을 녹말로 바꿔 잎, 줄기, 뿌리, 열매 등에 저장하는 작용이 광합성 작용인데, 잎은 다시 광합성 작용을 통해 축적한 영양분을 산화해 물과 이산화탄소, 에너지를 얻기도 하며, 노폐물을 식물체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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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요한 생명기관은 익히 알듯이 평면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평면 유지는 식물의 신비이다. 『편평한 식물 잎에 숨어있는 놀라운 설계(Flat leaves?a curly problem)』의 저자 데이빗 캐치풀(David Catchpoole)에 따르면 식물의 잎은, 음의 곡률, 혹은 양의 곡률이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에 잎이 편평 (제로곡률)하게 평면적인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감탄한다.
양의 곡률이나 음의 곡률이 활성화 되면, 즉 잎 중심부 세포가 더 빨리 자라거나 반대로 잎의 가장자리 세포들이 더 빨리 자란다면 잎은 뒤틀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잎은 평면적이면서 둥근 형태를 유지한다. 이유는 모든 세포들이 동시에 분화(성숙)하고 않고 순서에 따르는데, 잎의 가장자리에 있는 세포들이 먼저 분열을 멈추고 중심부에 있는 세포들이 분열하기 때문이다.

한편,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식물에서는 잎 중심부의 세포가 잎 가장자리 부근의 세포 잎에서 분열을 멈추고 가장자리 영역에서 더 큰 분열하여 평면이면서도 가장자리가 굴곡진 더 넓은 잎을 만든다.
이렇듯 정상적인 잎은 몰론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 잎들도 평면을 유지한다. 사실 이러한 평면은 매우 주의 깊게 조절된 생장과정의 결과이며,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유전자들에 의해 조절된 것이라 한다.

잎이 평면인 이유는 햇볕을 많이 받기 위해서다. 겉으로는 평면으로 보이지만 사실 세포 하나 하나를 들여다 보면 입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입체화하여 햇볕 받는 면적을 최대화하기 위함이다. 평면이어야 햇볕을 많이 받지만 평면은 표면적을 크게 하는 입체들의 모임이라 정리할 수 있다.

식물들이 지구에 산소를 불어넣기 위해 광합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한 그루는 매일 이산화탄소 3.6kg을 흡수하고 산소 2.6kg을 방출한다. 이는 3.5명이 하루 동안 숨쉴 수 있는 산소이며 병원에서 제공하는 산소로 친다면 약 5만 2천 원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하루 13g의 오존을 흡수해 대기를 정화한다 하니 지구의 모든 동물들에게 식물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뿌리, 그 놀라운 역할, 소통

전회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동물의 뇌에 해당하는 기능이 식물의 뿌리라는 견해가 있다. 미국 프린스턴대와 중국 과학원(CAS) 연구진에 따르면 수십억 년이 진행하는 동안 잎과 뿌리가 서로 다른 진화를 이루었는데 광합성을 위한 잎보다 뿌리의 효율성과 독립적인 특성, 다양한 시스템이 식물 생존에 더 중요했다고 한다. 식물이 지구를 뒤덮은 중요 요인은 뿌리에 있다는 것이다. 뿌리가 없다면 번식이 어려웠을 것이고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는 잎의 성장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지구의 바이오매스(biomas.s. 햇볕을 받아 유기물을 합성하는 식물과 이 식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과 미생물 등 모든 생물유기체 통칭) 중에서 99.7%가 식물이라는 사실로 보더라도 식물이 우연히 지구를 점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식물은 어떻게 지구를 점령하게 된 것일까? 답은 소통 때문이다.
컬럼비아 대학 삼림생태학 교수 수잔 시마드(Suzanne Simard)는 더글러스전나무(Douglas fir)와 종이자작나무(Paper birch)가 햇빛을 받지 못하는 작은 나무에게 탄소를 옮겨 준다는 사실을 밝혔다. 식물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생명선이 아니라면 세계의 많은 묘목이 생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식물 네트워크는 식물의 뿌리가 아니라 뿌리를 막처럼 싸고 있는 균사체 간의 연결인데 이를 ‘나무 와이드 웹(Wood Wide Web)’ 또는 ‘균사체 네트워크(Fungal Network)’라 부른다.
나무와 균사체는 서로 소통(식물은 탄수화물을 균사체에게 제공하고 균사체는 인과 질소, 수분을 식물에게 공급)할 뿐만 아니라 균사체를 통해 식물끼리 소통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인터넷으로 세계 곳곳에 연결되어 소통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작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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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견해는 수잔 시마드 뿐 아니라 여러 학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닉 플레밍(Nic Fleming)는 저서 『식물은 균사체의 인터넷을 사용하여 서로 소통한다(Plants Talk to Each Other Using an Internet of Fungus)』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고, 옥스포스대 식물학자 J.L.Harley(제이엘 하레이)와 J.S.Waid(제이에스 와이드)는 공저 『토양의 살아있는 뿌리와 다른 표면에서의 활성 균사체 연구 방법(A method of studying active mycelia on living roots and other surfaces in the soil)』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

페리스 자브르(Ferris Jabr)는 좀 더 적극적인 견해를 피력했는데, 식물들의 지하조직은 하나의 강력한 사회적 네트워크(social network)이며 이 식물들의 메시지를 해독하면 농장이나 산림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단지 산림을 가꾸는 일뿐만 아니라 농부가 작물을 단순한 생산물이 아닌 생태계적 공동체의 결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이는 인류와 동식물 간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우스차이나 농업대학교의 렌센정(Ren Sen Zeng)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식물 간 상호연결성은 식물 간의 잠재적인 피해를 경고하는 기능이 있다.
비슷한 연구가 에버든대 출신 데이비스 존슨(David Johnson)과 브로드 빈스(Broad Beans)에 의해서도 밝혀졌는데 식물들은 균사를 통해 연결되어 위험방지 화학물질을 배출하여 피해를 경고한다.
조지아대 교수 페리스 자브르Ferris Jabr) 역시 풀쐐기가 토마토의 잎을 먹을 때 잎들은 해로운 화합물을 만들어 내어 공격자를 쫓아내거나, 이웃한 식물들에게 방어준비 신호를 보낸다고 밝혔다.
콩과 식물 아카시아는 냄새를 발산해 적의 침입을 알린다고 알려졌고 흰버드나무도 애벌레 공격을 받으면 주변 식물들에게 위험을 알린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지만 솔라늄 둘카마라(Solanum dulcamara. bittersweet nightshade. 가지과. 밭 가장자리에 자라는 식물. 노박덩굴로 불리지만 실은 노박덩굴과가 아닌 가지과 유해식물)이라는 식물은 벼룩잎풍뎅이(flea beetle)나 남생이잎벌레(tortoise beetle)가 자기 잎을 갉아먹는 것을 알고, 각각 다른 화학방어물질을 방출하여 그들을 물리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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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서도 다루었듯이 침엽수가 박테리아 등으로부터 위험에 처했을 때 Phytoncide(피톤치드)를 내뿜어 이웃에게도 위험을 알리거나, 캐나다단풍나무도 위험에 처했을 때 유사한 화학물질을 분비해 이웃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 역시 인지능력에 발현되는 사회소통망이다.

‘균사체 네트워크’는 식물과 균사체, 식물과 식물 간의 소통에만 소용되는 게 아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곤충이나 애벌레 같은 동물도 네트워크를 통해 영양분이 교환됨을 감지하여 더 맛있는 뿌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네트워크는 곤충과 애벌레에게도 유용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계 네트워크가 범죄에 취약하듯이 ‘균사체 네트워크’도 역기능이 있다. 식물도 상황에 따라 네트워크를 이용해 자원을 독점하려 경쟁한다.
난초과인 팬텀 오치드(Phantom Orchid)와 같은 일부 식물은 광합성에 필요한 엽록소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주변 식물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끌어와야 한다. 국화과 골든 메리골드(Golden Marigolds)나 가래나무과 흑호두나무(American Black Walnut Trees) 같은 식물들은 물과 빛을 위한 싸움에서 주변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통해 독소를 방출한다.

 

독자적 판단과 진화

식물은 균사체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스마트하기도 하다. 전회에 스테파노 맨쿠소(Stefano Mancuso)의 글을 빌려 밝혔듯이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은 뇌나 폐, 위 등의 장기를 보유했을 때 자신을 먹이로 하는 동물들의 습격에서 살아날 수 없으므로 다른 방식으로 뇌와 장기 기능을 수행하도록 진화했다. 식물들은 왠 만큼의 손상은 쉽게 회복하는 메커니즘까지 보유하고 있다.

식물의 스마트한 능력을 잠시 살펴 보자.
연구에 따르면 식물들이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할 뿐 아니라 스스로 생산성과 자신의 서식지를 결정하기 때문에 생태계는 다양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 일례로 척박한 땅일수록 식물의 뿌리 끝이 더 뾰족이 좁아지면서 잔뿌리를 뻗도록 성장하는데 이는 질소와 인 등 필수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공생균류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생존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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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냉정한 승부사 기질도 있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교의 환경학 석사 에프라트 데너(Efrat Dener)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행동생태학 박사 알렉스 카셀니크(Alex Kacelnik)에 따르면 식물도 곤경에 처했을 때는 도박을 감행한다.

완두콩은 생장할 공간이 2곳 있다면 영양이 들쭉날쭉한 장소를 회피하고 안정적이라 생각한 장소로 모든 뿌리를 뻗는다. 그러나 일정하지만 저농도의 영양분이 제공되는 장소와 들쭉날쭉하지만 고농도와 영양분이 제공되는 장소가 있을 때는 오히려 둘쭉날쭉 불안정한 장소에 모든 뿌리를 뻗는다. 어차피 저농도의 영양분으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완두콩의 인지능력이 매우 뛰어남을 말해 준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므로 다가오는 상황에 대비해 더욱 스마트해야 한다.
애초에 카페인은 초식동물이 자신들을 먹이로 삼지 못하도록 고안한 화학물질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이를 역이용하기도 한다.
영국 서식스대 생물학자마거릿 쿠빌론(Margaret Couvillon)에 따르면 약 55%의 식물은 당밀의 농도가 낮아서 꿀벌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 식물은 당밀에 카페인을 섞음으로써 꿀벌들이 당밀 농도가 높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방문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어떤 식물은 벌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병든 척하기도 한다.

심지어 냄새로 숙주를 찾아가는 식물들도 있다.
대니얼 샤모비츠(Daniel Chamovitz)는 미국 실새삼, 은백양, 야생 리마콩이 덩굴손이 숙주인 특정식물의 냄새를 맡으면 숙주를 찾아 움직인다고 밝혔다.
이렇듯 자신만의 식성을 가진 식물은 어떤 이웃을 공격할지 직접 선택한다. 실새삼은 토마토와 밀이 있을 때 반드시 토마토를 찾아간다. 토마토는 꿀벌이 활동하는 아침 시간대만 향기를 분출하여 꿀벌을 유도하고 가루받이에 활용하지만 불청객 실새삼도 초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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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기억도 하지만 망각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대 생물학자 피터 크리스프(Peter Crisp)에 따르면 이동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식물은 기억 못지않게 잊어버리는 능력이 중요한 진화 전략이다.
어떤 식물들은 가뭄 등을 기억하며 강렬한 햇볕에 의한 피해를 방어하는 화학물질을 발산하기도 한다. 가령 스트레스 경험에 의한 기억은 DNA에 영향을 미쳐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을 만들어 비슷한 상황에 대처하는데 이를 ‘장기기억’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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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억의 예로, 천남성과인 앉은부채를 들 수 있다. 일본 식물학자 요시히코 온다는 앉은부채는 영하로 떨어지는 밤 동안 스스로 열을 내 꽃 내부를 20도 안팎으로 유지하는데 이유는 꽃가루가 성숙하는 시기에 저온에 의한 손상을 막기 위한 적응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주 겪는 상황이 아니라 어쩌다 오는 상황이라면 장기기억을 위해 상당한 에너지 소비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때 식물은 기억을 지우는데 이를 DNA와 RNA에 의존하지 않는 ‘단기 기억’이라 한다. 즉 필요가 적은 스트레스는 ‘단기기억’으로 전환하여 망각한다.

 

존엄한 존재

식물은 지구의 절대다수이자 지배자이다. 우리는 식물에게 무한한 혜택을 입고 있다. 그러나 생태적 조화를 멀리한 채 인간 이기주의만 내세우고 있다.
식물은 소통을 위해 지상과 지하에서 화학물질을 발산한다. 화학물질은 식물의 언어이다. 해충과 가뭄을 서로 경고하고 유익한 곤충을 유치하며 자신의 행동을 조정한다. 동종식물을 지원하고, 이종식물을 배척하며 동맹을 맺기도 하고 경험에서 배우고 기억한다.
정보와 영양소는 엄청난 ‘균사체 네트워크’를 통해 식물간에 교환되고 다른 동물들의 창구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존재에 비해 식물은 매우 복잡하며 지능적이고 협력적이고 전략적이다.
30억년이라는 긴 역사 동안 단세포만 존재하다가 식물과 동물이 나뉜 것은 고작해야 4~5억년 정도다. 즉 식물과 동물의 처음이 다르지 않다. 이후 식물과 동물이 서로 평행하게 진화했지만 진화방향을 달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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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연구에서 식물도 동물과 다를 바 없는 기능과 능력이 있음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류의 과학은 아직 식물에 대해 명확히 모른다.
명확히 모르는 존재를 마구 무시하고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하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동물을 기계와 다를 바 없이 여겼었다.

스위스 의회는 헌법 제120조에서 식물이 살아있는 존재이면서 존엄성을 갖고 있다고 인정했으며 2008년, 식물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 윤리위원회를 설립해 ‘식물이라는 생물의 존엄성’(‘The dignity of living beings with regard to plants ? Moral consideration of plants for their own sake) 보고서를 발간했다. 존엄하다는 것은 인간의 이익과 무관하게 고유한 가치를 부여 받음을 의미한다.
식물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인류 스스로의 성찰과 더불어 생태계 회복과 이해로 공진화하는 것이다.
식물, 절대 하등하지 않은 존재, 늘 우리 곁에서 우리의 생존을 돕는 존재, 감사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