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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몽골] #몽골에서 #어떻게든(6) – 박정현 단원

1.
‘몽골’ 하면 어떤 색이 떠오르는가?

탁 트인 하늘의 파란색, 너른 초원의 초록색. 그런 색깔들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내가 그랬듯, 바로 떠오르는 색이 그리 다양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곳 몽골은 다양한 아름다움들로 가득하다.

2월에 도착한 몽골은 하얀 색이었다. 눈이 내리는 하늘도 하얗고, 따뜻하게 찬 기운을 품고 떨어지는 눈도 하얗고, 차마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곳마다 하얗더라. 겨울이 끝나갈 즈음 그 하얀색은 서서히 도시 본연의 색에 자리를 내주고 떠나갔고, 3월 무채색의 하늘, 무채색의 도시만 새로운 봄을 맞을 준비로 남아있었다.

4월에 도착한 조림지는 아직 겨울을 잊지 못한 것만 같았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겨울의 흔적이 사업을 시작하는 이의 발을 시리게 하기도 했고, 회색빛 눈싸라기가 자신의 남은 힘을 다 쏟아내는 양 이미 얼어있는 나의 볼을 매섭게 때리기도 했다. 나무들은 나무가 아닌 척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고, 사람만 분주히 봄을 준비하던 시간이었다.

5월로 넘어가며, 서서히 초원은 비로소 초록빛을 띄기 시작했다. 새 잎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모습들이, 살아있음을 고백하는 것만 같았다. 비단 나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얀 꽃들도 들판을 하얗게 수놓았다. 쌀알만 하던 꽃망울들이 올망졸망 새끼손톱만한 꽃들을 펴내는데, 그것이 얼마나 흐드러졌던지, 마치 녹지 않는 눈이 다시 내리던 것 같았다.

한 여름에 핀 꽃은 열렬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곧은 줄기에 보랏빛 꽃망울이 알알이 맺혀 있는 그 모습은, 아름다움이 유려한 그 태를 따라 올라가 이윽고 긴 속눈썹에 보랏빛으로 맺히는 그 모습은, 마치 여느 몽골 여인과 같았다. 더욱이 초록과 보라는 보색이라고 했던가. 초록 초원 가운데 모인 보랏빛의 그 도드라짐이란!

8월에 들어서자 잎이 조랭이 떡처럼 생긴 노란 풀들과 하얀 억새들이 길게 자라 조림지를 가득 덮었다. 그 사이를 걸을 때면, 더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그는 노란 꽃가루를 흩날리고는 화장기 없는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등을 돌려 앉아버렸다. 그럴 때마다 상심한 나는 날리는 꽃가루에 재채기를 하며 다시 걸음을 옮기고, 억새는 신부의 들러리처럼 그 자리에 하얗게 서서 바람에 손을 흔들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조금 더 추워지자 땅에는 빨갛게 단풍이 들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보았던 나무에서 빨갛게 핀 단풍잎이 아니라, 땅에서 빨간 풀들이 돋아났다. 혹여 내가 이 곳에 있어도 될까 고민하듯, 빨간 풀들은 곳곳에 조금씩 돋아났고, 나 덩달아 마음이 설렌 것은 마치 초원에 홍조가 살포시 앉은 것만 같아서렷다.

2.
‘몽골의 삶’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너른 초원에서 말을 타는 자유로운 모습,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여유로운 모습, 게르 안에 모여 하하호호 웃는 화목한 모습. 아마 그런 이미지들이 떠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곳 몽골은 그리 막연히 아름답지는 않다.

실은 이번 한 달 여의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와서 휴가를 같이 보내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배웅하는데 한편으로는 함께했음에 감사했지만, 등을 돌리며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꿈만 같아 허무함에 마음이 참 많이 공허해졌었다. 다시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고, 처음으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었다.

감정을 겨우 추스르고 다신칠링에 출근했지만, 돌아온 현장에서는 경비원 아주머니 남편분과 남성 주민직원분 간에 선혈이 낭자할 정도로 심한 싸움이 벌어졌다. 심지어 그 자리에는 나 혼자 있어서, 홀로 그들을 말려야 했다. 한 분이 도망가신 다음 상황이 겨우 진정되고 나서야 내 몸을 살펴보았고, 여기저기 묻어있는 찐득찐득한 핏자국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었다.

집에 도둑이 들었을 당시에 오히려 괜찮았던 것은 이미 이리저리 지쳤던 탓이었을까. 초탈한 마음으로 지부에 보고를 했고,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다만, 누군가가 여기를 노리고 있었고, 앞으로도 위험에 노출될 수 있겠다는 공포가 문득 밤에 찾아오더라.

잡아낸 도둑의 정체는 그 초탈과 공포를 허무함으로 바꿔놓았다. 아이들이었고, 심지어 아는 애들이었다. 에코투어 때 함께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조용히 교무실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심경이 복잡해졌고, 나는 사과를 하는 그들의 눈을 차마 보지 못하고 나왔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내가 룸메이트 없이 홀로 있을 때 나를 따스히 챙겨주시던 경비원 아주머니라는 것을 집으로 돌아오며 룸메이트에게 듣고는 더더욱 마음이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나중에 아주머니와는 잘 이야기해야겠다 싶었지만, 그 이후로 일터에 안 나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겨우 버틴 것은 내 생일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 몽골 전통 옷을 준비하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감사한 마음을 받기까지 버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일 바로 전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분인 주민팀장님과 공제회팀장님이 싸움을 심하게 하셨고, 공제회 팀장님과 (아마 그분의 측에 서 있는) 상당수의 주민직원이 다음날인 내 생일에 출근하지 않으셨다.

여러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는 단원에세이에 그 감정들을 즉시 배설하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사건에서 시간이 지난 오늘, 이제야 내가 에세이를 비로소 쓰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하기 전, 당신에게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을 하고 싶다.

3.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몽골에는 생각보다 많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리고 몽골에는 생각보다 힘든 일도 존재했다. 생각 밖의 아름다움과 힘듦이 있는 것은 비단 이곳이 몽골이기 때문인 걸까?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삶은 즐거웠는지 혹은 힘들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 스스로 진솔히 내려야 하겠다.

당신의 삶은 분명 어떠한 아름다움으로 색칠되었을 것이다. 눈과 같이 깨끗한 하얀색일 수도 있겠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본연의 무채색일 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회색일 수도 있겠다. 혹은 수줍게 피어나는 초록색, 매혹적인 보라색, 흩어져 사라지는 도도한 노란색, 아니 주저하지만 끝내 돋아나는 빨간색일 수도 있겠다.

항상 삶이 아름다움으로 반짝이지만은 또 않았을게다. 헤어짐에 마음이 공허했을 때도 있었을 거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 때도 있었으리라. 무서운 대상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모두 버텼지만, 버텨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 된 경험도 혹여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너무나 아쉬운 것은 당신의 대답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신과 이야기를 하면, 나는 같이 삶의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도, 당신의 아픔에 공감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당신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바가 있다. 별거 아니다. 내 생일 이야기다.

내 복잡한 마음이 안정되기도 전에 생일의 아침은 밝았다. 감사하게도 여러 지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심지어 에코투어 때 왔던 아이도 메시지를 보냈더라.)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소위 ‘어이없는 짓’을 해보기로 했다. 그냥 행복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상황은 매우 좋지 않았고 마음도 어려웠지만, 그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힘든 감정을 잘라내고 새로 마음을 먹어보니 새로운 생각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얼굴에 철판을 딱 깔고,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하자.’
‘마침 오늘 내가 생일이니, 내가 즐거워하면 다 즐거워 해줄 거야.’
‘딱 어떻게 어제 싸우신 게 다행이네. 오늘 내가 분위기를 풀 수 있잖아.’

나는 그렇게 출근을 했다. 웃으며 주민분들을 맞이했다. 과자와 사탕을 놓고, 그것을 나누어 드렸다.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으며 말이다. 처음 한 명이 어려웠지, 하다보니까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만들어낸 감정이 결국 나를 감싸안은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한 달여의 동안 나의 감정은 엉망이었고, 마음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았다. 아니, 돌이켜 보면 단순히 이 한 달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나의 인생 자체가 그랬던 것 같다. 항상 닥친 상황에 의해서 나의 감정은 결정되었고, 보통 그 감정은 우울하고 슬픈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군대에서 힘들었던 때, 가정에 어려움이 있었던 때, 여자친구와 헤어졌던 때 모두 나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도록 나를 내버려두었고, 감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번 짧은 시간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더 이상 감정이 나의 상태를 정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용기를 비로소 갖게 되었다. 매 순간 내가 행복하기로 ‘결정’한 그 결과는 비극의 절정을 찍을 수 있었던 그 생일을 내 생애 최고의 생일로 바꾸어 주었고, 나는 마치 생일 그 자체의 뜻처럼 새롭게 태어난 것만 같았다. 한 순간의 푸념으로 그칠 수 있었던 그동안의 나의 비극적인 일들을 행복해지기 위한 거름으로 썩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겨우 단원에세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당신도 나처럼 되면 좋겠다고 감히 말하련다. 당신의 삶에는 참 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했고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간간히 닥칠 어렵고 힘든 순간들은 그 아름다움을 마주볼 힘조차 다 앗아가 버린다.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그대여, 행복해지기로 결심하자. 결심한 후 조금만 노력한다면 상상하지도 못한 평안과 기쁨이, 슬픔과 절망이 단절된 그 곳에서 퐁퐁 솟아날 것이다. (아마 그리고 그 날은 나와 같이 당신의 새로운 생일이 될 것이다.)

최근 동료 단원들과 함께 갔다 온 여행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가 있다. 뭔 노래가 아니라 주문 같기도 한데, 그 후렴구는 ‘행복해져라’의 반복이다. 마지막으로 그대가 그 노래를 찾아서 듣길 바란다. 백날 이런 글을 읽는 것 보다 한번 노래를 듣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버스에서 택시에서 자가용안에서
주방에서 혹은 야근하고 있나요
어깨는 축 쳐지고 다리는 쑤셔오고
머리는 천근만근 마음도 누르는데
내 속삭임으로 행복의 주문 걸어
그대 맘을 밝혀줄게요
따라하면 돼요 카운터줄게요
어렵지 않아요
단순하긴해도 힘이 될거에요
행복의 주문 하나 둘 셋 넷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우울한 사람도 지친 사람들도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버스에서 택시에서 자가용안에서
주방에서 혹은 야근하고 있나요
모두 떠난 사무실에 홀로 앉아
한숨 쉬며 늦게까지 끙끙대나요
사랑은 언제 해봤는지 외로움에
답답함에 오늘도 그냥 버텨내나요
내 속삭임으로 행복의 주문 걸어
그대 맘을 밝혀줄게요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의 주문 – 커피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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