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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몽골] 그야말로, 리틀 포레스트 – 이나리 단원

많이 분주하다. 그야말로 집에 있어도 휴일이 다가와도, 소일거리들을 끊임없이 구상하고 만들어낸다.
그게 바로 내가 적막이나 권태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이전에 철저히 내 삶 밖에 존재해왔던 것들을 내 안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내용이라는 게 사실 별 것 없는데, 적자면 몇 가지가 있다.

1. 무청을 버리다뇨? 염소 먹이로나 쓰인다고요?
평상시와 같이 효선과 책상에 앉아 오늘의 할 일과 감상들을 나누고 있는데, 어용치맥 아주머니가 노란 덩어리를 들고 게르로 입장하신다. 올망졸망 작거나 큰 노란 무가 알알이 모여 한아름이 되어있다. 그걸 품에 안고 오시는데 아주머니 상체가 무에 가려 마치 다리가 달린 ‘노란 무 집단’ 같이 보인다. 아주머니는 책상에 무를 널어놓으시더니 흙을 입은 무를 물에 개워내고, 쓰레기봉투로 무청을 뚝딱 자르시고는 툭 버리신다. 멍하니 있던 효선과 나는 일순간 재밌는 생각이 났다.
‘언니.’
‘효선아, 시래기 만들어볼까?’
6천원짜리 뼈해장국에나 가지런히 앉아있던 시래기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본다. 먼저 큰 대야에 무청을 늘어놓고 집에 있는 가장 큰 냄비에 몇 번이나 물을 가득 담아 길어 내린다. 그렇게 대야를 채우고 3번쯤 그 작업을 반복하며 씻어준다. 그다음은 소금 풀은 물에 ‘사정없이 데치기’ 작업이다. 마음대로 솟아있는 줄기들을 달래 물속에 퐁당 집어넣는다. 왠지 여물 같지만 그냥 무시한다. 몇 번 끌여주고나니 웬일인지 노끈같던 줄기들이 점잖아졌다. 잎사귀들을 식혀 손에 가지런히 겹겹 쌓아 줄기를 고무줄로 탱탱 묶어준다. 할머니 집 벽장에 데코로만 보던 뭉텅이들이 내 손안에 있다. 재밌다. 어떻게 바람 잘 들고 볕 없는 곳에 놓을까 고민하다, 효선이 급하게 자기 방에서 옷걸이 몇 개를 가지고 온다. 양말이나 걸려있던 옷걸이에 새로운 손님이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며 걸려있다. 둘이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시래기 옷걸이를 5개나 만들어냈다. 건조대에 옷걸이를 걸고 짙게 갈색된 덩어리들을 둘이 앉아 한참 쳐다본다.
‘언니, 이거 진짜 재밌다.’
바삭바삭 소리 나는 완성된 시래기를 보니 난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2. 뚝딱뚝딱, 차려 받는 밥상에서 차리는 밥상으로
타국이라 한국식 식재료가 넉넉지는 않다. 그렇지만 꽁치통조림을 보면 이전엔 해보지 않았던 생선조림이 해보고 싶어지고, 음식을 하다보니 향내음 가득한 생강도 잘게 빻아서 넣고 싶어진다. 한껏 차려내다 보면 칼질하는 것도 재밌고 거기서 나오는 소리도 냄새도 다채롭다. 분주하게 차례차례 손은 바쁘지만 마음은 한차례 맑아진다.
또 동네에 잘 팔지 않는 채소들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얼른 사장님에게 외친다. ‘저기 있는 거 몽땅 다 주세요.’ 그렇게 이곳에 잘 없는 하얀 무와 다른 몇 가지 채소를 사왔다. 소중한 식재료들이니 작게 소분해 잘라 키친타월에 올려 말린 다음 냉동한다. 하얀 무가 있으니 수도에서 사온 황태포로 국을 좀 끓여봐야겠다. 그러고도 무가 남으니 저번에 사온 들깨가루에다 무를 채썰어 좀 볶아봐야겠다.
아, 한창 여름에는 어디서 또 귀하게 고사리를 얻었다. 볶아먹고 밥에 비벼 먹다가 남아있는 게 아쉬우니 닭개장을 해봤다. 닭 생살을 한 웅큼 집어넣고 물에 푹 고아낸다. 고추기름 내기도 의외로 쉽다. 가열된 팬에다 고춧가루만 슬쩍 올려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맛이 심심해 현관문을 열어 집 앞 작은 텃밭에서 향내음 가득한 잎채소를 몇 개 따온다. 그러면 집 앞에서 놀던 아이들이 달려와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언니, 이건 뭐야? 이걸로 뭐해? 이건 무슨 맛이야?’ 재잘재잘 밝고 환한 여섯 개의 얼굴들이 반짝거린다.
손에 쥔 채소를 들고 얼른 집으로 들어온다. 흐르는 물에 슬쩍 훔쳐내고 냄비로 입수시킨다. 한 상 차려내면 맛집 사진도 찍지 않던 사람이 절로 카메라를 꺼내게 된다. 뜨듯한 국물을 입 안으로 입장시키면 추위에 꽉 붙들고 있던 근육들이 사르르 녹는다. 손에 힘이 풀려 설거지가 귀찮다. 이전에는 가게에서, 집에서 차려 받았던 밥상이 내가 직접 기획하고 순간순간 관여한 ‘차리는 밥상’이 된다. 그러면 그날 하루는 참 많은 걸 해낸 기분이 든다.

나무 옆에서 웃고 자고 이야기하고 감탄한지도 벌써 6개월째다. 자꾸 보다보니 어제는 흔적도 없었던 풀이 보이고, 똑같은 잎사귀인데 오늘은 또 모습이 훌쩍 달라 보인다. 눈에 담기는게 달라지는만큼 전에 없었던 일들을 자꾸 만들어내는데 그게 참 소박하고 단단하다.

앞으로도 왠지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선명하게 기억해낼 수 있는 일상들이 생겼다. 어느 조림지에서 단단히 땅을 잡고 있는 나무들이나, 몇 일이나 집을 비운 나의 소식이 궁금해 창문을 두드리던 6개의 동그란 눈망울들, 뚝딱뚝딱 소박한 일상 속에서 손에 흙을 묻히던 나의 모습들.

‘나는 빠르게 오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작물도, 인연도, 급히 온 것은 급히 떠난다.’

어떤 뮤지션의 글 속 생각을 보며 나도 9만주의 나무들을 떠올린다. 사정없이 추워진 날씨에 천천히 잎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다음 땅으로 저물어 봄을 안아낼 수 있기를.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