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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2-[유전자 에이전트 김용범의<방귀와 분뇨의 비밀 이야기①>] 기후변화대응이 스트레스 줄이기와 소확행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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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족들과 나들이를 갔다. 어디를 갔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다. 차 안에서 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생긴 일이었다. 뒷좌석에 아이들이 있었는데 지독한 냄새가 품어져 왔다. ‘아, 젠장!’ 방귀였다. ‘누구야!’를 외치며 창문을 열었다. 냄새가 정말 지독했다. 그런데 얼마 뒤 한 번 더 했다. 두 번째 것은 더 강했다. 너무나 독해서 코가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으이그 자식만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달리는 차의 창문을 다시 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방귀. 사람마다 나름대로 한두 가지 사연은 있을 것 같다. 생리현상이라 막기도 쉽지 않은 방귀. 이것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슬그머니 나가는 ‘미끄럼방귀’. 소린 없지만 이런 방귀가 아주 구리다. ‘뽀보보뽕’ 소리를 짧게 여러 번 연발하는 ‘드럼방귀’도 있다. 순식간에 ‘뿌웅’하는 커다란 소리가 나는 대포방귀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피식’하는 뀌는 ‘코방귀’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방귀. 왜 생길까? 그것은 소화 때문이다. 소화관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절대 피할 방법은 없다. 물고기부터 모든 동물이 다 방귀를 뀐다. 사람도 소화관이 있으니 예외 없이 방귀를 뀐다. 사람은 하루 평균 14∼23번 정도 뀐다. 방귀는 음식물 소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스를 배출하는 현상이다. 방귀뿐 아니라 트림도 있다. 방귀든 트림이든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이것도 살아있는 사람만 누리는 축복이다. 어쨌거나 사람 몸에서 이렇게 나오는 가스 총량은 500∼4000mL 정도, 평균 약 900ml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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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난데없이 웬 방귀?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방귀가 아니라 다른 것이 중요하지 않나? 맞는 말이다. 최근에 기후변화로 발생한 고온현상으로 온열질환 사망자가 생겼다. 앞으로 지금과 같이 고온현상이 더 지속 되면 누군가 또 사망할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방치해야 할까? 당연히 원인을 찾아 줄여야 한다. 나도 여기엔 동의한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기후변화대응 노력에 대해서 누구나 말해왔지만, 무엇을 위해서 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가 기후변화 대응 목적이 없어서는 아니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뭐 어쨌다고? 내게 와 닿기는 하는가?’ 이것이 현실이다. 용어도 어렵고 아주 먼 남의 이야기 같다. 한 마디로 체감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더운 여름날 방귀를 말한다. 방귀에 온난화 가스가 들어있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방귀 속에 기후변화대응 또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중요한 방향을 깨달을 수 있어서다.
방귀하면 제일 먼저 냄새가 떠오른다. 냄새나는 물질이 온실가스일까? 그렇지는 않다. 방귀 냄새는 단백질에 포함된 황과 질소 때문에 생긴다. 황에서 만들어지는 머캡탄류 그리고 질소에 의해 만들어지는 암모니아(NH3)와 인돌(C8H7N) 등 때문이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암모니아는 초미세먼지 생성과도 관련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기후변화와는 다소 무관한 가스다. 이런 냄새나는 가스 말고 수소, 이산화탄소, 그리고 이산화탄소 등이 있는데, 이들은 양이 더 많다. 이들 중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대표적 온실가스로, 각각 전체 방귀 양의 약 30%와 10% 정도를 차지한다. 이런 가스는 대포 방귀나 드럼 방귀처럼 소리가 큰 방귀에 더 많다. 보리밥 먹고 방귀 뀔 때 소리가 큰데 이런 방귀 속에 이 가스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뜻이다.
다양한 종류의 방귀 가스는 대장에 사는 세균들 때문에 생긴다. 대장엔 500여 종류의 세균들이 사는데, 이들이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찌꺼기를 분해한다. 이때 방귀 가스를 만든다. 생성되는 가스 중 가장 많은 것은 수소(H2)다. 일부 세균은 이것을 메탄(CH4)으로 바꾼다. 이런 변화들은 산소가 없을 때만 일어나는데, 사람의 대장엔 산소가 없어서 가능하다. 사람은 이렇게 만들어진 메탄을 하루에 평균 50∼140 ml 방출한다. 지구상의 인구가 약 70억 명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하루에 3.5∼9.8억 리터의 메탄이 발생한다. 합쳐보니 상당한 양이다. 더구나 메탄은 온난화 지수가 21이다. 이것은 동량이 있다면 이산화탄소에 비해 온실 효과가 21배나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구가 늘면 방귀 때문에라도 온실가스 배출도 저절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현재 얼마나 더 늘어날지 잘 모르지만, 세계 인구는 계속 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먹지 않을 수 없다. 굶으면 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려면 먹어야 한다. 먹으면 온실가스가 나온다. 온실가스가 나오면 지구온난화로 사람이 다시 죽는다. 사람이 살려면 온난화를 줄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거꾸로 줄여야 한다. 그럼 덜 먹어야 할까? 덜 먹는다면 죽을 수 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따라서 모든 부분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를 적당량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논리로 보면 방귀에서 나오는 것조차 줄일 필요성이 있다.
‘허 참나!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아무리 그렇다고 상식적으로 방귀를 어찌 줄이냐? 밥 먹으면 나오는 방귀인데 줄이기가 어찌 가능하겠는가?’ 싶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살려면 분명히 다른 것을 해야 한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방귀를 줄일 수 없을 것 같지만 분명히 줄일 수 있다.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이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줄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스트레스와 깊은 연관이 있다. 스트레스와 방귀가 관계가 있다고? 그렇다. 의외로 밀접하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GABA(γ-aminobutylic acid)의 양이 준다. 이것이 줄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쉽게 분노한다. 동시에 위장관의 기능이 떨어진다. 위를 포함한 소화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위장관에서 오래 음식물이 머물고, 미생물 작용으로 방귀 양이 늘어난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줄이면 소화가 잘되어 방귀 양이 줄일 수 있다. 스트레스를 줄이면 방귀가 줄어든다고? 좀 웃기지만 논리적으론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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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 양보해서 스트레스로 방귀를 줄일 수 있다고 하자. 지금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없으면 소용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고 있을까? 돌아보자. 아침에 전철 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들의 어깨는 늘어졌다. 얼굴엔 희망도 잘 보이지 않는다. 행복감에 젖은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한 마디로 삶에 찌든 것 같다. 실제로 직장인 1,100여 명에게 물어본 결과 10명 중 9명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94%였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매우 높다. 스트레스가 높으면 우울증과 분조 조절을 장애가 올라간다. 묻지마 범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직접 이런 현상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이것이 저녁이 있는 삶을 추진하는 이유 아닐까?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이 직장 외에 다른 것도 있다. 그중 하나가 대도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과 캐나다 맥길대학 공동연구팀은 대도시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을 대도시에 거주했던 실험군, 중소도시나 시골에 거주하는 실험군을 비교하여 스트레스를 조사했다. 실험결과 대도시 거주자의 뇌에서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관장하는 편도의 활동이 훨씬 높았다. 대도시 거주 자체가 스트레스 원인이란 의미다. 지금 서울의 인구가 1천만이다.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광주, 울산 등의 대도시가 있다. 인구 100만에 육박하는 도시들은 많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대도시에 산다. 직장뿐만 아니라 거주지 상태만으로도 국민은 이미 높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 있다고 할 만하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줄이기는 방귀양을 줄이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재미있는 상상을 하나 해 보자. 스트레스는 거주지역과 그 사회의 스트레스 요인에 따라 다르다. 우리의 스트레스 지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스트레스가 높으면 방귀가 더 많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보다 방귀를 더 많이 뀌지 않을까? 또한 국가별 또는 지역별(도시 지역과 교외 지역 등) 거주자의 방귀 양이 다르다는 가설도 세울 수 있다. 이것을 조사·분석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사람들의 냄새나는 방귀 모을 것을 상상해 보라! 비닐 봉지에 모으나? 어떻게 하나? 새지 않게 모아야 한다. 이것조차 의외로 간단치 않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것 같다. 이런 호기심 충족을 위한 연구가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 준다. 청년 실업을 줄이는데 분명히 좋을 것은 분명하니 그들의 스트레스도 또한 줄어들 수 있다. 좋을 것 같다.
난 이런 연구를 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남을 따라하기 밖에 모르는 사회 분위기상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투자할 리가 없다. 이것 때문에만 제안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개인 호기심 충족을 제안하기 미안해서다. 그러나 앞으론 진심으로 이런 연구도 도전하는 분위기가 되기 바란다. 빠른 추격자(fast mover)가 아니라 최초개척자(first mover)를 요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 시대의 요구에 맞게 제안을 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난 다른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인간 행동의 근본적 모습을 가식 없이 솔직하게 보고, 그것에 잘 맞추어 사람이 다치지 않는 기후변화 대응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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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택종 작가

이택종 작가는 강릉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꿈과 낭만 속에서 자랐다. 지난 25년간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았다.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삽화 및 만화작업을 했다. 현재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웹진 ‘e행복한 통일’에 월간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 때문에 누군가는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옆에서 누군가 죽어 나가는데 과연 내 행동은 어떨까? 대기전력을 줄이기 위해 코드를 뽑으라는 것을 실천은 하는가? 전등을 끄는가? 이것을 묻는 것이다. 누군가는 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모두는 아니다. 솔직히 나는 코드 뽑기 같은 것을 실천하기 귀찮을 때도 많다. 다른 사람들도 실천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본다. 이런 행동을 통해 머리가 아는 것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분명히 온난화로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행동을 바꾸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어떤 얼룩말이 사자에게 잡아먹힌다. 그때 잡히지 않은 다른 개체들은 도망을 친다. 사건이 정리되면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같은 장소에서 풀을 뜯는다. 배부른 사자는 공격할리 없으니 사자의 위협은 내 일이 아니다. 제천 화재가 일어났을 때 불법 주차가 소방차 진입을 막았었다. 그 화재로 사람이 많이 죽었다. 한 마디로 난리가 났었다. 그러나 화재 후 어떤 기자가 돌아보니 화재건물 주변 불법주차는 여전했다. 말 그대로 자기 일이 아니다.
더위에 온열질환에 의한 사망이 생기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다. 막연히 누군가에게 생기는 불행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일 뿐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면 이번 폭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질 것이다. 마치 아프리카 얼룩말 같다. 이러니 인간 행동이 달라질 리 만무하다. 이런 까닭으로 지금 막연한 누군가의 죽음으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개인행동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은? 자기 행동의 결과 자신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알려주고, 그것을 얻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삶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행동 변화를 이끌자는 것이다. 온난화 방지를 위해 하라는 것을 하면 과거보다 더 돈도 많이 벌고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면 안 할 사람이 있겠는가?
스트레스를 예를 들어보자. 기후변화는 남의 나라 일이나 다른 사람 말 같지만 스트레스는 어떤가? 내게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이라 느끼는 차원이 다르고 관심도 크다. 더구나 우리 사회 여건상 이것을 줄일 필요는 사람들은 대부분 느낀다. 누구나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지 않는가? 건강이나 정력에 좋다고 하면 뭐든 먹지 않는가? 바퀴벌레 좋다고 하면 먹을지 모른다.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올리기 위해서다. 이런 것은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찾아서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존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생존에 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온실가스 배출 감소와 이어진다면 어떨까? 자신을 위해서 행동할 뿐인데 그것이 온실가스를 줄이게 된다. 당연히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가능성이 올라간다.
스트레스 줄이기와 더불어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자기 행복을 늘리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이다. 남이 아니라 본인 행복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주변에 나무를 심는 것, 독서 같은 것이다. 나무를 늘리면 행복감은 늘어난다. 나뭇잎의 녹색이 뇌에서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켜 행복감이 올려주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도파민이 나와 쾌감을 느끼며 행복해진다. 행복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 있을까? 당연하다. 행복감을 느낄 때 나오는 세로토닌이나 도파민이 스트레스와 관련된 GABA의 양을 조절한다. 따라서 행복감을 느끼면 우리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스스로 더 행복해지자.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쾌락적 행복이고 다른 하나는 숭고한 행복이다. 쾌락적 행복은 대부분 자원 소비를 많이 해야 한다. 쾌감을 얻기 위해 많이 먹거나 물건을 사는 등의 동적 소비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 증가는 온난화나 미래에 썩 바람직지 않다. 무엇을 하던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숭고한 행복은 살짝 다르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닫거나, 자신 옆에 있는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거나, 타인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거나, 약자나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따뜻하게 감싸는 것 등의 행동으로부터 얻는다. 정신이나 마음만으로도 얻을 수 있어서 물질 소비가 적다. 이산화탄소 배출증가가 적거나 없다. 쾌락적 행복과 비교할 때 행복감의 차이도 없다. 기후변화대응 전략으로 딱 좋다. 더구나 이런 숭고한 행복을 얻으면 면역 관련 유전자가 많이 발현된다. 행복해짐과 동시에 질병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 한 마디로 자신이 건강하게 장수하는데 유리하다. 당신이라면 어떤 행복을 추구하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한 제안을 한 마디로 바꾸면 ‘기후변화대응(또는 온난화 방지 및 적응)은 스트레스 줄이고 스스로 자기 행복을 늘리기’다. 이것은 온난화 방지 및 적응을 위해 해야만 하는 행동의 당위성을 알려 따르도록 하는 방식이 아니다. 당위성을 알림과 동시에 행동 변화의 결과에 대해 혜택을 주는 방법이다. 기후변화대응의 당위성을 알리지만 하기 싫어서 안한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다만 행동을 바꾼 사람이 더 행복하게 잘 살게 하자는 것이다. 이 방향은 과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왜 남들과 다른 이런 주장을 하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있다. 유전자는 어떤 것이든 실천할 때 내가 힘들고 고통스럽고 자원을 더 많이 쓰게 되면 하지 않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신체 에너지를 더 쓰는 것도 피한다. 또한 유전자는 남에게 생긴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받아들인다. 남의 죽음이 제 고뿔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이 죽는 상황을 피할 목적이 아니라면 유전자는 기존 습관을 잘 바꾸지 않는다. 더구나 익숙한 것은 무조건 맞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제도나 환경변화 없는 개인의 이성이나 노력만으로 제어하기 어렵다.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하는 남편. 그는 빨래하고 밥하느라 바쁜 부인은 안중에도 없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엔 그가 더 밉다. 짜증이 팍 솟구친다. ‘게으르면 안 된다.’ ‘왜 이러고 사니’ 그리고 ‘애들을 생각해라’ 등의 비난하는 잔소리도 소용없다. 목만 아프고 사이만 나빠진다. 남편은 부인의 이런 상황을 모를까? 미안하지만 머리는 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럴까? 에너지를 많이 쓰면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죽을 확률이 올라갔다. 항상 일정한 수준의 먹는 것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필요 없다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살 확률이 높다. 그러니 빈둥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1-2 만여 년 전이라도 인간은 아직 그때의 유전자로 살고 있다. 유전자 변화 속도가 너무 느려서다. 이것이 현대의 인간이다.
남편의 게으른 행동은 비난이나 잔소리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남편 스스로 뭔가를 깨달으면 가능하지만, 잔소리로 깨닫게 하긴 쉽지 않다. 오히려 반감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유전자가 이러니 남편의 게으른 행동을 포기하자는 뜻인가? 그렇지는 않다. 다른 방법을 쓰자는 것이다. 혹시 댁의 남편이 게으르고 뒹굴뒹굴하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그를 바꾸어야 한다. 그런 남편을 바꿀 방법은 무엇일까? 남편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것을 찾아 그것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잔소리하지 않아도 남편 스스로 달라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한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즉,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말고, 인간 본능적 특성을 이해해 당사자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어 스스로 움직이게 하라는 뜻이다.
결혼한 부부를 비유했지만, 우리의 기후변화대응 방식이 대부분 이렇다고 생각한다. 해야만 하는 이유를 늘어놓고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수준이다. 행동할 사람에 대한 고려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의 도덕성을 비난하고 형벌을 가했다. 선진 시민 의식을 강조하며, 선진국이라는 다른 나라를 따라 하기에 몰두했다. 잔소리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일부 사람들은 분명히 따라 했다.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교육받을 때는 한다고 하지만 돌아서서 실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실천하지 않고도 했다고 거짓말까지 한다. 그러면 결국 거짓말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심한 경우 형벌을 주자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해법은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것을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한 해법을 난 사람의 유전자에서 찾았다. 사람의 유전자는 다양하다. 유전자는 각각의 개체가 어떤 환경에 처할지 몰라 다양한 행동 양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각각이 다르다. 누군가가 어떤 것을 하라고 시키면 일부는 그것을 따르지만 다른 일부는 반항한다. 시키는 것을 따라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생긴다. 또 이것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유전자는 인류에게 마구 뒤섞여 평형상태에 이른다. 그래서 도덕적이고, 옳고, 맞고, 또 필요한 일이라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논리적 당위성을 바탕으로 시켜도, 절대 모든 사람이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 즉, 누군가는 안 한다. 그리고 하지 않는게 이익이 되면 그런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확산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온난화 대응을 위해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면, 그것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하지 않을 때 더 유리하면 어떤 교육으로도 행동을 바꿀 수 없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확인했다. 그런데 우린 해야 하는 일이니 무조건 하라고 시키기만 했다. 하지 않는다고 좋지 않은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인간 행동의 근본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능이 이성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성과는 낮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행동임에도 일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이번 여름처럼 폭염은 늘고 있고 사람은 죽어 나간다.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방귀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기후변화대응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다르게 방향을 바꾸자는 의미다. 세상에 어떤 나라도 방귀 줄이자고 하지 않는다. 발생하는 전체 온실가스에 비하면 분명히 양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줄이자고 하는 것은 간단하다. 이것을 줄이는 방향이 과거와 다른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 방향은 인간의 이성을 이용해 유전자와 본능을 고려한 방향이다. 유전자는 다양하지만 모든 유전자가 추구하는 한 가지 길이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그것은 더 잘사는 것이다. 모든 유전자가 이것을 추구한다. 더 잘살면 생존 가능성이 올라가고 그것을 생물학자는 행복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또 다른 이성의 승리라 할 만하다.
내가 꺼낸 방귀 줄이기는 과거 온난화 대응 방식을 보완한다. 해야 할 당위성을 말하지만, 요구나 강요는 없다. 그 방향으로 가면 더 나은 행복이 있음을 말해줄 뿐이다. 따라서 당사자 스스로가 선택하게 한다. 이런 방향은 선진국의 방향과도 다르다. 참고로 우린 선진국 행동을 따라가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늘 다른 나라를 뒤따라가면 어찌 되는가? 언제나 그들을 추월할 수 없다. 선진국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영원히 빠른 추격자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이젠 우리 나름의 길을 갔으면 싶다. 이런 선택을 할 때 그들을 추월할 수 있고 앞서 나갈 수 있다. 이것이 남들이 하지 않는 방귀 줄이기를 말하는 또 다른 이유다.
어떤가? 기온이 체온보다 높은 38℃를 넘나들며 사람이 죽어가는 시대다. 방귀 줄이기 한 번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은가? 선진국이나 남들이 이렇게 접근하지 않았으니 안 할 것인가? 혹시 틀릴까 걱정하는가? 남들이 가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간단하다. 편안히 앉아서 곰곰이 그리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간 본능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남과 다른 우리만의 길을 갈 수 있다. 이 길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지금 방식을 수용하면서도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길이다. 나는 이 길이 우리에게 더 행복한 미래를 안겨줄 수 있다고 믿는다.

‘어이! 나 오늘 방귀 덜 뀌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거든. 어떻게 했냐고? 나를 해코지하는 ????를 너그러이 용서하고 사랑했지! 그랬더니 방귀가 덜 나오더군. 내년 여름엔 폭염이 덜할 거야. 어때! 잘했지?’

소확행 : 일상에서 느끼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의미. 원래 소확행이란 말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1986)에서 쓰인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