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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0-[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⑥>] 전쟁이 만든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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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많은 이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음식문화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늘 먹는 음식 중에는 전쟁과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지금 못 먹게 됐을지도 모르는 음식이죠.

중국 전쟁의 흔적
‘부대찌개’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햄과 소시지, 미국식 콩 통조림 등에 김치·고추장을 넣어 얼큰하게 끓여 내는 부대찌개는 6·25전쟁 당시 미군부대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처음 만들어 먹은 음식입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 시절에 미군부대 근처에서는 소시지와 햄을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흔히 ‘부대고기’라고 불렀지요. 여기에 고추장을 풀고 김치를 넣어서 끓이면 느끼한 맛이 사라져 제법 우리 입맛에도 맞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부대찌개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됐습니다. 미군의 영향을 크게 받은 부대찌개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린든 B. 존슨의 성을 따서 ‘존슨탕’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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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뼈로 우려낸 육수에 돼지고기 편육과 밥을 넣어 먹는 국밥류로, 부산시의 향토음식으로 통하는 ‘돼지국밥’도 6·25전쟁이 만들어 낸 음식입니다. 다른 설이 있기는 하지만, 6·25전쟁 중에 피란생활을 하던 이들이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던 돼지의 부속물로 끓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요.
돼지국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음식인 ‘밀면’도 6·25전쟁 때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입니다. 당시 이북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냉면이 먹고 싶었지만 메밀을 구하지 못해 구호품인 밀가루를 이용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밀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좋아하는 중국음식 ‘탕수육’도 전쟁과 연관이 깊은 음식입니다. 이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에 중국의 굴욕적 역사가 깔려 있지요. 아편전쟁이 끝나고 수세에 몰린 중국이 영국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개발한 음식이 바로 탕수육이거든요.
아편전쟁이 끝난 직후인 1842년 청나라와 영국은 강화조약을 맺습니다. 이로 인해 홍콩은 15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지요. 그 무렵 홍콩과 광저우 등지에 많은 영국인들이 이주해 옵니다. 하지만 이들은 물설고 낯선 곳에서 음식 고생까지 하게 되고, 급기야 중국 측에 항의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중국 측에서 육식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입맛에도 맞고 포크로 찍어 먹거나 서투른 젓가락질로도 잘 집어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게 되는데요. 그게 바로 탕수육입니다.
좀 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만두’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납니다. 만두의 ‘창시자’는 우리에게 <삼국지>로 잘 알려진 전쟁영웅 제갈공명(제갈량)입니다. 제갈공명이 군사를 이끌고 남만을 정벌하려 할 때 “남만의 풍속에 사람 머리를 베어서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야만 귀신의 도움으로 승리한다”며 그렇게 하기를 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갈공명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밀가루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고 그 안을 소와 양의 고기로 채운 ‘만두’를 창안해 토지신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기만하기 위한 머리”라는 뜻의 ‘만두(饅頭)’가 그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만두
한편 만두를 만들 때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를 흔히 ‘만둣속’이나 ‘만두속’으로 쓰는데요. “송편이나 만두 따위를 만들 때 맛을 내기 위해 익히기 전에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 또는 “통김치나 오이소박이김치 따위의 속에 넣는 여러 가지 재료”를 뜻하는 말은 ‘속’이 아니라 ‘소’입니다. 따라서 ‘만둣속’과 ‘김칫속’은 ‘만두소’와 ‘김치소’가 바른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