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9-[송상훈의 식물이야기] 식물의 수분 방법 1

꽃들이 만발한 화려한 봄날이다. 기간을 달리하면서 피어나던 예전과 달리 올해는 많은 꽃들이 거의 동시에 피었는데 이는 기후변화 영향이다.
많은 식물들은 여름과 가을에 꽃눈을 준비하고 이듬해 꽃을 피우는데 그 과정에 일정한 저온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를 춘화현상((春化現象)이라고 한다. 즉 꽃눈을 준비하고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정해진 겨울잠을 자야 한다. 이 겨울잠 기간이 지나고 볕을 쬐어야 식물은 비로소 기지개를 펴는 것이다. 겨울잠 기간은 식물들의 진화과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은 길었기 때문에 날이 풀리자마자 봄에 꽃피우는 식물들이 서둘러 일제히 잠을 깬 것이다.

한 번에 만발한 꽃들을 보는 기쁨도 쏠쏠하지만 기간을 두고 두루 오랫동안 즐길 기쁨이 줄어든 건 아쉽다. 그러나 이 아쉬움을 물리치는 대단한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 열린 남북정상회담이다. 식물과 달리 오랜 동면을 거쳤음에도 움트지 않던 평화의 싹이 갑자기 돋아난 것이다. 조만간 남북평화의 꽃이 활짝 필 것 같은 기대로 가슴이 쿵쿵 뛰는 건 필자만이 아닐 듯하다.
한편, 꽃이 핀다고 해도 결실을 맺으려면 서로의 환경에 맞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식물의 경우 결실을 맺기 위해 꽃가루를 옮기는(受粉 수분) 방법으로 바람, 물, 곤충, 새를 매개체로 활용한다. 남북관계도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정상들의 대화만으론 부족하다. 남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적절한 방법으로 통일과 평화를 부르는 꽃가루를 교환해야 한다.

남북에 평화의 결실이 송송 맺히길 기원하며 이번 회부터 3회에 걸쳐 식물들의 수분 방법을 알아본다.

# 양치식물은 홀씨를 공기 중에 날려 번식
원시 지구의 바다 속에서 성장하던 최초 생물인 남세균이 산소를 공급하였고 이후 단세포 생물들이 등장하여 갈조류, 홍조류, 녹조류로 진화하였다. 이들 조류(藻類)는 광합성을 하면서 지구에 더 풍부한 산소를 공급하였으며 고생대 데본기에 이르러 녹조류는 육상으로 진출했다.
이끼류 등 선태식물과 관중, 고사리, 고비, 속새 같은 홀씨주머니를 가진 1만 여종의 양치식물이 그것인데 이들은 광합성에 유리한 얇고 넓은 잎을 갖고 있다. 이들은 홀씨를 공기 중에 날려 번식하거나 몸이 갈라져 무성생식하면서 한 때 지구를 뒤덮었었는데 석탄, 석유는 그들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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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에 달한 양치식물은 물이 없는 곳까지 진출했고 이 때 종자식물이 탄생했다. 고생대 후기까지도 고온다습하고 물이 많았기에 양치식물이 주를 이루었으나 페름기에 들어 여러 대륙이 모여 판게아를 이루면서 대륙 중앙은 건조하게 되었고 이 틈을 타 은행나무와 소철 등 초기 겉씨식물(나자식물 裸子植物)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중생대에 후기 겉씨식물인 침엽수가 등장했다.
겉씨식물의 조상은 양치식물인데 이들은 꽃이 없고 포자낭만 있다. 겉씨식물에서 소포자낭은 암술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대포자낭은 수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꽃은 꽃잎, 꽃받침, 암술, 수술을 갖추거나 몇가지가 없는 안갖춘꽃도 있지만 겉씨식물은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기에 꽃이 아니다. 꽃이 아니니 꽃가루도 없고 당연히 열매라 할 것도 없지만 열매 비슷한 구과가 있거나 겉씨를 생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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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꽃이라 칭하는 식물은 속씨식물(피자식물 被子植物 , 현화식물 顯花植物)을 말함인데 꽃을 피운다. 속씨식물은 약 1억 3천만년 전인 중생대 말기에 등장하여 곤충이 증가한 신생대에 급증하였고, 현존 식물의 90%(총 식물 26만종 중 23만 5천종) 이상을 포괄할 정도로 번영기를 맞았다.
현존 속씨식물들의 가까운 조상은 목련인데 이때는 벌과 나비가 없었다. 벌과 나비에게 가루받이를 의존하는 많은 속씨식물과 달리 목련은 아직도 가루받이를 딱정벌레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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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분 방식에 따라 충매화, 풍매화, 조매화, 수매화 등으로 분류
양치식물, 겉씨식물, 속씨식물 모두 존재를 지속하려면 수분(가루받이)이 필수다. 수분이라는 것은 수술 머리의 꽃밥(화분)이 암술 머리로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꽃가루가 없는 양치식물은 포자, 역시 꽃가루가 없는 겉씨식물은 꽃가루 역할을 하는 수구화수(수毬花穗)가 옮겨져 수분을 한다. 여기서는 편의상 수구화수도 일종의 꽃가루로 구분한다.
수분이 옮겨지는 방식에 따라 충매화, 풍매화, 조매화, 수매화 등으로 분류된다. 즉, 곤충에 의해서, 바람에 의해서, 새에 의해서, 물에 의해서 꽃가루가 옮겨지고 존재의 지속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먼저 충매화를 알아보자.
충매화는 꿀벌, 말벌, 나비, 나방, 개미, 파리, 딱정벌레 등 수분 매개충을 유인하기 위해 화관, 꽃받침, 포엽 등을 밝은 색으로 진화시키거나 꿀과 달콤한 수액을 많이 생산한다. 꽃이 큰 편이며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경우도 많다.
곤충은 꿀, 수액, 화분 등의 양식을 얻으려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고 그런 중에 수분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꿀벌이 1킬로그램의 꿀을 얻으려면 벌이 1000만 번이나 꽃을 옮겨 다녀야 하고 이 과정을 거쳐 열매 맺고 지속하는 것이니 곤충들의 노고에 크게 감사해야 한다. 풍매화에 견과류가 많다면 충매화엔 과일이 많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충매화 꽃가루는 곤충 몸에 붙어 옮겨지기에 끈적거리며, 바람을 이용하지 않으므로 꽃가루도 큰 편이다.

충매화는 무궁화, 진달래, 개나리, 나팔꽃, 사루비아, 맨드라미, 배꽃, 복숭아꽃, 호박꽃, 달맞이꽃, 장미, 벚꽃, 자두, 살구, 매화, 모과, 블루베리, 수국, 백당나무, 붓꽃, 유채, 돌나물, 목련. 버드나무, 밤나무, 쥐똥나무, 광나무, 민들레, 엉겅퀴 등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중 버드나무와 밤나무는 바람을 이용해 수분하는 풍매화 성격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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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매화가 곤충을 유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곤충 특징에 맞는 색깔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가령 목련은 딱정벌레를 매개체로 하는데 이를 유인하기 위해 흰꽃을 피운다. 딱정벌레가 색맹이어서 꽃은 희거나 녹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색깔보다는 냄새에 더 많은 의존을 한다는 꿀벌의 경우 어떤 색을 선호할까?
1973년 노벨생물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칼 폰 프리쉬(Karl Von Frisch)에 따르면 꿀벌은 녹색, 청색, 노란색을 선호하며 붉은색에 대해서는 색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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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폰 프리쉬는 자신이 대학원생일 때 교수였던 독일의 시각생리학자 칼 폰 헤스(Carl Von Hess)의 ‘꿀벌은 빛의 세기에 반응할 뿐 색맹이다’를 반박했었다. 즉 모든 색에 대해 색맹이라는 선배의 이론을 반박한 것이다.
최근 오스트리아 대학 연구팀은 꿀벌은 겹눈을 통해 사물의 형태와 색깔을 구분하고 단눈을 통해 빛의 색변화를 인식한다고 하여 꿀벌이 색과 빛을 동시에 인식하고 결합해 피사체를 구분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헤스와 프리쉬 이론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벌들이 꽃을 선택하는 데 있어 꽃가루의 맛 또한 주요하게 작용한다는 네바다대학교 연구진의 발표도 있었다. 결국 꿀벌은 향과 맛과 색을 모두 구분하는 셈이다.

어쨌든 꿀벌은 붉은색에 대해서는 색맹이다. 그렇다고 꿀벌이 붉은 꽃잎의 꽃에 앉았다고 놀라지 마시라. 앞서 밝혔듯이 꿀벌은 색깔보다 냄새에 더 민감하니까!. 또 꽃잎은 붉어도 꽃 중앙의 꽃밥이 노랑일 가능성도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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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꿀벌은 ★모양이나 +자형으로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는 꽃이 열린 모양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꽃이 핀 들판에서 꿀벌이 열린 꽃만 찾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꿀벌에게 원형이나 정방형처럼 꽃이 닫힌 봉오리는 의미 없다.

# 곤충의 특징과 움직임에 맞춰 식물도 진화
곤충만 영리한 것이 아니다. 곤충의 특징과 움직임에 맞춰 식물도 같이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벌들은 대체로 2차원 3차원 인식을 못하고 1차원인 선만 인식한다. 따라서 벌들이 찾는 꽃들은 벌을 안내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를 고안했는데 바로 꿀안내선(nectar guide)이다. 식물에 따라서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꿀안내선을 갖기도 하는데 곤충은 가시광선 외의 자외선까지 감지할 수 있으므로 문제되지 않는다.

나비는 어떨까? 미국 조지타운대학의 마사 바이스(Martha Weiss)의 연구에 따르면 나비 또한 색깔 구분은 물론 학습능력까지 뛰어나다고 한다. 어떤 꽃은 시간에 따라 꽃색을 바꿔 곤충들에게 꿀이 있음을 알리는데 나비는 이 신호를 잘 포착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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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화분까지 취하는 벌과 달리 꿀만 먹는데 화관이 긴 꽃은 꿀도 깊이 숨어 있다. 입대롱이 긴 나비에게는 독점권이 있는 셈이다. 나비는 벌과 달리 입체적 시각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일까 나비를 부르는 꽃은 꿀안내선이 필요 없다. 나비는 분홍색이나 남색 등 색이 진하고 향이 강한 꽃을 선호한다.

꽃이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헛꽃을 덧대는 식물들도 있다. 헛꽃은 꽃이 변한 형태도 있고 꽃받침이 변한 형태도 있으며 잎이 변한 형태도 있다.
산수국과 백당나무는 꽃 중앙에 암술과 수술을 갖춘 자잘한 진짜꽃(유성화)이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 주위로 진짜 꽃처럼 보이는 보라 또는 흰꽃인 무성화 피운다. 무성화는 꽃잎만 있고 암술과 수술은 없는 헛꽃이다. 이는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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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받침이 헛꽃 역할을 하는 나무로는 산딸나무, 바람꽃, 천남성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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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다래와 쥐다래는 다른 이유로 잎을 변색하여 곤충을 유혹한다. 이 식물들은 꽃을 갉아먹는 벌레를 피하려고 꽃을 잎 뒤에 숨긴다. 그런데 수분할 때가 되도 곤충이 꽃을 찾지 못할 경우가 있어서 곤충을 유인할 목적으로 잎을 꽃처럼 치장하는 것이다.
개다래는 수분 때 잎을 하얗게 물들이고 쥐다래는 분홍색으로 물들이는데 수분을 마치면 다리 본래 색으로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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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단지 꽃의 색이나 잎의 위장 만으로 곤충을 유인하는 건 아니다. 위에 설명한 목련이 딱정벌레를 유인하기 위해 흰꽃을 피우지만 파리를 유인하기 위해 불쾌한 냄새를 발산하기도 한다. 땅바닥에 납짝 붙어 자라는 돌나물의 경우 개미를 매개체로 하여 수분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렇듯 충매화는 수분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곤충을 유인하는데 수분 이후 바로 수정 된다. 수정 이후 계절을 달리하면 씨앗이 되거나 열매가 되는데 이때부터 번식을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이용한다. 가령 민들레나 엉겅퀴는 벌과 나비에 의해 수분한 다음 바람에 씨앗을 날린다. 동물이나 사람의 신체에 묻어 씨앗을 이동하는 경우도 많은데 짚신나물과 냉이, 질경이는 사람의 발길을 따라 싹을 틔운다. 또 상당수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되어 배설을 통해 씨앗을 퍼트리기도 한다.
동물이나 인류보다 훨씬 이전에 지구를 장악하고 지금도 여전히 절대다수인 식물은 대체로 남을 해코지하지 않으면서 생존하는 노하우를 보유한 것이다.

지금까지 충매화에 대해 간략히 알아 보았다. 다음 회에서는 풍매화에 대해 알아 볼 것인데 몇 줄 덧보태고 마무리 한다.
보통 풍매화는 꽃가루가 매우 작기 때문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식물이 많다. 그러나 풍매화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충매화 중에도 꽃가루병을 유발하는 식물들이 있는데 향기가 매우 좋은 쥐똥나무와 광나무, 향이 깔끔한 개망초, 개미취, 벌개미취, 참취, 구절초, 국화, 쑥, 민들레를 비롯해 잎이 넓고 꽃도 큼직한 해바라기, 돼지감자, 길가에서도 흔히 보는 명아주, 소리쟁이, 수영, 집에서 키우는 올리브나무, 그 밖에 도꼬마리, 미역취도 꽃가루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알레르기를 초래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꽃 많은 봄날, 화사한 봄꽃을 눈에 가득 담아 두시고, 남북화해의 메시지도 가슴에 차곡히 담아 두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