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8-[송상훈의 식물이야기] 그림 속의 꽃들3

프로필_송상훈

미술계의 위작 논쟁은 종종 일어난다. 이중섭, 박수근, 이우환, 김환기, 박고석, 장욱진, 이상범, 변관식, 도상봉, 유영국 그리고 얼마 전 고인이 된 천경자(1924 ~ 2015) 화백도 위작 논쟁에 휘말렸다. 천화백은 문제가 된 ‘미인도’가 자신의 그림이 아님을 주장했으나 국립현대미술관과 검찰은 화백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천화백의 양식적 특징으로서의 흰꽃이 진품의 증거 중 하나라고 주장했으나 정작 천화백 자신은 꽃을 그리되 ‘미인도’ 꽃처럼 투박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하였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필자는 알 수 없지만 꽃과 관련된 위작 논쟁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사실주의 정물화가인 도상봉(1902 ~ 1977) 화백의 1950년대 작품 ‘라일락’이다. 도화백의 다른 작품과 달리 서명과 연도가 표기되지 않은 이 작품에 대하여 2003년에 한국화랑협회는 위작이라고 판정했고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진품이라고 판정하면서 대립했다. 이 때도 유족인 화백의 딸은 위작이라 하였으나 한국미술감정협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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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봉 화백은 백자나 청자에 담긴 꽃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라일락을 특히 사랑했으나 코스모스, 국화, 백일홍, 매화, 백합, 개나리, 영산홍, 안개꽃 등 다양한 꽃들을 소재로 삼았다.

본 코너에서 몇 달 전에 연재했던 ‘꽃향 좋은 식물들 1’에서도 라일락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다시 정리하면, 라일락(물푸레나무과)은 털개회나무(정향나무)나 꽃개회나무와도 다르고 석회암지대에 자라는 수수꽃다리(조선정향, 개똥나무, 헤이크라)와도 다르며 미스킴라일락과도 구별되는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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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과 미스킴라일락은 민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라일락은 동유럽 원산으로 잎은 키세스 초콜릿 모양으로 광택 있고 지난해 잎겨드랑이에서 꽃이 피면서 수수꽃다리처럼 수피가 너덜너덜 벗겨지는 특징이 있다.

미스킴라일락은 1947년 미국인 엘윈 메더 (Elwin M. Meader)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털개회나무 종자를 얻어 미국에서 개량한 것이다. 털개회나무는 잎이 작으면서 털이 있고 광택은 없으며 한강 이북 고산에 자생하면서 묵은 가지 끝에 꽃을 피운다. 이를 개량한 미스킴라일락도 잎이 작은 편이고 광택이 없으며 잎저가 완만히 좁아지는데 개량종이 그렇듯이 꽃향기가 매우 강하다. 이 미스킴라일락이 1970년대에 우리나라로 역수출되어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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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꽃다리는 잎이 크고 두툼하며 풍성한 꽃이 묵은 가지에서 핀다. 가끔 도심 화단에서도 보이지만 주로 석회암 지대인 북부에 자생한다. 꽃개회나무 잎도 수수꽃다리만큼 큰데 조금 덜 두껍고 수수꽃다리와 달리 새 가지에서 꽃이 피면서 화서가 꼿꼿하다. 보통 700m 이상 고산에 자생한다.

이상의 특징으로 보아 50년대와 70년대 초반에 주로 그려진 도상봉 화백의 그림은 70년대에 역수입된 미스킴라일락과는 관계없고, 잎의 크기와 서식지로 보아 수수꽃다리나 꽃개회나무와도 무관하니 작품명 ‘라일락’은 정확한 호칭이라 할 수 있다.

# 꽃을 극사실주의로 표현한 김재학, 이협섭 화백
꽃을 극사실주의로 표현하는 대표적 작가로는 브라이언 데이비스(Brian Davis)를 들 수 있으나 국내에도 이에 못지 않는 화가들이 있다. 대표 화가로는 김재학(1953~)과 이협섭(1958 ~)을 들 수 있다. 특히 김재학 화백의 그림은 브라이언 데이비스 이상으로 정밀하고 사실적이다.

유채와 수채 모두 뛰어난 김화백은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고 균형을 잡는 타고난 감각의 소유자다. 스스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자기만의 개성과 감각적 요소를 투영한다고 자평한 바 있지만, 평론 역시 ‘절제와 중립의 미를 표현하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작가라고 호평한다.

특히 들꽃을 선호하여 채송화, 달맞이꽃, 물옥잠, 은방울꽃, 자목련, 잔대, 닭의장풀(달개비), 풍접초, 만병초, 아그배나무, 용담 등 다양한 야생화를 실물에 가깝게 묘사했다.

거의 사진을 보는 듯한 그의 식물 그림들이 많지만 2가지만 소개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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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접초(족두리꽃. 풍접초과)는 여느 집 화단에서도 쉽게 접하는 식물이지만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꽃을 유심히 보면 낮에는 펴지고 밤에는 오므리는 네 장의 꽃잎이 서로 떨어져 마치 나비가 바람을 타는 듯 보인다. 줄기 전체에 선모가 있고 잎은 삼(대마) 비슷해 보인다. 수술이 길게 빠져 거미줄 같아서 서양에서는 거미꽃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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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화서의 일종인 총상화서 꽃차례이므로 밑으로부터 계속 꽃이 피어오른다. 이 모양이 왕관처럼 보이기도 하고 족두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바람에 하늘거리는 이 꽃이 가련했을까? 시인 강은령은 이렇게 노래했다.

???? 얼굴만 알고 지나치는 이웃집 여인처럼, / 매끈한 흰 얼굴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게 하는 / 모르는 여인의 향기 나는 꽃 앞에 서서 /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들여다 본다 / 합환주에 달아오르는 뺨 포르르 떨리는 족두리의 떨잠 / 다소곳이 고개 숙인 신부는 왜 슬퍼 보이기만 할까 ???? [‘풍접초’ 중에서]

# 물을 정화하는 한해살이 식물 물옥잠
잎이 옥잠화를 닮았으나 물에서 자생하기에 이름 붙여진 물옥잠(물옥잠과)은 물을 정화하는 한해살이 식물이지만 너무 많으면 오히려 수중의 산소 부족을 초래한다. 물옥잠은 가을 무렵에 쪽빛 꽃을 단정하게 피우는데 일일초이므로 하루 지나면 바로 지고 다른 꽃이 밑으로부터 위로 피어오른다. 부래옥잠(물옥잠과) 사촌격인데, 부래옥잠은 주로 연못 등 습지에 자생하며 꽃잎 중 하나에 독특한 무늬가 있고 역시 일일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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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래옥잠이 물옥잠 사촌이지만 물옥잠과 더 비슷한 식물은 물달개비(물옥잠과)다. 물옥잠은 줄기가 바로 서며 꽃이 잎보다 높은 위치에서 핀다. 물달개비는 비스듬히 서며 꽃이 잎보다 낮은 위치에서 핀다. 이러한 식물들은 곤충에 의한 타가수분 외에서 자가수분을 겸하는데 물에 잠길 경우가 많기에 스스로 진화한 결과다. 물달개비는 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한해살이 식물이지만 생명력이 강해서 농약 오염에도 잘 견딘다.

# 꽃을 소재로 시대를 묘사한 디에고 리베라
꽃이 아름답게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시대를 묘사하는 명징한 소재로도 작동한다.

사실주의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꽃 파는 사람들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조명했다. 한 때 피카소식 추상주의에 몰두했던 리베라는 맑스주의를 접하면서 멕시코 인디오의 고단한 삶으로 시선을 옮겼으며, 러시아 혁명의 전조 역할을 한 멕시코 혁명기에 유럽계 백인의 상징인 대형건물 벽면에 인디오의 삶을 투영시키는 대형 벽화운동을 주도했다. 그에게 벽화란 고급스런 귀족문화가 아니라 모든 인디오들이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공유자산이었다. 이러한 리베라의 철학이 캔버스로 옮겨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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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리베라의 그림 세계를 잘 보여준다. 만개한 멕시코 국화 다알리아 바구니를 힘겹게 짊어지는 남편과 이를 돕는 아내 그림은 7년 후 아내가 칼라(calla.)꽃 바구니를 짊어지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좌측 그림에 대한 해석으로 여성에게 무거운 꽃바구니를 들도록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압권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멕시코 인디오의 삶이 여전히 버거워서 남편은 물론 아내까지 꽃을 팔러 나가야 하는 엄중한 현실을 묘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상존한다. 어떻게 해석하건 아름다움이 아니라 버거운 삶의 무게로서 꽃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칼라(calla Zantedeschia)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자. 카라 또는 칼라 또는 카라백합으로 불리는 이 식물은 백합과가 아닌 천남성과이며 그리스어 Kallos(아름답다)에서 유래하였다. 개체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기르기 까다로운 아프리카 습지식물이다. 개화하면 짧게는 3주, 길게는 2달 이상 지속되기에 축하연, 꽃꽂이 등 수요가 많은데 최근에는 뉴질랜드, 네덜란드, 이스라엘, 일본에서 대량 재배한다.

현재 100여종의 품종으로 개량되었지만 원산지는 남아프리카이며 17세기에 유럽에 전해졌다. 고대 로마인들은 정원에 칼라를 심고 종종 꽃봉오리의 테두리를 금실로 장식할 만큼 소중히 여겼다. 미국에 소개된 시기는 19세기 후반이며 예술의 소재로 등장했다. 따라서 멕시코도 비슷한 시기에 전해졌을 것이며 민중들의 삶과는 괴리되는 백인 영역의 꽃이었을 것이다.
칼라는 원래 단색 종이지만 교배를 계속하여 위 그림처럼 다양한 색의 꽃을 피우는 교배종이 탄생했다. 단색종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흰꽃 카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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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의 꽃차례는 육수화서이다. 천남성과와 가래과 식물들의 꽃차례를 육수화서라 하는데 대체로 꽃대가 굵고 꽃자루는 없으며 꽃대 상부가 길게 빠지거나 병모양으로 발달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천남성, 스파티필럼, 안스리움 등의 천남성과 식물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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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천남성과 꽃에는 꽃잎이 없다. 흰깔대기 모양과 하트 모양의 꽃잎으로 보이는 것은 실은 꽃이 아니라 불염포인데 꽃을 닮았다 하여 화포(花苞)라 부른다. 꽃은 화포 속의 보잘것없는 막대모양이 전부다.

지금까지 3회에 거처 ‘그림 속의 꽃들’을 살펴보았다. 수 없이 마주치는 그림 속의 꽃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여러분을 흥미로운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