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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몽골] #몽골에서 #어떻게든 (1) – 박정현 단원

같은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가.
분명 익숙히 걸었던 길이며, 익숙히 보았던 경광임이 분명한데, 알 수 없는 아니 알 것 같지만 말할 수는 없는 어떤 어색함이, 그 한 가운데에 있는 나 자신을 사로잡았을 때의 느낌을 그대는 아는가.

바양노르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 그 길을 지나간 것은 년수로는 4년, 횟수로는 5번째였다.

처음 만난 그 길은 내게 광활함을 안겨주었다.
복잡하고 밀집된 도시 한복판에 살던 내게 그것은 호흡이었고, 선물이었다.

다시 만나고, 또 다시 만난 그 길은 내게 의문을 던져주었다.
풀빛보다는 흙빛이 만연해져가는 모습을 보며 나그네가 느끼는 박탈감이란…

오늘 만난 그 길은 내게 울부짖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아팠다고, 아파왔다고 거주민이 된 나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아마, 몽골이 사막화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다.
“저기 길쭉길쭉한 풀들이 많이 보이는데, 사막화는 무슨 사막화냐.”
필자가 ‘몽골의 사막화’라는 개념을 접하고 나서 가진 의문 또한 그러했다.
초원을 보면 여기저기 길쭉길쭉한 풀들이 뭉텅이로 모여있는 군집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몽골의 비명이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하르간’, ‘데르스’
몽골 초원 여기저기서 보이는 그 식물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들이 자란다는 것은 이 곳이 과거에는 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이 많은 하르간과 데르스는 호수가 여기 있었다고 소리치는 몽골의 아우성이었던 게다.

아버지의 그 넓었던 어깨가 어느새 작고 왜소해 보일 때의 상실감을 기억하는가.

나를 한없이 품어줄 것만 같았던 몽골의 그 광활함이
이제는 텅 비어있는 먼지가 잔뜩 낀 둥지와 같아 보이는 오늘.

자식 된 나여. 울기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