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7-[Main Story] 2017 몽골 파견단원 귀국인터뷰

“사막화현장에 도움 주러 갔다가 배우고 왔습니다”

2017 몽골 파견단원들이 1년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지난 2월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김도형 단원·최재빈 단원이 어기노르에서, 김찬미 단원·이일우 단원이 돈드고비에서, 이다영·김성현 단원이 에르덴에서, 이동엽 단원은 바양노르에서, 육심제 단원은 다신칠링에서, 차현우 단원은 아르갈란트 및 바가노르와 울란바타르 임·농업교육센터에서 주민들과 함께 조림사업장 관리를 했습니다.
무엇보다 무사히, 건강하게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 고마웠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봉사활동 하러 갔다가 오히려 배우고 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파견단원들이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요? 이들의 값진 경험을 들으며 21세기 지구촌에서 국경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사회 : 이동형 홍보국장

사회 : 다들 건강한 얼굴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처음엔 적응하느라 힘든 과정도 있었을 텐데 길게 느껴지는 1년이 지나고 보면 훌쩍 지나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1년 활동 소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도형 : 저는 처음 7개월은 어기노르 조림사업장에서 활동했고 나머지 4개월은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행정지원 업무를 맡았습니다. 말하자면 시골생활과 도시생활을 다 경험한 거죠. 어떤 곳이 더 좋았냐고 묻는다면 역시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행정지원업무를 한 것이죠. 어기노르에서는 나무심는 것, 물을 주는 것 등의 일을 했습니다. 특히 행정업무를 하면서 ‘단체(푸른아시아)와 몽골지부 직원들이 정말 좋은 뜻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다들 목적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기에 저 또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재빈 : 몽골에서 일년 동안 생활할 것을 알고 나갔을 때, 저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 가늠자가 될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제 꿈은 세계 어디든, 작은 마을 하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마을은 식량과 최소한의 에너지를 자기들이 쓸 만큼 생산을 하고 소비하면서 살 수 있는 자립체제를 갖춘 공동체를 말합니다. 이런 마을을 만드는 걸 염두에 두고 몽골에서도 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는 지부와 주민들 사이에서 단원인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고민 끝에 선배와 상의도 해보곤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나서는 것보다 옆에 있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나라를 가더라도 의견을 수렴할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김찬미 : 지난 일년을 지나면서 ‘사랑도 노력하는 것이라는 게 말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전 사랑은 노력이 아니라 자연스레 우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누군가를 위해 내 마음과 에너지를 쏟는 것 그 모든 과정이 사랑이었다는 걸 느꼈어요. 국제개발협력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사랑을 위해서 노력하기’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 한 해였어요.

이일우 : 일년 전 같이 교육받고 출국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되었네요, 1년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ㅎㅎㅎ
전 초반에 몽골에 적응하는 것에 대해 걱정이 있었죠. 한번도 가본 적도 없고, 한국인도 거의 없고, 조림활동도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요. 그런데 같이 간 파트너와 주민들, 주민팀장님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줘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도와주러 간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지나고 보니 자만이었어요. 그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데 나의 기준에서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현장에서 그분들이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즉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지혜를 통해 일을 하는 방식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초기엔 말을 잘 못해 대화를 잘 못했지만 눈빛이라고 해야 하나, 행동으로 의사소통이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돈드고비 주민의 한명으로 녹아들어서 살았죠. 이일우라는 이름보다는 ‘오카’라는 몽골 이름으로 잘 살았던 것 같아요. 벌써 그립네요. 돈드고비에서의 지난 1년의 시간과 주민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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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 전 에르덴에서 활동했는데요, 에르덴은 시골 중의 시골이에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지역. 그래서 주민들에게 더 의지하고 더 자주 소통하게 된 것 같아요. 에르덴은 6~7월엔 에코투어로 너무 바쁘기 때문에 울란바타르로 장을 보러 가지도 못 하죠. 휴일이 없는 기간이 힘들긴 했는데 그런 상황일수록 에르덴의 삶에 더 집중하게 되었어요. 주민들이랑 이야기 하면서 같이 밥 먹는 횟수도 늘어나니까 더 소통하게 되는 거지요.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민들이랑 더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환경이 고맙게 생각되더라구요. 언어가 다른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도 많이 고민했고. 마지막에 와서는 가족처럼 주민들이랑 지내게 되었던 것도 좋았어요.

김성현 :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일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성장한 거 같습니다.

이동엽 : 몽골 가기 전 목표가 두 개 있었어요. 첫째, 몽골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구나 시설, 건축물을 짓자. 둘째, 민폐를 끼치지 말자. 결과적으로 잘 된 것 같아요. 가기 전 몽골어를 가르쳐 주셨는데 잘 못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주민분들과 친해지려니까 무척 힘들었죠. 제가 있던 곳은 바양노르였는데 지난 해 날씨가 안 좋아 힘들었던 적이 많았어요. 전기가 끊기면 물도 안 나오는데 그때마다 주민분들이 물을 가져다 주시고. 밥 해먹기 힘들다고 하면 부탄가스도 가져다 주시곤 했죠. 지나고 보니 주민직원분들게 감사한 기억만 떠오르네요.
지난 1년간 조림활동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포플러를 어떻게 잘라야 벌레가 안 먹는다’는 것 등등. 결론적으로는 푸른아시아에 감사하고, 잘 버텨준 나에게도 감사하고, 일년 동안 잘 하게 해준 조력자 단원들에게도 감사해요. 정말 감사한 한 해 였습니다.

육심제 : 지난 해 몽골 출국할 때 딱 하나만 생각했습니다. ‘단원들 다 같이 웃으면서 건강하게 돌아오자.’ 그리고 현장에서 ‘버티자’는 생각, 그거 하나만 생각하고 지냈는데 벌써 이 자리에 있네요. ㅎㅎ 다들 건강하게 돌아와서 너무 좋아요.
전 몽골갈 때 큰 욕심 없었어요. 그냥 돌아왔을 때 ‘몽골 시골에서 살았다’ 이말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목표를 이룬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그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어요. 희한하게도 일년이라는 시간이 미화 되는 데에는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것 같아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몽골에서의 생활은 모두 행복했다고 느껴졌거든요.
제가 있던 곳은 다신칠링인데 바양노르 근처에 있어 바양노르에 있던 이동엽 단원과 같이 생활했어요. 출퇴근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일도 많이 하다 보니 일 끝나고 주민들이랑 얼굴 볼 시간도 없었어요. 그래도 주민팀장님과는 호흡이 너무 잘 맞아 좋았어요. 매일 점심을 같이 먹던 것이 기억나네요. 정이 많은 분이어서 한 그릇 먹었는데 더 먹으라고 권하면 그 마음이 고마워서 배가 불러도 한 그릇 더 먹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주민들이랑 좀 더 친했으면 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미련도 남지 않고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한해 였어요.

차현우 : 지난 일 년 푸른아시아 봉사단원으로 사막화방지를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몽골지부에서 드론 촬영의 기회를 주신 것도 제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여서 더 없이 좋았습니다.

조림사업장 관리만 했는데 주민직원분들과 정 들었어요

사회 : 이제 지역활동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먼저 어기노르조림사업장은 특히 환경이 열악한 곳인데 요즘 조림 현황은 어떤가요?

김도형 : 2017년이 조림장사업을 마무리하는 해로 제가 있을 때 계획했던 보식도하고, 목표했던 나무도 다 심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작년 워낙 가뭄이 심해 나무 생존률은 크게 좋지 않은 걸로 압니다. 그래도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후원해줘서 지은 비닐하우스와 우물도 잘 되어있는 등 기반시설은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아요.

사회 : 한국어 교육을 했다던데 어느 정도 했나요? 반응은 어떤가요?

김도형 : 울란바타르 임·농업교육센터에 있을 때 청소 담당 아주머니랑 딸. 그리고 경비원 한 분. 그렇게 시작했는데 경비원은 몽골어도 모르는 분이어서 청소 담당 아주머니 딸만 가르쳤어요. 원래 혼자 공부했다고 하는데 2~3개월 정도 가르치니 한국어를 읽고 말할 줄 아는 수준이 되었어요. 올해 여름 에코투어 봉사자라로 활동한다고 하니 앞으로 잘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사회 : 어기노르에 김도형 단원과 두 분이 같이 계셨는데 같이 있으면 좋은 점도 있을 것이고 나쁜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최재빈 :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죠. 어기노르에는 외국인이 딱 세 명 있었어요. 학교 교장선생님이랑 저랑 김도형 단원. 한국말도 대화하거나 이야기 하고 싶을 때 옆에 같은 단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혼자였으면 굉장히 외로웠을 겁니다. 혼자 밥하고, 청소하고 그런 것들이 힘들었겠죠. 단점은 제 경우 원만한 생활을 좋아하는데 도형이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죠. 서로 스타일이 안 맞는 부분이 좀 있었는데 그런 차이는 아마도 부모님이랑 살아도 느끼는 것일 겁니다.

사회 : 김찬미 단원은 돈드고비에 계셨죠? 돈드고비에서 주로 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김찬미 : 다른 조림사업장과 달리 ‘조림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어요. 주민직원들과 함께 삽질하고, 나무를 심고, ‘주민들과 함께 하기’가 주된 업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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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2017년 얻은 것은 무엇이고 내려놓은 것은 무엇인가요?

김찬미 : 지난 일 년 활동하면서 얻은 것은 사랑과 사람, 그리고 확신이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도움을 주겠다고 가서 도움을 받기만 하고 사랑을 받았어요. 감히 ‘가족’이라고 부를만한 돈드고비 가족들과 푸른아시아 단원 가족들을 얻었지요. 앞에서 얘기한 확신이란 국제개발협력 분야 진출을 희망하는 사람으로서 그 길을 갈 수 있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려놓겠다고 한 것은 모든 일을 제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데 몽골에서 일할 때는 항상 팀으로 일했죠. 그러면서 지역주민들이 우선되고 나를 내려놓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죠.

사회:어떤 경험으로 장기봉사단 지원을 생각하게 되었나요?

김찬미 : 고등학교 시절 독서를 통해 국제개발협력을 알게 되었지요. 책을 통해서는 이론만 배우는 것 같아 현장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면 꼭 장기봉사단을 지원하려고 했지요.

사회 : 이일우 단원도 돈드고비에 계셨는데 역시 조림활동이 주로 한 일인가요?

이일우 : 그렇죠. 다른 조림장은 양묘도 하고, 에코투어도 진행하지만 저희는 돈드고비에서 오로지 관수와 식재만 했어요. 한동안은 단조롭기도 했죠. 나무에 물 주고 비료도 주고 차차르간열매도 따고. 그래도 집중할 수 있어 좋았고요, 작년에 8조림지를 조성하고 7,200그루 정도 심었어요. 올해 9, 10조림지를 조성할 예정이에요.

사회 :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특별히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이일우 : 그분들의 딸로 잘 살았다. 조림사업장에 40~50대 정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어요. 그 분들이 저를 많이 챙겨주셨어요. 날씨 추우면 게르에 들어가라고 하기도 하고. 식사시간이면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고, 옷 두껍게 입어라고 챙겨주기도 했어요 마치 몽골 어머니, 아버지가 챙겨준 느낌이랄까요.

사회 : 돈드고비에서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들었는데 어떤 걸 건졌는지요?

이일우 : 지난 1년간 몽골에 간 것도 제가 목표가 있어서 봉사활동을 가게 된 것이에요. 앞으로 이 분야의 길을 갈 수 있나 없나 생각도 많이 했고요. 한번 가보고 맞다 싶으면 가고, 아니면 과감히 내려놓자고 결심하고 몽골에 갔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터닝포인트의 시기였어요.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는 책으로만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과 부딪치는 거지요. 아무리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일을 한다고 한들, 이상적인 결과만 나오는 건 아니고. 이상적인 일을 한다고 해서 이상적인 사람들만 만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어요. 결국은 이 길(봉사활동, 국제개발)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몽골에서 겪었던 일이 많이 도움 될 것 같아요.

사회 : 이다영 단원은 에르덴에 있었죠? 에르덴에서 주로 한 일은 무엇인가요?

이다영 : 조림사업장의 관수도 진행하면서 에코투어 팀이 왔을 때에는 에코투어 팀을 받아 에코투어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사회 : 마을살이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이다영 : 예전부터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에르덴 마을살이가 제가 생각했던 마을살이처럼 똑같진 않았지만,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같이 밥도 먹고 주민 집에 놀러가기도 하면서 저도 주민의 한 명으로 지냈죠. 파견 기간이 짧았으면 깊게 어울리지 못했을 텐데 1년의 시간이 주어지니 주민들이랑 친해지고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회 : 김성현 단원도 에르덴에서 활동했는데 주로 한 일은 무엇인가요?

김성현 : 초반엔 단원의 역할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일들이 있어서 주민들과 똑같이 8시간 일을 했는데 주민분들의 체력을 못 따라 가겠더라구요.

사회 : 에코투어 인솔도 했을텐데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했는지?

김성현 : 에코투어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람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에코투어팀으로 찾아오는 분들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기 위해 노력을 참 많이 했어요.

사회 : 그런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지?

김성현 : 에코투어를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고, 그 순간순간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얼마전 한국에 돌아와서 에코투어에 참가했던 중학생들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노력 중이라는 말에 보람을 느꼈어요. ㅎㅎ

사회 : 바양노르에서 한 일은 어떤 것이었나요?

이동엽 : 관수, 식재는 하긴 했는데 주요한 일은 관수였어요. 지난해 워낙 가물어서 물관리가 중요한 일이었죠.

사회 : 다른 지역과 달리 혼자 조림사업장을 담당했는데 어려웠던 일은 없었나요?

이동엽 :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던 거 같아요. 주민팀장님이 10년 이상 된 풍부한 경력을 가진 분이라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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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다신칠링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육심제 : 다신칠링 조림사업장 경우 올해 신규 확장을 해 초반에 적응할 새도 없이 여기에 매달렸어요. 한가지 기억나는 일은 조림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처음에 울타리 치잖아요. 울타리를 거의 다 쳤는데 잘못쳤다는 걸 알았죠. 다시 기둥을 다 뽑고 새로 기둥을 박고 울타리를 치면서 애를 많이 먹었지요. 하 하 하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땐 억장이 무너졌죠.

사회 : 주민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했다고 하는데 여건이 그리 좋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했는지요?

육심제 : 컴퓨터 문화에 대한 적응을 위해 뭐라도 가르치고 싶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에 몽골어는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너무 제한적이었어요. 게다가 인터넷이 안되니 검색도 안 되고… 결과적으로는 자판 익히는 것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지요.

사회 : 차현우 단원은 사진과 드론을 다루는 특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드론으로 조림사업장 촬영을 했다던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요?

차현우 : 원래 사진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난 5월에 아르갈란트 장기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드넓은 아르갈란트 조림사업장을 보고는 그때 드론을 꼭 구해 촬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몽골은 탁 트인 공간이 많아 드론으로 촬영하기 최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욕심을 내었죠.

사회 : 드론 촬영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경험담 하나 소개해 주시죠.

차현우 : 조림사업장과 그 주변엔 높은 건물 등 장애물이 없어 촬영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공중에서 촬영하는 거니 전체를 담고 싶었는데 바양노르 경우는 조림사업장이 떨어져 있어 한 번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사회 : 봉사활동 하면서 배울 점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어떤 점이 그랬나요?

차현우 : 몽골에서의 생활은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잖아요. 그런 경험과 관련된 지식을 부모님 뿐만 아니라 몽골지부 활동가들과 단원들을 통해서 배우고 몽골지부 사무실 근무하면서도 배울 점이 많았어요.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무실에서의 예절도 배울 수 있었으니 좋았지요.

지난 일 년의 경험, 앞으로 인생에 자양분 될 것 확신

사회 : 새롭게 부딪치는 일들은 모두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요. 그걸 잘 견뎌내고 건강하게 돌아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앞으로 계획이나 인생의 목표에 대해 각자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해주세요.

김도형 : 한국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몽골에서 일년을 살면서 한국에서의 삶에 더 감사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사는 것에 감사하면서 내가 뭘 하든 어떤 삶을 살든 감사하며 살고자 합니다.

최재빈 : 앞에서도 말한 지구촌 어딘가에, 그게 우리나라 시골일 수도 있습니다만 작은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이번 몽골에서의 경험도 그것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오십대가 되었을 때 이룰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김찬미 : 우선 학업을 계속해야지요. 올해 10월부터 폴란드 교환학생을 하게 될 예정인데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겠지요. 그 역시 제게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 인생의 목표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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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 : 몽골에서 봉사활동을 통해서 이 길을 더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막연했던 게 조금 더 굳어졌어요. 이쪽 전공이 아니다 보니 아는 게 별로 없는 걸 많이 느꼈어요. 지식이나 경험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이런 부분을 조금 더 보완할 수 있는 점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몽골 유학생 지원활동 등 몽골에 대한 인연은 조금 더 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다영 : 지역사회 안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해외에서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봤으니까 이제는 내가 잘 아는 곳이 어디냐, 한국이 잘 소통이 되고…. 제가 잘 아는 문화와 사람들과 내가 살았던 공간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성현 : 국제개발협력에 꿈은 있지만 앞으로 그 길을 갈 것이라고 확정은 짓지 않았어요. 제겐 아직 수많은 기회와 경험이 남아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도 제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삶을 살길 원해요.

이동엽 : 몽골에서 얻은 경험과 감사함을 바탕으로 매사에 감사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한국에 있는 몽골인들과 소통도 하고 싶습니다. 몽골에 있을 때 말목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꿈을 한국에서 이루기 위해서 한국에서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강원도도 말목장으로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심제 : 우선 복학을 해야 하고요, 지난 일년의 경험이 앞으로 저의 미래를 바꾼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말과 행동에 묻어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 유통시장에 관심이 많아 한국과 몽골의 상품 교류 방안을 찾고자 합니다.

차현우 : 저는 몽골에 남아 일 년 더 자원봉사를 할 계획입니다. 푸른아시아 단원으로 더 활동하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애로가 있어 특수교육 전문 NGO에서 봉사활동 하기로 했어요.

몽골에서 일년 동안 봉사활동을 마친 이들은 이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지난 일년의 경험이 이들 청년들의 앞날에 결코 단순한 봉사활동의 시간으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은 뭔가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데 한걸음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청년들의 헌신적인 시간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리 : 배윤진 홍보국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