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7-[송상훈의 식물이야기] 그림 속의 꽃들2
반 고흐는 특유의 굽이치는 붓터치로 유명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식물로는 해바라기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개양귀 외에도 카네이션, 백일홍, 장미 등 다양한 식물들이 그의 소재였다. 특히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그림을 그리던 1889~1890년의 생레미(Saint-Remy) 시절에 그린 무려 150점의 그림 중에는 대작이 많은데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외에도 식물을 소재로 한 ‘붓꽃(Irises)’과 ‘꽃 피는 아몬드 나무(Blossoming Almond Tree)’도 포함된다.
반 고흐의 아몬드나무를 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 동양화의 매화 그림과 매우 닮았다. 아몬드나무(장미과)는 흰꽃과 분홍꽃이 피는데, 실제로 흰꽃 아몬드는 매화와 구별이 쉽지 않다. 꽃은 한국의 경우 2~3월에 피는데, 꽃받침이 젖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살구보다는 매화에 더 가깝다. 그러나 분홍꽃 아몬드는 잎이 장타원형이라는 점과 가지가 붉은 편이라는 점에서는 복숭아를 더 닮았다. 실제 복숭아와 접붙여서 잡종을 만들기도 한다.
참고로 벚꽃은 꽃자루가 길고 아몬드, 매화, 살구, 복숭아는 꽃자루가 짧아서 나무에 붙어 피는 듯하다. 매실, 살구, 복숭아는 과육을 식용하지만 아몬드는 씨앗(핵과)을 식용한다는 큰 차이가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에 아몬드는 살구 또는 호두로 불렸다. 성경에 종종 등장하는 살구나무는 아몬드를 몰랐던 시절 오역된 것이라 할 것이다.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재배되었으니 원산은 중동이지만 요즘은 여러 개량종이 있고 캘리포니아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다.
불포화지방산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고소한 아몬드는 맛만큼이나 건강에도 유익하다. 당료, 비만 방지는 물론 항산화 항암효과도 있으며 밀 알레르기에도 좋다고 알려졌다. 호두가 그렇듯이 콜레스트롤을 낮추고 뇌 건강에도 좋다. 기름으로 짜서 식용하기도 하고 마사지에도 활용하며 목관 악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도 이용되었다.
고흐는 붓꽃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고흐는 붓꽃을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국화가 백합과 붓꽃이기에 그렇다.
붓꽃과 꽃창포와 매우 닮았는데, 꽃창포는 붓꽃보다 크고 화려하며 주로 물가에 자생한다. 서양붓꽃은 크게는 독일붓꽃, 스페인붓꽃, 영국붓꽃, 더치붓꽃이 있다. 독일붓꽃은 뿌리줄기고 나머지는 비늘줄기인데 고흐가 그린 붓꽃이 어느 것인지 식별할 눈썰미가 필자에게는 없다.
다만 용어를 잠시 살펴보자. 고구마는 덩이뿌리(겉뿌리에 양분과 수분이 모여 굵어진 것), 당근은 저장뿌리(원뿌리에 양분과 수분이 모여 굵어진 것)다. 방점은 뿌리다. 감자는 덩이줄기(괴경)다. 방점은 줄기다. 비늘줄기는 구근(Bulbs)이라 하고 뿌리줄기는 근경(Rhizomes) 한다. 역시 방점은 줄기다. 줄기에는 구경(Corms)이라 부르는 알줄기도 있다.
비늘줄기를 알뿌리라고도 부르지만 줄기의 하나이므로 뿌리라는 용어 사용은 피함이 옳다. 비늘줄기의 대표식물로는 위에 서술한 영국붓꽃, 스페인붓꽃, 더치붓꽃과 수선화(수선화과), 아마릴리스(수선화과), 튤립(백합과), 양파(백합과)를 들 수 있다. 뿌리줄기 대표식물로는 독일붓꽃, 아네모네(미나리아재비과) 등을 이 있고 알줄기 대표식물로는 글라디올러스(붓꽃과), 크로커스(붓꽃과)가 있다. 덩이줄기 대표식물에는 다알리아(국화과) 시클라멘(앵초과), 감자(가지과).가 있다.
# 글라디올러스(Gladiolus), 아네모네(Anemone) 명화의 단골 소재
알줄기 식물인 글라디올러스(Gladiolus) 또한 명화의 주요 소재이다. 평생 행복과 기쁨의 순간을 화폭에 담아냈던 프랑스의 거장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는 꽃을 많이 그렸는데 특히 글라디올러스가 많이 등장한다.
원예용으로 초봄에 알줄기를 심는 남아프리카 원산인 이 식물은 높이 1m 이상 오르면서 30cm 정도의 꽃대에 10여개의 큰 꽃이 위아래로 도열한다. 꽃이 막 필 때의 모습은 마치 며느리밥풀꽃을 확대한 듯한 느낌인데 활짝 개화하면 매우 화려하다.
5~7장의 잎은 넓적하고 얇아서 검 같은 느낌이다. 글라디올러스 이름은 검(gladius)이라는 라틴어에서 기원했다. 이런 넓고 얇은 잎은 범부채나 박새에서도 볼 수 있다.
뿌리줄기의 대표식물인 아네모네(Anemone)도 화가들의 단골 소재다.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대표 화가인 오딜롱 르동(Odilon Redon)은 아네모네를 많이 그렸다. 르동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보들레르와 에드가 앨렌 포의 문학에 접하면서 어둡고 기괴한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40대에 연인을 만나 심정이 안정되면서 어두운 색체에서 벗어났으며 이 무렵 많은 꽃그림을 그렸고 아네모네는 주요 소재였다.
아네모네 전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비너스의 연인 아도니스가 사냥 중 사고로 피를 흘리며 사망했는데 여기서 피어난 꽃이라는 일설과, 꽃의 여신 플로라가 남편 제프로스와 시녀 아네모네의 사랑에 분노하여 시녀를 꽃으로 만들었다는 이설이 있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아네모스(Anemos)에서 유래된 단어다.
위 그림들에는 아네모네를 중심으로 라일락, 탄지 등이 보이는데 몽환적 분위기가 나는 이유는 붉은 종이 위에? 파스텔로 그렸기 때문이다. 파트텔은 분말 안료를 백점토에 섞어 분필처럼 만든 그림도구이다.
아네모네는 미나리아재비과 아네모네속이며 학명은 Anemone coronaria L.이고 영문으로는 Windflower니 바람꽃이다. 바람꽃은 전 세계에 118종이 자생하며 우리나라에는 대략 15종이 자생하는데 너도바람꽃속의 너도바람꽃과 변산바람꽃, 나도바람꽃속의 나도바람꽃, 만주바람꽃속의 만주바람꽃, 매화바람꽃속의 매화바람꽃을 제외한 (조선)바람꽃, 꿩의바람꽃, 남바람꽃, 쌍둥이바람꽃, 회리바람꽃, 세바람꽃, 가래바람꽃, 들바람꽃, 숲바람꽃, 태백바람꽃은 아네모네속이다. 아네모네는 서양바람꽃인 셈인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바람꽃들과 달리 대체로 매우 화려하다.
바람꽃들은 모두 꽃잎이 없고 암술과 수술만 있다. 꽃잎처럼 보이는 부위는 사실 꽃받침이다. 이 꽃받침은 다른 꽃들의 꽃잎보다 훨씬 그럴싸한데 아네모네를 보면 꽃받침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꽃에 가깝다.
# 꽃그림으로 유명한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
화풍이야 저마다 다르지만 파격적인 구도에 극단적으로 초정밀 묘사하는 여류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꽃그림도 유명하다. 그녀의 꽃에 대한 열정은 다음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정말이지 아무도 진정하게 꽃을 보지 않는다. 꽃은 너무 작고 현대인은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무엇인가를 알려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듯 꽃도 그러하다. 내가 꽃을 거대하게 그리면 사람들은 놀라면서 꽃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조지아 오키프는 집 주변의 잡초와 꽃들을 공들여 살피고 부분을 거대하게 확대하여 그림으로 구현함으로써 자신이 자세히 살펴 본 꽃의 세계를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오로지 꽃에만 집중할 뿐 일체의 배경을 배제하면서 색채의 투명성을 유지하는 독특한 방식을 추구했다.
전 회에서 이미 양귀비를 설명하였기에 여기서는 수선화과 비늘줄기 식물인 아마닐리스 (Amaryllis)를 다루도록 하겠다. 아마닐리스는 잎이 매우 두껍고 넓고 길며 여름에 꽃을 피운다. 열대지역에서는 상록이지만 한반도에서는 겨울에 잎을 떨구는 다년생 초본식물이다.
위 그림의 붉은 아마닐리스의 원 이름은 히페아스트럼(Hippeastrum hybridum)이다. 진짜 아마닐리스는 상사화와 매우 흡사한 아마닐리스 밸라도나(Amaryllis belladonna)이다. 지금은 이 두 식물을 통칭하여 아마닐리스라 부른다.
히페아스트럼(Hippeastrum)은 그리이스어 히페우스(Hippeus. 기사)와 아스트론(astron. 별)의 합성어다. 이름 있는 기사라는 뜻이니 남성을 의미한다. 한편 밸라도나(Belladonna)는 그리스어 아름다운 숙녀라는 뜻이니 여성을 의미한다.
히페아스트럼이 더 남성적인가? 밸라도나에 비해 더 강해 보이긴 한다. 히페아스트럼은 밸라도나와 달리 줄기가 푸르고 꽃이 더 발달한 느낌이다. 밸라도나는 우리가 자주 보는 상사화와 아주 흡사한데 상사화에 비해 꽃잎이 짧다. 상사화는 히페아스트럼처럼 대가 푸른 편이다. 이 화려한 꽃들은 지금부터 싹을 틔워 7월에 화려하게 꽃 필 것이다.
‘그림 속의 꽃들’은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