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7-[생태사진작가 김연수의 바람그물⑮] 수리부엉이 Eurasian Eagle Owl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텃새 중 가장 먼저 번식하는 새는 무엇일까?
밤의 지배자인 수리부엉이(천연기념물 324-2호,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는 눈이 오는 한겨울 짝짓기를 시작해 2월이면 3~4개의 알을 산란하고 3월에 새끼가 부화한다.
수리부엉이는 몸길이 65-70cm 정도로 우리나라 텃새 중 덩치가 가장 크다. 모든 맹금류가 그렇듯 암컷이 수컷보다 덩치가 크다. 수리부엉이란 이름은 수리류처럼 몸집이 큰 부엉이에서 유래됐다.
유라시아대륙에 넓게 분포하고 한반도 전역에 서식한다. 개활지나 강이 한눈에 보이는 야산의 절벽의 움푹 패어진 곳에 알을 낳으며 특별히 둥지를 만들지 않고 맨땅에 자신의 몸에서 뽑은 약간의 깃털로 알을 보호하고 암컷이 부화할 때까지 알을 품고 있다. 따라서 산란 중에는 수리부엉이 둥지 곁에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 어미가 놀라 둥지를 떠나면 알들이 얼어 죽기 때문이다.
수리부엉이는 산토끼는 물론 쥐, 꿩, 기러기 등 웬만한 들짐승과 날짐승은 다 잡아온다. 그래서 예부터 수리부엉이 둥지를 발견하면, 고기는 실컷 얻어먹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새끼들이 덩치가 크기 시작하면 왕성한 식욕을 충족시킬 먹이를 둥지 곁에 비축한다. 크고 작은 동물의 뼈들은 둥지 주변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밤하늘의 최후 포식자인 수리부엉이의 생존 개체 수는 자연생태계 먹이사슬의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다. 수리부엉이가 살고 있는 지역은 다른 새와 작은 동물들이 많은 곳이다. 이들이 살고 있다면 그곳은 생물들의 서식환경이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로 산림이 줄어들고 환경이 훼손되면서 수리부엉이의 개체수도 점차 줄고 있다. 최근 들어 수리부엉이의 번식지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이들의 숫자가 결코 늘어난 것이 아니다. 나라 전체에 개발바람이 불면서, 은밀한 곳에서 생활하던 수리부엉이들의 공간이 인간의 눈에 노출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파주의 한 아파트 주택가의 뒤편 절개지에 수리부엉이 한 쌍이 대를 이어 수십 년 동안 둥지를 트고 매년 2세를 번식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임진강생태보존회, 꾸룩새연구소 등 지역환경단체가 애지중지하면서 지켜오고 있는 곳인데, 파주시는 이곳을 2차 개발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개발이 우선이 아니라 우리 후손들을 위해 소중한 생명문화재를 지키고 이어가는 지혜가 절실한 시대이다.
김연수 생태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