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7-[강찬수 환경전문기자의 에코사전?] 도시 광산 urban mining
우리가 1년에 한번 혹은 2년에 한번쯤 바꾸는 휴대폰(스마트폰). 국내 전체로는 연간 2000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냥 쓰레기 매립지로 보내도 될까. 그 속에 유용한 자원은 없을까.
기종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휴대폰 하나에는 대략 0.024g의 금이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대에 들어있는 금값만 따지면 1100원 정도로 큰 금액은 아니지만, 매년 국내에서 버려지는 휴대폰 2000만대에 들어있는 금을 다 모은다면 220억 원 어치나 된다.
분실되거나 버려진 휴대전화
이처럼 버려진 전자제품 등에서 유용한 금속을 추출하는 산업을 ‘도시 광산(urban mining)’이라고 한다. 제품의 해체, 파쇄, 분쇄, 선별, 제련, 정련 등의 과정을 거쳐 금속을 모으게 된다. 외딴 산속의 광산이 아니라 도시에서, 혹은 도시 인근에서 폐전자제품의 재활용을 통해 원하는 금속을 효율적으로 얻는다는 의미다.
전자제품 속에는 금뿐만 아니라 다양한 금속이 들어있다. 예를 들어 휴대폰 100만대 속에는 금 24㎏ 외에도 은 250㎏, 팔라듐 9㎏, 납 9000㎏ 등이 들어있다. 이 외에도 니켈·코발트·몰리브덴·텅스텐·주석·인듐·갈륨·리튬·마그네슘 등 20가지 이상이 들어있다.
재활용을 기다리는 세탁기 등 폐가전제품/강찬수
개인용 컴퓨터(PC) 폐기물 1t 속에 들어있는 금의 양은 광산에서 캐낸 광석 17t에 들어있는 금의 양과 맞먹는다. 휴대폰 리튬 이온 배터리를 재활용할 경우 자연에서 직접 코발트·구리·니켈·알루미늄 같은 금속을 추출할 때보다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이 10%로 줄어든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90%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도시 광산의 중요성은 도시 내 금속 ‘매장량’을 파악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웃 일본의 경우 땅속의 금속 매장량은 외국에 비해 적지만 전자제품에 저장된 형태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의 경우 일본 내 전자제품 속의 ‘매장량’은 2011년 현재 6800t으로 전 세계 전자제품 속 금 매장량의 16%를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은 역시 세계 전자제품 속 매장량의 22%인 6만t이 일본 내 전자제품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폐가전제품을 재활용하고 있는 모습/강찬수
2011년 삼성경제연구소는 ‘도시 광산 내 희소금속의 잠재적 가치 평가’ 보고서를 통해 2020년이면 국내 도시 광산 내 희소금속의 잠재 가치는 최소 33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친환경자동차 보급 확대로 2차 전지 소비가 증가하고, 스마트폰 등 소형 디지털기기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희소 금속의 수요는 늘어나는 데 비해 희소금속은 채굴 비용이 증가하고, 자원 무기화 등으로 공급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9년 기준으로 세계 희토류(희귀 금속) 생산량 12만6230t 중에서 95%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고, 러시아와 인도가 각 2%, 브라질이 0.5%, 인도네시아가 0.3%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 편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학술지 ‘자원리싸이클링’에 게재한 논문을 보면 국내 도시광산업체수는 모두 917개이고, 도시 광산을 통한 재자원화 규모는 19조6000억 원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금속 수요의 22%를 도시 광산에서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광산은 여러 가지 면에서 환경에 도움이 된다. 폐가전제품을 바람직한 과정을 통해 재활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재활용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고, 광산 개발로 인한 자연 훼손도 줄일 수 있다.
폐가전제품에서 분리된 부품을 따로 분류하고 있는 모습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양의 전자제품 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다. 2012년 한 해 중국에서는 1110만t, 미국에서도 1000만t이 배출됐다. 1인당으로 따지만 미국은 29.8㎏, 영국은 21.8㎏, 중국은 5.4㎏의 전자제품 폐기물을 배출했다. 2017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7200만t의 폐가전제품 폐기물이 배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12개국에서 배출된 폐가전제품은 2010~2015년 사이 63%가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에서 배출된 폐가전제품 중에서 매년 25만~130만t이 서아프리카나 아시아 수출되고 있다.
서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는 선진국에서 수입된 휴대폰이나 TV, 컴퓨터 등 폐가전제품으로부터 금속을 추출·재활용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개도국의 시민들이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에 노출되면서 건강을 해치는 일이 많다. 폐전자제품 속에는 유용한 금속도 많지만, 수은이나 카드뮴 등 유해 중금속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심혈관 질환에 걸리거나 암에 걸리기도 했다.
?분리 해체된 폐가전제품
어린이들이 맨손으로 폐기물을 소각하거나 분쇄하는 데 동원되는 사례도 많이 보도됐다. 또 유해물질로 공기나 물, 토양이 오염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재활용에 직접 간여하지 않더라도 폐기장 주변의 환경이 오염되면서 근처 주민들까지 오염에 노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서는 개도국으로 폐가전제품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에게 2016년 기준으로 가전제품 100t이 팔릴 때마다 45t의 폐가전제품을 재활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2019년에는 신규 판매량의 65%, 혹은 전체 배출되는 전자폐기물 가운데 85%를 재활용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2014년 1인당 폐가전제품 재활용이 3.9㎏ 정도였는데, 유럽연합의 41%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환경부는 올 연말까지 1인당 평균 재활용을 6㎏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아프리카지역으로 수출된 폐가전제품들
한편, 환경부는 2005~2014년 사이 제조사와 이동통신사 등과 공동으로 범국민 폐휴대폰 수거 캠페인을 벌여 폐휴대폰 560만대를 모아 35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수익금은 독거노인과 결식아동 등 소외 계층을 위해 사용됐다.
일본에서는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쓸 메달을 폐가전제품에서 추출한 금과 은, 구리를 활용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5000개의 매달 제작을 위해서는 금 40㎏, 은 4902㎏, 동 2944㎏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는 이를 위해 지난해 2월부터 휴대전화와 소형 가전제품 기증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