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5-[엄민용 전문기자의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①>] 정유년은 한참 남았고, 무술년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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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용 기자의 공식 직함은 ‘경향신문 생활경제부장’이다. <스포츠경향>의 사회·경제·문화 관련 기사 ‘데스킹’이 그의 일이다. 하지만 그는 ‘기자’보다는 ‘건방진 우리말 달인’으로 더 유명하다.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많이 쓰는 단어만 모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건방진 우리말 달인(기초편)> <더 건방진 우리말 달인(달인편)> <나도 건방진 우리말 달인(완결편)>이 인기를 끈 덕이다. 이들 책은 우리말글 관련 도서 분야에서는 이례적으로 도합 30쇄 넘게 팔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일간지 교열기자와 방송사 아나운서들의 모임인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의 부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그동안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수백 개의 오류를 찾아내고, 2002년에는 ‘중학교 국어교과서’ 속의 우리말 오류 사례를 지적했다. 또 200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물의 설명문에 나타난 우리말 오류 사례를 개관 전에 지적했다. 이들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어문상 대상(문화관광부 장관상)을 2차례 받았다.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사(각 언론사 수습기자와 경력기자 대상으로 바른 문장 쓰기)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법원, 공무원연금공단, 전쟁기념관 사보 등에 ‘바른말 고운말’ 연재 중이다. 이런 엄민용 기자의 관심사가 우리말에서 우리글로 옮겨졌다.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 요령을 알려주고 있다. 엄민용 기자가 푸른아시아 회원들을 위해 매달 1회 <우리말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 연재를 하면서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올바른 쓰임새를 알려준다. |
????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많이 하는 거짓말이 하나 있습니다. ‘정유년(丁酉年)이 저물고 무술년(戊戌年)이 다가온다’ 따위가 바로 그것입니다.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정유년 닭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거나 무술년 개해가 곧 다가온다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부푼 꿈과 희망을 전하는 기사들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무술년은 아직 멀었습니다. 당연히 정유년은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올해가 저물어 가고 새해가 다가오고 있는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2017년이 끝나는 것이 무술년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갑자년이니 을축년이니 하는 육십갑자의 기준은 음력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1월 1일을 음력으로 따지면 2018년 11월 15일로, 여전히 정유년 동짓달입니다. 개해인 무술년은 설날인 2월16일 시작됩니다.
날짜와 관련해 자주 틀리는 말에는 ‘탄신일’도 있습니다. 석가탄신일이나 세종대왕 탄신일로 쓰는 ‘탄신일’ 말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석가탄신일이나 세종대왕 탄신일은 절대 기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무슨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실 겁니다. 하지만 부처님이나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것은 좀 우스운 일입니다. ‘탄신일’을 경하하는 것은 더욱 이상합니다. 왜냐고요?
‘탄신(誕辰)’은 “임금이나 성인이 태어난 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념하고 경하해야 하는 것은 세종대왕의 ‘탄생’이지, 세종대왕의 ‘생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탄신일’은 그 자체로 이상한 말입니다.
방금 얘기했듯이 ‘탄신’은 “임금이나 성인이 태어난 날”, 즉 ‘생일’과 같은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탄신’이 ‘생일’의 높임말입니다. 따라서 ‘탄신일’이라고 하면, 그것은 ‘생일’을 ‘생일일’로 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법정 공휴일인 ‘석가탄신일’ 때문입니다. 국립국어원도 분명히 ‘탄신일’은 바른말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정부가 음력 4월 8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이날의 이름을 ‘석가탄신일’이라고 정하는 바람에 ‘석가탄신일’은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충무공탄신일’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들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 있지요.
따라서 ‘탄신일’은 바른말이 아니지만 ‘석가탄신일’과 ‘충무공탄신일’은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 탄신일’ 등 고유명사로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 탄신일’ 등은 바른 표기가 아닙니다. ‘○○○ 탄생일’이나 ‘○○○ 탄일’로 써야 합니다.
실제로 얼마전 지난, 예수님이 태어난 날을 ‘성탄절’이나 ‘성탄일’로 쓰는 사람은 있어도 ‘성탄신’이나 ‘성탄신일’로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날짜와 관련해 ‘몇 일’도 무척 많이 틀리는 말인데요. 우리말에서 ‘몇 일’을 쓸 일은 절대 없습니다. ‘몇 일’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며칠’로 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