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4-[송상훈의 식물이야기] 꽃향 좋은 식물들2

#은은한 향기의 치자나무꽃은 결혼식 부케로도 많이 쓰여
치자나무(꼭두서니과)는 초여름 가지 끝에 6장의 흰 꽃잎으로 구성된 꽃 한 송이씩 피운다. 키 2~3m에 광택 있고 거치 없는 잎이 특징인 중국원산 식물이다. 한반도에는 고려 때 들어왔으며 꽃이 6월에 피고 7월에 지기에 장마의 시작이자 끝을 알리는 지표식물로도 알려졌다. 6월에 피고 8월에 지는 자귀나무도 장마 지표식물로 알려져 있지만 치자나무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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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은 치자나무 꽃향기에 매우 익숙하지만 정작 치자나무 향기인지 잘 모른다. 치자나무 영명은 가드니아(Gardenia jasminoides)인데 여성들에게 인기 좋은 가드니아 향수를 떠올리면 쉽다. 라일락처럼 아찔하게 진하지 않으나 은은하고 편안한 느낌의 향기가 좋아서 예전의 어머니들은 꽃을 옷장에 넣어 꿉꿉한 냄새를 가리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결혼식 부케로도 많이 활용되는데, 이 꽃에 대한 기억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대변하는 듯하다.

이해인 수녀는 치자꽃을 보며 기쁨과 설레임을 노래했다.

7월은 나에게 /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 하얗게 피었다가 / 질 때는 고요히 /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 ????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 그가 지닌 향기를 /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 설레일 수 있다면 / ????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중에서)

한편, 박규리 시인은 짙은 설움을 노래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 ????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 ???? (‘치자꽃 설화’ 중에서)

10월에 맺는 열매를 ‘치자(梔子)’라 하는데, 치(?)는 술잔을 뜻하고 열매 모양을 술잔에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다. 서양에서는 가드니아자스민 Gardenia jasmine 또는 케이프자스민 Cape jasmine이라 부른다. 원래 자스민은 물푸레나무과 자스민속에 붙는 이름인데 언제부터인가 향기가 좋은 꽃나무 여기저기에 자스민이란 이름을 붙어서 모두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치자나무도 홑꽃과 겹꽃(만첩치자)이 있다. 키가 60cm 이하인 종류는 꽃치자라 한다. 간혹 크레이프자스민 Crepe jasmine을 꽃치자나 만첩치자로 착각하지만 크레이프자스민은 꼭두서니과가 아닌 협죽도과이다. 크레이프자스민은 치자나무와 잎도 꽃도 비슷해 보이지만 잎이 부드럽고 꽃잎이 비교적 넓으며 겹꽃의 경우 노란 꽃 중심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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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는 한방의 주요 약재여서 황달 치료와 고혈압 치료, 해열 및 진통, 소염제로도 쓰인다. 진정효과가 있어서 차로 우려 마시면 두근거리던 가슴이 가라 앉고 불면증을 없애며 기관지에도 좋아 목감기에 쓰인다.
치자의 가장 잘 알려진 쓰임새는 염료이다. 단무지나 녹두전, 굴비의 노란빛을 선명히 하기 위해 사용했으며 노란향초를 만드는데 섞기도 했다.

 

# 헛개나무 꽃향은 꿀향기와 비슷… 나비와 벌을 불러
전 회에서도 언급했지만 꽃은 독특한 색과 향기와 꿀로 곤충을 유도한다. 쉬나무 향기는 사람에게는 별로지만 꿀이 많기에 벌들이 쉬나무 꿀냄새에 끌려 날아드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에게 향기로우면 벌에게도 향기로운 듯하다. 꿀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밀원식물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아까시나무, 찔레나무, 동백나무, 오가피나무, 때죽나무, 차나무, 옻나무, 앵두나무, 사과나무, 산수유나무, 층층나무 외에도 이후 언급할, 헛개나무, 대추나무, 팥배나무, 싸리나무, 오동나무가 그렇다.

참고로, 자작나무와 참나무, 떡갈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삼나무, 버드나무 등 바람에 의해 수분되는 풍매화들은 향이 약하고 꿀도 없는 편이라지만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아까시나무는 풍매화지만 향기와 꿀이 매우 풍부하다. 역시 풍매화인 느릅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도 꿀이 많아서 벌들이 찾는 밀원식물이다.

먼저 헛개나무(갈매나무과)부터 살펴 본다. 헛개나무는 중부 이남 남한 전역에 자생하여 6월에 꽃피고 10월에 열매 맺는 식물인데 지금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헛개나무는 재배되고 있으며 열매(지구자)는 대체로 중국에서 수입되어 자연산은 보기 드물다. 간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자연산 헛개나무가 남벌 당하여 재앙을 맞이해서다. 사람의 욕심으로 생존위기에 시달리는 동식물을 접할 때면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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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개나무는 재질은 매우 연해서 잘 부러지며 잎은 뽕나무잎 비슷한데 성장하면서 밑으로 축 처지는 특징이 있다. 꽃향이 꿀향기 비슷하게 달콤상쾌해서 벌?나비가 쉬지 않고 날아든다. 꽃을 보고 있노라면 벌들은 꿀단지에 빠진듯 꿀의 무게를 견디며 간신히 날아갈 정도다. 오죽하면 영어로 Honey tree라 불리겠는가.

헛개나무 어린잎은 생채로, 쌈채소로 식용하며 차로도 음용한다. 열매 또한 생으로 먹을 수 있다. 잎과 줄기, 열매 모두 알코올로 망가진 장부 개선에 좋고 특히 간을 보호하며, 칼슘이 많아 뼈를 강하게 하며 관절염에도 좋다. 고혈압 치료와 당뇨, 피로회복에도 좋다고 알려졌다.
헛개나무가 만능은 아니다. 요금 헛개나무를 이용한 숙취해소음료가 많고 가정에서 직접 즙을 내 음용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신장에 부하가 걸려 아니 마신 만 못할 수도 있으니 과용하지 말아야 한다.

 

# 6월에 피는 대추꽃 향기도 달콤하고 은은해
유용한 과실을 선사하는 나무들의 꽃향기 또한 은은하고 편안하다. 복숭아꽃, 살구꽃, 매화, 사과나무 모두가 그런데 의외로 대추나무 꽃향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대추나무(갈매나무과)는 줄기 잎도 늦게 움트며 꽃은 장마가 시작되는 6월에 피고 이때는 모내기 철이기도 하여 모내기 지표식물로 알려져 있다. 작디 작은 꽃이 자잘하게 피지만 향기는 최고다. 여기서는 「춘사수필상」 입선작인 리상숙씨의 ‘대추꽃 향기’ 구절을 빌어 대신한다.

아마도 대추꽃은 꽃모양으로 눈길을 끄는 꽃이 아니라 진하고 달콤한 향기로 자신을 드러내고 비로소 조그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그런 꽃 인 것 같다. 난생 처음 맡아본 대추꽃 향기는 이른 아침 거실을 가득 채웠던 동양난의 향기에 달콤함을 더한 그런 향기와도 같았고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향이 섞여있는 것도 같아서 내가 알고 있는 단어로는 표현하기가 힘들 만큼 기분이 좋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향기였다. 세상에 어떤 향수가 대추꽃 향기를 따라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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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용도도 다양하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는 부정을 쫓는다 하여 비싼 도장 재료로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나무 결이 치밀하고 아름다워서 가구로도 활용된다. 무엇보다 제사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주인공이다. 또한 대추나무는 강인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바람이 불어도 꽃이 지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그러하니 대추나무꽃이 풍성하면 그만큼 수확도 많을 것이기에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대추씨처럼 꿋꿋이 뚝심있게 세상을 대하라는 단단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추꽃 향기’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 사는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화려하고 크고 좋은 것만 보려 하고 느림의 미학보다 속전속결 빠름을 선호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추꽃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조그만 모습을 드러내어 화려한 모습으로 시선을 끄는 일도 없을 뿐더러 알아봐 주는 이가 없어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그 꽃향기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맡아본 사람이라면 다시 봄날이 되었을 때 대추나무 아래를 기웃거리며 설레는 맘으로 한 계절을 보내게 만드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올 한 해 대추꽃을 보면서 나 또한 진한 향기 전하고 달콤한 열매를 나눠주는 대추나무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다양한 상징 외에도 유용한 약으로 활용되는데 신장을 강화하고 이뇨를 활발히 한다. 위장병, 소화불량, 불면증, 허약체질 개선에 효과가 있고 간 기능 향상에도 기여하며 노화를 방지한다. 기관지에 좋고 부인병 질환을 치료하며 진정효과가 뛰어나 관절염에도 유용하다.

 

# 한국의 고유종인 회양목도 꽃향기가 좋아
회양목(도장나무. 회양목과)의 향기도 우리를 기분 좋게 한다. 혹자는 석회암지대인 강원도 회양(淮陽)지역에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혹자는 수피가 회색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대한민국 전역 모든 산의 돌틈에 자생하는 대한민국 고유종이다. 다만 매우 더디게 자라고 대체로 작은 관목형태이기에 눈에 자주 띄지 않는다.
지름 10cm 정도 되려면 70년 이상 걸리며 지름 20cm로 자라려면 500년 이상 걸린다. 높이도 1년에 3cm 이상 크지 못한다. 안동 도산서원의 회양목은 높이 2m인 고목인데, 윤달이 들면 한치씩 줄었다고 한다. 해서 ‘윤달 든 회양목’이라는 속담은 일이 더디거나 키가 작은 사람을 비유할 때 쓰이는데, 가뜩이나 더디게 자라는 나무가 윤달 들어 더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천연기념물 제459호인 여주 효종대왕릉의 회양목은 높이 4.4m의 300년 수령을 자랑하는 고목이다. 손을 타지 않는다면 높이 7m 정도까지 오르는 교목이지만 도심에서는 도로 조경수나 정원수인 관목으로 키운다. 추위와 공해에 강하므로 관공서나 대학, 아파트단지에도 많이 식재하고 향나무로 다양한 모양 내듯이 회양목 또한 여러 형상으로 다듬어 조경하기도 한다.

산에 자생하는 개체의 잎은 장타원형인 긴잎회양목이며, 섬에서 만나는 섬회양목은 잎이 둥근편이고 매끈하며 잎자루에 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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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끝 무렵 초봄 2~3월에 작디작은 노란꽃을 소박하게 피우는데 마치 고급향불을 피우는 듯 심신을 안정시키는 은은하면서 강렬한 향기를 발산한다. 하나의 꽃송이에 수꽃과 암꽃이 함께 있다.
흔히 도장나무로 알려져 있는 이 식물의 재질은 노란빛을 띠는데 조선시대에는 목판 활자의 재료로, 생원이나 진사의 호패 재료로, 관인이나 낙관에도 쓰일 만큼 정밀한 문양새김에 걸맞게 균일하며 치밀하다. 그 밖에도 얼레빗, 장기알, 측량도구에도 사용되었다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學者樹라 하여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선호했는데 회양목 또한 즐겨 심었다. 회양목의 가지가 매우 치밀하고 빽빽하게 자라므로 그와 같은 알찬 삶을 맞이하고자 하는 심경에서라 한다.
잔가지와 잎은 산모 자궁수축 효과가 있어 분만 시 사용했고, 통증을 완화시키므로 치통, 관절염, 진통제로 사용했다. 속이 더부룩할 때 구토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 꽃 모양이 병을 닮아 이름붙은 병꽃나무도 향기가 일품
5월 산행 중에 가장 흔히 만나는 병꽃나무(인동과) 향기도 빼 놓을 수 없다. 병꽃나무는 생명력이 뛰어난 식물이다. 풀또기처럼 밑에서 많이 분지하며 2~3m 올라오며 양지를 좋아하고 동아시아와 북미의 사토 등 척박한 땅에서도 잘 번식하지만 척박한 토양과 바닷가에서도 잘 자라는 편이다.
꽃은 보기 좋으나 줄기는 질서 없이 분방하고 뒤틀리고 엉키며 오른다. 꽃 피는 기간도 길고 다복하게 피므로 인기가 좋지만 목재로서의 가치는 별로다. 잎자루가 매우 짧고 잎끝이 갑자기 좁아지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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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모양이 병을 닮아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꽃봉오리가 병을 닮아서라고도 하며 씨앗이 긴 병처럼 보여서라고도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꽃이 작은 나팔의 모임으로 보일 뿐이다.
산기슭에서부터 정상까지 곳곳에 편재해 피는 꽃이 처음엔 황록색이었다가 점차 붉게 변하며 아카시아 피기 전까지 달콤한 향기를 발산한다. 요즘은 조경수로도 자주 식재해 도심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향기로우니 벌도 많이 찾고 그만큼 꿀도 많은 식물이다. 일반 병꽃나무 외에도 처음엔 꽃이 흰색이다가 점차 붉게 변하는 색병꽃나무가 있고, 처음엔 희고 이후 노랗고 꽃 질 무렵 분홍으로 3단계 변하는 삼색병꽃나무도 있지만 전 기간을 관찰하지 않으면 그 놈이 그 놈처럼 보인다. 꽃색은 벌나비에 의해 수정이 되면서부터 변한다고 한다.

내내 희기만한 흰병꽃나무는 구별이 쉽다. 마치 철쭉을 축소한 듯 처음부터 붉은꽃이 피는 붉은병꽃나무도 구별이 용이하다. 그러나 붉은병꽃나무 이종인 골병꽃나무와 소영도리나무를 생각하면 골치 아프다. 붉은병꽃나무는 꽃바침 갈라짐이 깊지 않으나 골병꽃나무는 일반 병꽃나무처럼 갈라짐이 깊고 꽃자루에 털이 많은 편이다. 또 골병꽃나무와 매우 흡사한 소영도리나무는 골병꽃나무와 거의 다를 바 없으나 꽃 중앙에서 나팔처럼 크게 벌어지며 꽃받침의 갈라짐이 불규칙하다. 일반 독자는 이 셋을 굳이 구별할 필요 없다. 참고로 통영병꽃나무는 우리나라 통영에서 자라는 고유종인데 잎에 털이 있고 잎 뒤 잎맥에 거친 털이 있다.
병꽃나무는 이뇨작용을 하며 황달, 식중독, 두드러기, 타박상에 효과 있다.

 

# 으름덩굴 꽃향기는 아카시아와 비슷
한국 전역 어디서나 잘 자라는 으름덩굴(목통 木通. 으름덩굴과)의 꽃도 매혹적이다. 다래나무나 등나무, 칡처럼 나무를 지주 삼아 휘감고 오른다. 산 중의 덩굴식물 꽃향기는 대체로 좋은 편인데 그 흔한 칡도 꽃이 피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하다.
칡보다 이른 5월 무렵 피는 으름덩굴 꽃 향기는 아카시아 비슷한데 더 달콤한 편이다. 꽃이 피면향기만으로 으름이 주변에 있음을 알 수 있고 두리번거리면 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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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꽃자루가 길어서 축축 늘어진 채 매우 풍성하게 많이 개화하는데 3개의 자줏빛 꽃잎은 사실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다. 꽃받침 위에 암수술이 벌어져 있으면 암꽃이고 다문 듯 보이면 수꽃이다. 줄기는 칡처럼 부드럽다.
산바나나 또는 토종바나나라고 불리는 열매를 으름이라 하는데 머루, 다래만큼이나 서민에게 친근한 과일이었다. 으믈은 10월에 몽키바나나와 키위를 섞은 듯한 모양으로 익다가 껍질이 터지면서 속이 드러난다. 필자도 어릴 때 으름을 자주 접했는데 속에는 씨앗과 과육이 있고, 과육은 달고 씨앗은 얼음처럼 차갑고 버석거리며 씁쓸하다. 과육은 족히 맛있다 할 수 있으나 씨앗이 태반이라 먹기가 쉽지 않다. 으름이란 말은 얼음이란 말에서 차용되었다 한다. 속이 드러난 열매 모양은 여자 성기 비슷해 보여서 숲에 누운 여자라는 의미의 임하부인(林下婦人)이란 이명도 갖고 있다. 산에서 으름을 만난다면 꼭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채취하여 밀폐용기에 보관하면 맛이 든다. 후숙과일이라 할 수 있다.

잎이 홍콩야자 비슷한데 홍콩야자 잎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해 으름덩굴 잎은 보통 5장으로 구성되며 잎끝의 꼬리가 탈락하면서 오목해진다.
으름덩굴 사촌으로 멀꿀(멍나무. 야모과 野木瓜. 으름덩굴과)이 있다. 제주를 비롯한 서남해안에는 으름덩굴과 멀꿀이 모두 상존하는데, 멀꿀 잎은 으름덩굴에 비해 더 길쭉하며 열매는 으름을 축소한 듯 닮았고 맛도 비슷하지만 익어도 벌어지지 않는다.
줄기는 댕댕이덩굴 비슷하게 바구니재료로 쓰이고 어린 잎은 다래나무가 그렇듯이 좋은 나물재료이며 꽃과 잎을 말려서 차로 음용하면 이뇨장애와 부종에 좋다.
뿌리와 줄기는 한방에서는 12경락을 서로 통하도록 잇는다는 의미에서 목통(木通)이라 부르는데 주로 하체를 원할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독성이 있어서 조심해 사용하며 고협압, 진통제, 방광염, 신우신염, 심장병, 생리불순에 좋고 눈병에도 쓰인다. 열매 껍질은 이질과 폐결핵에 효과 있다고 밝혀졌다.
기름을 내어 불 밝히는 식물이 많은데, 으름덩굴의 씨앗도 그 중 하나이다.

‘꽃향 좋은 식물들’은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