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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동화 넷 – 김성현 단원

첫 번째 이야기 – 모든 선택은 이유가 있다

11월의 끝에 다다른 요즘. 우리는 어떤 동화를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몽골이 아니라, 다른 날로 파견된 단원들의 동화도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하나 둘, 동화를 모으다보니 참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어느 누군가는 동화를 그만 쓰기로 결심했다. 다른 누군가는 동화를 계속 쓰고 있지만 중간 중간이 끊어진 동화였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동화와 현실 사이 속에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고, 동화가 저절로 쓰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계속 동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동화를 직적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들이 자신들의 동화를 덜 사랑한다고 비난하고 싶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포장되고 말로만 설명되어진 그 동화의 겉모습만을 보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인지, 가공된 동화만을 들을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동화를 그만 쓰고, 마지못해 살아가고, 버티는 모든 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동화를 써 본 사람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정말 동화를 써 본 사람이라면(그가 동화를 쓰는 흉내만 내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그들을 비난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건 모두 그들의 선택이다. 그래, 선택. 오늘은 사실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동화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이건 우리 모두의 동화일지도 모르므로, 주인공은 그였다가, 그녀였다가 할 것이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 만큼은 그도 그녀도 모두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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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동화나라에 산 지 어느덧 8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3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동화의 끝을 내려한다. 길고긴 여정이었다. 아플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이어내면 근사한 동화가 완성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그 어느 것도 배울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것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똑같이 하루가 반복되었다. 기쁘던 화가 나던 다른 하루하루가 펼쳐졌었는데, 어느 순간 기계처럼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이럴 때 누구라도 힘이 되는 한마디를 해준다면, 아무것도 아닌 말뿐이라도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텐데, 같은 동화를 쓰고 있다 믿었던 사람들은 겉포장하기 급급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았다.
아마 그들도 처음엔 동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화를 써내려가다가, 그러다 결국 이곳에 맞추어져 동화보다 현실을 택한 것이리라. 생각하니 마음만 더 씁쓸해졌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동화 속에서 내 이야기를 써내려가겠다고 이곳에 왔는데, 지금 나는 동화를 쓰고 있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현실을 선택한 건지. 그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도 어느새 현실에 순응해버릴 것만 같았고, 동화를 쓰기위해 도전한 사람들에게 현실을 강요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아직 조금은 동화에 발을 담그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그는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그녀는 이제 조금 두려웠다. 동화라고 생각했던 세계는 사실 괴물이었다. 동화속의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서류더미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인데도, 현실에서 온 사람들은 자꾸만 동화속의 사람들에게 종이더미를 요구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완벽하게. 그들이 정말로 동화를 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그녀는 헷갈렸다. 자신은 이곳에 동화를 쓰러 온 것이 맞는지. 미친 듯이 서류더미를 뒤지는 지금, 자신의 동화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동화를 부수러 온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동화쓰기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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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자여, 이 말을 명심하게나

엘리스는 걷고 걸었다. 비가 오고 있었고, 비를 맞고 있었지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비를 두려워 할 땐 몰랐는데, 이제는 그 비를 두려워하던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엘리스는 모자장수를 만났다. 그는 지난번 검정토끼 논쟁 때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이제 아주 신중한 사람이었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엘리스에게, 그는 자신의 손을 잡으라고 말했다. 이곳은 자신이 사는 곳이니 이 모든 곳을 안내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미 지쳐있었다. 그래서 그의 손을 잡았는지도 몰랐다.
그의 손을 잡고 돌아본 이상한 나라는 아주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곳에서 모든 동물이 말을 하는 이유를, 이곳의 하늘이 붉은색인 이유를, 토끼들이 의미하는 바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돌아보니, 어쩌면 이곳은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또 다른 나라일 수도 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었다.
모든 것은 변한다네.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네. 그렇게 흘러가고 사라진다네. 어느 것도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무르지는 않을 거라네.
때로 어떤 것은 붙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허무한 모래처럼 우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네.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이상한 소리가 아니야. 그건 체셔의 목소리야”
“체셔가 누구야?”
“이 이상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관리하고, 꾸며내는 사람. 네가 만났던 수많은 토끼들의 주인이자, 이 세계의 길라잡이야.”
“방금 그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했어.”
“음…..”

그는 가만히 턱에 손을 괴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토끼한마리가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뛰어왔다. 그녀가 찾던 토끼는 아니었다. 얼핏 보니 토끼의 이름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토끼를 잡지 않았다. 엘리스는 단지 지금 그 토끼를 잡지 않아도, 왠지 조만간 그 토끼를 다시 보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모자장수, 방금 선택이라는 토끼가 지나갔어. 혹시 봤어?”
“아니 보지 못했어. 나 잠시 생각 중이었거든. 토끼 이름표에 뭐라고 적혀 있었어?”
“글쎄. 나 그 토끼를 잡지 않았거든. 네가 아주 심각해 보여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그래서 나는 계속 네 기분을 생각했어.”
“그 토끼를 잡지 않은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너는 그 토끼를 잡았어야 해. 이건 너의 길인걸. 이 길에서 나는 그저 안내자일 뿐이야. 네 길에서 나 때문에 무언가를 놓치는 건 아주 어리석은 일이야.”
“너는 내게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넌 특별해.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를 그토록 신경 쓰는 거야.”
“엘리스, 아마 네가 놓친 토끼의 이름은 선택이었겠구나. 누구에게나 선택은 찾아와. 아주 자주. 그렇지만 녀석은 항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일단 한번 선택을 놓치면, 너는 그 순간의 녀석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어.”

엘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모자장수의 말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 귓가를 간지럽히며 체셔가 말을 걸었다.

선택은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매 순간 다른 얼굴로 다른 옷을 갈아입고 찾아온다네. 그 순간 잡지 않으면 그의 얼굴과 옷차림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 변덕이 심한 녀석은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도 않지. 망설이는 사이에 쏜살같이 사라질 거라네.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는 자여, 이 말을 명심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