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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돈드고비에서 전하는 겨울이야기 – 이일우 단원

따사로운 햇볕에 눈부셔하며 그늘을 찾아 삼만리 하던 때가 불과 며칠 전만 같은데 어느덧 손발이 꽁꽁 얼고 코끝이 찡해지는 계절이 찾아왔다.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시리다 못해 얼얼해지며 아파오고,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얼굴 근육이 얼어 굳는 것만 같고, 모자를 안 쓰면 내 몸속의 열기를 다 뺏기는 것만 같은, 심지어 콧구멍이 얼고 속눈썹에 얼음이 맺히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경험까지 하고 있다. 한국 날씨에 비하면 몽골 날씨는 이미 한겨울을 돌파한 것만 같은데 정작 몽골인들은 아직 가을 날씨라고 이정도는 추운것도 아니라고 하는 걸 보면 놀랄 따름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겨울동안 혹한기가 9번이나 찾아온다고 하니 아직은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추워지지 덜 추워질 날은 없을 거라는 몽골의 겨울을 앞두고 있지만, 살을 에는 듯한 혹독한 추위와는 상반되게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곳 돈드고비의 컴퓨터 교육 교실은 학생들의 열의로 후끈후끈 하다.

4월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나무를 일구어 왔던 조림사업이 10월부로 무사히 끝나고 이번 달 부터 새로이 주민 자치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솔직히 조림사업이 끝난 날만 해도 마치 몽골 에서의 생활이 다 끝난 듯한 느낌이었고 얼른 짐을 싸서 한국으로 가야될 것만 같았다. 물론 조림사업 이후에도 주민 자치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기에 아직 돈드고비에서 머물 날들이 꽤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은 말로 형용하기에 흘러넘치는 시원섭섭함과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 그건 아마도 이제까지의 몽골 생활을 대부분을 차지했던 조림지에서의 업무를 다시는 하지 못할 거라는 아쉬움에, 또한 조림사업을 끝으로 주민직원분들의 얼굴을 다시 보기 힘들 수도 있겠구나 라는 헤어짐의 아쉬움에 마음속이 공허했던 것 같다. 주민 자치사업을 진행한다 한들 겨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주민직원분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소수의 인원으로 주민 자치사업을 진행 할 수 있을까 라는 우려와 염려의 마음으로 주민 자치사업을 마주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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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이맘때의 사진. 조림지로 출근을 하던 이 때가 그리워지곤 한다.

이번년도 주민자치사업의 경우 처음으로 주민직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컴퓨터 교육을 진행하기에 앞서, 몽골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닌, 사전을 뒤져가며 드문드문 몽골어를 말하는 수준 이었기에 우리들만으로 컴퓨터 교육이 가능할까라는 걱정 반, 한편으로는 과연 몇 분이나 수강하러 오실까 하는 기대 반 이었던 것 같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했던 컴퓨터 교육도 어느덧 3주차에 접어들게 되었고, 컴퓨터라는 생소한 물건을 처음 접해보는 주민직원분들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독수리 타자법이지만 문장을 타이핑 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빠르게 컴퓨터를 습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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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컴퓨터 교육에 임하는 직원주민분들의 모습

솔직히 주민 자치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민자치사업에 큰 애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조림사업만큼 노력과 심혈을 기울 필요도 없겠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서툰 몽골어 설명에도 불구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에 집중하시고 열심히 따라 하시는 모습에서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고, 안이한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해서는 안 되겠다는 자기반성과 동시에, 매회 열심히 나오시는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성심성의껏 수업을 준비해야겠다는 다짐도 새로이 하게 되었다. 이렇게 주민자치사업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지니 주민자치사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도 즐겁게 여겨지게 되고, 내가 왜 이곳에 있는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되는 가? 에 대한 존재론적인 의문도 자연스레 풀린 것만 같다.

비록 컴퓨터 교육 자체가 당장 주민들의 생계와 직결 된 것도 아니고, 푸른아시아가 주로 해오던 조림사업 자체와의 관련성을 떠올리기 힘들 지도 모른다. 주민직원분들이 그동안 해오던 일은 때에 맞춰 구덩이를 파고, 때에 맞춰 나무를 심고, 때에 맞춰 나무에 물을 주고, 때에 맞춰 관수 설비를 해체하고 조림 사업을 마무리 하는 것이었고, 컴퓨터 관련 행정 업무는 상대적으로 현장 파견 단원들이 주로 맡아오던 일이었으므로 주민들이 굳이 컴퓨터를 배워서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건 나 또한 분명히 느꼈던 의문이니깐. 그러나 언제까지 단원들이 현장에 파견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언젠가는 단원들이 아무도 파견되지 않을 그런 날들도 올 것이다. 그러면 단원들이 맡아왔던 역할도 자연스레 주민 직원들에게 넘어오고 그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날들이 올 것이다.

NGO의 역할은 수혜자들을 무조건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끔 그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 교육도 멀지 않은 미래에는 주민 직원분들이 스스로 업무를 처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립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비록 아직 자립의 발판이라고 말하기에는 쑥스러운 정도의 시작점에 불과하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조그마한 시작이 주민직원분들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염원하는 바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일 수업에서는 어떤 내용을 가르칠 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한 것 보면 나도 컴퓨터 교육에 보람을 느끼고 책임감을 한 층 더 가지게 된 것 같다. 부디 이런 마음이 마지막 교육일 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