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3-[송상훈의 식물이야기] 꽃향 좋은 식물들1
정착성 생물인 식물들은 꽃을 피워 곤충의 도움을 받아 번식하는데 이를 화분매개라 한다. 꽃의 독특한 색과 향기로 곤충을 유인하여 꽃가루받이에 이용함을 말한다.
또한 타감작용(allelopathy)이라 하여 잎을 통해 독특한 생화학물질을 분비하여 다른 식물이 자기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며,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천적을 제거하기 위해 천적을 먹이로 삼는 우군을 초대하기도 한다. 화분매개든 타감작용이든 모두 향기와 관련 있다.
# 향기는 식물 생존전략의 첨병역할
향기는 정유(방향유)라는 휘발성 화학물질인데 식물은 화분매개용 향기를 뿜는 시간과 천적제거용 향기를 뿜는 시간을 구분한다.
화분매개용 향기라 하더라도 선호도는 각기 다를 것이다. 모든 곤충과 동물은 각기 다른 후각세포와 유전자를 갖추었기에 그렇다. 가령 아까시꽃처럼 벌과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향기가 있는가 하면 대표적인 밀원식물로 벌들이 즐겨 찾는 쉬나무 꽃향기는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천적제거용 향기의 경우, 사람에게는 기쁨을 주는 향내일 수 있지만 식물 입장에서는 사람 접근을 막으려고 뿜어내는 화학물질이다.
이렇듯 향기는 식물 생존전략의 첨병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특별히 번식이 절박하지 않고 천적의 침범도 없는 온실화초의 꽃과 잎은 향기가 옅다. 야생식물일지라도 매개곤충이 많고 비가 많은 여름에 피는 꽃들은 다른 계절의 꽃에 비해 향이 약한데 이 역시 필요성이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회부터 3회에 걸쳐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향 식물들을 살펴 보겠다. 잎의 향이 좋은 허브나 익히 잘 알고 있는 장미, 국화같은 식물은 제외하고, 주변에 자주 보지만 미쳐 인식하지 못했던, 또는 보기 드물었던 식물들 중에서도 주로 나무를 중심으로 살펴 보겠다. 그 중에는 지난 회 어디선가 설명한 식물들도 있을 것이지만 되도록 중복되지 않도록 소개한다.
# 꽃향기가 강해서 만리향으로 불리는 금복서
먼저, 물푸레나무과는 개나리를 제외하면 대체로 향기가 좋다. 화관은 4갈래고 꽃잎은 길쭉한 편이다.
목서를 살펴보자. 금목서, 은목서, 구골목서 모두 물푸레나무과이며 향기가 좋지만 여기서는 금목서 중심으로 소개한다. 금목서는 가을의 꽃향기가 매우 강해서 만리향으로 불리며 정원수로 사랑받고 있다. 은목서가 흰꽃을 피우는데 비해 황색의 자잘한 꽃을 피운다. 잎은 얇고 햇빛을 받으면 구불거리므로 잎이 두꺼운 은목서와 구별이 쉽다.
어떤 이들은 은목서를 만리향이라 부르고 금목서는 천리향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계화(桂花), 월계(月桂)로 부르는데 보통 가을의 향기로운 꽃에 계(桂)를 붙인다. 중국 최고 관광지 계림은 이 금목서가 많아서 붙인 이름인데 중국의 금목서는 4m 이상으로 크게 자란다.
일제시대에 윤국영 선생이 작사?작곡한 「반달」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의 계수나무는 박태기나무 잎을 닮고 낙엽 향기가 좋은 계수나무과의 계수나무나 계피를 만드는 육계나무와 관련 없다. 물론 월계관에 쓰였던 서양의 월계수나무도 ‘계’가 들어가지만 달나라의 계수나무는 아니다. 달나라의 계수나무는 금목서이다.
# 설화에 등장하는 달나라의 계수나무가 바로 금목서
계수나무와 항상 연계되는 달 토끼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인도 설화에 등장하고 심지어 토끼는 중앙아메리카에서도 설화로 등장한다. 권은주 불교아동학과 교수의 말을 빌리면 고대 인도인들은 달을 샤신 즉 회토(懷兎)라 했고, 중국에서는 옥토(玉兎), 한국에서는 옥토끼라고 부르는데, 이는 모두 달에 토끼가 있다는 회토사상에서 유래하였다.
참고로, 달에 토끼 모양이 보이는 곳은 지구 전체가 아니다. 동양권에서만 그러하다. 물론 같은 달무늬를 보고도 두꺼비나 게를 상상하기도 한다. 위치가 다른데도 중앙아메리카에서 달의 토기 전설이 내려오는 것은 그래서일까?
만리에 향이 퍼진다는 만리향 금목서가 있다면 백리향(꿀풀과)도 있다. 백리향은 꽃이 아니라 잎의 향기가 좋은 허브식물이다. 타임과 아주 흡사한 향을 풍긴다. 아쉽게도 꽃향기를 논하는 자리이기에 여기서는 간단한 소개로 대신한다.
높이 7~12cm에 불과한 작은 관목이며 산과 들, 건조지역에서도 굳건한 생명력을 자랑하기에 우리나라, 중국, 몽골, 시베리아에서도 군락을 자주 볼 수 있다. 백리향 변형으로 더 굵고 키와 잎과 꽃이 큰 섬백리향 역시 좋은 향을 뿜는다.
#한반도 고유종인 미선나무도 그윽한 향기 자랑
한반도 고유종이며 오로지 한 종류밖에 없는 미선나무(흰개나리. 물푸레나무과)의 향기도 그윽하며 상쾌하다. 개나리처럼 잎이 나기 전 먼저 꽃이 피는 장일식물(長日植物)이다. 즉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낮이 길어지고 밤이 짧아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높이 2m까지 자라며 잎끝은 뽀족하다. 열매는 둥근부채를 닮았는데 미선(尾扇)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흰개나리라고 불리지만 분홍색이 섞이기도 하는데 향기 없는 개나리나 은은한 조팝나무와는 달리 독특한 향이 있어 쉽게 구분된다.
미선나무를 물푸레나무과로 구분하지만 실제로는 올리브(Olive)나무과에 가깝다. 다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비슷한 종으로 물푸레나무가 있어 그 과로 불릴 뿐이다. 개나리, 진달래 등 겨울을 견디고 이른 봄에 개화하는 장일식물이 그러하듯 미선나무 역시 추위에 강한 편이다.
1997년 산림청이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 173호, 1998년에는 환경부가 ‘보호야생식물 49호’로 지정하였으며 충북 괴산과 영동, 진천, 전북 부안의 미선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 중이다. 꽃과 열매가 아름답고 향기도 좋아 무분별한 남획으로 멸종위기까지 맞았던 미선나무가 항암 및 미백기능까지 확인되면서 다시 멸종위기에 빠질까 걱정되지만 다행히 곳곳에 군락지가 발견되기도 하고 식물원에서 분취해 육성하기도 하며 조경수로도 인기가 높아 묘목생산이 많아져 한시름 덜었다.
# 이팝나무는 달콤한 향기 내뿜어
이팝나무(물푸레나무과)의 달콤하고 푸근한 향기도 빠지지 않는다. 꽃잎이 좁쌀처럼 둥글고 작아서 조밥을 연상시킨 조팝나무와 마찬가지로 쌀알처럼 길쭉한 꽃잎은 쌀밥을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쌀밥은 이씨(李氏)들만 먹는 밥이라 하여 이밥이라 불렀다. 남도에서는 입하(立夏) 무렵 피는 꽃이라 하여 입하나무라 불렀는데 꽃이 소담스레 잘 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팝나무는 강수량이 풍부하면 만개하고 부족하면 시들시들하는 식물이니 타당성 있는 이야기다.
며느리밥풀꽃이 그러하듯 가난한 시절의 식량과 관계된 식물 이야기는 모두 구슬프다. 그래서일까, 시인 김진경은 이렇게 노래했다.
이팝나무 꽃 피었다 – 김진경 –
촛불 연기처럼 꺼져가던 어머니 // “바-압?” / 마지막 눈길을 주며 / 또 밥을 차려주려 / 부스럭부스럭 윗몸을 일으키시다 // 마지막 밥 한 그릇 / 끝내 못 차려주고 떠나는 게 / 서러운지 /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신다 // 그 눈물 / 툭 떨어져 뿌리에 닿았는지 / 이팝나무 한 그루 / ???? 밥알같이 하얀 꽃 가득 피었다.
중국에서는 이팝나무를 육도목이라 부른다. 육도미 닮은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뜻인데, 육도미는 사자의 관에 넣어주는 저승길 식량이자 여비를 말한다. 이팝나무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하건 모두 쌀과 관련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조팝나무는 키 작고 분지가 많은 관목이지만 이팝나무는 높이 20m까지 자라는 교목으로 잎의 거치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며 쥐똥나무나 광나무처럼 검고 작은 콩 비슷한 열매를 맺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8개의 이팝나무는 전남 순창, 전북 고창, 전북 진안, 전남 광양, 경남 김해, 경남 양산, 경남 남해 등 영호남에 주로 있는데 이 역시 풍년을 기원하던 농경의식과 관련 있는 듯하다.
이팝나무는 가로수로도 식재되어 5월 도로변에 흰꽃을 가득 피운다. 서울시 가로수의 4.4%를 점하기에 자주 볼 수 있지만 구미시 ‘박정희로’에서도 가로수 이팝나무를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나무여서 기념수로 조성된 것인데,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 대행 때에도 이팝나무를 자주 심었고 대통령이 된 2013년에 청와대에 식목하기도 하였다. 박정희와 대립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남산에 이팝나무를 식재한 적 있다. 정치인으로서 철학과 행태 여부를 떠나 적어도 마음만은 국민들이 이밥 실컷 먹고 등 따스하기를 바랐었을 대통령들이었기를 애써 믿어본다.
# 쥐똥나무 향기는 곤충들에게도 인기 있어
열매가 쥐똥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불리는 쥐똥나무(남정목 男貞木. 물푸레나무과) 향기는 라일락 못지 않게 코끝을 자극한다. 짙은 향기는 곤충들에게도 인기 있는지 쉼 없이 방문한다. 잎 진 겨울에 달려 있는 열매는 사실 쥐똥 보다는 쥐눈이콩(약콩)을 더 닮았다.
매우 흡사한 나무로 광나무(여정목 女貞木. 물푸레나무과)가 있는데 주로 남부 바닷가 산기슭에서 자라기에 겨울에도 잎이 남는 상록수이며, 잎에 광택이 많고 잎의 크기도 쥐똥나무보다 크다.
공해에 강하고 내한성이 있어 도시에서는 주로 도로변과 울타리에 많이 심는데 높이 자라지 못하게 자주 전지하면서 가지가 많이 번지도록 관리한다. 반면 야생의 쥐똥나무는 가는 줄기로 개나리처럼 늘어지면서 4m 이상 높이 자라는데 엉성하고 볼 품 없다. 줄기 밑쪽은 잔가지가 변하여 가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참고로 회양목을 도장 재료로 쓰기에 도장나무라 부르는데 쥐똥나무도 도장 재료로 사용될 만큼 재질이 치밀하고 단단하다.
쥐똥나무 열매인 남정실에는 만니톤이라는 성분이 있어 남성 정력에 좋은 강장제로 이용하는데 시링긴이라는 성분도 있어 여성 성감을 높이기도 한다. 허약체질 개선과 당뇨, 이명치료에도 쓰였다. 광나무(물푸레나무과) 열매인 여정실은 노화방지, 간과 신장 강화, 암 억제, 이명치료, 근육강화에 이용하는데 특히 여성에게 좋다고 알려졌다.
# 미스킴라일락은 털개회나무를 개량한 것
털개회나무(정향나무. 물푸레나무과)는 산에서 가끔 만나는 꽃향 좋은 나무다. 몇 년 전 필자도 북한산 숨은벽 능선에서 향기의 주인을 좇다 바위 틈에서 홀로 우아하게 핀 털개회나무를 만난 적이 있다.
사실 털개회나무는 예전에는 흔한 나무였다.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던 1983년 무렵 북한산에는 많은 털개회나무가 자생하고 있었으며, 더 멀리 조선시대에는 여인들의 목욕재로 자주 활용되었다. 뿌리와 수피는 위장과 신장 활동을 강화하고 항산화와 항염성이 있다. 진통효과도 있어서 치통에 쓰였고 몸을 따뜻히 해준다.
그런 털개회나무를 1947년 엘윈 메더 (Elwin M. Meader)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발견하여 종자를 받아 미국에 가져가 미스킴라일락으로 개량하였는데, 잘 자라도 높이 2m 미만인 나무를 1m 미만으로 자라도록 개량하여 우리네 정원에 대거 상륙한 것이다. 그나마 미스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엘윈 메더의 작업에 도움을 준 한국인 타이피스트 성이 김씨였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라일락 종류에 대해 헛갈리는데 필자가 아는 대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보통 가정집 정원에서 만나는 비슷한 꽃나무는 라일락이다. 라일락은 키 2m 이상 자라고 잎끝은 뾰족하고 잎저는 둥글어서 모양이 키세스초콜릿 같고 잎에 광택이 있다.
털개회나무와 미스킴라일락의 잎은 거의 같은데 광택이 없고 잎저가 완만히 좁아지며 잎맥에 볼륨감이 느껴진다. 다만 미스킴라일각은 개량종이 그러하듯 희거나 보라색인 화서가 더 크고 향이 매우 강하다.
참고로 미스킴라일락과 팔리빈라일락(palibin lilac)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팔리빈라일락은 메이어리라일락(meyeri lilac)으로도 불리는데 만주종을 러시아학자 팔리빈이 작게 개량한 것으로 잎이 작고 둥굴고 오글거리며 꽃의 향기도 덜하고 키가 가장 작은 라일락이다.
야생에서 만나는 털개회나무와 사촌도 여럿 있다. 잎이 훨씬 크고 넓고 두터운 꽃개회나무는 해발 700~800m에 자라는데 화서가 바로 선다. 수수꽃다리(조선정향. 개똥나무. 헤이크라)는 석회암지대에 자생하는데 잎이 꽃개회나무 비슷하지만 털이 없고 무엇보다 화서가 고개 숙이고 화서의 꽃 하나 하나는 2cm 정도로 크다. 이들 모두 잊을 수 없는 향기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꽃향 좋은 식물들은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