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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자연스럽게 – 육심제 단원

땀내 나는 여름이 지나가고 추위가 찾아왔다. 역시나 몽골은 충분한 적응기 따위는 베풀지 않았다. 온 대지에 흰 수염이 자라나기 시작하였고 푸르던 나무들은 금방 또 누렇게 변했다. 더워 죽겠다고 물 달라고 발악을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춥다고 자러 간다고 인사도 없이 가버리는 모습이 꽤나 당황스럽지만 우리도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조림사업이 끝나니 공평하게 계약된 헤어짐 같아 깔끔하다. 내년 여름이면 또 다시 물 내놓으라며 최선을 다해 협박할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아쉬움도 미련도 남기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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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칠링 조림사업장. 몽골도 추워져 풀들이 누렇게 변했다.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조림사업은 끝이 난다. 물론 겨울에도 주민 자치 사업을 계속 진행하지만 우리의 가장 주된 사업은 나무들이 겨울잠을 자러 감에 따라 함께 휴식기를 갖는다. 여기서 보낸 시간과 앞으로 남은 시간을 계산했을 때 정확히 지금 나는 말년 병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내 마음에 여유가 좀 더 생겼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전혀 없다. 내 의지와 상관이 있었던 없었던 하루하루가 한결같았고 정말 알찼다. 업무에 있어선 공허함을 느껴본 적이 없던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최근에 배가 많이 아팠는데 한국에 추석이 찾아왔었기 때문이다. 그냥 추석이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역대 최장 연휴였다. 여기서 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추석도 존재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한국에 있는 모든 이들의 입은 끊임없이 맛난 음식으로 채워졌을 것이고 무시무시한 연휴로 인해 후유증도 굉장히 컸을 것이다. 썩 개운하지 않은 기분으로 숙소를 나서는 순간 누나에게 영상통화가 걸려 왔고 전화를 받자마자 화면에는 이 곳에서는 구경도 못 할 음식들이 펼쳐졌다. 다행히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파 수상함을 느끼고 어젯밤에 구충제를 먹었는데 효과가 있는지 배가 고프진 않았다.
사실 한국의 추석을 충실하게 부러워할 여유는 없었다. 우리도 한국의 추석만큼이나 큰 이벤트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봄에 식재를 한 것처럼 가을에도 가을 식재를 진행한다. 5월 3일이 몽골에서의 첫 번째 식목일이었고 10월4일은 두 번째 식목일이 되었다. 흥미롭게도 실제로 몽골에는 식목일이 두 번 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나무를 심었을지는 알 길이 없지만 우리의 가을 식재를 응원해주는 느낌에 외롭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가을 식재 수량은 여름 식재 수량에 비해서 적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올해 다신칠링의 가을 식재 수량은 봄 식재 수량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식재를 할 땐 정말 전투를 치루는 것 같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생각처럼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아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아직 내 몸은 봄날의 전투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도 한 번 겪었던 전투라서 걱정이 크진 않았다. 주민 분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계시고 어떤 변수가 날 당황시킬지도 이미 알고 예측했기 때문에 적어도 받게 될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지 빨리 끝내버리고 속 시원하게 사업을 마무리 짓고 싶은 생각이 매우 컸기 때문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9월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10월이 되면서 항상 보던 장면이 약간 낯설게 느껴지고 냄새도 달라진 것 같다. 사업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달라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맹세코 일이 하기 싫었던 적은 없는데 마음이 들뜬 것 같다. 신기하게도 생존을 위해 먹다보니 입에 익숙해져 누구보다 잘 먹게 된 몽골 식단이 10월이 되니 약간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는 아니라 하지만 내 마음은 사업이 끝난다는 생각에 꽤나 긴장이 풀렸나보다. 사실 10월이 평범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내 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홍보를 아주 약간 했는데 정말로 생일을 챙겨주셨다. 일을 끝내고 사업 마무리와 내 생일을 축하하는 우리만의 파티가 열렸는데 완벽한 깜짝 파티였다. 여러 가지 선물도 받았는데 델을 맞춰주실 줄을 꿈에도 몰랐다. 절대 잊지 못 할 선물이다. 주민 분들의 사랑에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길게 느낄 여유는 없었다. 우리만의 생일파티가 끝나자마자 우린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나무가 우리를 반겼고 그 모든 나무들을 내 생일을 기념하는 기념식수라고 심고 또 심었다. 재밌게도 생일 다음날이 10월 둘째 주 토요일이자 몽골의 가을 식목일이었다. 평소에도 생일을 거하게 챙기지는 않지만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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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더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식재를 하고 있다.


분들의 축하가 없었다면 나무들한테 모든 관심을 빼앗겼을 것이다. 아무튼 슬슬 긴장이 풀리고 있는 건 맞지만 끝이 안 좋으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에 먹칠을 하는 것이니 신속정확하고 아름다운 끝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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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식재를 위해 미리 구덩이 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눈에 익은 푸른 잎들이 아니라 하얗게 얼어붙은 조금은 어색한 잎들이 나를 반긴다. 우리는 푸른 잎을 보기를 좋아하는, 좋아해야하는 사람들이기에 나무들이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자연이라는 한 단어에 그 동안의 땀방울들마저 빛을 잃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동안 흘린 땀방울들의 가치를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눈에는 잎이 얼어붙고 겨울잠을 자러 분주하게 떠나는 나무들의 모습이 예쁘게만 보인다. 시원섭섭하게도 이 나무들을 감히 ‘나의 나무’라고 건방지게 부를 수 있는 날은 사실상 끝났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 나무들의 관심을 끌 수는 없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이 나무들 또한 나에게서 이전과 같은 관심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우리는 나무들이 혼자 힘으로 힘들어 할 때 잠깐 도와준 것이고 나무들은 내년에 더 잘 자라보겠다며 다짐을 하고 잠을 자러 간다. 참 기분이 좋다. 나무들도, 나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느낌이 엄청난 것을 얻은 것 마냥 기분이 알차다. 자연에 조그만 영향력이라도 끼쳐보고자 땀 흘리고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우린 아주 조금씩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기까진 이미 알고 있었고 눈에 보였다. 지금은 한 가지 더 덧붙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끼치는 영향력의 본질은 자연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극복하는 것도 아니고 이용하는 것은 더욱 아니며 단지 자연이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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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날씨가 많이 추워 잎들이 하얗게 얼어붙은 모습을 볼 수 있다.(위  포플러, 중간 비술나무, 아래 우흐린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