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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동화 셋 – 김성현 단원

첫 번째 이야기 –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

굉장히 모순적인 문장 하나로 시작할까 한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이다. 2년째 어른으로 살고 있는 요즘, 그래도 나는 여전히 두려움을 두려워한다. 한참 책읽기 열풍이 불었을 때, 많은 책들은 말했다.
“두려워 하지마라, 도전해라, 일단 질러라 적어도 후회는 없을 테니, 나중에 보면 생각만큼 두려운 일도 아닐 거다…..”
사람들은 말했고, 말하고, 앞으로도 말할 거다. 두려움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두려워했던 모든 일들이 우습게 느껴질 것임으로, 지금 두려워하면서 도전하지 않는 다면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말이다.
과연, 어디까지 이 말을 믿어야 할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져서 더 이상 두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느낄 공포는? 그건 시간이 지나 더 이상 ‘무섭지 않게’된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두 가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분명히 말이다.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 언젠가 내게 또 같은 일이 닥쳐와도 코웃음 치며 여유롭게 커피나 마실 거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후자는, 그러니까 잊어버리는 건, 또 다시 그런 일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것이 100번째 방문이었다고 해도 난 절대 문을 열어줄 마음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두려움을 두려워한다고 말이다. 그건 어쩌면 아직 내가 어른이 된지 2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I는 겁이 없다. 어지간한 일에는 간이 부어 있어서 그런지 크게 겁낼 것도 없고 크게 두려울 것도 없었다. 살아보니 전부 비슷하네 했을 뿐. 그런데 요즘 호박마차는 좀……. 두려워지려한다.

L에게 있어서 많은 것은 두려움이다. 그 중에서도 너무 튀는 것, 남들과 섞이지 못하는 아주 독특한 무언가가 되는 것은 정말 시도하고 싶지 않다.

E는 생각했다. 두려움이란? 음……. 글쎄…….. 뭐가 두려움일까?……… E에게도 두려움은 있다. 다만 그걸 드러내서 듣는 이가 더 두려워하는 걸 바라지 않을 뿐.

N은 요새 사람과의 관계가 두렵다. 보고 싶지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 보게 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본인의 본성을 감출 수 있는 걸까하는 두려움을 가져왔다.

H는 소문이란 게 두렵다. 자신의 이야기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퍼져서 피해를 본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H는 행여나 자신도 소문의 희생자가 될까봐 몸을 사리고 있는 중이다.

O는 타인의 말을 좀 신경 쓰는 타입이다. o가 자신의 말을 할 때, 모두가 비웃는 거 같다면,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해도 사실 좀 두려워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보려고 애를 쓴다.

D는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고, 누구에게나 잘 맞춰주는 사람이다. 남들은 이런 모습을 칭찬만 하지만, 사실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혼자만의 두려움 때문에 생긴 버릇이라는 걸 남들이 영원히 몰랐으면 한다.

A는 자신이 가진 능력들, 초심, 마음가짐,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변하는 걸 두려워한다. 내면에 있는 것들이 변하지 않게 가꾸는 건 수 없이 노력하면 될 일이지만, 타인을 변하지 않게 하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

P는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무언가를 도출한다. P에게 퇴화, 즉 도태란 곧 두려움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꾸준히 조금이라도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을 삶의 지표로 생각하려는 중이다.

두 번째 이야기 – 입과 눈이 두려워 갈 길을 잃을 때

‘여기서 나가는 길을 가르쳐줄래?/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면?/ 그럼 아무데나 가면 되지’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지 벌써 반년이 지나간다. 그동안 많아 울고 웃고 화내고 사랑하면서 참 치열하게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하는 지금 나는 제자리에 주저 앉아있다. 사방은, 고요하다. 아니, 사실은 시끄럽다.
“누가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다던데…….”
“어머 정말? 참! 나도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대박이다~ 어쩐지 그런 것 같더라고…….”
이 중에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이곳은 생각의 나라다. 이곳에서는 비밀이 없다. 모두의 생각이 머리위에 글자로 떠올라 보여 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감추려 해도, 생각이 눈으로 그냥 보여져버리니,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그래서 일까? 이곳에서 소문은 무척이나 빠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중이다. 최대한 어떠한 생각도 안하려고 노력중이다. 당연히 가야할 길을 잃은 지도 오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내 이야기도 아닌데 그들의 소문을 듣고 있자면, 내 자신이 조각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안보고 안 들었으면…….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까만 토끼 한 마리가 빠르게 뛰어왔다. 내가 찾는 토끼는 아니었다. 토끼는 내게 다가와서 자신의 이름표를 들썩거렸다.

“네 이름을 봐달라는 거야? 하지만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안하기로 했어. 그냥 내 스스로 정했단 말이야. 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말았거든”

그러나 까만 토끼는 계속해서 이름표를 달싹거렸다.

“끙…… 난 오늘 아무것도 안하려 했어. 그래도 이름표를 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음, 어디보자. 이름은 두려움, 출몰지역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언제나…… 추..신…… 당신이 원하던 원치 않던 당신은 이 토끼를 만날 겁니다. 그러니 두려움에 속아 소중한 걸 잃지 마시길.”

그 순간 두려움과 눈이 마주 쳤다. 그 녀석은 막 내 주머니 안에 있던 사랑을 꺼내가려던 참이었다. 내가 이름표에 눈이 팔린 사이 녀석은 내 사랑을 가져가려던 것 이었다! 이런 솜씨 좋은 소매치기 같으니……. 두려움을 째려보자, 녀석은 매우 민망한 얼굴로 도로 쓱- 내 주머니에 사랑을 돌려놓았다. 그러더니 민망한 듯 씨익 웃어보였다. 잠깐 녀석을 흠씬 두들겨 줄까 고민하다가 나는 그냥 녀석을 놔주었다. 그래도 두려움 덕에 얻은 교훈이란게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원하든 원치 않던 ‘두려움’을 만나게 될 거라는 말. 내가 어떻게 행동하던 상관없이. 어쩌면 내가 갈 길을 잃은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소문을 두려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사이에 무언가 내게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이 토끼를 만날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이다. 기왕 쓸 거면 내가 어디로 가야되는지도 좀 알려주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덕분에 이제 여기에 주저앉아만 있는 게 멍청한 일이라는 건 알겠어. 벗어나야지. 이곳에 벗어나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는 거야. 발걸음 가는 대로 그냥 걸어보지 뭐.
걸음을 때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만나는 녀석의 이름은 두려움이라네. 그 녀석은 언제나 빈손으로 와서 무언가를 잔뜩 훔쳐 달아난다네. 그러나 만남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서 누구나 녀석를 만나게 되지. 중요한 것은 녀석에게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