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1-[송상훈의 식물이야기] 멋진 수피 식물들2

벽오동(碧梧桐. 벽오동과)은 높이 15m까지 자라는 활엽수다. 한자 碧은 벽계수가 그렇듯이 푸르다는 뜻이기에 푸른 줄기가 쉽게 이해된다. 줄기는 직경 40cm까지 굵어진다. 열매는 단풍나무 비슷하게, 또는 콩처럼 맺는데 열매를 감싼 껍질이 있고 속에 조그만 열매가 있다.
잎이 오동나무처럼 넓어서 오동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현삼과인 오동과 다르게 깊게 갈라진 잎몸을 가졌다. 오동나무는 분냄새가 진하고 화려한 보라빛 종모양 꽃이 여럿 뭉쳐 피지만 벽오동은 볼 품 없는 자잘한 황록색 꽃이 모여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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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동 나무에 봉황이 집을 짓고 대나무 열매만 먹었다는 전설이 있다. 봉황이 마지막 출현한 곳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아버지의 무덤이라 한다. 음률을 탈 줄 알고 노래도 불렀다는 상서로운 새이다. 상상의 새 봉황의 모습은 이렇게 그려진다. 목은 뱀을 닮고 가슴은 기러기를, 가슴 밑은 사슴을, 등은 거북을, 꼬리는 물고기를, 대가리는 제비를, 부리는 닭을 닮았다. 아마도 전지전능하고 만물을 담은 영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조선에서는 성군의 의미로 그려졌다. 그래서 뜻을 가진 옛 선비들은 벽오동을 심고 봉황이 깃들기를 기다렸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벽오동 심은 뜻은 – 작자 미상 –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 가지에 걸렸에라

이 글은 이후 이미자의 노래 구절과 김도향의 노래 구절에 인용되었다. 벽오동은 여러 민요에서도 나온다. ‘군밤타령’의 구절 중에 ‘봉이 난다 봉이 날아 벽오동 속으로 / 어허 얼싸 봉황이 난다’는 구절이 있으며, ‘경복궁 타령’ 중에서 ‘단산봉황은 죽실에 물고 / 벽오동 속으로 넘나든다’는 구절이 있다.

벽오동이 이렇게 멋진 기대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상전의 여식을 사모했던 머슴이 시집 간 아가씨를 그리워하다 죽자 무덤가에 솟아난 나무가 벽오동인데 해마다 가을이면 사랑과 눈물을 담은 열매를 아가씨에게 날려 보낸다는 슬픈 연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남아를 낳으면 소나무를 심고 여아를 낳으면 오동을 심었다. 상전은 여식을 낳으면서 오동나무를 심었을까? 그 오동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시집 보냈을까? 그 오동나무에 가슴 사무친 머슴은 오동나무를 원망하며 다른 오동인 벽오동으로 환생할 것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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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포부와 그리움을 종횡하는 벽오동과 달리 오동은 대체로 그리움이나 서러움을 상징하는 소재로 활용된 경우가 많다. ‘오동추야(오동잎 떨어지는 가을밤) 달이 밝아???’ ‘오동추야 달 밝은 밤에???’ 등 오동추야로 시작되는 시조나 노래는 대체로 그러하다.

벽오동은 추위와 공해에도 강하고 잘 자라는 속성수이다. 잎은 고혈압과 류머티즘에 쓰였고, 열매는 위장병에 쓰였으며, 수피에 끈적한 진은 생리통, 요통, 타박상 등에 쓰였다. 열을 내리므로 종기에도 쓰였으며, 세간에는 정력강화제로도 쓰였다고 한다.

 

# 벽오동과 비슷한 수피를 가진 벌나무
벽오동과 비슷한 느낌의 수피를 가진 식물이 벌나무(산청목. 단풍나무과)다. 어린 나무의 수피는 초록바탕에 흰 줄이 있으나 점차 청회색 바탕에 검은 줄로 변해간다. 벌이 많이 몰려들어 벌집을 짓는 밀원식물이기에 벌나무란 이름을 얻었으며 한자로는 봉목(蜂木)이라 한다.
600m 이상 고지대에서 드물게 자생하는데 푸른 산기운이 줄기에 가득하다 하여 산청나무라는 별칭을 얻었다.

양지와 음지 어디서나 잘 자라지만 직사광선을 싫어한다. 잎은 크고 넓으며 줄기는 여리다. 어린 잎은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이 살짝 데쳐서 쌈으로, 나물로 식용 가능하다. 헛개나무처럼 간 기능 회복 좋고 피를 맑게 하며 지혈 효과가 있고 당뇨에도 좋다 하여 재배농가가 늘어나고 있는데, 가지와 수피에 높은 약성이 있다.

날개 있는 열매를 맺으므로 쉽게 단풍나무과임을 알 수 있으나 잎으로 보면 노끈나무라 불리는 개오동과도 비슷한데 노끈나무보다 잎이 작고 광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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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나무의 효능을 극찬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부작용을 겪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벌나무와 산겨릅나무를 같은 식물이라고 하지만 옛날 약초꾼들은 둘을 분명히 구별하여 벌나무만을 약초로 사용했다.
약초꾼의 말에 따르면 벌나무는 줄기에 푸른 빛이 강하고 산겨릅나무는 붉은 빛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그 둘을 구별짓는 이미지를 첨부하였다.

 

# 산겨릅나무를 벌나무로 잘못 알기도
벌나무와 산겨릅나무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으니 산겨릅나무를 벌나무로 잘못 알고 약용했다면 효염 보다는 부작용이 강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같은 나무라도 상지와 하지의 색이 틀린 경우가 많아서 육안으로 구별하기란 쉽지 않고, 둘이 같은 나무인지 다른 나무인지도 아직 분명치 않으므로 함부로 복용하지 않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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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고야의정서(the Nagoya Protocol on Access to Genetic Resources and the Fair and Equitable Sharing of Benefits Arising from their Utilization to the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가 시행되면서 우리나라 화장품업계가 초비상이다. ‘나고야의정서’는 생물다양성 보전 및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생물 유전자원 이용 때 발생하는 이익을 제공국과 이용국이 공정하게 공유하는 국제협약이다. 1993년 12월 생물다양성협약 발효된 이후 2010년에 생물다양성협약 당자국 총회에서 ‘나고야의정서’를 채택하고, 2014년 10월 발효되었다. 우리나라는 지금껏 미적거리다가 2017년 3월에야 비준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으며, 5월에 비준하였다. 이에 따라 하위법령 입법예고를 마치고, 며칠 전인 7월 17일 98번째 ‘나고야의정서’ 당사국이 되었다.
당장은 화장품 원료의 7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향후 생의학업계에 이르기까지 그 여파는 더욱 확장될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해외유전자원의 경우 중국에게 57.5%나 의존한다고 한다.
인류 공동 자원이었던 생물이 선진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생물다양성보호라는 이름을 앞에 걸고 국가 이익을 위한 자원전쟁 수단으로, 이른바 종(種)의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생물유전자원을 보호한다는 것은 생물주권 유지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기에 국가 차원에서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제와 미군정을 거치면서 많은 한반도 고유종이 일본식, 미국식 이름으로 등재되고 이들 식물로 인정되면서 역수입 경험(예를 들면, 구상나무, 털개회나무 개량인 미스킴라일락)을 갖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벌나무의 경우도 민간연구에 머물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효능을 확인하고, 산겨릅나무와 동일한 나무인지 아닌지도 확정해야 하며, 그 사용처를 다양화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 전세계 가로수의 대표 수종은 버짐나무
버즘나무(버즘나무과)도 우리가 자주 보는 나무이면서 제법 근사한 수피를 가진 식물이다. 보통 플라타너스(Platanus)라고 부리는데 이는 그리스어 platys(넓다)가 반영된 것이다. 잎이 넓은 나무라는 뜻이다. 서양이 잎에 주목하였지만 우리는 줄기에 주목하여 버즘나무라 이름하였으나 배 곪고 가난한 시절 얼굴에 번지던 버짐의 일상화를 반영한 듯하여 약간 씁쓸하다. 이때만 해도 북한의 경제상황이 낫던 것일까? 북에서는 방울처럼 열리는 열매에 주목하여 방울나무라 한다.

버즘나무는 전에 ‘가로수의 조건과 애환’에서 다루었듯이 피나무, 느릅나무, 칠엽수(마로니에)와 함께 전세계 가로수의 대표이다. 추위와 공해에도 강하고 빨리 자라며 키도 잎도 크며, 상당량의 수분을 뿜어내어 도시의 열섬현상을 줄여주기에 크게 사랑 받았으나 도리어 큰 키와 큰 잎이 전선줄에 엉키고 간판을 가린다 하여 수난 받고, 방울열매에서 나오는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그릇된 정보까지 퍼지면서 이후 많이 줄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친근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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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기독교에 기반한 실존적 내면세계를 탐구했던 김현승의 시를 마주하면 평생 가까이 보아온 플라타너스를 인간처럼 꿈을 가진 대상으로, 생명 동일체로 본 듯하여 마음이 따뜻해 진다.

플라타너스 – 김현승 –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 플라타너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 플라타너스 /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 플라타너스 /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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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그러나 김현승이 영감을 얻었던 플라타너스는 2015년 광주 남구청에 의해 벌목되었다. 해당 토지가 구청장 개인소유였으니 딱히 무어라 말 할 바 모르겠으나 플라타너스를 인격으로 마주하던 시인의 시상도 함께 벌목된 듯하여 가슴 아리다.

플라타너스는 크게 3종이 있다. 히말라야와 서아시아, 서유럽에 많은 버즘나무(플라타너스), 서양버즘나무(미국플라타너스), 두 종의 교합인 단풍버즘나무(런던플라타너스)가 그것이다.
버즘나무 잎은 세로 폭이 가로 폭보다 길지만 서양버즘나무는 가로 폭이 세로 폭보다 길다. 버짐나무 잎은 손가락 갈라지듯이 잎몸이 깊게 갈라지지만 서양버즘나무는 갈라짐 깊이가 얕다. 열매는 꽃 하나에 여럿이 줄지어 달리지만 양버즘은 꽃 하나에 한개 혹은 가끔 두개 달린다. 단풍버즘나무 잎은 둘을 섞어 놓은듯한 균형을 이루고 열매는 버즘나무처럼 여럿이 줄지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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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즘나무나 단풍버즘나무는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들다. 가끔 가로수 중에 비슷한 녀석이 있어 유심히 관찰하면 역시 서양버즘나무였다. 잎은 변이가 심해서 변별력이 적고 수피의 색깔과 거침 정도로 판별함이 옳은데 버즘나무 수피는 황색이고 매우 거친 느낌이며 서양버즘나무 수피는 때론 작은 비늘을 단 듯하기도 하고 때론 미끈한 수피를 드러내며 겉옷을 벗기도 한다.

 

# 전설과도 같은 많은 이야기를 품은 자작나무
부드럽고 아름다운 수피로 자작나무(자작나무과)를 빼놓을 수 없다. 한 겨울 허연 몸뚱이를 드러낸 체 꼿꼿이 한파를 견디며 높이 20m까지 치솟는 나무인데, 천사가 불쌍히 여겨 비단같이 고은 옷을 입혀 주었다는 전설이 깃든 나무지만 과학적으로는 눈빛(설광)의 반사를 견디기 위해 흰 수피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림청이 138ha에 70만 그루 이상을 조성한 인제 응봉산 자락 원대리와, 역시 응봉산 자락에 100만 그루가 밀집한 수산리 사유림에서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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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생소하겠지만 이와 비슷한 나무로 거제수나무가 있다. 자작나무는 거제수나무와 달리 백두 이남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거제수나무 겉 수피는 붉은 색이고 속 수피는 백색이다. 자작나무 수피는 모두 백색이다. 거제수나무 잎은 긴반타원형이지만 자작나무 잎은 삼각형에 가깝다. 자작나무 열매는 개암나무 열매처럼 길죽하지만 거제수나무 열매는 솔방울 비슷하다.
사시나무와 은백양의 교합종인 은사시나무(현사시나무)와도 구별하는데, 수피색은 비슷하지만 자작나무는 눈썹모양 무늬가 있고 은사시나무는 마름모꼴 무늬가 있다. 은사시나무 잎 뒷면은 백색이어서 쉽게 구분되는데 박정희 전대통령에 의해 전국에 빠르게 보급된 속성수이다.
은사시나무는 속성수인 만큼 재질이 무르지만 자작나무는 추위를 견디며 성장하는 데서 짐작하듯 재질이 치밀하고 단단해서 조각용으로도 활용되고 벌레에 의한 훼손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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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에는 여러 이야기가 뒤따른다. 장작에 불을 붙이면 자작자작 타오르기에 자작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는데 심지에 비에 젖은 수피에도 불이 잘 붙는다.
한편, 유럽에서는 수피에 편지를 쓰면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는 매파나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녀가 결혼할 때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이를 자작나무 화(樺)와 연계하기도 한다. 즉 신방에 들면 자작나무를 돌돌 말아 붙인 불을 피웠다고 하는데 그을음 없는 맑은 불이 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자각나무의 전설은 이런 낭만과는 달리 한과 은둔을 상징한다. 몽골 징기스칸이 유럽 정벌에 나섰을 때 미움을 받아 왕세자가 되지 못한 유럽의 왕자가 몽골에 협력하였고, 전쟁 후 이를 알게 된 유럽 왕궁이 왕자를 체포하려 수소문 하였으며, 왕자는 북쪽으로 도주하다가 흰 명주로 몸을 둘둘 말고 큰 구덩이로 투신하여 삶을 마감하였는데 여기서 흰 수피를 벗는 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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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탈 때 흙이 튀어 옷에 붙지 않도록 가죽이나 헝겁을 안장 양쪽에 늘어뜨리는데 이를 장니(障泥)라고 한다. 장니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가 자작나무 수피를 붙이고 또 붙여서 완성하는 것이다. 자작나무 장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백마를 그린 것이 경주 155호고분 천마총(天馬塚)에서 발견된 천마도다. 문득, 징기스칸이 유럽을 정복할 때 이런 장니를 동반했을까? 궁금해진다.

자작나무는 훌륭한 식품도 선사한다. 핀란드에서는 자작나무에서 자일로스를 추출하여 자일리톨을 만든다. 감미도가 설탕의 40% 밖에 되지 않으므로 당뇨 환자에게도 좋고 충치 예방에도 좋다. 자작나무 수액에는 인삼에 있는 사포닌까지 풍부하다고 하며 암에 특효하다는 차가버섯도 자작나무에서만 자란다.

백두산 오르는 길에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서로 잘 어울린 숲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화감독은 자작나무에서 영화적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보았던 타이가지대에 펼쳐진 엄청난 자작나무 숲이 눈앞에 선하다. ‘자작나무’라는 폴란드 영화도 있었고, 최신 영화로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 역할을 했던 소녀들의 삶을 그린 영화 ‘눈길’도 떠오른다. ‘눈길’에서 소녀들이 탈출하여 들어선 숲 장면은 인제 응봉산 자락의 자작나무 숲이다. 그 곳에 가고 싶다!

멋진 수피 식물들은 다음 회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