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1-[생태사진작가 김연수의 바람그물⑨] 물고기사냥의 귀신 물수리
송어나 숭어 양식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새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사람 손가락 크기보다 작은 치어일 때는 물총새가 눈엣가시이겠지만, 물고기가 상품성 있는 크기로 성장했을 때는 단연 물수리이다.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소리도 없이 양식장의 100배가 넘는 하늘을 슬슬 배회하다가 물고기가 수면 위로 부상하려는 순간, 홱 낚아챈다. 물수리는 물고기가 하늘의 움직이는 그림자를 전혀 느낄 수 없도록 멀리 비스듬한 위치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때를 놓치지 않고 그야말로 쏜 살 보다도 빠르게 내리꽂는다. 날개도 활 모양으로 구부려서 공기저항을 최소화한다. 멀리서 물 속의 움직이는 물고기들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도 발달했다. 대부분의 수리류처럼 물수리 눈도 멀리 있는 물체를 클로즈업해서 볼 수 있는 망원렌즈와 가까이 다가와서는 광각렌즈로 바뀌는 줌 기능을 가지고 있다. 눈에 일종의 필터 같은 이중막이 있어 가능하다.
물수리가 이동하는 철이면, 전남 신안군의 한 숭어양식장에 물수리 서너 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난다. 당연히 하루에 10마리도 넘는 숭어들이 물수리의 제물로 사라진다. 그 양식장 사장님은 숭어 값으로 따지면 매일 10만 원 이상을 물수리에게 퍼주는 셈이지만, 그렇다고 물수리를 싫어하거나 성토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그저 녀석들과 더불어 먹고 산다며, 어린 시절 강 하구에서 숭어가 올라오는 물길 따라 찾아오던 물수리를 그리워한다.
물수리는 전세계에 단 1종밖에 없다. 북아프리카,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에 폭넓게 분포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물수리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한때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서남해안의 가파른 절벽에서 소수가 번식했지만, 곳곳이 개발된 지금에 와서는 물수리의 번식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가을철 러시아에서 월동하러 남하한 녀석들이 동서해안의 하천을 따라 멀리 제주도까지 이동하면서 탐조객들에게 이따금씩 포착되는 것이 전부다. 다만 제주도 성산읍 하도리 양식장에서는 비교적 긴 기간인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녀석들을 관찰할 수가 있다. 물수리의 이동경로 가운데 하나인 제주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먹이를 포획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해안가나 하천 하류에서 물수리가 눈에 잘 띄는 까닭은 바다에서 회귀하는 숭어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수면 위로 부상할 때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지만, 몸 전체가 물 속으로 ‘첨벙’ 빠질 때도 있다. 대개는 두세 차례 시도하면 먹이를 낚아채는 데 성공하는 편이나, 경험이 없는 어린 물수리는 물고기가 물 위로 부상하는 타임과 자신의 비행속도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여러 차례 실패한다. 이렇게 먹잇감인 물고기를 겨냥하여 내리꽂았다가 물 속에서 창공으로 비상해서는 어김없이 온몸을 ‘부르르’ 떨어 깃털에 스며든 물기를 제거한다.
물고기를 낚아채서 비행할 때는 공기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유선형의 물고기 머리가 앞쪽으로 가도록 조정한다. 그리고는 근처 갯벌이나 모래톱에 내려앉아 잡은 물고기를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사냥한 지점에서 멀리 이동하여 방해꾼이 없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해치운다.
해안가 같은 곳에서는 무리 지어 서식하는 갈매기들이 비린내를 맡고 달려들어 귀찮게 하기 일쑤이다. 갈매기는 떼를 지어 쫓아가다가 일정한 구역을 벗어나면 대개 되돌아가 버리지만, 경험이 없는 물수리의 경우에는 떼거리로 달려드는 갈매기들에게 놀라 그만 잡아온 물고기를 떨어트려 버리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물론 이렇게 해서 떨어진 물고기는 갈매기들의 차지가 된다. 이따금씩 까치나 까마귀도 먹이를 잡은 물수리를 귀찮게 한다. 자기네 영역을 침범했다고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물수리는 호젓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잡아온 물고기를 깨끗이 먹어 치우지만, 먹다가 행여 실수로 땅바닥에 떨어트리면 그것을 주워 먹지 않고 다시 사냥을 떠난다.
김연수 생태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