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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우린 누군가를 만나며 살아간다 – 김찬미 단원

몽골의 겨울은 매우 길고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비록 아직 제대로 된 겨울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이었다면 한창 꽃이 피어 날 3월 중순에 몽골에 입국한 우리를 반겼던 차가운 바람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겨울이 길고 추운만큼, 마치 선물 같은 여름이 있다. 처음 몽골에 입국했던 때가 겨울이기에, 우리는 기대하고 왔던 하늘과 초원을 볼 수 없어 아쉬워했었다. 그런 우리에게 몽골 지부의 간사님들은 여름이 되면 기대하던 것과 같은 하늘과 초원을 볼 수 있다며, UB 사람들은 여름 한 철을 보고 오타(몽골의 매연)가 가득한 겨울을 버틴다고 얘기해주셨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눈으로 목도한 몽골의 여름은 말 그대로 ‘선물’이라는 표현이 정말 적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르른 지평선 위로 낮게 깔린 하늘은 여름 내내 보아도 볼 때마다 감탄이 나왔으니까.

몽골의 여름을 ‘선물’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만큼 아름다워서이기도 하지만 여름이 매우 짧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8월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전기장판을 틀지 않으면 추워서 잠을 깰 정도이니까. 그렇기에 몽골로 여행을 오는, 혹은 몽골의 모습을 보고 싶어 방문을 하는 사람들은 그 짧은 여름을 파고들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몽골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짧은 여름 한 철 안에 외지에서 오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8월은 내게 있어 그러한 수많은 만남의 시간이었다.

#1.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여름의 몽골에는 수많은 단기 봉사단들이 오곤 한다. 올해 우리 학교에서도 몽골로 단기 봉사를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몇 달 전부터 들떠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롭게 일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어서 같은 몽골 하늘 아래 있지만 만나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일정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었고 이에 학과 교수님들,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매우 반갑고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얻어가는 시간이기도 했었지만, 그보다도 이들에게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푸른 아시아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 일에 대해 나 스스로가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내가 이 곳에 처음 지원했었을 때의 마음, 기대, 생각들을 정말 새삼스레 되짚어 보게 되었다. 현실에 치이느라 또 다시 잊고 있었던 처음의 마음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어 감사했다. 또한 이 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지면서 내가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될 때가 종종 있었는데, ‘해외장기봉사’에 대해 외부인의 시선에서 다시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꿈꾸었던 ‘해외장기봉사’라는 목표를 막상 실현하고 나니 오히려 목표 하나가 사라져서 당황스럽기도 했었는데 외부인의 시선, 다시 말해 목표가 목표인 채로 남아있던 과거의 나의 모습으로 다시금 나를 바라 볼 수 있었다. 그 때의 내가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 때의 나는 왜 이걸 하고 싶어 했나. 이걸 통해서 무얼 알고 싶었나. 나는 그 날 밤을 통해 또 이렇게 고민하며 한 걸음을 뗄 힘을 얻어 갈 수 있었다.

학교에서 봉사단이 온다는 소식이 겨우 몇 달 전부터 들떠있던 것이었다면, 파견되기도 전부터 들떠있었던 소식도 있었다. 한국에서 우리에게 몽골어를 가르쳐주셨던 어요카 선생님이 언니 결혼식을 위해 몽골에 입국하신다는 소식이었다. 원래 파견 전의 우리의 계획은 결혼식에 참여해서 같이 축하해드리는 거였지만, 지방에서 근무하는 푸른아시아 단원의 특성상 다 같이 결혼식 시간에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에 다 같이 모이는 것이 무산될 뻔 했지만, 어떻게든 극적으로 다들 시간을 맞춰서 모두의 얼굴을 보고 갈 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은 우리의 모습을 보며 살이 많이 빠지고 얼굴이 상했다며 걱정해주기도 하셨고, 한국에서 배웠던 표준어 몽골어와는 달리 현지에서 배운 몽골어를 사용하는 우리 모습에 놀라기도 하셨다. 새삼 국내교육 때 처음 만나 몽골어를 배우면서 힘들어하던 단원들의 첫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편해지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 과거의 추억에 젖게 되는 밤이었다. 또한 어요카 선생님과 헤어진 후 전체 단원들끼리 다 같이 밤에 모여 수다를 떨 때는 마치 3월 중순의 현지교육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조림사업 파견 전 이상에 젖어있던 그 때와 현실을 맛본 지금의 대화 내용은 많이 달랐지만 말이다. 우리는 서로 같은 행복을 느끼기도 했고, 같은 좌절을 느끼기도 했고, 같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비록 좌절을 느끼고 고민을 하더라도 감사했던 것은, 그것을 ‘같이’ 느껴 줄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었다. 각 조림지별로 상황이 다르고, 겪고 있는 고민들은 다르지만 그 고민에 대해 얘기했을 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이해한다는 점에서, 함께 이해해주고 겪어주는 단원들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밤이었다.

#2. 새로운 사람들

돈드고비는 에코투어가 없어 방문객이 적은 조림지에 속한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고, 조림업무 외에는 양묘와 같은 다른 업무도 별로 없기 때문에 출장 팀도 자주 오시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림지에 누군가가 방문한다는 것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일 중 하나이다. 그 중에서도 기자단이 방문한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큰 걱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편하게 대해주셔서 매우 감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도 모르던 주민직원분들의 모습과 생각을 알 수 있었다는 게 매우 큰 수확이었다. 빌게 경비원 아저씨가 사실은 유목민이었는데 기후 난민이 되었다는 것, 주민팀장님이 대학에서 공부를 하셨다는 것 등 매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주민직원분들과 함께 부대껴서 일하기만 했을 뿐, 그들의 생각을 묻고 대화하는 데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몽골어가 받쳐주지 않아 깊은 대화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그 전에 그런 의지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기자단 분들의 방문을 통해 단원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보게 되었다. 우리의 몫이 기자처럼 주민들을 취재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취재의 근간이 되는 대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애정은 항상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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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직원 따와 씨, 오르타나승 씨, 그리고 나, 아노찡)
#3.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푸른아시아 단원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주민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 곳 돈드고비 조림사업장에서, 주민들과 손짓발짓 섞어가며 몽골어로 소통하고 대화하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 다른 곳에서는 겪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때로는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서운해지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있다. 거의 대부분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생겨나는 오해인데, 어찌 보면 이 역시 감사한 점이다. 대부분의 상황을 ‘희’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은 맞지만, 주민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다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화나고 서운하고 답답한 감정을 넘어서는 이해와 포용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
돈드고비 조림사업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주민 직원의 변동이 많은 편이다. 한 달에도 몇 명씩 직원들이 그만두고,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곤 한다. 그렇기에 헤어짐에도 익숙해져가고 있긴 하지만, 꽤나 마음을 주고 친했던 주민직원들이 그만둘 때면 아쉬운 마음은 감출 수 없다. 이번 달에도 벌써 여러 명의 주민 직원들이 그만두고, 새로운 직원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중 ‘오르타나승’씨가 그만 두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이 가장 컸다. 내게 있어 앞서 말한 희로애락을 다 겪었던 주민직원이었기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던 주민직원이기도 했고,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여기서 6개월 후면 떠날 사람이고 단순히 매년 돈드고비 조림사업장의 사업을 이어가는 단원이라는 한 점에 불과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예정된 헤어짐이기에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을 주지 않는 게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표현하자면 조금 우습지만, 스스로 마음속에 출구전략을 마련해두는게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것이 정을 안 주고 싶다고 안 주고,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스스로가 그럴 위인이 못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6개월 후의 나는 아마 많이 아플 것이다. 그러면 어차피 이왕 아플 거라면, 더욱 많이 사랑을 베풀다가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계속해서 주민 직원들이 생각나고, 그리울 지도 모르지만 어찌 보면 그것까지도 단원의 역할이자 몫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건 주민직원들이고, 단원은 보조일 뿐이니까.

8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내가 몽골에서 ‘아노찡’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절반이 넘어갔다는 뜻이다. 심지어 조림사업은 더 일찍 끝나니까 이제 2/3는 지나간 셈이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급해하기 보다는,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앞으로 만날 수 있게 될 새로운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정을 나누는 남은 시간들로 만들어야겠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를 만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스쳐가는 만남을 지속적이고 깊은 관계로 만드는 힘은 나로부터 나오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