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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동화 둘 – 김성현 단원

첫 번째 이야기 –각자가 말하는 행복

이 세상에서 확실히 정의 될 수 있는 것이 몇이나 될까?

내 장담컨대 손가락 안에 꼽을 것이다. 가장 명확한 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볼까. 해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비슷할 것이다. 동에서 떠서 서로 지는, 둥글고 빛이 나는(문과는 희망과 미래의 상징이요, 이과는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라 말할) 그런 것이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생각하는 해는 비슷할 뿐 같은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정의내리기 힘든 건 감정 명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실체가 있는 것 비슷 이라도 할 테지만, 실체가 없는 이런 명사들은 정의내리는 게 무의미 할 정도 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행복이란 상당히, 상당히 추상적이며, 주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행복은 어떤 것과 비례하지도 반비례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는 어떤 조건과도 필요조건 혹은 충분조건이 될 수 없고, 같은 조건으로 통제된 실험 안에 놓여도 매번 다른 산출 값을 내어놓는다(그러니까 문과 식으로 설명하자면 백골이라는 단어가 윤동주에게는 자신의 분열된 자아로, 정몽주에게는 변치 않을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미술사에서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잊지 말라-로 사용되듯 행복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행복은 다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한다. 각자의 동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적으로 글쓴이의 관점에서 쓴 글이라는 걸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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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림지에서 발견했던 토끼(보다 여우일 가능성이 높은)굴. 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E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언제더라? 생각 외로 떠올리기가 힘들었다. 물 밖으로 나온 뒤로는 항상 그랬다. 인간이라는 존재들은 E가 물속에서 생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가 뭔지도 모르고 움직였다.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목소리까지 잃어가며 물 밖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이 또한 지나갈 것이었다. 그러면서 E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처음 물 밖으로 나오던 날, 맨 땅에 누워서 하늘을 봤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그려놓은 흰 구름. 그랬었다. 그냥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던 그 때, 행복했었다고 E는 생각했다.

H는 이상한 나라에서 하트 여왕을 만났다. 엄청 무시무시하다는 여왕은 소문과 달리 친절했다. 덕분에 H는 여왕의 궁전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여왕은 H에게 훌라와 루미큐브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카드 병정들과 게임을 하면서 기술(?)을 습득한 H는 여왕으로부터 ‘게임 신동’이라는 작위를 부여받았다. 행복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하트 여왕의 궁전을 떠나던 날, H는 너무나 아쉬워 카드병정들과 여왕에게 약속을 하나했는데, 그것은 바로 내년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 H에게 그들이 선물로 준 것은 추억 가득한 사진이 담긴 클라우드 파일과 편집 영상이었다. H는 선물을 챙겨 길을 나서면서 아마 자신은 이 선물들을 꺼내어 볼 때마다 그들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I는 사실, 오늘은 어제를 떠올리며 행복했고, 내일은 오늘을 떠올리며 행복할 예정이다. 덜덜거리는 호박마차를 타고 무도회를 가면서 I는 자신이 꽤 많은 일들로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무도회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I에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음식을 권하곤 했고, 정원사들은 각자의 나무에 대해 항상 걱정을 했으며, 나라 안 밖으로 바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서로서로 뭉쳐서 뭔가를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들. I는 자신의 나라 사람들의 이런 모습들을 보며 행복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이들 역시 처음엔 많은 시행착오들과, 실패들을 겪어본 것이었다. 당연히 I가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들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L은 용기를 내었다. 그리고 탑을 벗어났다. 종종 탑을 벗어나 주변의 숲을 다녀 본적이 있지만, 이렇게나 자유롭게 이렇게나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나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길을 계속 걷다보니 하트 여왕의 궁전이 나타났다. L은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많은 것을 해본 시간들은 L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다. 물론 가는 길에 길을 잃기도 하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L은 생각했다. 그래서 L은 H가 했던 것처럼 약속을 하나했다. 내년에 꼭 다시 오겠노라고.

자신이 변화하는 과정이 신기한 N은 최근 들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생각 이상으로 멋지고 똑똑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항상 자주 깜박하던 자기 자신을 바보라고 자책하던 N에게, 난쟁이들은 N이 그저 압박에 약한 성격일 뿐이며, 편안한 곳에서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예쁜 사람인지 매일매일 말했던 것이었다. 처음에 N은 그런 난쟁이들이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매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말하는 난쟁이들의 말은 N에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는 훨씬 더 멋진 사람일지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정말 행복한 삶이구나……N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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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검정이든 흰색이든 토끼는 토끼다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 나는 행복으로 할래’

비를 맞고 으슬으슬 감기 기운에 떨던 나는 그래도 예전처럼 비가 무섭지는 않았다. 어제가지만 해도 비가 오면 나는 도대체 왜 토끼를 따라 이런 이상한 세계에 와서 고생고생 생고생을 하는가 고민을 했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 이상한 세계로.
얼마나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신발 밑창이 떨어졌음은 알 수 있었다. 신발 밑창이 떨어져 바닥과 부딪히면서 딸깍딸깍 소리를 냈다. 딸깍 딸깍 딸깍……탁.

걸음걸이를 멈추어 섰다. 눈앞에는 정말 이상한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토끼다. 근데 내가 찾던 토끼는 아니었다. 그 토끼는 모자장수의 토끼(라고 모자장수가 말했다)이고, ‘자신의’ 토끼라고 주장하는 생쥐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무작정 나를 가운데 의자에 앉힌 그들은 논쟁 중이었는데 이 토끼가 무슨 색깔인지 맞추는 사람이 진짜 토끼의 주인이라는 것이었다.

모자장수가 말했다.
“이 토끼는 하얀색이야. 왜냐면……. 봐! 토끼의 털이 노란색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흰색이지”
생쥐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니지, 이봐. 잘 보라고. 이 토끼는 노란색이 아니야 그렇지? 그러니까 검정색이라고”
“아 진짜!!! 답답하게! 이거 봐 이거! 노랑 아니고 흰색이잖아!!”
“뭐? 답답?! 노랑이 아니면 검정이지! 왜 자꾸 흰색이라고 우기는 거야??!!”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아니 근데 난 왜 중간에 앉혀놓고?
“그래! 그럼 얘한테 판결을 내달라고 하자”
“그래 그거 좋네 이봐, 앨리사인지 앨리슨지, 너! 그래 너 말야. 이 토끼가 무슨 색으로 보여?”

아니 나는 왜 끌어들이는 건지. 이런 논쟁은 딱 질색인데…….잉? 그런데 말이다…….
“둘 다 혹시 색맹이에요? 이거 초록색 토끼인…아니 잠깐만 이 토끼 목줄이 있어?!?!”
아니, 처음부터 이거 보면 편할 것을 왜 싸우고들 난리람
“토끼C 이름은 행복, 주인은 잡은 사라….ㅁ”
순간 토끼가 재빨리 내 품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우리 셋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논쟁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행복은 숲 풀 속으로 사라졌다.

이상한 나라는 오늘은 해가 지지 않을 모양이었다. 하긴 이상한 나라이니까 해가지지 않는 것이 문제될 건 없다. 차라도 한 잔 더 하고 가라고 말하는 둘을 뒤로하고(신발 밑창은 모자장수가 솜씨 좋게 고쳐주었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내가 살던 세계는 풀이 초록색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붉은 색이었다. 이곳이 내가 알던 것들과 모조리 반대인 것일까? 아님 원래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이곳과 반대인 것일까?

오늘만 해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행복이란 그냥 잡으면 내 것이 되는 것인데, 우리는 그 행복을 정의 내리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으려 한다. 나와 상대방의 정의가 다르면 싸워서라도 내 정의를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때로는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결국 정해진 것은 없는 셈이다.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듯, 어디선가 익숙한 듯 오싹한 목소리가 들렸다.

‘행복이라는 이름만 봤다고? 사실은 말이야 그 토끼의 이름은 아주 많다고. 이름이란 건 붙이기 나름이라니까? 아무도 모르는 그 토끼의 이름. 그것은 목줄에 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 행복, 꿈, 사랑, 가족 그리고 그 토끼의 이름은 아주 많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