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0-[송상훈의 식물이야기] 멋진 수피 식물들1

모든 나무의 수피는 찬찬히 살피면 기하학적 무늬와 독특한 음양으로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어느 나무의 수피가 더 멋지다 할 수 없겠으나 사람이기에 편견을 배제하지 못함을 양해 바라면서, 여기서는 되도록이면 미끈한 수피를 가졌거나 수피가 박탈되면서 드러나는 알록달록한 문양을 드러내는 주인공들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마치 고운 사포로 다듬은 듯 미끈한 배롱나무 수피
배롱나무(부처꽃과)는 요즘 한창 개화 중인 나무인데 꽃도 아름답지만 미끈한 수피도 일품이다. 당나라 자미궁 안에 많이 심었다 하여 중국에서는 자미라고 불리는데 명나라 「군왕보」에는 줄기의 흰문양을 손톱으로 긁어 내리면 간지러운 듯 간들린다고 해서 간지럼나무(파양수)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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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벼과 꽃들처럼 무한화서여서 꽃이 지면 뒤이어 다른 꽃이 피고 개화가 아주 오래 지속된다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가지를 잘 쳐주면 상부가 옆으로 퍼지면서 멋진 자태를 갖게 되는데 오죽헌의 배롱나무, 금산사의 배롱나무, 금산사 근처 귀신사((歸信寺)의 배롱나무, 선국사의 배롱나무, 동학사의 배롱나무, 송광사의 배롱나무, 백화산 반야사의 배롱나무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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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거나 푸른 수피가 탈락하면서 붉은 새 수피가 드러나는데 마치 고운 사포로 다듬은 듯 미끈하다. 꽃과 수피가 아름다워서 이를 주제로 한 시들도 많은데 여기 하나만 소개한다.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우산을 펼친 듯 가지를 뻗는 층층나무 수피는 세로 줄무늬 형성
층층나무(층층나무과)는 한중일에 두루 서식하는데 주로 습한 계곡과 음지에 군락을 이루면서 20m 높이까지 자라지만 양지에서도 잘 자란다. 가지가 돌려나면서 수평으로 퍼지는데 층층으로 우산을 펼친 듯이 뻗는다. 해서 산행 중 꽃들이 층층으로 피어난 큰 나무가 있다면 아마도 층층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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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월에 피는 산방형 꽃은 매우 수려해서 보기 좋다. 산방형 꽃은 벌을 많이 부르는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열매는 이뇨, 강장 강화에 효험이 있고 수액은 다래나무나 고로쇠처럼 식용하는데 관절염과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 상처 난 부위는 붉게 변한다. 가지에 탄닌 성분이 많아 진통제나 종양 제거에도 이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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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나무 잎은 어긋나고 잎자루가 기므로 마주 나면서 잎자루가 짧은 말채나무나 곰의말채, 산딸나무, 산수유와 구별한다. 이 중 말채나무는 잎맥이 3~4개로 가장 적고, 산딸나무와 산수유는 5개 정도이지만 층층나무는 매우 촘촘하게 많다.
층층나무 수피는 회갈색에 말끔한 세로줄 터진 듯 흐르기에 무늬도 곱고 아름답다. 반면 말채나무 수피는 매우 거칠다.

서어나무는 세로로 내리는 근육질 자랑
높이 15m까지 자라는 서어나무(자작나무과)는 사람주나무 비슷한 근육질 나무인데 세로로 내리는 근육이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서양에서는 머슬트리(muscle tree)라고 부른다. 숲의 성장 과정을 천이(遷移)라 하는데, 헐벗은 산에 소나무 같이 빛을 좋아하는 양수가 먼저 자라 양수림이 되고 이후 참나무 같은 음수와 함께 자라는 혼합림을 지나 음수만 자라는 음수림이 된다. 음수도 시작이 음지라는 의미일 뿐 햇볕을 좋아해서 훌쩍 자라 그늘을 드리우면 키 작은 양수가 살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200년 이상 지나 수종의 변화가 별로 없는 안정된 음수림을 극상림(極相林)이라 하는데 서어나무는 까치박달나무, 후박나무와 함께 극상림을 이루는 주요 수종이다. 즉 숲이 생성되어 수 백년의 시간이 지나서 숲의 주인공으로 남는 나무가 서어나무이다. 물론 나무도 수명이 있어 결국은 쓰러지게 되고, 그 자리에 그 동안 성장하지 못했던 다른 종이 자리를 잡으면서 산림의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어쨌든 서어나무는 숲에서 아주 오랫동안 패권을 차지한다. 최종 승자들이다 보니 주로 군락을 이룬다. 그리하려고 열심히 근육은 키운 것일까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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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나무는 근육에서 보듯이 재질이 탄력 있으면서 매우 치밀하고 단단하다. 서양에서는 기계와 풍차 부품으로도 쓰였으며 동양에서는 물레방아 부품으로 활용되었다. 세상 거의 모든 농기구 자루는 이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참나무처럼 표고버섯 재배에도 이용되지만 참나무만은 못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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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나무 수액 또한 음용하는데 신경안정제 역할을 한다. 서어나무는 대표적 음수이다. 서어란 서(西) 쪽을 뜻하는 말로 서쪽 즉 음(陰)과 관계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이 나무와 매우 비슷한 나무가 소사나무인데 꽃과 잎이 같이 핀다는 점에서 서어와 다르고 잎도 열매도 크기도 작은 나무가 소사나무이다. 소사는 소서어가 변한 말이다.

흑갈색 수피에 황토색 속수피를 가진 산딸나무
산딸나무는(층층나무과) 높이 5~10m 자라는데, 짧은 잎자루의 잎은 층층나무과인 산수유와 가장 비슷해 보이지만 잎맥이 더 넓다. 층층나무는 잎자루가 길고 잎맥이 촘촘하므로 구분이 쉬운 편이다. 층층나무가 그렇듯이 계곡 등 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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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못박힌 십자가의 목재이기도 한데, 십자 모양의 흰꽃이라고 보이는 부분은 총포이고 진짜 꽃은 볼 품 없다. 비슷한 종인 서양산딸나무(미국산딸나무. 꽃산딸나무)나 마법산딸나무에 비하면 다소 소박한 편이다. 9-10월에 붉게 익는 둥근 열매는 마치 딸기 같아서 산딸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맛도 좋고 배탈이나 설사에 좋다. 물론 산짐승과 새들에게도 요긴한 식량이다. 가을 단풍도 일품이다.

오래된 산딸나무는 흑갈색 수피가 불규칙하게 탈락하면서 황토색 속수피가 드러나 얼룩진다. 이 수피에는 키니네 성분이 있어 해열과 강장제로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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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나무는 예로부터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친근한 나무이면서 꽃도 열매도 수피도 아름답고 내한성도 강해서 최상의 정원수라 할 수 있다. 빨리 자라는 속성수지만 재질이 단단해서 악기에 이용되고 종자로도 삽목으로도 잘 자란다.

수피의 흰빛이 강해 백목(白木)이라 부르기도 하는 사람주나무
사람주나무(산호자나무. 쇠동백나무. 대극과)의 수피도 아름답다. 전회 ‘불 밝히는 식물’에서 동백, 쪽동백, 생강나무, 떼죽나무 등의 수피도 미끈하다 하였는데 사람주나무가 그와 비슷하게 미끈하다. 기름 역시 등잔을 밝힐 수 있고 식용하여 변비에 효과가 있다. 수피에 흰빛이 강하여 일본에서는 백목(白木)이라 부르는데 서어나무처럼 근육형이지만 비교적 말끔하다. 가을에 붉게 물드는 잎도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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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이남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는 난대성 수종으로, 밑으로부터 줄기가 하나 또는 여럿이 올라와 멋진 수형을 이루면서 높이 5m까지 자란다. 대극과이므로 잎과 가지를 자르면 흰 유액이 나온다. 잎 모양은 감나무 비슷하다. 꽃차례 상부는 수꽃이며 하부는 암꽃이다. 열매 모양이 독특하게 3방향으로 볼록한데 3개의 씨앗이 들어 있어 구별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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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주나무는 잘 자라고 공해와 추위에 강하고 모양이 아름다워 조경수로도 적합하지만 속성수는 아니다. 잎은 데쳐서 찬물에 충분히 우려 식용하는데 장아찌로 만들기도 한다.

멋진 수피 식물들은 다음 회에도 계속된다.

글 송상훈 푸른아시아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