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0-[대학생 기자단-박주희] 현재진행형인 20여 전의 미안함

2016년 겨울, 대한민국은 ‘포켓몬 고 열풍’에 휩싸였다. 거리에 나서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포켓몬 고를 하고 있는 광경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에는 그만큼 희귀한 포켓몬들이 많이 나온다는 정보가 공유되면서 더 더욱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그 중 서울숲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카페를 비롯한 성수동 쪽 상권이 활기를 띠기도 했었다. 서울숲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포켓몬은 해파리의 형상을 띤 ‘왕눈해’라는 포켓몬이었다. 잦은 출몰로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 포켓몬은 사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포켓몬스터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었던 1999년 당시, 19화 에피소드의 소재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포켓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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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방영되었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지우 일행은 배를 기다리던 도중, 해변 위에 호화로운 리조트를 짓고 있는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막강한 재력을 자랑하는 그녀는 지우 일행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공사를 방해하고 있는 왕눈해를 퇴치해줄 것을 부탁한다. 지우 일행은 제의를 거절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호텔 숙박권과 많은 돈을 준다는 말에 왕눈해를 퇴치하기 위해 모인다. 그 과정 속에서 바다를 가득 메울 만큼, 왕눈해들이 모이게 되고 사람들의 해파리 퇴치약을 뒤집어 쓰게 된 한 왕눈해는 거대한 ‘독파리’로 진화하게 된다. 그 후 거대한 독파리의 지휘 아래 왕눈해들은 공사 중인 리조트를 부수고,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키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왕눈해와 독파리의 행동에 의문을 품던 지우 일행은,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바다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도 사는 곳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느껴봐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불만을 말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독파리의 얘기를 들으며 비로소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물론, 포켓몬인 독파리가 직접적으로 말한 건 아니고, 말하는 포켓몬으로 친숙한 로켓단의 ‘나옹’이 대신 말하였다.) 몇 년 뒤 이례적으로 환경의 날 특집으로 편성되어 재방송되기도 한 강렬한 독파리의 모습은, 초기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중 가장 인상 깊은 에피소드로 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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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올해 초, 서울숲에도 포켓몬 고 속 왕눈해를 잡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하지만 늘어난 건 사람들 뿐 만이 아니다. 평소보다 많은 쓰레기가 나오면서 악취가 풍기고 서울숲 주변의 환경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변의 식물이나 동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마치, 바다를 오염시키고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하는 인간으로 인해, 자신의 서식지를 잃어버린 왕눈해와 독파리처럼… 서울숲의 환경 오염은 애니메이션 속 왕눈해와 독파리의 분노와 슬픔을 단순히 애니메이션 속에만 나오는 허구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당시 애니메이션을 시청한 아이들이 진정으로 겁먹어야 했던 것은 분노한 독파리의 모습이 아니라, 독파리를 분노케 만든 인간으로 인해 나타나는 암울한 미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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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에피소드는 왕눈해와 독파리에게 총을 겨누는 사람들과는 달리 지우 일행이 “다시는 너희들이 사는 바다를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게.”라고 사과하면서 그들을 진정시키고 혼란을 잠재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지우 일행이 한 사과와 약속은 비단 왕눈해와 독파리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말은 아닐 것이다. 인간과 포켓몬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을 추구하는 만화 속 세계처럼, 많은 동식물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현실 속 인간들이 드넓은 바다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모두 자연생물들에게 해야 할 말일 것이다. 20여 전의 그 때의 사과와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

글 박주희 푸른아시아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