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9-[Main Story] 몽골지부 10년 발자취와 성과
자연과 사람이 지속가능한 삶과 미래를 이루기 10년
2017년 올해는 푸른아시아가 몽골에 지부를 만들고 기후변화 및 사막화 현장에서 나무를 심는 조림사업장을 조성하고 주민자립모델을 만들고자 활동한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지부를 설립한 것으로 보면 10년이 지났지만 푸른아시아의 몽골의 사막화방지 활동의 역사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첫 씨앗은 지난 1999년 12월에 뿌려졌다.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과 푸른아시아 공동 주최로 ‘동아시아의 미래’란 주제로 요코하마시립대학에서 가진 심포지엄이 그 출발이었다. 이 자리에는 한국, 일본, 중국, 몽골, 대만의 NGO와 환경 전문가,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심포지엄은 밀레니엄을 앞두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공동과제를 선정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여기서 첫 번째 시범사업으로 몽골의 사막화문제를 선정하고 다음해인 2000년에 현장조사와 함께 조림사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2000년 일본과 몽골의 NGO가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함께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국제협력의 길은 경험부족 탓인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파트너로 참가했던 몽골 NGO의 사업방식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2002년부터는 일본 NGO와 함께 양자협력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이후 2005년이 되면서 일본 NGO와의 협력 또한 푸른아시아가 활동은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되 정책과 이슈개발은 계속하는 것으로 조정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사막화 현장은 ‘인류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푸른아시아는 현장에서의 실패를 통해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2003년까지의 조림 결과는 생존율 0%에 가까웠다. 그 말은 심은 나무가 사라졌거나 죽은 것이란 뜻이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기도 하지만 이 아픈 과거는 몽골이라는 나라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2002년 사례를 되돌아보자. 처음 조림사업장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조림사업장에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다. 유목민들이 키우는 가축들이 어린 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가 어린 나무를 심어놓은 조림사업장에 양과 염소를 울타리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 몽골 아주머니에게 어린 묘목은 양과 염소의 먹이로 보였던 것이다. 현장을 지키던 실무자들도 나무를 지켜야 할 명분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이런 현장의 실패 경험이 푸른아시아에게는 자양분이 되었다. 이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세월 속에서 함께 했던 활동가들의 말과 글을 통해 푸른아시아의 정체성과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사막화 지역에 나무와 풀을 심으면 사막화를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다. 다만, 황사 발원지의 생태 복원을 위한 사업은 주민들의 생존 문제와 결합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제부터 이 성공 모델을 확산시키면 된다. 우리는 우아한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황사 발원지 주민들과 함께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단체는 이를 위해 지난 3월 한국의 전문가를 현지 상근자로 장기 파견했다. 그는 나무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 조직과 협동조합의 전문가다. 사막화와 황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무가 아니라 주민 참여가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 오기출 푸른아시아 사무총장, 시사저널(2008)
우공이산(愚公移山). 그랬다. 푸른아시아는 몽골의 사막화 방지 활동을 시작할 때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2000년 몽골 울란바타르 ‘이태준 기념공원’에 식목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2002년 바가노르에 도시형 모델을 만든 것이 현재 4만8천여 그루의 조림사업장이 되었다. 2007년 바양노르에 조성한 ‘아시아 희망의 숲’은 현재 14만 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2009년 만달고비에 조성한 ‘고양의 숲’은 6만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자신감을 갖고 만든 것이 2010년 에르덴 조림사업장이다. 이 곳엔 환경난민 이주를 통한 에코빌리지인 ‘하늘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수원시민의 숲’과 ‘카스희망의 숲’이 들어선 이곳은 푸른아시아 한·몽 국제협력 자원활동인 에코투어의 단골 방문지가 되었다.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과 이에 대한 대응 활동의 가시적인 성과인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와 조림을 통한 숲 조성지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엔 다신칠링(4만2천 그루)에 ‘인천 희망의 숲’을, 2014년 ‘어기노르 공동체숲(4만7천 그루)’ 이어 2016년 아르갈란트에 서울특별시와의 협력으로 ‘미래를 가꾸는 숲’ 조성에 이르기까지 18년간의 나무심기가 허허벌판에서 계속되었다. 그것이 2017년 봄 식재를 끝낸 현재 7개 조림사업장 540ha 조림지에 약 60만주의 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바뀌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며 나무를 심어온 푸른아시아에게 경사도 있었다. 2014년 유엔사박화방지협약에서 주는 ‘생명의 토지상’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이 상은 황폐한 토지를 되살리고 그 토지에서 지속가능한 토지 관리를 실천한 개인 또는 단체에 수여하는 상인데 푸른아시아로서는 가장 자랑스러운 상이다. 이 상의 의미는 푸른아시아가 단순히 나무를 심은 공로를 보는 게 아니라 나무를 심으면서 주민자립모델을 만든 것을 높이 평가했다는 데 있다.
푸른아시아가 몽골 현장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다름 아닌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이 가장 큰 자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의 참여 없이는 그 어떤 사업도 지속가능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있어야 비로소 지속가능한 조림사업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푸른아시아는 이러한 경험을 실천으로 옮겨 주민자립형 조림사업장을 구축하고 있으며 2018년부터는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푸른아시아는 ‘나무를 심는 단체’보다는 ‘사람을 심는 단체’로 인식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몽골지부 설립 10주년을 지나면서 제일 큰 사업성과는 7개 조림사업장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하고 있는 주민들이다. 뭐랄까 소극적이었던 주민들이 이제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필요성, 간절함, 절박함이 없이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완성도 높은 협동조합을 출범시킬 수 없기에 이런 근간이 마련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때를 기다리는 가볍지 않은 시간들이 우리 안에 있었다. 푸른아시아의 뜻과 진정성이 주민들 가운데 체화되어 가는데 최소 10년의 시간이 필요함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날마다 한다. 국제사업에도 나름의 트렌드가 있어서 후원자들의 요청에 따라 현장 활동의 방향이 갈팡질팡 한 적도 있었다. 현장 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겪기도 했지만 푸른아시아 역사를 살고 있는 선배 활동가들의 조언을 통해 초발심을 회복하는 시간들을 거듭해 오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재조명하며 나아가고 있다.
몽골지부의 역사는 주민과 함께 동고동락한 현장의 역사이며 아시아 사막화 최전방 사막화 방지(combat) 현장의 전투사라고 할 수 있다. 올해 하늘은 인간의 행태를 나무라 듯 비를 아끼고 있다. 우물의 수위는 계속 내려가 공회전으로 타버린 모터에 대한 현장의 보고가 들려온다. 결국 기후변화 대응 및 사막화 방지사업은 역설적으로 자연이 도와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활동임을 절절히 깨닫는 시간들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밤을 지새운다. 오늘도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활동가들은 우공이산의 정신과 우보천리의 자세로 사막화 현장으로 달려간다.
글 신기호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사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