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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여정의 시작” – 육심제 단원

‘적극적으로 살고 있다’

아주 조용하고 여유로운 몽골이지만 그렇다고 시간도 느긋하게 흘러가는 건 아니다. 몽골에 온 목적이 담겨있는 이곳, 다신칠링 사업장에 와서 내가 무엇인가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시기이지만 이곳으로 파견된 지 벌써 한 달 반이 지났고 지금 나의 모습은 몽골과 꽤나 잘 어울린다. 다신칠링에서 일을 하지만 생활은 바양노르에서 하는, 이중 살림 중인 나에게는 나 못지않게 몽골과 잘 어울리는 동거인이 한 명 있다. 우린 남들이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때, 몽골 음식을 그리워하며 어떻게든 몽골 음식을 먹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탄성을 지르며 3분 만에 식탁 위를 비워버리는 우리는 어쩌면 이곳 몽골에서 가장 현지인과 비슷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할 정도로 나는 몽골 생활에 굉장히 잘 적응했고 버티기보다는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 전기가 자주 끊기고 모래폭풍에 뒤덮이는 날이 생각보다 많아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잘 지냈고, 앞으로 지겹도록 발생할 상황이란 생각에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우리는 요즘 바양노르의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해 생각을 해 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지역 주민들과 우리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이서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크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민분들과 비교해 본다면 우리의 영향력은 꽤나 큰 듯하다. 최근에는 룸메이트에게 여러 명의 식당 주인분들께서 전화번호를 주시면서 먹고 싶은 거 생기면 전화해달라고 하셨다. 그 속에는 은근한 경쟁이 숨어있었고 초대보다는 유치에 가까웠다. 자연스러운 경쟁 속에서 우린 가장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는 식당으로 갈 뿐이다. 아무리 우리가 완벽하게 몽골에 적응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이 마을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은 우리에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사소한 움직임이 이 마을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꽤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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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 풍경

‘내게 맞는 옷’

사업장에서의 시간은 더욱 빠르게 지나간다. 대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머릿속에 밑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었지만, 벌써 많은 일들이 진행되었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진행될지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다. 물론 큰일이라고 할 정도의 문제들은 없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볼 때 문제의 원인은 처음에 내가 세웠던 잘못된 가설 때문인 것 같다. 사업장에 파견되기 전부터 우리 단원들이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은 단원들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였고 핵심은 경력 많은 주민분들이 알아서 잘 하신다는 것과 우리의 역할은 명백히 관리자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전략을 세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관리자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초반에는 주민들과 같이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자 했다.

조림지를 확장해야 하는 우리 사업장은 첫날부터 울타리 설치를 위해 굉장히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 또한 직원분들과 똑같이 일했고 아무것도 없던 땅에는 순식간에 길고 긴 울타리들이 세워졌다. 작업 속도를 보면서 정말로 알아서 잘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업 시작부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단 3일 만에 뿌듯함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부에서 진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오셨고 울타리가 너무 이상해서 처음부터 다시 쳐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정말 막막했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우린 바로 울타리를 뽑고 다시 심기를 시작했다. 이때 나는 내 전략이 틀렸음을 깨닫고 하루 종일 들고 있던 삽을 내려놓고 잘못된 부분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관리자의 모습으로 지켜보니 보이지 않았던 잘못된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고생이 의미 없어진 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 속상하기도 했다. 사실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큰 걱정 중의 하나는 주민분들이 과연 지시를 따라 줄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모두 더 열심히 일하셨고 나보고 똑똑하다며 칭찬도 해주시면서 지시에 잘 따라주셨다. 이 사건으로 나는 불과 3일 만에 내 역할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특히 주민 분들이 나의 존재와 역할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날 이후부터 나는 주민 분들의 땀이 의미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확인하는 관리자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실 지금 난 초반에 주민들과 똑같이 일했던 것을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 정말 많은 분들이 나에게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해 주셨는데 관리자 역할로 온 사람이 며칠 동안 옆에서 함께 삽질을 하는 모습을 꽤 인상 깊게 보셨던 것 같기도 하다. 초반과 비교하면 함께 일 할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난 손에 삽을 들고 있는 시간이 많다. 최대한 주민분들과 같이 일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지시를 이해를 못하실 때마다 답답함에 직접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같이 일 할 시간도 많아졌다. 이런 나에게 주민분들은 감시자에 대한 반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는다. 이제는 날 마주칠 때마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매번 먼저 물어보시고 내가 상황을 확인하러 갈 때면 다들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져서 뭔가 웃기고 고맙고 뿌듯하다. 이제 주민분들은 나를 삽이 잘 어울리는 감시자라고 표현하지 않을까 싶고 이렇게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지금은 난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하지만 지금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그것은 내가 나의 역할을 잊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큰 문제다. 지금까지는 답답할 때마다 내가 직접하곤 했었는데 지시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서 계속 이럴 수는 없다. 주민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직접 하고 싶은 마음을 넣어둔 채 믿고 맡기고 더 꼼꼼하게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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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작업 중

 

“준비 끝, 시작”

2017년 5월 3일은 나에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이 날은 지금까지의 식재를 위한 준비 과정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 조림지에 2017년의 나무가 심어진 날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식목일을 인지하고 있지도 않았고 그 어떤 행사에도 참여해 본 적이 없던 나였지만 이제 2017년 5월 3일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식목일이 되었고 이 날을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 분들과 모든 주민 분들이 다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욕심도 부려본다. 항상 머릿속으로 나무를 심는 상상을 하며 하루빨리 조림지에 나무를 심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현실로 다가오니 굉장히 기뻤고 길게만 느껴졌던 준비과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 조림지에서 가장 밝은 표정을 지은 날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막 심어진 나무들은 손대면 부러질 것처럼 여리고 여리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만큼은 결코 여리지 않다. 지난 한 달 동안 우여곡절도 정말 많았고 일이 잘 되고 있는 것인지, 예정대로 나무를 심을 수는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정말 많았지만 결국 나무가 심어졌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또 어떻게든 되긴 된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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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식재

 

나무들이 뿌리내린 후로 확실히 해야 할 일들이 훨씬 더 많아졌고 머리 아픈 일들도 매일매일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일은 내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일이고 일의 주인공들인 나무가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저 막막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아직 자식 키우는 마음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무가 제발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이 마음과 아주 조금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큰 동기부여가 된다. 심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벌써 강한 나무와 약한 나무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강한 나무를 볼 땐 그저 고맙고 힘이 나지만 죽어가는 나무를 볼 때면 안타깝고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절실해진다. 2017년의 나무를 모두 심은 지금부터는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이 작업의 대부분이다. 넓고 넓은 조림지에 물을 주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놀라울 수 있는데 별 특별한 방법 없이 호스를 이용하거나 양손에 물을 가득 담은 양동이를 이용하여 모든 나무에 직접 물을 준다. 저수조에서 물을 받아 나무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줄지어 움직이는 개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관수가 시작되었을 때도 모든 작업의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이게 과연 잘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함을 느꼈고 역시나 헛된 걱정이었음을 또 한 번 깨달았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관수 작업은 나이게 이제 의심과 걱정은 조금 내려놔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제 정신없던 작업장에도 안정이 찾아왔고 여러 작업에 분산되어 있던 나의 집중도 몇 가지의 작업으로 모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이 곳에 파견오기 전 조림지 전체에 나의 발자국을 찍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는데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직 많이 부족한 내 발자국을 열심히 찍어내는 것이다. 나는 수만 그루의 나무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집중할 것이고 강한 나무에게는 더 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빠의 모습으로, 약한 나무에게는 꼼꼼한 엄마의 모습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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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수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