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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 쓰는 5월 일기 – 김성현 단원

어느덧 5월. 몽골은 5월에도 눈이 온다.
5월 달에 내리는 우박과 눈을 맞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한국에 있는 친구가 벌써 여름이 왔다는 말을 했다. 참 신기하다. 여기서는 항상 상상만 해왔던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오월에 눈이 오고, 단어를 다 아는 것도 아니면서 주민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안 된다는 말을 했었는데 조림지에 서 있기만 해도 눈에 흙이 들어간다. 내가 알던 것들, 배우려했던 것들, 모두를 비웃듯이 자꾸만 새로운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곳, 에르덴이다.

조림지 이곳저곳에서 꽃이 핀다.
16년도 단원언니들이 남기고 간 사전을 펼 때마다 압화 된 꽃들이 있어서 참 신기했었는데, 전부 조림지 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4월. 금색으로 물결치는 오쓰와 하르간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과연 이런 곳에서도 꽃이 필까 싶었다. 그런데 마치 거짓말처럼, 꽃밭으로 변해버린 조림지에는 노랗고 햐얗고, 분홍으로 보라색으로 손 흔들고 있는 꽃들이 두 걸음에 하나씩.
처음에는 사진으로 다 남겨서 한국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사진 찍는 것은 그만두었다. 사진 속 꽃은 여전히 예쁘지만, 조림지에서 본 느낌이 나질 않았다. 초록과 연두색으로 가득한 도화지에 별처럼 박혀있는 꽃들은 아마 직접 눈으로 봐야 하나보다.
우리나라에서 이름 없는 작은 꽃들을 몽땅 모아서 들꽃이라 부른다. 왜 하필 들꽃인가 했는데(지금은 식물도감 속 사진으로 보거나 화분에 가지런히 담겨져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조림지 사이에 핀 꽃을 보니 들꽃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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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 달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은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했다. 달력을 보니 벌써 몽골에 온지 두 달이 지났는데, 하루는 너무 길게만 느껴진다. 오전은 너무 짧고, 오후는 때로는 너무 길었다. 그건 이곳과 이 시간들과 이 사람들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유 없는 피로감에 지쳐버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들과 상관없이, 나는 지나가는 시간을 잡고 싶기도 하고, 모든 게 빨리 지나갔으면 싶기도 했다. 모순되는 생각들이 자꾸만 들었다. 생각들이 나를 양옆으로 잡아당기는 까닭에,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의 것들을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편안하다가도 하루 사이에 파랗게 싹이 돋아나서 어느새 푸르러진 종머드를 보고 있으면 이유 없는 낮선 느낌에 순간 멈칫하기도 한다.

가끔은 내가 꿈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이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있는 구름과 시리도록 새파랗게 물든 하늘과 수묵담채화 같은 언덕들이 내가 엽서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 것 같게 만든다. 눈을 뜨면 한국에 있는 내 방 침대에서 눈을 뜰 것만 같다. 일어나서 씻고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만나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어제 밤에 꿨던 꿈이 떠올라서 에르덴이라는 곳을 찾아보면 어디에도 없는 곳이어서 ‘정말 현실감 넘치는 꿈 이었구나. 신기하다.’
라고 할 것만 같다. 처음 보는 새들이 처음 듣는 소리를 내고 햇볕이 쏟아지고 바람이 불면 아직 다 사그러들지 않은 금빛이 물결치는 낮과, 쏟아질 것 같은 별이 빛날 때 길가를 지나다니는 차의 전조등이 땅에 떨어진 별 부스러기들처럼 보이는 밤은 정말 그렇다.

문득 아무것도 어떤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조림지 가운데에서 생각만 한다면, 나도 이 그림 속 한 귀퉁이 정도 장식할 수 있을까, 이 그림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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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아졌다.
소리 내서 하는 말 말고 혼자해보는 그런 생각들. 한국에서도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뭔가 가만히 생각하기에 한국은 정말 소란했다. 새벽조차도 소리가 있었다. 그래서 정말 가벼운 생각들만 했다. 필요한 고민들, 내려야할 결정들, 눈앞에 당면한 과제들, 시간 때우기 용으로 하던 생각들. 그냥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새로운 시간들이 오면 새로운 가벼운 생각들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곳은 낯설 정도로 조용했다. 바람이 부는 조림지 한 가운데는 정말로 조용했다. 들리는 건 바람에 풀이 스치면서 내는 소리뿐이었다.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들어가서 숨을 참고 머리까지 물속에 담그면 이렇게 조용했다. 들리는 건 욕조 물이 미세하게 찰랑이는 소리뿐이었다. 생각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숨을 참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조용해서 마음껏 생각할 수 있었다. 굳이 의미 있을 필요도, 누군가를 이해시켜야 할 필요도, 쓸모 있을 필요도 없는 생각들을 하다보면 하루가 지났다.

지난 달에는 에르덴에서 관계에 대해서 배었었다면, 이번 달에는 생각을 배워간다. 다음 달에는 그리고 또 그 다음달에는. 생각이 생각을 물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