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몽골] 4월에 에르덴에서 해보는 이런저런 생각들 – 김성현 단원

유비에서 에르덴에 온지는 2주가 조금 넘었고, 한국에서 몽골에 온 지는 어느덧 한 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에르덴에서의 시간과 비교하자면, 유비에서는 고민이 적었던 것도 같다. 나는 나름 유비에서부터, 아니, 한국에서부터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의 고민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11개월 동안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그리고 내가 매일 마주하게 되는 모든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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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예전에 써둔 시가 있다. 요즘 자꾸만 그 시가 떠오른다.

생각이 들어 / 내가 가는 길이 바로가는 길인지 / 끝에 아무것도 없어도 / 걸어와서 의미있었다 / 말할 수 있을지 / 내가 네 길을 가려는 건 아닌지 / 집으로 가던 벌레 / 그 위로 오진 않았는지 / 손잡고 오던 저녁놀 / 뒤에 두고 온건 아닌지 / 생각이 들어 / 길이 아니라 / 길 모양 허물을 / 밝고 온 건 아닌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내가 하게 되는 매일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앞으로도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어도 되는 건지. 매일 내게 질문을 하고 답을 찾으려 할수록 점점 잘 모르겠고, 서툴러서 어렵고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4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걸을 수 있는 힘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기적이라는 구절에 시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정말이지 이렇게 오글거리게 시를 쓰다니라고 넘겨 버렸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에르덴에 와서 내가 주민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건, 미쉘이라는 가사가 들어간 노래(미쉘 인 바깅시~ 미니 울란바토르~였던가?) 그리고, “야다르치 배노? 다르치 배노? 휘튼 배노? 새항 아마르스노?”와 같은 나의 안부를 묻는 말이다. 피곤하지 않은지, 춥지 않은지, 잘 쉬었는지. 내가 모두 괜찮다고 대답해도 삽질이, 혹은 일이 힘들어 보이면 언제나 소리 소문 없이 쓱 다가와서 도와주시곤 한다. 한국에서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 아주 적었다.(‘너, 야’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대명사부터 ‘~의 손녀, 딸, 언니, 친구’와 같은 관계와 관련된, ‘반장, 기장, 회장’에 이르기까지 내 이름 말고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던 거 같다.) 이곳에서는 주민 분들 덕에 하루에 수십 번 내 이름을 듣다보니, 적어도 내 이름이 어색하지는 않다.
이런 주민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바야를라. 이흐 바야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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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를라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내 일을 도와주고, 내 안부를 물어봐줘서 고맙다는 말 이상으로 말이다. 이곳 사람들이 나를 막내딸처럼 대해주셔서, 내가 마음이 힘들 때 농담과 장난으로 내가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와서 어느 날 갑자기 마을의 구성원이 되어버린 내게 이곳의 사람들은 정말 따뜻하게 마음을 열어준다.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은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고 말한 내게 자신들의 점심이라던 빵을 내어주고, 막내주민 직원인(내 동생과 동갑인) 어요카는 집에서 가져온 아롤을 내 손에 막 쥐여준다.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은 나를 항상 웃게 만들어준다. 이 모든 것들이 참 놀랍다. ‘내가 이렇게나 사랑받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매일 밤마다 하게 되는 이유다. 물론 이 분들은 내가 자꾸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신기하신지(아님 내 어색한 몽골말투가 재밌으신지) 종종 장난거리로 삼으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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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몽골에서 고마운 사람을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막내가 에르덴에서 잘 살고 있는지 가끔 안부를 물어주는 오빠들과(사실 대부분 내가 에르덴에서 숨 쉬고 있는지, 나의 존재감을 잊으시는 분들이다…허허…그래도 ‘존재를 잊을 리가 없지 않냐’는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매일매일 목소리를 들어도 그냥 좋은 돈드고비 언니들(목소리를 매일 들어도 좋지만 얼굴을 매일 볼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돈드고비는 너무 멀다…….), 그리고 매일 아침 된장국을 끓이는 다영언니(난 진심으로 언니가 한국에서 곱창집이 아닌 된장찌개 집을 하면 대박날 거라고 생각한다.)까지, 참 그냥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지 신기하다. 우리끼리 갔던 엠티도, 유비에서 보낸 2주의 시간도 벌써 꿈같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그리고 셰익스피어 뺨치게 비극이게도) 에르덴은 휴일이 수목이라 아무와도 만날 수 없다.(음. 선거날도 그렇구나. 갑자기 힘이 빠지네.) 다른 일들은 익숙해지겠지만, 이 사실만은 귀국할 때까지 익숙해지지 못할 것만 같다. 그렇다고 마냥 어린애처럼 보고 싶다고 때를 쓸 수는 없으니, 지부에서 교육이던, 회의이던, 아님 혼나는 거(이건 좀 심했나)라던지 해서 불러주길 바라는 수밖에. 이건 그저 정말 희.망.사.항.일 뿐.
지부에 계신 보람간사님이 에르덴을 잊지 않으시고 고기를 챙겨주시는 일도, 몽골 엄마 같은 수혜팀장님의 전화도, 가끔 출장으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시는 신국장님, 원팀장님, 어뜨너 간사님, 바타간사님, 그리고 최국장님과 벌러르마 간사님, 아츠마 대리님, 나야 대리님 같이 자주 뵙지 못하지만 항상 단원들을 챙겨주시는 분들까지 감사한 일이 많고, KCOC로 만나게 된 정윤언니, 유지언니, 지원언니, 지혜언니, 정원언니, 성수언니, 코디님들까지…… 안부도 물어봐주시고 수다도 떨어주셔서(그리고 나의 취미 생활까지 지원해 주셔서) 막내는 그저 항상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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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나는 남은 10개월 동안 끝없이 고민하고, 시도하고, 깨지기도 하면서 몽골 라이프를 꾸려나갈 거다. 대부분 웃으면서, 그리고 아주 가끔 아프기도 하면서 보내게 될 이 시간들을, 그래도 나 혼자가 아니라, 이렇게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있는 시간도 소중히 꾸려나가는 법을 배우면서. 차곡차곡 추억을 쌓으면서.
4월이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