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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몽골] 기꺼이 하는 마음 – 김찬미 단원

꽤나 지쳐 있었다. 퍽 겁이 나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관련이 있는 일이지만,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들을 하고 있었기에. 현장을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다고 수년째 생각해 온, 하지만 단 한 번도 내 눈에 보이거나 내 손에 잡힌 것이 없었던 그 일을. 이것이 나만의 헛된 이상은 아닌지, 내가 이런 일을 할 만한 역량이 되는 사람인지. 알려면 직접 가 봐야 했다. 지금까지처럼 생각만 해서는, 타인의 말만 들어서는, 책만 읽어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 때 찾아온 기회가 ‘푸른 아시아’였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몽골에 오게 되었다.

“광활한 초원과 푸른 하늘의 도시, 울란바타르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울란바타르 공항에 착륙하면서 흘러나왔던 기내멘트다. 이 멘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듣자마자 핸드폰에 메모해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공항을 나서는 순간 나를 가장 먼저 맞이했던 건, 광활한 초원도, 푸른 하늘도 아닌 몽골의 매연, 오타였다. 기관지가 약한 탓에 계속 켁켁거리며 숙소로 가는 차를 탔고, 창밖으로 바라본 울란바타르의 첫인상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경기도 외곽, 그 중에서도 곤지암 같았다. 지금 내가 몽골에 온 게 맞나 싶은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숙소에는 당장 필요한 물, 휴지, 아침 찬거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몽골에 온 것을 환영하는 멘트와 우리의 건강을 생각해주시는 포스트잇까지 붙어 있었다. 이러한 세세한 배려에 감사하고 감동하면서 첫 날밤 잠을 청했다.

울란바타르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생활 사이에서 가장 다른 점을 꼽자면 단원들과 함께 숙소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한국에 있을 때의 단원들이 한 배를 탄 동지, 직장동료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단원들은 그냥 가족 같은 느낌이다. 저 오빠가 오빤지, 아빤지. 저 언니가 언닌지, 엄만지. 특히 여자 숙소의 경우는 매일 밤늦도록 불 꺼질 새가 없다. 서로 온갖 얘기를 나누면서, 때로는 가벼웠다가 때로는 진지했다가. 그러한 서로의 감정들이 어느새 뒤엉키고 그 뒤엉킴 가운데서 서로를 이해하고. 덕분에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정말로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요즘이다. 무엇보다 많이 배워가는 요즘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날을 기준으로, 몽골에 온지 약 10일이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뜻 깊었던 날을 고르자면, 처음으로 조림지를 방문했던 날이다.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울란바타르에서의 생활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바가노르와 에르덴을 방문했던 그 날. 그 중에서도 특히 내 맘에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은 에르덴의 아이들이었다. 너무 예쁘고, 순수하고, 사람에 대한 벽과 거리낌이 없었던 아이들. 그 중에서도 한 아이는 단순히 인사만 했던 나의 손을 끌고 자기 집에 데려가기까지 했다. 그 때 나는 순간적으로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자기 집까지 들이는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너무 어른의 사정에 찌들어있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내 모든 것을 보여줬다가 상대방이 실망할까봐, 혹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보고 내가 실망할까봐 그래서 결국은 이 관계가 무너질까봐 관계에 있어서 그 동안 너무 벽을 치기 급급했던, 적당한 거리를 두기 급급했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이 정도로 순수하게 사람을 좋아하고 허물없이 부딪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실 이렇게도 순수한 것이었구나, 이렇게 맺는 것이었구나’를 되새길 수 있었다. 기꺼이 나의 것을 보여주고 기꺼이 그 사람의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마음. 어쩌면 조림지로의 파견을 눈앞에 둔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기꺼이 하는 마음과 태도가 아닐까.

정신없이 10일을 보내고, 이제는 돈드고비 파견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설렘 반 걱정 반 이라기엔 사실 걱정이 조금 더 앞선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주민들과 잘 동화될 수 있을까, 내가 여기 온 목적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러한 고민들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기댈 수 있는 푸른 아시아 단원들이 있고, 에르덴 하늘마을의 아이들로부터 배운 ‘기꺼이 하는 마음’을 되새겨 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기꺼이 주민들과 동화되고, 하나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