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5-[2016 몽골 파견단원 좌담회] 몽골에서의 1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년이 지나면 뭔가 모르지만 ‘몽골의 땡김’이 생겨나요”

사회 : 이동형 푸른아시아 홍보국장 / 정리 : 배윤진 홍보국 간사
참석 : 임영화, 김명원, 백조은, 이누리

 

사회 : 2016년 몽골 파견 단원 여러분들이 모두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지구의 건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지요.

몽골 현지 푸른아시아 조림장에서 지난 1년 동안 청춘을 바쳐 헌신한 파견단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며 그 귀한 1년 동안의 경험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경험담을 정리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대부분 지방에 계시고 또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여행을 가느라 다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오늘 자리를 해주신 네 분의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분들 각자 자기 소개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임영화(이하 임) : 안녕하세요? 몽골 에르덴에서 지난 1년 동안 파견단원으로 활동하고 돌아온 임영화입니다.

김명원(이하 김) : 안녕하세요? 몽골 바가노르에서 파견단원으로 활동한 김명원입니다.

백조은(이하 백) : 안녕하세요? 저는 몽골 돈드고비에서 파견단원으로 활동한 백조은입니다.

이누리(이하 이) : 안녕하세요? 저는 몽골 다신칠링에서 1년, 울란바타르에서 1년 총 2년간 파견단원으로 활동한 이누리입니다.

사회 : 먼저 여러분들이 지낸 곳이 몽골 중에서도 어떤 곳이었는지 저희 푸른아시아 후원자님들에게 소개를 좀 해주세요. 조금씩 다 특징이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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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 저는 에르덴 주민사업장에 있었어요. 에르덴은 푸른아시아 주민자립을 알리는 홍보형 모델이여서 에코투어 단골코스로 한국과 몽골에서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죠. 수도 울란바타르와 가까운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는 허허벌판에 에코빌리지를 조성한 것이 더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1년에 몽골과 한국에서 각 1,000명씩 찾을 정도로 많이 옵니다. 에르덴 조림장의 특징은 조림 뿐만 아니라 에코투어 참가자들을 맞이하는 게 큰 역할이라는 겁니다. 에코투어 온 분들의 식사 제공을 통해 주민들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지요. 그런 수익은 주민공제회에서 관리합니다. 그리고 주민 공제회를 통해 기념품 판매 수익도 올린 적이 있지요. 여기는 박소현 단원과 둘이 담당을 했습니다.

백: 저는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으로 270km 떨어진 돈드고비에 있었습니다. 자동차로 4시간 정도 걸릴 정도로 멀어 에르덴과 같은 에코투어는 없어요. 여기엔 고양시민의 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파견단원들의 주 업무는 주민 관리였어요. 출퇴근, 생존률 조사, 구덩이 파기, 물주기 등을 체계적으로 하는지 관리하는 거죠.

이: 처음 1년 동안 있었던 곳은 다신칠링이었어요. 그 다음 1년은 울란바타르에서 행정업무를 보았지요. 다신칠링은 사업장 규모가 작기도 하고 주민팀장님의 지도력이 탁월해 사실상 파견단원들이 할 일이 없다고 할 정도였어요. 뭘 할까 생각하다 지금의 ‘나무호적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험삼아 10일 정도 해 보았는데 가능성이 보여서 전 지역으로 확대되었지요. 작년에는 울란바타르로 올라와서 나무호적제 업무를 계속해서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 대부분 파견단원들의 활동을 1년간으로 하는데 이누리 단원은 왜 2년을 하게 되었나요? 지원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이 : 현장일을 해보고 국제개발 NGO에서 행정업무도 경험해보고 싶어 1년 연장 신청을 했어요. 다행히 울란바타르에서 나무호적제 업무를 계속 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나무호적제가 정말 중요하다고 판단했거든요. 만약 1년만에 귀국했다면 당시 이 업무를 인수 받아서 진행할 사람이 없었기에 연장했지요. 당시 나무호적제는 종이에 써서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지금은 컴퓨터로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어요.

김: 제가 있던 바가노르는 3조림장까지 있는데요, 1, 2조림장은 대한항공이 관리하고 있어요. 푸른아시아는 산림청에서 관리하던 것을 받아서 계속 관리하고 있어요. 3조림장에는 ‘한·몽행복의 숲’이 있는데 2015년, 2016년 4000주를 심었으며 그것을 주민직원 5명이 관리를 했지요. 대한항공은 인원도 훨씬 많고 처우도 좋았는데 결국은 ‘돈문제’였던 것 같아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경비원까지 7명이 참 열심히 했지요. 이곳은 도심형 조림장인데요 인근에 석탄을 캐는 노천광산이 있어 에코투어팀들도 간혹 찾아옵니다. 지난 해에는 2팀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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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임영화 단원은 백조은 단원과 함께 지냈죠? 그런데 김명원 단원은 홀로 지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혼자 1년을 지낸 느낌이랄까 기분은 어떠했나요? 당연한 것 같지만 물어보게 됩니다. 외롭지는 않았나요?

김 : 도시이긴 하지만 혼자 근무하다보니 사람이 그립기도 하죠. 하지만 혼자근무하는 게 편했어요. 면접 볼 때에도 혼자가 편한데 둘도 상관없다고 했지요. 아무래도 혼자 있다 보니 ‘혼술’을 하기도 하는데 ‘혼술’은 한국에서부터 좋아해서 별 문제 없었어요. 가끔 단원에게 전화해서 괴롭히죠. 하 하 하

사회 : 처음 파견지에 도착했을 때와 1년을 지내고 떠나올 때 마음이 어떠했나요? 다들 처음에 도착하면 충격(?)을 받지 않나요?

임 : 에르덴은 허허벌판에 지은 인공마을이잖아요. 주변에 아무것도 없지요. 파견 전에 소현이랑 한번 갔었는데 집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청소하러 간 거였어요. 그래서 별로 충격 같은 건 없었어요. 어차피 환경이 열악한 건 알고 왔죠.

백: 돈드고비는 시골스럽기도 했지만 거기도 하나의 소도시예요. 울란바타르에서 교육 받을 때 시간 내서 먼저 파견지인 돈드고비를 가보고는 괜찮다 싶었어요.

이: 다신칠링 처음 도착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일년을 버티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신칠링엔 숙소가 없어 바양노르에서 출퇴근했어요. 자동차로 30분정도 걸리는 곳이에요. 다신칠링은 규모가 작아 조림장이 한눈에 다 보일 정도였어요.

김: 저는 바가노르의 색다른 분위기가 좋았어요. 완전 촌동네는 아니고 있을 건 다 있어요. 사는 데 불편함이 없었어요. 술집도 있는데 잘 안 갔어요. 어짜피 혼자 먹을 텐데 집에서 먹는 거나 별 다를 게 없죠. 첫날은 주민들과 처음 만나는데 몽골어가 잘 안되어 조금 당황했죠. 그래도 주민팀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울란바타르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주말에도 울란바타르로 잘 안 갔어요.

사회 : 한국 오기 전 1년간 매일 출퇴근 하던 조림장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어떠했는지요?

임: 저는 사실 실감이 안 났어요. 주민들이랑 진심으로 인사를 못하고 오게 될까봐 걱정했어요. 헤어짐의 절차를 잘 못 밟을까봐 걱정한 것이지요. 그런데 마지막 주민사업날 쫑파티까지 너무 잘했어요. 폴라로이드 사진도 찍고 선물도 해드렸어요. 정말 후회 없이 마지막을 보내고 왔어요. 미련이 남을 것 같았는데 미련 없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잘 마무리를 했구나’ 싶었어요. 인사하고 울란바타르로 떠나는 날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안 났어요. 왠지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거지요. 차를 타고 가는 순간, 뒤돌아보니 주민분이 눈물을 훔치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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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저도 흐지부지 하게 헤어지게 될까봐 초조했어요. 이 헤어짐을 느끼면서 1년 동안 잘 지냈다는 생각이 드니 아쉽다거나 하는 그런 감정은 없었어요. 주민분들이랑 헤어지는 것은 아쉽다기보다 보고 싶을 것 같았어요. 관계에 있어서 깔끔하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깔끔하게 마무리한 느낌이었어요.

이: 한국 오기가 되게 싫었습니다. 한국은 복잡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고 생활비 걱정도 해야 되고요. 하지만 몽골에 더 있고 싶지도 않았어요. 2년이 딱 적당했던 것 같았어요. 아쉬움도 없었어요. 다시 못 볼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제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몽골에 가면 언제든지 볼 수 있잖아요.

김: 헤어지기 전 숙소에서 쫑파티를 했어요. 그날은 삼겹살을 사다 놓고 간단하게 술을 준비하고 주민분들 대접을 했지요. 그렇게 회식을 하고 헤어졌어요. 그런데 잠시 후 누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주민분들이 아쉬웠는지 다시 찾아왔어요. 결국 한잔 더 하면서 서로 아쉬움을 달래었지요. 눈물도 안 나고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 정리기간이라고 10일 동안 있었는데 ‘왜 여기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골에 다시 갈 거니까 그렇나 싶기도 했어요 뭔가 잘 모르겠지만 다시 가고 싶다는 땡김이 있어요.

사회 : 지난 1년 동안 몽골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인가요?

김: 블로그에 몽골에서 꼭 해야 할 3가지를 썼어요. 하나는 넷이서 휴가를 같이 가는 것. 그 다음은 밤하늘의 별보기. 몽골하면 쏟아지는 별이잖아요? 이거 꼭 봐야죠. 누워서 보고 맥주 한잔 하면서 보고. 저는 고비사막에서도, 홉스골에서도 봤지요. 에르덴에도 일부러 별보러 놀러 가기도 했어요. 그 중에서 홉스골에서 본 별이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여름이었죠, 8월 말이었던 것 같아요. 남은 하나는 늑대사냥도 갔던 것이에요. 늑대를 보고 싶었는데 사냥꾼을 따라다녀 봐도 결국 늑대는 보지 못했어요.

이: 2015년 휴가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휴가 때 잘 다니지 않는데 그때는 휴가 내고 나무호적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른 조림사업장 둘러보면서 엑셀 편집작업을 했어요. 당시는 엑셀을 잘 못할 때라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이것저것 써보고 일주일 정도 밤을 새면서 했죠. 제가 몽골에서 2년 동안 지내는 동안 그때 일주일이 가장 열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집중할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기에 기억에 남아요.

백: 기억이 엄청 남는 것은 아니지만 말 타던 것이 떠오르네요. 귀국한 후 지난 주에 제주도에 갔는데 거기서도 말 타는 것 봤는데 너무 시시한 거예요. 곁에서 사람이 잡고 그냥 한 바퀴 도는 건데 그걸 보니 다시 몽골 가고 싶어지는 거예요. 몽골에선 강도 건너고 산도 타고 달리기도 하거든요.

임: 기대한 대답이 아닐 수 있는데 제 경우에는 뭐 하나 딱 꼽기가 어려워요. 개인적인 휴가도 좋았고. 조림업무 생활도 좋았어요. 저에겐 몽골에서의 날들이 모두 베스트였어요.

사회 : ‘만약 다시 간다면 이것만은 꼭 해보고 싶다’ 이런 게 있나요?

임: 몽골은 엄청 넓은 나라지요. 1년 동안 있었지만 못 가본 곳이 많아요. 홉스골을 갈 때 비행기타고 갔는데 차 타고 가는 코스도 있어요. 비행기는 몇시간 만에 가지만 자동차를 타고 가면 2~3일 코스를 따라 주변 구경을 하면서 갈 수 있는데 중간에 사막도 있고 노천 온천도 있어 너무 좋대요.

백: 저도 그래요. 저도 여행 못 가본 곳이 많은데 꼭 가보고 싶어요. 몽골 가면 세 곳을 가보라고 해요. 고비사막, 홉스골, 남은 하나가 쳉헤르온천이라는 곳이에요. 어기노르 근처에 있는데 저는 여기를 못 가본 게 아쉬워요.

이: 저는 바양노르에서 단원생활을 하고 싶어요. 바양노르가 크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에요. 인력이 부족해 해야 할 부분을 못한 것들이 더러 있어요 제가 경험이 있으니까 웬만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2년 정도 있었으니 할만한 건 다해 별로 아쉽거나 꼭 해봐야 겠다는 것은 없어요.

김: 늑대사냥을 해보고 싶어요. 지난 번 김병만도 늑대 잡으러 간 게 TV에 나왔잖아요. 그도 역시 실패하고 돌아갔지만 늑대가 있긴 있대요. 늑대 사냥을 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의 게르에도 들어가게 되는데 몽골의 문화가 그러하듯이 외지인이 오면 무척 반겨줘요. 그런 체험도 좋고요. 다음엔 제가 늑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올게요.

사회 : 지내실 때 음식은 어떻게 해 먹나요? 시장을 보고 그런 일상들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임: 한 달에 한두번 나가서 장을 봐요. 에르덴에서는 주로 울란바타르로 가서 장을 보지요. 여기 주변에도 슈퍼마켓이 있는데 거기서는 감자나 식재료를 팔지 않고 과자나 음료만 팔아요. 여기선 바가노르로도 갈 수 있어요. 시간이 비슷하게 걸리지만 주로 울란바타르로 가요. 한번 장을 보면 한달치를 봐요.

백: 돈드고비에도 있을 건 다 있지만 먹고 싶은 건 별로 없었어요. 두 달에 한번씩 워크숍을 하는데 그때 울란바타르에 가서 두달치 장을 봐요. 삼겹살 등은 이마트에 가서 사지요. 야채는 돈드고비 시장에서 사고. 쌀 등 기본적인 것은 다 있어서 불편하지 않아요. 슈퍼도 있고 재래시장도 있고. 과일은 다양해서 거기서 사 먹곤 해요.

이: 저는 울란바타르에 있어서 몽골지부 활동가 분들이 많이 챙겨줘서 식사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어요. 최국장님이 초대 많이 해주셔서 집밥도 얻어먹고…. 울란바타르에선 치킨도 시켜먹을 수 있고 웬만한 배달음식은 다 시켜 먹을 수 있어요. 물론 밥을 해먹기도 하지요. 제 경우 한국에서의 생활과 다를 바 없었어요.

김: 바가노르에는 대형 쇼핑몰이 있어서 라면, 참치, 김치 등을 살 수 있어요. 한국 음식 조리된 거 등 사서 먹고, 집에서 해먹기도 해요. 워크숍 때는 울란바타르에서 케이에프씨를 꼭 가지요. 울란바타르 워크숍 때는 한인마트에 들려 먹고 싶은 것을 사지요. 주로 닭발, 치즈돈까스, 떡볶이 등이 주 메뉴지요.

사회 : 1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면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혹 언제 그럴 때가 있었나요?

임 : 가족은 좀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진정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떨어져 있으니까 더 그립죠. 어머니와 가족 등 보고 싶을 때는 영상통화를 해요. 사소한 건데 주말에 저희 언니가 아빠랑 강아지랑 산책했다고 사진을 보내온 거에요. 소소한 일상에 제가 같이 못함에 아쉬웠던 적이 있어요. 한국가면 사랑을 많이 해야지 했으나 막상 오니…하하하

백: 저도 가족 단톡방에 사진 올라올 때 어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엄마랑 옷보러 많이 다녔는데, 그걸 못하니 보고 싶었어요. 몽골에선 실시간으로 옷 어떠냐고 카톡으로 물어보기도 했어요. 저보다 옷을 잘 고르셔서 엄마랑 같이 산 건 친구들이 다 이쁘다고 했어요. 그렇게 그립고 보고 싶고 했는데 막상 공항을 나와 차 타자마자 싸움이 시작되었어요. 이제는 안 싸울 거라고 했는데 만난 지 한시간만에… ㅎㅎㅎ

이: 주말에 밥을 혼자 해먹고 설거지를 할 때 엄마가 제일 보고 싶었어요. 집에 있으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저 혼자 다 할 때 가장 생각이 많이 났어요.

김: 집에서 혼자 음식 해먹을 때, 그것도 부실하게 해먹을 때, 집밥이 생각날 때 엄마가 보고 싶었지요. 부모님에게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집밥 생각날 때 자주 연락했어요.

사회 : 1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고 하겠지만 남들은 취업준비 할 때 홀로 척박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1년이 지난 후에도 후회하지 않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어떤 게 특히 도움이 되었나요?

김: 국장님 말씀대로 저희 또래가 취업으로 정신없을 때잖아요. 그 당시 4학년이 되어야 하는데, 삶이 지루하고 피곤했어요. 어떻게 보면 도피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목적은 달성했지요. 언제 대한민국의 25살이 봉사활동이라고 말하고 쉴 수 있겠어요. 몽골에선 봉사하고 나서 자유롭게 쉴 수 있었어요.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어요.

이: 저는 2년 동안 있었잖아요. 국내교육 받고 하면서 국제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세계가 뭘 중점적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어요. 파견된 이후에 다신칠링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현장에서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1년 후 울란바타르에서 행정업무를 보면서 실무능력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좋았어요.

백: 저는 그저께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어요. 친구들은 진짜 도서관에 살면서 취업준비를 하더군요. 다들 올해 처음 노는 거라고, 처음 화장하고 멋지게 꾸미고 왔다고 해요. 그때 저는 ‘너무 늦었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1년이 아깝지는 않았어요. 그 1년을 한국에서 보냈어도 취직은 안 됐을 것 같고. 지금은 당장 무엇이 이득인지, 좋았는지 잘 모르지만 지난 1년은 좋았어요.

임: 저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학생이 아니었고 일을 하다가 다 내려놓고 몽골에 갔어요. 갔다 와서 느낀 것이 몽골에서의 1년이 미래세대나, 몽골이나, 지구나, 나 외에 모든 것에 대해서 무감각하지 않았던 시간을 보냈어요. 그것만으로도 좋았고 감사했어요. 제가 작년에도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면 직장과 집을 왔다 갔다 했을 것이에요. 하지만 몽골에서는 못 만날만한 2000여명의 사람들을 만났어요. 모든 것이 감사해요. 몽골 갔다오니까 ‘에르덴에서도 버텼는데 무엇을 못할소냐’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한국에 오니까 무감각해지는 저를 보게 되는데 최대한 무감각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회 : 2017 파견단원들이 현재 합숙교육을 받고 있는데요, 이 분들이 이제 곧 몽골 현장으로 파견됩니다. 2017 파견단원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 ‘이 또한 지나가리다’. 힘들 수도 있고 있지만 마지막 에세이를 즐거웠어요 라고 썼어요. 분명 힘든 일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9명 모두 다 같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 진지하게 이쪽 분야를 고민하고 있다면 2년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일년 동안 배울 수 있는 거랑 2년 동안 배울 수 있는 것은 확연히 다르거든요. 1년이 1이라면 2년은 4만큼 배웠던 것같아요.

백: 단원분들 만났을 때 말했던 건데, 진짜 그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저희도 서울에서 들을 때는 진짜 힘들다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가서 살아보면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조림업무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은데 엄청 힘들다고 생각해야 그거보단 덜하니까. 너무 쫄지는 말고 무사하게 잘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임: 몽골을 가는 이유가 국제개발 가치냐, 회피냐를 떠나서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몽골에 가겠다는 다짐을 한 것부터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몽골에서 단원이라는 역할 자체가 주민들을 통제하는 역할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주민들이 우리보다 더 잘 알잖아요. 주민들과 함께 동화되고 재밌게 즐기다가 오라고 하고 싶어요. 중도귀국 없이 9명 다 잘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사회 : 귀국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것저것 할 일도 많을텐데 귀한 시간 내어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파견단원으로서 지난 1년 동안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 주신 것은 앞으로 몽골 파견단원을 꿈꾸는 미래의 자원봉사자 청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 배윤진 홍보국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