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2-[푸른아시아가 만난 사람]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묻혀선 안 돼

 

잘못된 대통령 한명으로 나라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전 국민이 ‘멘붕’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시중엔 온통 ‘순실이이야기’뿐이다. 이번 기회에 나라의 뿌리깊은 부패를 청산해야 하겠지만 또 하나 잊어서는 안될 사건이 있다.(어디 하나뿐이랴)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 사건은 집단피해, 연속성 피해라는 것이 그 중요도를 더한다.

2013년 경향신문에 입사한 후 환경전문기자로 지금까지 줄기차게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을 취재해 온 김기범 기자를 만났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역시 흐지부지 넘어갈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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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실이쓰나미’ 때문에 많은 중요한 이슈들이 묻혀 버렸습니다만 그래도 잊혀져선 안된 것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요?

“수사에 대한 마지막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이 10월 24일이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큰 사건 탓도 크지만 지금은 완벽하게 기억에서 잊혀진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봄 대학생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을 포함한 한국 사회가 냄비처럼 펄펄 끓다가 식는 것을 걱정하는 얘기를 했는데 그대로 되고 있습니다. 검찰은 환경부가 인정한 피해자들에 대해서만 조사하면서 그밖의 다수 피해자들의 눈물은 외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과학적으로 이미 피해가 인정되는 내용들임에도 불구하고 눈감고 있는 상태입니다. 책임을 방기했던 정부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면죄부 부여하고, 극히 일부 기업에 대해서만 죄를 묻고 근본적인 책임 지닌 SK케미칼 등 기업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이대로 가면 검찰이 어설프고, 무책임한 수사 결과 조금 발표하고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이후로도 수사는 이어지겠지만 사회적으로 잊혀져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습니다. 애초에 검찰은 2011년, 적어도 2013년에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야 했지만 책임을 방기한 바 있거든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묵인한 검찰 자체가 수사 및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국회의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특위에서도 이게 제대로 안 되었어요. 결국 시민사회의 꾸준한 문제 제기와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 응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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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피해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지난번 보도를 보니 영국 본사까지 가서 시위를 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요?

“피해자들 중 일부는 가해기업들로부터 다소 보상을 받고 끝내려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환경단체들과 같이 계속 싸우는 분들도 많은 상황이고요. 특히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아직 피해 인정 못 받고 있는 3, 4단계 피해자들은 안 싸울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천식, 폐렴 등 여타 질병 앓던 분들도 피해를 인정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 수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고, 가해기업과 정부를 대상으로 한 싸움도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도 보팔 사건의 경우 수십년 동안 법정 공방 이어지고, 아직도 보상이 다 끝나지 않은 것 감안하면 가습기 살균제도 몇 년짜리 사건이 아니라 수십년 이어질 사건입니다.”

 

–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해당 업체들은 현재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요?

“옥시를 비롯한 가해기업들은 돈 몇 억원으로 보상을 마무리 지으려고 혈안이 된 상태입니다. 9억원, 10억원 얘기도 나오는데 절대로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경향신문 독한사회 기획팀의 독일 탈리도마이드 피해자 취재 사례에서 보듯이 가해기업과 정부가 수십년 후까지 계속해서 피해자들을 지원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원죄가 있는 SK케미칼은 전방위적인 로비를 통해 책임을 면하려고 했는데 아마도 지금은 뒤에서 느긋하게 웃고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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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언론 중 지속적인 보도는 경향신문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1년, 2012년까지는 경향신문 보도도 다른 언론과 비슷했습니다. 그 이후 2012년 말, 2013년 초부터 2016년 초까지는 사실상 경향신문 외에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외면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대학원 학생(주로 언론인들임)들이 주요 언론들 대상으로 연도별 가습기 살균제 관련 보도가 어느 정도 있었나 헤아려보니 2015년까지는 경향신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향신문 보도가 다른 모든 언론사 보도를 합한 것보다 많을 정도였습니다. 단순보도 수는 물론이고 심층, 기획보도는 경향신문을 제외한 다른 언론에선 아예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카이스트 정문술과학저널리즘 대상을 받을 수 있던 이유에도 이 부분이 작용한 듯 합니다. 그나마 프레시안과 한국일보가 가습기 살균제 관련해 같이 보도를 했는데 한국일보는 파업 때문에 추진력을 잃어 후속보도가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 많이 아쉬운 부분이죠. 2016년 들어서 검찰이 수사 관련 내용 흘리기 시작하니까 다른 언론들도 쓰기 시작했고, 연간 수백건 정도였던 가습기 살균제 보도가 수만건 단위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기획, 심층 보도는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 검찰발 받아쓰는 기사들이어서 여전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천명이 넘게 죽은 참사에 대해 외면하던 언론사들이 검찰수사 내용이 새어나오는 것에 흥분해 달려들었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현실은 블랙코미디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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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도 문제지만 소비자들도 자세가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소비자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바람직한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기업에 대해 끊임없이 감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에선 악덕기업, 부패기업의 제품에 대해 유독 불매운동이 잘 안 되는데 선진국들처럼 불매운동으로 기업에 본때를 보여주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 외국의 경우 이러한 사건에 대해 정부나 기업, 또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요?

“독일 탈리도마이드 사례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1957년 서독의 그뤼넨탈이라는 제약회사에서 의사의 처방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진정제이자 수면제인 콘테르간이라는 약을 만들었습니다. 이 약은 입덧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어 임산부들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약의 부작용으로 사지가 없거나 짧은 기형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유럽에서만 1만8천여명, 전세계 48개국에서 1만2천여명의 기형아가 태어났습니다. 1961년 11월 독일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1962년 일본에서 판매금지 되기까지 5년간 사용이 되었지요. 그뤼넨탈은 2012년에야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독일 정부 경우 (약물)중독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피해자들에게 평생 치료와 정부 보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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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티슈 등 다른 제품에도 사용되고 있다고 하여 파문이 일기도 했는데 다른 제품들의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물티슈나 치약, 샴푸 등에도 포함되어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사실 언론에 보도된 것만큼 유해성이 높지는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정부나 기업이 항상 하는 얘기가 기준치 미만의 극히 적은 양이니 괜찮다는 논리라 의심은 해봐야 합니다. 과거에는 해롭지 않다고 했던 물질이 시간이 지나면서 유해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것 보면 안심해선 안 됩니다. 평소 친환경제품을 쓰고 환경 오염에 대해서도 다음세대를 위한 책임감으로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기범 기자는 2013년 1월 경향신문에 입사, 환경·생태 담당기자로 활약해 왔다. 2010년 ‘어디 사세요? – 주거의 사회학’ 2014년 ‘눈 앞에 닥친 원전 폐로’ 2016년 ‘독한 사회 – 생활화학제품의 습격’ 기획시리즈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가습기 살균제’ 보도로 201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문술과학저널리즘 대상 수상했다.

 

글 이동형 푸른아시아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