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2-[송상훈의 식물이야기] 멸종 위기의 한반도 침엽수

얼마 전 한 방송을 보았다. 급변기후변화로 인해 고사 중인 한반도의 침엽수와 전례 없는 폭우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울산 태화강, 예상 못한 우박으로 인해 피해가 심각한 과수농가, 쭉정이만 가득한 겉보기 풍년 벼농사 등 기후변화 심각성을 다룬 방송이었다. 한편 국회의원회관 한 곳에서는 구상나무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 멋진 나무 사진들 중에 허연 고사군락 현장도 있어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하여 이번 회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한반도 침엽수 현황을 살펴 보도록 한다.

거리엔 ‘박근혜 퇴진’ 함성과 함께 간간히 크리스마스 캐럴송도 들려온다. 문득 유년시절 부모님이 감춰둔 성탄선물을 찾던 설렘이 떠오르면서, 제과점 앞에 작은 불이 반짝이던 크리스마스트리도 떠오른다. 이 크리스마스트리의 대표종이자 가장 사랑 받는 나무가 구상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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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과의 늘푸른나무이며 높이 20m까지 자라고 가지 폭이 8미터에 이르는 수려하고 기품있는 나무인데 학명 Abies koreana WILS.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고유종이다. 유럽에서는 한국전나무(Korean Fir)라 불리는데, 침엽수이지만 짤막한 잎 끝이 부드러워 피부에 닿아도 찔림이 없다. 주로 한반도의 남부인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무등산, 가야산, 가지산, 금원산, 영축산 등 해발 1,000~1,800m 사이에 자생한다.

구상나무의 멸종위기는 1990년 경부터 보고 되었으며 2013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 위기종 적색 리스트에 올랐다. 최근 멸종 속도가 매우 빨라져 안타깝기 그지 없다. 기후변화에 민감하여 기후변화생물지표종이기도 한 구상나무는 75%가 한라산에 자생하는데 그 중 50%는 이미 고사했다. 지리산의 구상나무도 이미 30%가 고사했으며 나머지도 고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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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균 온도가 100년 전에 비해 0.89°C 상승한 것과 달리 한반도는 1.8°C나 상승하였다. 나무는 1°C 상승할 때 북쪽으로 150km, 고도로 150m 움직인다고 한다. 기온 상승에 따라 구상나무는 점점 북쪽으로 산 위로 떠밀려 올라가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면 꼿꼿이 말라 죽는다. 한라산 침엽수림대는 해발 1,700m 정도인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높은 곳으로 옮겨간 구상나무가 갈 곳은 더 이상 없다. 또한 온대식물에게 빼앗긴 자리에서 유목이 성장할 수 없기에 번식도 못하면서 급속히 사멸하고 있는 중이다.

혹자는 구상나무가 떠밀린 자리에 소나무가 자리잡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지만 소나무 역시 급속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선충 확산과 기후변화 속도를 좆아가지 못함으로 인해 제주도에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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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민감한 구상나무가 최대 피해수로 나타났지만,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등 백두대간의 분비나무도 집단고사 중이다. 분비나무는 구상나무와 자생지가 다를 뿐 거의 같은 나무로 보아도 무방하다. 분비나무 또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우리나라 멸종위기종이다. 최근 녹색연합은 사시사철 잎 푸른 상태를 유지하는 ‘아고산대’ 산림 생태계의 대표적인 침엽수인 분비나무의 멸종상태를 보고했다. 남한에서 분비나무가 가장 잘 발달한 곳인 설악산국립공원에서 주봉인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에서 분비나무가 집단고사 했음을 2015년에 확인했고, 오대산에서도 70%가 고사하고 나머지 30%도 고사 중이라고 밝혔다. 태백산에서도 고사한 분비나무가 60%에 달하고 50%는 고사 중이며, 소백산에서도 분비나무 절반이 고사하는 등 한반도 남쪽 백두대간에서 중요 침엽수림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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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비나무와 구상나무는 매우 유사한 나무이어서 구별이 어려운데 구상나무가 주로 남부에 자생하는데 비해 분비나무는 북부에 자생한다. 강원도, 경기북부, 충북, 경북 지역에 있는 구상나무 비슷한 개체는 분비나무라 봐도 틀리지 않다.

둘 다 전나무과인데 잎 끝이 오목하게 패이고 잎 뒤에 흰 기공조선(氣空條線)이 발달한다. 기공조선은 흰색 혹은 연초록색의 숨구멍의 모임이며 길게 형성된다. 주로 침엽수에서 볼 수 있는데 분비나무와 구상나무는 비교적 뚜렷하다. 잎으로만 보자면 분비나무에 비해 구상나무의 기공조선이 더 발달하여 더 희게 보이고 잎이 더 넓은 편이지만 구별이 쉽지 않다. 남쪽 지역 식물들이 잎도 조금 더 두텁고 다육성이듯이 분비나무 잎보다는 구상나무 잎이 더 거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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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의 주요 구별점은 솔방울 열매 겉면에 뾰족하니 나와 있는 포편이다. 전나무과는 솔방울(구 毬)이 하늘을 향해 달리는데, 분비나무는 포편도 하늘을 향한다. 반면 구상나무는 포편이 땅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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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비나무와 달리 구상나무는 솔방울이 붉은색, 검은색, 푸른색으로 다양하다. 따라서 붉은구상, 푸른구상, 검은구상으로 다양한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학명 Abies nephrolepis인 분비나무는 지구북반부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지만 구상나무는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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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분비나무나 구상나무 모두 분비나무로 불렸는데, 식물학자 윌슨(Wilson)이 포편의 방향이 다름을 알고 이름을 달리 정하였다. 제주도에서는 예전에 이 나무를 쿠살(성게)나무라고 불렀기에 구상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제주도 사람들이 성게를 비유한 것은 침엽잎이 가지를 돌아가면서 사방으로 뻗기 때문이다. 구상나무의 학명 Abies koreana WILS.의 WILS는 Wilson을 가리킨다. 이와는 다른 이유지만 전나무속의 나무들은 구(毬)과의 솔방울 열매가 위(上) 를 향하는 구상이다.

비단 구상나무나 분비나무만 고사하고 있는 게 아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이 정한 우리나라 멸종위기 7종에는 가문비나무, 주목, 눈측백, 눈향나무, 눈잣나무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두 심각한 속도로 고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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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것이 이뿐이랴. 녹색엽합에 따르면 이미 울진과 삼척 산림보호구역서 보호종이자 황장목, 춘양목, 적송으로 불리는 금강송이 기후변화로 인해 고사 중이라 한다. 한민족의 상징인 소나무가 고사하고 있다는 소식에 전세계 산림과학자의 이목이 쏠리기도 하였다.

침엽수가 기후변화에 취약함이 이전에도 증명되었다. 2009년에는 남부지역 8개 시ㆍ도, 71개 시ㆍ군ㆍ구에서 총 피해면적 8,416ha, 97만 4,000본(ha당 평균 116본)의 피해목이 발생했고, 특히 소나무 자생지 분포의 남한계선 부근인 경상남도에 피해가 집중됐다. 온난화 적응에 실패한 소나무가 고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무의 이동속도가 지구온난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좀 더 살피면,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량이 줄어든 영향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침엽수는 겨울철에도 잎이 달려있어 기온이 상승하면 생리적 활동이 지속되는 특성이 있기에 겨울가뭄으로 인해 수분결핍이 증폭되어 생리적 대사장애를 일으켜 고사하거나, 가뭄을 피하기 위해 기공을 닫게 되므로 탄수화물을 만들지 못하고 소비만 하게 돼 죽음에 이르게 된다. 결국 기후변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였으나 더 이상 옮겨갈 자리가 없고, 바뀐 환경으로 인해 수면 등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불면의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강수량까지 부족하여 고사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20여 년 사이 겨울철 평균 기온이 2도 가까이 오르고 적설량도 점차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백두대간의 산림 생태계 붕괴를 뒷받침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정책은 태만함을 넘어 무력하기까지 하다. 2015년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고산침엽수 모니터링 등을 포함한 기후변화 연구 관리 예산 책정은 고작 2억원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고산침엽수 관리를 위해 실질적으로 사용한 예산은 토양시료분석 1천만원밖에 없었다. 심지어 모니터링 조차 내부 전문가 역량이 부족하여 외부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지경이다.

지구의 산림면적은 육지 면적의 약 1/3에 불과하지만 지구 전체 광합성의 2/3가량을 담당하며, 육상 생태계 탄소의 80%와 토양 내 탄소의 40%를 보유하고 있다. 산림생태계의 주요 탄소저장고는 나무와 토양인 것이다. 숲을 잘 가꾸고 보전하면 나무와 토양에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지만 숲이 훼손되거나 온난화로 온도가 높아지면 나무와 토양이 저장할 임계치를 초과하므로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한반도 기후변화는 식물계에서는 당장 침엽상록수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종국에는 온대활엽수에게도 생태적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고, 최상위 군림존재인 인간은 더욱 가중된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사라져 가는 침엽수를 우리가 보존해야 하는 주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곧 연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세상이 혼잡하다. 당연히 물러나 자숙해야 할 박근혜대통령이 ‘혼이 비정상’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어 국민들은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허탈감에 시달리며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있다. 박대통령의 행보는 정치기류에 이상이 생겼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금까지의 정치기후에서는 형식적으로나마 염치와 도의와 도덕이 주요 바로미터로 작동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에서는 사익과 국익이 동치 되고 뻔뻔함과 헌정중단방지는 같은 행동양식으로 인식되면서 모든 정치지표가 오염되고 실종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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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이러한 기형적인 정치기후변화를 목도하면서 침엽수처럼 허망하게 고사 당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오만하게도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의 열망이 시들길 기대하지만 국민은 훨씬 현명하고 엄격하다. 대통령은 헌법질서를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유린한 주체로서, 국민의 촛불이 횃불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물러서는 최소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현 시국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대응과 더불어 대통령 자진 사퇴만이 기형적인 정치기후변화 종식을 앞당길 수 있음을 확인하며 이만 줄인다.

 

글 송상훈? 지속가능발전정책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