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1-[이천용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아름다운 숲 탐방기] 남원 황산대첩 기념 동산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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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숲으로 둘러싸인 황산대첩 기념지역

 

전북 남원에서 인월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 운봉을 지나면 마을 입구에 황산대첩비 라는 표지석이 있고 황산교회 정면으로 옛 도로 길가 전촌마을 입구에 소담한 소나무숲이 있다. 길이는 약 100미터, 폭은 10여미터로 길 쪽으로 비스듬하게 서있으면서 나무 하나하나가 만든 모습은 승무의 선과 같다. 수고는 10~15미터이고 직경도 30~50센티미터로 그리 크지 않기에 아담함과 경관미를 더한다.

입구의 소나무 한그루만 제법 크고 중간의 나무들은 수피도 붉다. 가운데 정자가 있고 그 주변에는 상수리나무 20여그루가 그늘을 준다. 숲 가장자리에는 새로 지은 집들이 소나무의 정기를 받고 있다. 과거에는 이곳에 하마비가 있어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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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전촌마을 입구의 소나무숲

 

람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오른쪽에는 황산아래 비전마을이 있고 왼쪽에는 황산 대첩비가 있다.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탯자리로도 유명하다. 동편제의 창시자인 송흥록과 여류 명창 박초월이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특히 송흥록은 역대 판소리 명창 중에서 가장 기량이 뛰어나 ‘독보건곤(獨步乾坤)’, ‘가왕(假王)’ 등의 칭호를 받았다. 그들의 생가터에는 판소리공원이 넓고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다.

표지석을 따라 비전마을로 진입하면 다리 건너 황산대첩비가 있다. 황산은 해발 695미터의 암벽으로 형성된 산으로 고려 우왕6년(1380년) 삼도통사인 이성계 장군과 여진 출신 의동생 이두란이 삼남을 휩쓸고 노략질하는 왜구의 수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아군보다 10배가 많은 왜구를 황산협곡에서 섬멸시켜 대승을 거둔 곳으로 황산대첩이라 부르며 이듬해 다시 이곳을 방문한 이성계는 자신과 휘하 장수의 이름을 암벽에 새겼으니 이것이 어휘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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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특이한 형태의 어휘각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던 근본적 힘은 원나라 지방 세력의 일부인 군사력에 있었다. 원나라가 약해지면서 그의 부친 이자춘은 집안의 군사력을 고려에 소속시켰다. 이성계는 탁월한 무력으로 변방을 뛰어넘어 중앙으로 진출했다. 이성계는 힘이 장사였다. 함흥에서 큰 소 두마리가 서로 싸우는데 불을 붙여 던져도 말리지 못했으나 이성계가 양 손으로 두 소를 붙드니 더 이상 싸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동각잡기(東閣雜記)에 전할 정도다. 삼국사기는 활 잘 쏘는 사람을 부여말로 주몽이라고 했다는데, 이성계가 바로 ‘고려 말의 주몽이었다’라고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우왕 3년(1377년) 경상도 원수 우인열이 이성계와 서청에 마주 앉았을 때 쥐 세 마리가 처마를 타고 달아났다. 이성계가 아이에게 활과 고도리(高刀里:작은 새를 잡는 데 쓰는 살) 세 개를 가져오게 하고는 “맞히기만 하고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나온 쥐를 쏘니 화살과 함께 떨어졌으나 죽지 않고 달아났으며, 다른 두 마리도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가 태조실록 총서에 전한다.

이성계는 우왕 6년(1380년) 전라도 운봉에서 왜적을 물리치면서 남방 백성들에게까지 무명(武名)을 날린다. 선조 8년(1575년) 전투 현장에 황산대첩비를 세우는데, 대제학 김귀영은 비문에서 “성스러운 무력의 크고 맑은 공이 높고도 넓으셔서 만민이 영원히 의지하게 되었다”라고 이때의 승전으로 만민이 의지하는 천명이 내렸다고 말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도 황산대첩비를 읽고서(讀荒山大捷碑)라는 시에서 “이 거사로 한밤중 골짝에 있던 배 이미 자리 옮겨/위화도 회군할 때를 기다릴 것도 없었도다(此擧夜壑舟已徙/不待威化回軍時)”라고 노래하고, 황산대첩비 발문에서는 “신무(神武)로써 승리를 거둔 것이지 인력(人力)이 아니다”라며 천명의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운봉전투로 이성계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지만 조선왕조의 시조가 된 것은 천명 때문은 아니다. 개국에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했고 그 이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이 필요했는데 무인인 자신보다 학자가 만들어야 함을 알았다. 이성계는 정도전이라는 지식인이 이러한 이념과 정책이 있음을 확신했다.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 부록에는 ‘우왕 9년(1383년) 가을 정도전이 함경도 함주에서 동북면 도지휘사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라고 은근히 말했다. 이성계가 “무엇을 뜻하는가?”라고 묻자 “왜구를 동남방에서 치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답했지만 그 의미가 개국을 뜻한다는 것은 서로 알아차렸다. 이때 정도전이 ‘소나무 껍질을 벗기고 쓴 시’의 마지막 구절이 “인간을 굽어보면 문득 지난 일이네(人間俯仰便陳)”라는 것이었다. 용비어천가와 삼봉집 등은 ‘태조에게 천명이 있음’을 빗긴 말이었다고 전한다.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가니 작은 일에 구애받지 말고 대사를 이루라는 뜻이다. 이성계의 군사력과 정도전의 이념이 결합되면서 조선왕조의 개국으로 이어진 것이다.

 

1945년 1월 일제는 한민족 문화말살 정책에 의하여 일제 경찰이 황산대첩 비문을 완전히 지운 후 폭파하였다. 광복이후 폭파당시 흩어졌던 파편들을 모아 화수리에 황산대첩비각을 재건하였는데 어휘각과 대첩비는 그 잔해만이 남아있고 깨진 대첩비는 정각 안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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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대첩비각과 파비각

 

운봉 일대에는 황산대첩과 관련한 지명이 많이 유래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피바위, 인월, 군마동, 인풍리 등이다. 피바위는 황산대첩비에서 인월로 가는 길목에 있는 남천변에 있는데 당시 왜구들이 흘린 피로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하여 붙인 것이며, 인월은 날이 저물어 도망가는 왜구를 쫓아 달을 당겨놓고 밤늦게까지 싸워 전멸시킨 것에 유래하였고, 인풍은 이성계가 바람을 몰고 다니며 싸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산 부근에는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토성이 있고, 당시 군대가 주둔할 때 말을 매어 놓은 곳은 군마동이라 하였다.

하천을 건너면 바로 정원처럼 만든 한 귀퉁이에 서어나무 등 활엽수집단이 나오고 전면에는 황산대첩비가 있는 삼문(三門)이다. 문으로 들어가면 대첩비가 있는 3개의 건물과 담장 위 동산에 숲이 보인다. 절반으로 나누어 왼쪽에는 소나무숲이고 오른쪽의 앞에는 소나무, 뒤에는 활엽수가 동산위에서 커다란 키를 자랑한다. 숲 위로 두루미 다리와 날개를 힘껏 뻗고 비상하는데 앞의 개천에서 먹이를 얻고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것 같다. 까치들도 얼마나 울어대던지 시끄럽게 숲의 정적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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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인적이 드문 황산숲

 

건물을 나와 왼쪽 담 끝에는 흔치않은 모양의 어휘각이 있고 그 옆에 숲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바로 키 20미터, 직경 50~60센티미터의 소나무숲이 나온다. 대부분 곧게 크고 수피가 붉은 것들도 눈에 띤다. 특히 중앙의 반듯한 수관을 가지고 붉은 광채가 나는 소나무 한그루가 마치 태조 이성계를 연상하듯 대단한 위용을 가졌다. 능선 중앙에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오롯이 길이 나있고 양쪽 가파른 비탈에도 수직으로 선 나무들이 많아 대단하다.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수피와 잎 모두 건강한 형태로 위풍당당하다. 멋진 소나무 수백그루가 펼치는 가지들은 이리저리 비틀며 마치 향나무 가지와 같다. 소나무들의 춤과 향연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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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황산의 소나무숲

 

아래 건물들이 한눈에 보이며 중간쯤 가면 활엽수로 바뀌고 조릿대가 하층을 뒤덮고 있어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 정도다. 갑자기 숲길 가운데 커다란 식수탑이 있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서 잠시 황당했으나 참나무숲을 보려고 조릿대사이로 가는 것도 잠시뿐 더 이상 길이 없다.

참나무숲은 직경은 30센티미터로 부근의 소나무들과 같은 굵기이다. 이 숲은 양쪽 벌판에 우뚝 솟은 곳에 위치하므로 바람이 불어 엄청 시원하나 평지로 내려오면 바람은 간 곳 없다. 원래 어휘각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초입의 소나무숲만 감상하고 되돌아 나오던지 식수탑 아래의 마을로 가는 길을 지나 먼당숲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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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황산대첩비가 있는 겨울숲

 

먼당숲은 황산대첩기념숲 뒤 넓은 벌판에 있는 숲이다. 마을을 둘러싼 산 능선의 아랫부분에 앞산인 황산(荒山)이 주로 바위로 덮여있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하여 마을과 황산 사이에 소나무와 개서어나무숲을 조성한 것이다. 먼당 숲은 형국상 좌청룡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하는데 아래쪽은 개서어나무를, 위쪽은 소나무가 있다. 개서어나무나 소나무 모두 상당한 나이를 가지고 있으며 별로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잘 보전되고 있으나 주변에 감나무밭과 경쟁을 이루어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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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먼당숲에서 바라본 황산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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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먼당숲의 개서어나무숲(좌)과 소나무숲(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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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마치 우주를 보는 듯한 200년 이상 된 소나무의 위용

 

글/사진 : 이천용 푸른아시아 기획이사·나무와숲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