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0-[이천용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아름다운 숲 탐방기] 조지훈 시인의 영양 주실마을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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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주실마을 전경. 중앙에 현대식 교회가 서 있다.

영양은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접근하기가 어렵고 특별히 자연 풍광 외에는 볼만한 곳이 적어 한적한 곳이다. 덕분에 도시를 벗어나 농촌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1972년 겨울 일월산 정상에서 군복무를 한 적이 있는데 어찌나 춥고 멀던지, 그리고 휴가 때 열차를 타면 객차 안에 석탄 난로를 때서 난방을 했던 추억이 생생하다.

안동을 거쳐 영양읍에서 북쪽으로 10킬로미터쯤 올라가면 주실숲머리의 거대한 느티나무와 활엽수에 의해 컴컴해진 도로를 지나면 주실마을이 보인다. 산 아래 일자형으로 늘어선 마을은 멀리서 보아도 명당임이 느껴진다. 마땅한 주차장이 없어 넓은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마을 중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을로 들어간다. 옥천 조덕린 선생의 종택 뒤의 자그마한 동산에는 백여년 된 소나무 한그루가 온 마을을 굽어보며 지킨다. 수고는 약 9미터로 크지 않으나 수관이 넓게 자리잡아 좌우대칭이 균형을 이룬 아름다운 소나무다.

옥천 종택을 둘러보면 그 안에 우물이 한 개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마을은 배 형국이라 마을에 우물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다고 하여 아무 곳에나 우물을 파지 못하게 했으며 옥천이 사는 종택에만 우물을 파서 식수를 해결하였다. 종택 문앞에 서서 고택을 바라보며 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마을사람들은 문필봉과 연적봉을 향하여 대문을 내면 출세할 수 있다는 풍수설에 의해 그 방향으로 대문을 설치했으나, 옥천만은 벼슬의 길을 포기하고 오직 학문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로 동쪽으로 대문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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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옥천종택 입구

 

옆길로 나가 산쪽으로 오르면 조지훈 선생을 기념한 광장과 그의 시를 새긴 돌들이 길옆에 서 있다. 서정이 넘치는 시 하나하나 읽어 가면 지훈의 시 세계로 빠져든다. 내려올 때는 다른 샛길을 택한다. 마을 중앙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교회가 전통방식의 종탑이 불균형을 이루며 아담하게 마을의 구성원으로 충실하다.

주곡리 주실마을은 북부 영남권에서 가장 일찍 개화를 받아들인 대표적인 마을이며 한양 조씨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오지 중의 오지였던 일월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이곳에 마을을 만든 사람은 조광조의 14대손인 조전이다. 그의 집은 원래 한양이었으나 기묘사화 이후 1629년 이곳에 정착하였고 증손자인 조덕순과 조덕린이 대과에 오름으로써 명문의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조덕린은 영조 때 당쟁폐해에 대한 상소문을 올린 후 반대파의 공격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가족들은 귀양을 가는 등 주곡마을은 졸지에 역적마을로 변해 출세길이 막혀 버리자 자연히 학문에만 힘쓰게 되었다.

주곡마을이 역사의 흐름 속에 획기적으로 발전한 계기는 1899년 자발적으로 단발령을 받아들인 것이다. 조병희는 독립협회 무렵 서울의 개화바람을 보면서 고향 청년들을 서울로 불러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하였고 이 영향으로 후손들은 서울, 일본, 중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개화운동의 중심은 조덕린의 후손과 마을사람들이 세워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한 월록서당이었다. 개화운동이 지속됨에 따라 1910년대 노비제도를 폐지하였고 종손의 과부를 재가시켰으며 창씨개명을 반대하였다. 특히 마을 한복판에 교회를 세운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입향조 조전의 11대손인 조지훈 선생은 청록파시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생가는 한국전쟁 때 일부 소실되었으나 새로 복원하였다. 조지훈의 본명은 동탁이며 엄격한 가풍 속에서 월록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39년 ‘고풍의상’ ‘승무’, 1940년 ‘봉황수(鳳凰愁)’로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자연과 풍물을 소재로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시풍에 담았고,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1946년 시집 청록집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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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새로 복원한 지훈 생가

 

얼마 전만 해도 주실마을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집들이 많았고 농촌사회가 그렇듯 청년들이 마을을 떠나 옛 마을의 명성만 있었지 황폐하고 스산하였다. 그래서 ‘들을 주실이지 볼 주실이 아니다’라는 말도 나왔고 멀리서 보는 것만 아름다울 뿐 자세히 옛 모습을 살필 동네는 못 되었다. 그러나 조지훈 덕분에 문화마을이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단장하였고 그를 기리는 문학관도 만들어 매년 큰 행사를 하고 있다. 또한 마을 오른쪽에는 지훈 시공원을 만들어 중앙에는 그의 동상과, 산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그의 시가 적힌 시비들이 줄지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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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조지훈의 시를 적은 시비

 

주실마을로 들어가기 전 거쳐야 할 곳이 주실숲이다. 주실숲은 국도변 좌우에 위치한 전형적인 활엽수림이며 주곡마을에서 물이 나가는 것이 보이면 좋지 않다는 풍수설에 따라 조전이 입향한 후 입구에 숲을 조성하고 방목과 벌채를 금하였다. 도로가 휘는 곳엔 1982년에 지정한 250년생 느티나무 보호수 한그루가 있는데 지상에서 60센티미터 부분에 두개로 뻗은 줄기의 직경이 각각 1미터와 0.6미터나 될 만큼 거대하다. 이 느티나무가 수문장처럼 서서 이곳을 찾아온 과객을 먼저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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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주실마을 입구의 주곡숲

 

때때로 승용차가 질주할 뿐, 인적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고요하고 한가로운 도로변의 나무와 숲과 맑은 하늘이 그림 속에서나 볼 수 있을 ‘시마을’의 배경을 그려내고 있다. 이곳에서 시인 한 사람 나오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상할 지경이다. 산 아래 절벽은 색색의 바위로 치장하고 그 아래 깨끗한 물이 흐르는 경관이 수려한 곳에 숲이 조성되었다. 산에는 천연의 소나무들이 울창하고 가끔 멋진 고사목들이 보인다. 강둑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10여 그루가 줄지어 강쪽으로 가지를 마음껏 수평으로 뻗어 공간을 누빈다. 활엽수 가운데 아주 드물게 서 있는 키 큰 소나무들은 붉은 수피를 가지고 있어 금강송과 유사하다. 직경이 60센티미터나 되고 튼튼한지 수관도 꽤 많이 차지하고 잎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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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주곡숲을 관통하는 개울로 인해 숲이 풍성하다.

 

강은 상식을 벗어난 보 설치로 그 아래는 넓고 물이 많다. 보는 물의 흐름을 저지하는 기능을 갖게 하려고 하천에 직각으로 설치하나 이곳의 보는 완전히 비스듬하게 설치하여 오히려 강폭을 넓혔다. 고기를 사냥하던 해오라기가 인기척에 놀라 비상한다. 강바닥은 편평한 돌이 물과 물 사이에 있어서 앉아 쉬기에 적당하고 강변의 침식을 막기 위해 설치한 돌망태는 이끼를 흠뻑 머금어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숲의 구성원인 아까시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도 거목으로 발전하였으나 키는 대부분 비슷하다. 하천이 크게 휘는 곳에는 숲 사이로 조그마한 수로가 물을 내보내게 하고 바닥은 낙엽으로 푹신하다.

느티나무 보호수 옆으로 걸어 들면 숲속 작은 공간에서 조지훈 시비를 만날 수 있다. 검은 바탕에 펜으로 그어 놓은 듯 희미한 서체로 그의 시 ‘빛을 찾아가는 길’이 새겨 있다. 1981년 장남 조광렬의 설계로 세웠다는 시비에 널리 알려진 ‘승무’ 대신 이 시를 넣은 것에 잠시 의아했으나 시를 읊조리면 위대한 시인 조지훈과 함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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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주곡숲속에 있는 조지훈 시비

 

빛을 찾아가는 길
(전략)
돌부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보자.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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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지훈 시공원 초입에 있는 승무 동상과 시비

 

활엽수림 건너편엔 주곡숲이란 명칭의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뒤로 미끈한 소나무들이 바위에서 큰 키를 자랑한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환경은 세월이 지나도 다른 나무들이 침범할 수 없었기에 그 숲이 유지되었다. 절벽 앞 평지는 전나무와 느티나무로 소공원을 꾸며놓고 조동진의 명시 ‘국화’를 새긴 시비를 배치했다.

3미터 절벽 위의 소나무숲을 보려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절벽바위에 뿌리를 박고 견디는 느티나무들을 본다. 흙이 조금밖에 없어 기울어진 나무도 있으나 바위에 뿌리내린 나무는 오히려 꼿꼿하다. 숲 밖에서 보니 벼랑에 선 소나무는 강송처럼 수직으로 높게 뻗기도 하고 구불거리기도 한데 수피는 금강송 고유의 색을 띈다. 수관에서 뻗어 나오는 가지들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더 이상 오를 수 없음을 한탄하거나 시위한다. 딱따구리 두 마리 중 한 녀석은 집을 짓느라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고, 또 한 녀석은 다른 나무에 매달려 먹이를 찾느라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숲을 울린다. 가시넝쿨 때문에 숲으로 들어갈 수 없어 아쉽다. 소나무의 사는 공간이 작으면 주변의 아까시나무나 참나무류를 베어야 할 것이다. 역사성이 높은 주실숲은 길을 중심으로 한쪽은 활엽수림이요, 한쪽은 소나무숲이므로 두 종류의 숲을 잘 보전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끝으로 조지훈의 시 ‘낙화’를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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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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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었다 몰래 지는
고운 마음을
흰 무리 쓴 촛불이
홀로 아노니
꽃 지는 소리
하도 하늘어
귀 기울여 듣기에도
조심스러라.
두견이도 힌목청
울고 지친 밤
나 혼자만 잠들기
못내 설어라.

 

글: 이천용 푸른아시아 기획이사・나무와 숲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