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9-[이천용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아름다운 숲 탐방기] 설악산 권금성의 희귀한 잣나무숲

설악산국립공원은 4만헥타르의 광대한 면적에 수많은 동식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며, 수려한 경관자원을 가지고 있다. 최고봉인 대청봉은 해발 1708미터로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으며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서쪽의 마등령과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설악산맥, 서쪽의 귀때기청 대승령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 북동쪽의 화채봉과 칠성봉으로 이어지는 화채능선 등 3개의 주능선으로 지형을 구분한다. 능선을 경계로 서쪽은 내설악, 동쪽은 외설악으로 부르며, 대표적인 암석경관은 호박바위, 기둥바위, 넓적바위, 공룡능선, 용아장성, 울산바위 등이다. 또한 십이선녀탕, 구곡담, 천불동계곡 등 다양한 폭포와 수많은 계곡에 있는 작은 웅덩이는 숲과 조화되어 감탄할만한 색과 형태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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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안개에 휩싸인 가을 설악산의 위용

 

 

악산 일대는 1965년 천연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되었고 1982년 UNESCO에 의하여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설정되었다. 설악산에는 설악조팝나무를 비롯하여 94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는데 북방계 식물인 눈잣나무의 남한계선인 동시에, 남방계 식물인 때죽나무의 북한계선이다. 희귀한 침엽수로는 눈잣나무, 눈측백, 눈향나무가 있다.

눈잣나무는 만년송 또는 혈송이라고도 한다. 높은 산에서 키 4∼5미터, 직경 15센티미터 정도로서 옆으로 자라지만 평지에서는 곧게 자란다. 나무껍질은 검은빛을 띤 갈색이다. 어린 가지에 부드러운 털이 빽빽이 난다. 잎은 5개씩 달리고 길이는 3∼6센티미터이다. 꽃은 6∼7월에 피고 종자는 식용한다. 관상용으로 많이 쓴다.

눈측백(Thuja koraiensis)은 찝빵나무 또는 천리송이라고도 한다. 산중턱이나 계곡에서 자라며 키 10∼20m, 직경 20∼30cm이다. 나무껍질은 잿빛을 띤 붉은색으로 얕게 갈라진다. 잎은 비늘 모양으로 끝이 뭉뚝하고 길이 2∼2.5밀리미터이다. 잎의 앞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노란빛을 띤 녹색으로 2개의 뚜렷한 흰 줄이 있으며, 향기가 강하다. 꽃은 5월에 핀다. 열매는 구과로 9월에 익으며 타원형이고 짙은 갈색이며 익으면 벌어진다. 열매 하나에 5∼10개의 종자가 들어있다. 관상용이나 약용, 향료로 쓴다. 학명을 보면 우리나라 고유 특산종임을 알 수 있다.

눈향나무는 참상나무 또는 눈상나무라고도 한다. 높은 산의 바위틈에서 자란다. 줄기가 비스듬히 서거나 땅바닥으로 벋는다. 향나무와 비슷하나 옆으로 자라고 가지가 꾸불꾸불하다. 잎은 어릴 때는 날카로운 바늘잎이지만 섬향나무처럼 찌르지 않으며 늙으면 비늘잎만으로 된다. 꽃은 5월에 피며 열매는 구과로 다음해 10월에 익는다. 달걀 모양의 종자가 1∼3개씩 들어 있다. 관상용으로 쓴다.

설악산은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구분할 때 외설악 관광 중심지는 속초에서 접근하는 설악동이다. 특히 여름 휴가철이나 가을 기암사이로 단풍이 들면 시원함과 절경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때는 밑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나 택시를 타고 들어와야 하는 불편이 있다. 가장 아름답고 단풍의 시작점인 설악산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주변에 많은 볼거리와 편의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쉽게 오르고 높은 산의 정취를 알기 좋은 곳이 외설악 입구에서 가까운 권금성이다. 논란 속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자연은 손상되었지만 산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노약자들과 바쁜 사람에게는 정말로 좋은 코스이다. 해발 200여 미터의 설악동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는 해발 약 700미터 권금성까지 5분 만에 닿는다. 산 아래서 일부만 보이는 뾰족뾰족한 산과 커다란 암석이 순식간에 눈앞에 펼친다.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기껏 높이 올라왔는데도 아래를 볼 수 없지만 날씨만 괜찮으면 한국 최고의 자연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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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설악산 숲과 계곡

 

케이블카에서 내려 편안한 나무 계단과 암석 지대를 지나 해발 850미터의 봉화대를 오르기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구름, 계곡, 산, 수관 모두 발아래에서 스쳐 지난다. 계단을 타고 오르는 길은 안전하지만 좁아서 두 사람이 간신히 교차한다. 위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의 흰빛 속에 녹색의 잣나무들이 간간히 서 있고 바위에서 쉬며 산 아래를 보면 잣열매가 달린 잣나무가 코앞에 있고 저 멀리 활엽수가 산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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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수백년 된 잣나무에 열린 구과

 

나무 계단 지나서부터 반대편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일렬로 줄지어 앞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곧 권금성에 닿는다. 바위는 생각보다 넓어서 좁은 길을 채웠던 사람들을 다 풀어놓아도 붐비지 않는다. 그러나 단풍철이면 시간을 잘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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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민낯을 드러낸 권금성 바위를 오르는 사람들

 

권금성은 권(權)씨와 김(金)씨인 두 장사가 난을 당하자 가족을 피신시키기 위해 지은 성이라고 전해지며 고려 고종 41년 몽골이 쳐들어왔을 때 백성의 피난처로도 쓰였다고 한다. 권금성의 바위에는 주로 잣나무가 산다. 수고는 4미터 이하이고 직경도 30센티미터로 작지만 뿌리들은 문어발처럼 여기저기를 비집고 흙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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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모진 바람에도 꿋꿋한 잣나무

 

잣나무(Pinus koraiensis)는 학명에서 보듯이 한국이란 이름이 있어서 우리나라 특산임을 알 수 있다. 특산수종은 예부터 이 땅에 사람들과 함께 생활해온 중요한 나무이다. 주변에 흔한 잣나무는 상록의 침엽수로서 10~15년생부터 열매를 맺으며 500년까지 사는 것도 있다. 보통 한 송이에 100개의 잣이 들어 있다. 역사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에는 잣이 귀하여 중국에 보낸 공물 속에 해송자(海松子)가 들어 있었다. 해송자란 잣나무의 과실인 실백(實柏)이며 해송자를 생산하는 나무는 특별히 신라송(新羅松)이라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잣나무가 네 차례 나오는데, 잣나무의 신의를 비유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신라시대 신충과 효성왕 사이에 잣나무를 사이에 두고 한 언약에서 등장한다. 효성왕은 왕이 되기 전 선비인 신충과 함께 대궐 뜰의 잣나무 그늘아래에서 바둑을 두다가, 내가 왕이 된 후에 그대(신충)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가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다. 훗날 왕위에 오른 효성왕이 공신에게 상을 줄 때 신충을 잊어버리자, 신충은 이를 원망하여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였더니 잣나무가 갑자기 말라 버렸다. 왕이 이를 이상히 여겨 조사하였더니 신하가 잣나무에 붙인 노래를 가져다 왕께 바쳤다. 이에 왕이 신충을 불러 벼슬을 내리니 잣나무가 다시 살아났다.”

권금성은 잣나무가 좋은 땅에서만 자란다고 알고 있는 상식을 깬 현장이다. 뿌리는 바위를 쪼개고 그 속에 들어앉아 어떠한 강풍이 불더라도 넘어지지 않는다. 둥글게 생긴 바위에는 소나무도 많다. 바위 군데군데 산재한 잣나무 그리고 바위 끝에 집단으로 있는 소나무들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형태로 한쪽면 끝에만 작은 잎을 달고 있는 특이한 형상이다. 이 나무를 편향수라고 부른다. 암석사이의 작은 흙에 물과 양분이 있을 리 없으니 잎의 길이가 짧을 수 밖에 없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에서 수분증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줄기와 가지 그리고 잎 모두가 작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암석에서 자라는 잣나무의 생존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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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바람이 만든 잣나무 편향수

 

권금성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새롭고 신기한 경관을 만든다. 바위와 그 위에 숲을 이룬 나무들이 과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척박할 뿐만 아니라 바람은 또 얼마나 센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에도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잣나무는 좋은 토양에서만 자라는 나무임에도 굳건한 생장을 하고 있다. 건너편 활엽수 사이에 진초록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잣나무들은 안개가 날라다 준 수분으로 싱싱하지만 권금성 바위에 선 잣나무들은 사람들의 간섭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말도 안 되는 바위 환경에서 자라는 잣나무는 한번 사라지면 절대로 복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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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어마어마한 바위 틈과 그 위에서 자라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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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활엽수 사이로 우뚝 솟은 잣나무들

권금성에서 내려오며 양쪽에 도열한 잣나무를 자세히 드려다 보고 그 안쪽에 숲의 마지막 단계라고 하는 극상림의 표본인 서어나무숲을 보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그저 앞사람 등만 쳐다보면서 내려가지 말고 중간 중간 바위에 앉아 산과 숲을 바라보고 잣나무에 달린 신기한 구과도 보면서 자연을 만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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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숲의 마지막 단계로 안정된 서어나무숲

 

케이블카 타는 곳을 지나 좁을 길 따라 내려가면 바위에서 황홀한 군무를 펼치는 소나무들이 보인다. 어떻게 소나무들은 바위에서 수백년 동안 자세를 가다듬으며 춤을 추는 형상으로 서 있을까? 과거에는 흙이 있었는데 비바람에 다 씻겨 내릴 것을 알고 뿌리를 바위틈에 넣고 미래를 대비하였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수백년 전에는 이곳에 틀림없이 흙이 있었을 것이고 소나무들은 그 위에서 편하게 자랐을 터인데 갑자기 폭우가 와 얕은 흙을 다 가져가버렸고 지금은 바위만 남았을 것이다. 70미터쯤 아래에 안락암이라는 암자가 소나무들에 싸여 있고 학이 춤추는 형상을 가졌다는 800년 된 무학송(舞鶴松)이 있다. 보통의 사진기로는 도저히 전체를 담을 수 없는 크기로 한쪽에만 가지와 잎을 단 채 유유히 서 있다. 주변의 소나무들은 모두 이 나무를 닮아 군무를 추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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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800년의 세월을 바위에서 보낸 무학송

 

오래 전 설악산을 사랑하는 이가 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았다. 권금성은 케이블카가 놓여있어서 과거에 숲을 이루었던 곳이 파괴가 되어 바위로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출입을 금지하여 자연을 보전하는 것과, 숲이 일부 훼손되더라도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면서 은근히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을 비교한다면 과연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까? 그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