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8-[대학생 기자단-김한올] ‘과잉 생산-소비-욕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 서평
『낭비 사회를 넘어서
ㅡ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 민음사, 2014
계획적 진부화란 새로운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기술을 지칭한다. 저자는 이 낯선 개념을 그의 일상에서 이끌어내어 발전시킨다. 컴퓨터 수리점에서 그는 자신이 사용하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애초에 3년 정도의 수명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비단 저자의 경험만이 아니다. 핸드폰에서부터 청소기, 토스트기, 프린터기와 같이 다양한 기계들은 부여된 ‘수명’이 다하면 고장이 난다. 기계의 부재 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은 곧바로 새로운 제품을 구입한다.
그러나 반드시 고장이 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물건이 손도 못쓰게 될 정도로 성실히 사용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우리는 대부분 고장이 나서가 아니라, ‘고장이 날 것 같기’ 때문에 새로운 물건을 구입한다. 그리고 실제로 망가진 기계를 고치는 것보다 새 것을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인 경우가 있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결국 이 모든 것이 소비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계획적 진부화는 성장에 중독된 생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은 곧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개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욕망하도록 부추긴다. 이때 ‘무엇’은 중요하지 않다.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즉각적이고 다발적인 소비이지 욕망의 대상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은 생각하기를 멈추고 빠르게 소비하여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하나의 미덕이 된다.
인터넷 창을 여는 것과 동시에 쏟아지는 쇼핑몰 광고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소비 양상을 잘 보여준다. ‘11번가’ ‘위메프’ 등과 같은 소셜커머스(우리말 순화어로 ‘공동할인구매’라고 일컫기도 한다) 쇼핑몰의 특징은 제한된 양의 상품이 빠른 시간 안에, 기존의 가격보다 싸게 구입된다는 것이다. 상품의 수량이 정해져있으므로 소비자는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물건을 구입해야 한다. 이때 물건이 정말로 필요할까와 같은 고민은 금물이다. 3초 안에 결제를 할 수 있는 간편 결제의 등장은 쉽고 빠른 현대의 소비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쪽에서 물건들이 빠르게 소비된다면 다른 한쪽에서 이것들은 빠르게 버려진다. 자원 고갈은 가속화되고 산업 폐기물 역시 빠르게 쌓여간다. 이 엄청난 양의 쓰레기는 고스란히 ‘제 3세계’가 떠맡아야하는 환경문제가 된다. 생태 위기뿐만이 아니다. 인간 역시 인위적인 욕망과 소비의 노예가 된다.
저자가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계획적 진부화가 결국 인간의 진부화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낭비 사회를 넘어서』에서 저자는 계획적 진부화를 소개하고, 개념의 역사적인 배경과 계획적 진부화의 영역을 제시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계획적 진부화가 도덕적인가를 물으며 사회 윤리와 진부화를 연관 짓는다. 『낭비 사회를 넘어서』는 우리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성장담론, 그리고 그와 함께 이루어지는 무분별한 소비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줄 것이다.
글 : 김한올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