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8-[이천용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아름다운 숲 탐방기] 이승만 대통령과 고성 화진포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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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화진포의 성에서 바라본 풍경

 

태백산맥 동쪽 해안은 서쪽 내륙지방과는 다르게 한여름에도 가끔 가을처럼 시원할 때가 있다. 젊은 사람들은 해수욕을 하느라 더운 날에 바닷가를 찾지만 일기예보를 보고 시원한 날 동해 최북단에 있는 화진포를 가면 바다와 숲, 나무, 호수, 음식, 역사 문화적 자원이 풍부하여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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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화진포해수욕장과 해안

 

설악산을 넘어 해안을 따라 갈 때 길가에 선 비범한 소나무들은 여행을 즐겁게 해주는 커다란 요소이다. 차창으로 보이는 강원도 소나무의 위상은 아무리 보아도 대단하다. 화진포 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놓고 바다로 나가면 곧바로 특유의 비릿한 바다냄새가 코를 자극하지만 싫지 않다. 넓게 펼쳐진 바다를 가로막는 철조망속에서 넘푸른 파도가 백사장으로 밀려오면 마음이 시원하다. 바다를 끼고 오른쪽 산에 화진포의 성이라고 하는 독특한 건물이 숲안에 있다. 올 때마다 나무가 생장하니 점점 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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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소나무숲속의 화진포성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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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화진포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주변의 소나무

 

솔숲사이로 일부만 보이는 건물은 계단으로 올라갈수록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데 1937년 독일의 웨버 선교사가 건축하여 교회로 쓰다가 1945년 김일성의 별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건물 양쪽의 소나무들이 건물의 독창성 더욱 빛나게 하는데 아마 노출되었더라면 그렇게 멋지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변의 소나무들은 키가 15미터 정도이고 직경도 30센티미터 내외지만 비탈 아래쪽에 보이는 소나무들은 두배나 굵고 키도 25미터나 되는 것은 아마 80년은 되었을 것이다.

성 꼭대기에 올라서면 톱니바퀴같은 성벽사이로 바다와 섬과 솔숲과 그리고 배후의 맑은 호수 그리고 멀리 안개에 가린 산들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자연의 힘을 배가시킨다. 금구도와 멀리 북한의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설명한 안내판을 보며 과연 그들이 저곳에 있는지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옥녀봉 1423미터, 상등봉 1229미터의 봉우리들이 아련하게 눈에 찬다. 눈을 돌려 호수 뒤편의 산을 보면 구름과 산이 맞닿아 봉우리의 둘쭉날쭉 없이 지평선을 긋는다. 희미함 속에서 통일성을 찾고 각각의 요소는 개별성을 보인다. 성 배후의 소나무숲에는 산책길을 능선따라 길게 만들어 간성의 등대까지 연결되어 있다. 비탈에 선 소나무가 몽돌로 쌓은 성쪽으로 가지를 내어 손으로 잎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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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요새처럼 생긴 화진포의 성 꼭대기

 

성을 내려와 완만하게 돌아서 내려가는 길가에는 소나무들이 가득한데, 금강송이라고 자부심 강하게 쓴 안내판을 보며 나무에서 풍기는 강직함을 맛본다. 숲으로 덮인 길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소나무들의 자태를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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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가의 100년된 소나무의 자태

 

성위에서 보았던 소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집으로 간다. 권력의 2인자로서 자신의 아들을 절대 권력의 양자로 보냈던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이다.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건축되었다고 하며 해방이후에는 북한 공산당의 간부 휴양소이었다가 휴전 이후 그가 사용하였다. 백년도 더 되는 소나무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 납작하고 아담한 집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소나무들은 키가 20미터이고 직경은 60~80센티미터나 되어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답게 하나하나가 독창성을 보인다. 돌로 쌓은 벽사이로 창문이 있고 그 외에는 싱싱한 담쟁이덩굴로 무성하게 덮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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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 커다란 소나무에 감추어진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

 

화진포 해수욕장 배후의 솔숲으로 들어간다. 콘도가 있고 그 앞쪽 입구에도 소나무가 완전히 하늘을 가리는 멋진 길이 있고 길은 콘도를 지나 백사장을 따라 약 400미터쯤 뻗어있어 연인과 손잡고 걸으면 솔내음과 바다내음이 각각 다르게 뇌속을 돌아다닌다. 숲길은 완전히 우거져서 그늘만 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깨끗한 바람으로 시원함을 더한다. 소나무들은 구불거림이 적고 대체로 하나의 줄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와 나무 자체도 보기에 좋다. 나무의 키는 15미터 내외이고 직경도 20~40센티미터로 크지 않지만 모래땅을 완전히 피복하고 울창하게 덮여서 만족스러운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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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소나무가 그늘을 만든 숲길

 

바닷가와 인접한 곳은 대부분 해송이 많은데 이곳은 향토 소나무들만 자란다. 껍질의 색깔도 강원도 특유의 강송을 닮아서인지 붉은 빛이 선명하다. 산책길 바닥은 모래땅위에 갈잎이 함께 하니 발에 닿는 촉감은 더없이 포근하다. 해안의 숲들은 한없는 인파로 인하여 파괴되고 다시 만드느라 야단법식인데 이곳은 지리적으로 조금 떨어져서 그런지 숲이 잘 보전되어 있다. 아무래도 낮은 울타리라도 만들어 놓으면 마음대로 들어가서 훼손하는 시대는 지난 듯하다. 덕분에 소나무 아래는 온갖 식물들이 땅을 뒤덮어 바람과 햇빛에 잎이 움직일때마다 반짝거리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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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화진포 해수욕장과 석호 주변 풍경

 

성을 나와 화진포 한가운데 난 돌다리를 건너면 산기슭에 위치한 이승만대통령의 별장이 나온다. 도 지방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화진포는 그 둘레가 약 16킬로미터에 달하는 대형 호수로 담수와 해수가 교차하는 전형적인 석호이다.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두고 길을 건너면 정원같은 평지가 공원처럼 있고 계단을 따라 오르면 그의 별장이다. 대통령 별장은 1954년 건립되었다가 1997년에 집무실, 침실, 거실을 복원하였으며 부부가 사용한 침대, 낚시 도구, 의복 등 유가족이 기증한 유품 53점이 전시되고 있다. 별장 뒤에는 안보 전시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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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언덕에 지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은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3살 때 부모를 따라 서울로 이사하여 한문을 배우다가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한 후 이듬해 졸업하였다. 그는 일본인의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미국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고 개화사상에 심취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서재필이 주도한<협성회보(協成會報)>의 주필이 되어 정부를 비판하였고 1898년 정부전복을 도모하였다는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7년 만에 석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자 귀국하여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YMCA)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지만, 미국인 선교사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1912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감리교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국내에서 조직된 한성(漢城) 임시정부와 상하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에서 각각 최고책임자인 집정관 총재와 국무총리로 추대되었다. 광복이 되자 그 해 10월 귀국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총재, 민주의원 의장 등을 지내며 1946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계획을 발표하였다. 1948년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공산주의자를 분쇄하였으며, 일본에 대해서도 강경한 자세를 취하였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4선이 되었으나 4·19 혁명으로 사임하고 하와이에 망명한 후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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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 이승만 대통령

 

인간은 누구든지 공과(功過)가 있는데 왜 과는 부각하고 공은 축소하여 악착같이 위대한 사람들을 끌어내리려 하는지 한편으론 슬프기까지 한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이 대통령을 잠시 추모하고 별장을 나와 왼쪽 길을 따라 가면 고성군에서 가꾼 60년이상의 소나무숲이 언덕 너머까지 약 500미터 좌우로 있는데 솔향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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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 석호에서 바라본 화진포의 성과 소나무 숲

 

 

별장 아래 석호 주변의 자그마한 정원에는 몇 그루의 노송이 제멋대로 살고 석호변에 갈대가 건너편 산과 함께 조화를 이룬다. 안쪽으로 하나의 여성상이 서 있는데 화진포의 역사를 알려주는 이정표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는 이화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성질이 고약해 금강산 건봉사에서 시주를 위해 찾아온 승려에게 골탕만 먹였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승려를 보고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몰래 시주를 하려 했지만 따라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는데 그 순간 마을 전체가 물속에 잠겨 호수가 됐고 혼자 살아남은 착한 며느리도 슬픔을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후 주민들은 시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화진포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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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3. 석호주변에 서 있는 화진포설화에 나오는 주인공 동상

 

소나무숲이 잘 보전되어 있는 호수 주변과 백사장 배후의 숲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이 거처한 이곳은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에게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