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5-[이천용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아름다운 숲 탐방기] 부여 궁남지의 수양버들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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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여름철 궁남지 전경

 

백제의 고도 부여에 있는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선화공주와의 사랑으로 유명한 백제 무왕이 만든 남쪽 별궁에 속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무왕 35년(634)에 ‘성의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 들여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한가운데에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선산을 모방한 섬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동해바다 한가운데 신선이 사는 삼신산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정원 연못 안에 삼신산을 꾸미고 불로장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삼신산에는 신선과 불로초가 있고, 황금과 백은(白銀)으로 된 궁궐도 있는 일종의 이상향이다. 궁남지는 이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신선정원이라 불린다.

1990년대에 발굴조사한 결과 궁남지 내부 및 주변에서 나무 및 차지고 끈끈한 흙인 점질층으로 만든 집수시설, 수로, 건물터 등이 발견되었다. 집수시설은 동서 길이 11.65m, 남북 너비 3.13m인데, 가장자리를 따라 통나무를 2중으로 박아 벽체로 쌓은 모습이다. 집수시설과 가까운 동쪽 바깥쪽에는 도수로가 남~북 방향으로 설치되었는데, 이곳을 거쳐 집수시설로 물을 끌어들였다. 집수시설 안의 서쪽 부분은 6.3m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고, 동쪽 부분에는 수로에서 유입된 물을 흘러 보낼 수 있도록 얕은 ‘∪’자형 홈이 나 있다. 수로는 인공물을 설치하지 않은 자연형 수로와 옆면에 말목을 박고 나무를 횡으로 걸친 인공형 수로가 연결된 모습이다. 수로에서는 길이 35㎝로 소나무로 제작된 목간, 여러 점의 나무 삽과 가래, 베틀의 구성품인 목제 비경, 부들로 제작된 짚신 등 당시 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출토되었다.

백제에서 왕궁 근처에 연못을 만드는 전통은 한성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웅진 시대의 왕궁이었던 공주 공산성에는 당시의 것으로 판단되는 연못이 왕궁지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함께 발굴되었으므로 백제 연못 축조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이며 기록대로 궁남지의 한가운데에 방장선산을 모방한 조산(造山)이 있었다면 이는 백제의 왕궁 조원(造苑)에 처음 들어온 것이다.

궁남지와 관련된 또 다른 기록은 삼국사기 의자왕 15년 2월에 태자궁을 지극히 화려하게 수리하고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궁남지를 바라보면 바다와 같이 시원한 느낌을 받았을 터이고, 바다와 같이 큰 연못을 왕궁 근처에 만드는 것이 백제가 처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는 문무왕대에 월지(안압지)를 만들고 그 안에 삼신도를 조성하며 주변에 임해전을 세웠는데, 이것은 백제의 궁남지와 같은 개념이며 따라서 백제의 조원(造苑)기술은 삼국 중 으뜸이었다.

궁남지를 만든 백제 무왕과 적국인 신라 선화공주의 로맨스가 삼국사기에 있다. 옛날에 ‘마를 캐는 아이[薯童·서동]’라고 불린 소년이 있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던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서라벌로 향한다. 첫눈에 반한 그는 공주를 아내로 맞겠다고 결심하고 꾀를 하나 낸다. ‘선화공주는 남몰래 밤마다 서동을 만난다’는 가사의 ‘서동요(薯童謠)’를 아이들이 부르도록 한 것이다. 딸을 오해한 진평왕은 공주를 귀양 보냈고, 궁 밖에서 기다리던 서동은 그녀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그는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글은 최초의 4구체(四句體) 향가로, 정교한 10구체 향가와는 다르게 민요 형식의 직설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이 노래는 신라 선화공주의 비행을 발설하여 왕궁에서 쫓겨나게 함으로써 마침내 자기의 아내로 맞을 수 있게 한 일종의 참요(讖謠: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징후 따위를 암시하는 민요)이다. 내용적으로는 자신의 잠재적 갈망과 욕구를 상대방의 것으로 전도시켜 진솔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므로 설화 그대로 야심많은 한 젊은이가 몽환적인 사랑을 재치와 기지로서 현실로 실현시키는 영웅의 일대기인 셈이다.

아주 넓은 평지 끝 주차장에 차를 놓고 나와 보면 연꽃으로 덮인 연못이 보인다. 땡땡 볕에 그늘하나 없지만 각양각색의 연꽃을 바라보면 아름다움에 따가움을 잊게 한다. 연밭사이로 천천히 걸으면 멀리 보이던 수양버들에 둘러싸인 궁남지와 정자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연못은 1967년에 복원한 것으로 원래 자연늪지의 1/3정도이고 연못 안에는 정자와 나무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예쁜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수많은 고기들의 유영을 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용을 잡았다는 이름의 포룡정속으로 들어가 난간에 앉아 연못 밖의 늘어진 수양버들을 바라보면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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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포룡정과 나무다리

 

호수 주변에는 오래된 수양버들 백여 그루가 있다. 가까이 있는 것은 직경이 20~50센티미터이나 조금 떨어진 나무들은 50~60센티미터로서 더 오래되었다. 나무 키는 거의 10미터내외로 비슷하지만 몸통의 굵기에 따라 벌써 죽은 나무도 보이고 죽은 가지를 치료한 것도 있다. 수양버들은 물가에서 자라므로 수분이 많아서인지 이른 봄 가지에 물이 올라 갈색으로 변하고 새로운 잎이 날 때 봄바람이 나무를 스치면 하늘거리는 가지가 마치 춤을 추는 듯하고 물을 배경으로 시원하고 화려한 모습을 투영한다. 수백년을 사는 왕버들에 비해 수명이 짧지만 살아있는 동안 독특한 정취를 제공하므로 정자에 앉아 바라보면 시흥이 절로 난다. 궁남지 주변처럼 오래된 수양버들 무리와 연못이 아름답게 어울리는 곳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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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궁남지를 둘러싼 수양버들

 

수양버들의 학명은 살릭스(Salix)인데, 생장속도가 빠르다 하여 ‘뛰어오름’이라는 뜻의 salire에서 유래되었거나, 습한 땅에서도 잘 산다고 하여 켈트어로 ‘가깝다’라는 뜻의 sal과 ‘물’이라는 뜻의 lis의 합성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한편 가지를 엮어서 종다래끼를 만들므로 그리스어로 ‘소용돌이치다’라는 뜻의 helix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다양한 해석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주목을 받았거나 흔하기 때문이다. 버드나무속은 주로 북반구의 난대와 온대지방에 널리 분포하고 세계적으로 약 400여 종(種)이 있다고 보고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약 30여 종과 16개의 변종이 자라고 있다. 수양버들은 중국이 원산지로 특히 양쯔 강[揚子江] 하류 지방에 많으며 일본에도 분포한다. 수양버들의 ‘수양’은 원래 중국 수(隋)나라의 양제(煬帝)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수양버들은 생장속도가 빠르고 공해에도 잘 견디며 가지가 아름다워 가로수로 많이 심었으나, 봄이 되면 솜털처럼 공중에 떠다니는 씨가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염 등을 일으킨다고 하여 다른 수종으로 바뀌고 일부 지역에만 남아있다. 꽃은 잎과 거의 같이 피는데 수꽃과 암꽃이 같은 나무에 핀다. 수양이나 능수버들의 가지가 가늘고 실같이 늘어지므로 아름다운 여인에 비유되며, 천안삼거리의 수양버들은 초등학교 교과서 민요에도 있어서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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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수양버들의 꽃과 씨

 

<천안삼거리>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축늘어 졌구나 흥

에루아 에루아 흥

성화가 났구나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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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궁남지주변의 작은 수로

 

연못 동쪽에는 당시 별궁으로 보이는 궁궐터가 남아 있으며 연못 주변은 서동공원으로 꾸미고 연꽃을 심어 7월 말 한여름에는 연꽃 축제를 열고 있다. 연잎을 씌어 만든 연잎밥은 이 고장의 명물이면서 확실한 먹거리이다. 부여군에서는 천만송의 연꽃에 상당한 홍보를 하고 있지만 한여름의 연꽃 외에도 이른 봄 늘어진 가지에 연두색의 새잎과 꽃을 내는 수양버들은 궁남지의 역사성과 경관을 드높이는 나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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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화려한 연꽃과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