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몽골] 꿈 – 김미경 단원

2016_몽골에서 온 편지

 

내가 몽골에 온 이유는 다른 생명의 아픔에 내 책임이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않기 위함이다. 가난한 나라의 자원과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한민국에 속해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해자다. 언젠가 한 몽골인이 몽골이 한국처럼 부강해지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부강한 선진국 대한민국’에 발 딛고 서 있는 내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과 괴로움이 엄습했다.

강해지면 약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타인을 공격하게 된다. 강해진다는 것은 결국 둔해진다는 말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강해지는 세상이 아닌 약자도 편견과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세상, 적은 소유로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기품 있게 살 수 있는 세상, 더 낮은 곳으로 더 좁은 길로 향하는 사람들이 협동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다신칠링에는 내가 계속 꿈꿀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조림지를 관리하는 경비원의 손녀다. 춥고 건조한 날씨 때문에 피부가 다 갈라지고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흉터가 많지만, 그런 것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맨발로 대지를 뛰어다니는 그 아이를 보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또 다른 자극제는 조림지 안의 키 작은 나무들이다. 나는 종종 나무들을 보며 서정주의 시 <침향>을 떠올리곤 했다.

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둡니다. 침향은 아무리 짧아도 2~3백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와 조류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 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더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그래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은 이 침향 내음새 꼬옥 그대로 바짝 가까이 그리운 것일 뿐,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습니다. <침향> 中

작은 나무들이 모여 다른 생명들에 영향을 미치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다신칠링의 소녀가 만날 세상, 그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의 아이가 만날 세상, 그리고 다음, 또 그 다음 세대가 만날 세상까지. 그들이 만날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몫은 따분할 것도, 아득할 것도, 너절할 것도, 허전할 것도 없이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일이다. 나무 한 그루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희망이 씨앗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4월_에세이_김미경_사진

바양노르 조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