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몽골] 오늘도 나는 배가 고프다 – 이보람 단원

 

9개월의 몽골 생활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은 무엇일까? 아마 먹는 이야기일 것이다. 생활에 부족하거나, 불편한 건 없는데 먹는 건 늘 채워지지 않는다.

-틈 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

1. 뭐 먹고 싶다.
2. 뭐 먹고 싶어?
3. 뭐 먹지?
4. 한국가면 제일 먼저 뭐 먹을까?
5. 지금 이 순간, 제일 생각나는 음식 뭐야?

그리고 일이 있어서 울란바타르에 갈 때쯤엔 절정에 이른다.

1. 도착하자 마자 뭐 먹지?
2. 점심은 뭐 먹지?
3. 저녁은?
4. 내일 아침, 점심, 저녁은?
5. 돈드고비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는 뭐 먹지?

파트너 언니와 나는 수도에 자주 가지 않아서 한 번 가게 되면 이렇게 심사 숙고해서 “먹기” 일정을 계획한다. (물론 그 계획이 제대로 실행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햄버거

수도에서 한끼라도 더 먹기 위해서 택시 타고 올라 갈 때는 늘 새벽 6시에 출발한다. 그러면 10시쯤 수도에 도착하는데, 그 때 사무실 근처 KFC가 문을 연다. 거의 대부분 수도에서의 첫 끼는 KFC다. 한국에서는 가지도 않는 KFC인데, 여기선 수도 갈 때마다 간다. 맛있다. 얼마 전에 버거킹이 생겨서 가 봤는데, KFC가 더 맛있는 것 같다. 몽골 KFC 코우슬로는 정말 맛있다. 거의 항상 오픈 시간에 딱 맞춰서 가는데 그 때 먹는 치킨이랑 감자튀김은 금방 튀겨내서 따끈따끈 진짜 맛있다.

몽골에 와서 햄버거 병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햄버거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는데, 여기선 햄버거가 자주 먹고 싶다. 특히 4월에 처음 파견되고 2달 동안 돈드고비에만 있을 땐 정말 너무 너무 햄버거가 먹고 싶었다. 6월 초에 첫 워크숍이 있어서 수도에 올라갔는데, 가기 하루 전 날은 정말 미치도록 햄버거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KFC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감동이었다.

몽골에 맥도날드가 없다고 해서 한국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는 맥도날드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먹지 못 했다. 그 아쉬움 때문에 햄버거 병이 생긴 것 같다.     

  KFC에선 항상 X박스를 먹는다. 징거버거, 감자튀김, 코우슬로, 치킨 1조각, 콜라. 구성이 괜찮다.
버거킹은 비싸다. 나중에 한국 가면 몽골을 추억하며 종종 KFC 갈 것 같다.

쌀국수

쌀국수는 나의 인생 음식, 소울 푸드, 힐링 푸드다. 2년 전 호주에 있을 때였다. 호주에 살면서 국물 요리를 몇 번 시도했는데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 날은 날씨가 흐리고 쌀쌀해서 따뜻한 국물이 정말 먹고 싶었다. 마침 자주 지나다니던 거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쌀국수 가게가 있었다. 실패를 각오하고 들어갔다.

아 이런… 내가 왜 이제서야 이 식당에 왔을까! 정말 맛있었다. 바로 내가 찾던 맛이었다. 그 동안의 실패를 위로해주고, 쌀쌀한 날씨에 딱인 국물 맛이었다. 5일을 매일 그 식당에 가서 쌀국수를 먹었다. 외국 생활하면서 그리웠던 따뜻한 국물 음식, 그 그리움을 쌀국수가 달래주었다. 그 때부터 쌀국수는 내 인생 동반음식이 되었다.

몽골에도 정말 맛있는 쌀국수 식당이 있다. 몽골에선 쌀국수를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쌀국수 식당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행복했었다. 바로 그 식당으로 향했고, 나의 힐링 푸드답게 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녹여줬다. 정말 맛있다. 한국에 지점 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식당에 갔었는데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가게 안이 다 정리 돼 있었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다. 제발 리모델링 하는 거였으면 좋겠다.    

  쌀국수가 내 인생 음식이 되던 날, 그 날 먹었던 쌀국수(왼쪽)
몽골에서 먹은 쌀국수. 아쉽게 숙주가 아니라 콩나물이다. 그래도 끝내줌.(오른쪽)

아 오늘도 먹고 싶은 건 참 많다. 그래서 괴롭지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2016년 2월 어느 날,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해 편의점에서 아침에 주스 오렌지 맛(혹은 콜드 오렌지 맛)을 사서 공항 버스를 탈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통 감자, 호두 과자, 핫바, 어묵을 사 먹을 것이다. 그리고 대구에 도착하면 오빠를 만나서 유가네에서 닭+야채 철판볶음밥을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거창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상하이 스파이시 버거 세트를 사서 차에서 먹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한 김치 갈비찜과 새송이 무침, 그리고 초록색 나물을 먹을 것이다. 후식은 귤이랑 얼린 홍시를 먹을 것이다. 식혜랑 고구마도 있으면 좋겠다(엄마 읽고 있지?)

  이번 가을 엄마가 딴 송이 버섯. 냉동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ㅠㅠㅠ